187화. 52nd. 잔칫상은 나눠먹어야지 (6)
명선구와의 협상을 마친 우리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그룹 수뇌부에게 결과를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양일보를 비롯한 모든 언론사에서 반도체 사업 빅딜에 대한 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태현그룹, 소떼 방북으로 반도체 사업을 먹는 건가?]
[태현그룹, 반도체 빅딜을 통해 이번 정권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측]
사옥에서 신문기사를 보던 명선구가 피식 웃었다.
“우리 선우, 꽤나 고생 좀 하겠군, 흐흐.”
명선구는 GK그룹과 해동그룹이 이 기사를 냈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반도체 사업 빅딜이 난항을 겪을수록 태현전자를 지휘하는 동생 명선우는 힘이 들 테고 그만큼 이성민이 자신에게 만들어줄 공이 더 큰 빛을 발하지 않겠나?
“어린 녀석한테 받아먹는 게 내키진 않지만 내 집부터 지키려면 받아야겠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반도체 사업 조기매각이라는 선물을 아버지 명진호에게 가져가면 계열분리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협상에 나선 것도 대주자동차 분할보다 태현그룹 자동차 계열의 우호지분 확보 때문이 아닌가?
쓴웃음을 머금고 신문을 보던 명선구가 전화를 걸었다.
[스탠더드 캐피털 이성민입니다.]
“아, 이 이사? 신문기사 잘 봤네. 자네 수완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허허.”
[아닙니다, 명선구 사장님. 서로서로 득을 보자고 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렇지. 다른 건 몰라도 나, 해동그룹, 스탠더드 캐피털은 이익을 볼 테니 말이야, 흐흐.”
한껏 음침한 웃음을 흘리던 명선구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헌데··· 앞으로도 날 명선구 사장님이라 부를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앞으로는 사장님 대신에 백부님이라고 부르게, 이 사람아. 자네는 모르겠지만 내가 자네 아버지하고도 술 마시고 사우나 다니던 사람이야. 사업은 별개겠지만 호칭까지 딱딱해서야 쓰겠나?”
명선구는 이성민이라는 놈이 마음에 들었다.
태현그룹 명진호의 장자인 자신에게 거리낌 없이 독설을 쏘아댄 그 배짱, 계열분리를 원하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읽는 통찰력, 그런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꾀까지 짜낸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고놈 참··· 내 사위로 들였으면 딱 좋았으련만.’
이성민이 이리도 괜찮은 놈인 줄 알았다면 그 여우같은 장호건이 선수를 치기 전에 자신이 손을 썼을 텐데··· 입맛을 다시던 명선구가 이성민에게 말했다.
“그, 그게···.”
“어허, 앞으로는 나한테 백부님이라고 부르게. 우리 아들이 미국서 공부 마치고 들어오면 종종 만나서 친하게 지내고.”
적보다는 아군을 만드는 게 유익한 법이다. 명선구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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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백부님.”
통화를 마친 나는 나를 지켜보던 선해철의 질문을 받았다.
“뭐야? 명선구하고 전화하는 것 같던데 웬 백부님 타령이냐?”
“앞으로는 자기를 백부님으로 부르라고 하더군요, 후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명선구라는 남자는 그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태현자동차를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끌어올리고 태현그룹의 상당부분을 재통합할 남자가 아닌가?
이번 생이야 아도자동차를 먹는 데 실패해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추진력뿐만 아니라 여우같은 꾀도 갖고 있으니 국내 자동차업계를 우리와 양분하게 되면 국내 재계에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올라갈 것이다.
빙긋 웃는 나를 보며 박태진도 미소를 띠었다.
“명선구 사장이 이사님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사님이야 그럴 필요가 없는 분이지만 말이죠, 후후.”
“그래도 적이 돼서 좋을 것도 없는 사람이니 먼저 손을 내밀어주면 잡아줘야죠.”
기분 좋게 웃으며 일을 하던 중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스탠더드 캐피털 이성민입니다. 누구시죠?”
[나야. 잘 지냈지?]
밑도 끝도 없이 ‘나’라고 자신을 소개할 놈은 장용재뿐이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렸던 나는 표정을 풀고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지. 무슨 일이야?”
[차나 한 잔 할까? 너희 회사 있는 건물 카페에 왔는데.]
손목에 채워진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본 나는 쩝 소리를 내며 말했다.
“30분 정도는 괜찮겠네. 이따 봐.”
전화를 끊은 나는 선해철에게 말했다.
“밑에 내려가서 차 한 잔 마시고 올게요.”
“누구하고?”
“장용재요.”
“장용재?”
“네. 금방 만나고 올 테니까 염려 놓으세요.”
이 새끼가 왜 날 보자고 하는지 대충 짐작은 된다. 나는 씩 웃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
“오랜만이야, 처남?”
카페에 내려가서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자 장용재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왜? 거슬려? 뭐, 내 와이프가 장모님 친딸이 아니니 이해는 된다만··· 후후.”
피식 웃으며 잔뜩 놀려준 나를 보며 장용재가 물을 마셨다. 컵을 내려놓은 장용재가 날 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요새 바쁘다며?”
“많이 바쁘지. 친가하고 외가 쪽 컨설팅 맡고 있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잔뜩 뻐겨줬고, 장용재도 지기 싫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많~이도 바쁘겠네. 근데, 네 밥그릇은 못 챙겨서 어쩌냐?”
“내 밥그릇이라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그러잖아. 대주그룹 중공업 계열사 잔뜩 먹어봐야 너희 숙부님 좋은 일만 될 텐데. 그렇다고 금융계열사까지 먹으면 다른 그룹들이 가만있을까?”
장용재가 날 보며 잔뜩 비웃었다.
요즘 들어 정재계 돌아가는 소식에 따르면 대주그룹 금융계열사는 장호경이 가져가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으니 얼마나 좋겠나? 내가 가져갈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대주그룹 금융계열사들에 공적자금이 들어가면 환골탈태는 기정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세 회사를 환골탈태 전보다 더 너덜너덜하게 망가뜨리고 장호경이 가진 모든 걸 가져올 수 있었다.
“아, 그거? 그렇지 않아도 조 부회장님 통해서 고모님께 전해드렸어. 우린 손 안 댈 테니까 내 와이프 좀 예쁘게 봐달라고.”
“뭐?”
본심을 숨기고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장용재의 눈이 커졌다. 내가 대주그룹 금융계열사를 욕심낼 줄 안 것 같은데 번지수를 짚어도 단단히 짚었으니 얼마나 황당할까?
“야! 그거 사실이야?”
“처남이 작은 처남에 처제까지 끌어들여서 내 와이프 따돌리는데 다른 친척 분들한테라도 잘 봐달라고 해야지. 안 그래?”
“미친놈! 그깟 계집 하나 때문에 알짜배기들을 포기하겠다고?”
장용재는 어처구니없다는 눈길을 보냈지만 나는 되려 어깨를 으쓱하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욕심이 나긴 하지. 그런데 종금만 잘 키워도 남 부러울 게 없어. 해동종금이 은행 간판만 못 쓸 뿐 은행하고 똑같은 건 알지?”
해동종금은 재벌 금융회사 중 시중은행과 가장 유사한 금융회사다. 예금자보호법도 적용받으면서 수조 원 규모의 막대한 자본금을 내세워 정부에서 시행령을 개정한 종금사 출점 규제 완화 조치의 유일한 수혜자가 되지 않았나?
자본금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은행처럼 점포를 내고 예금과 적금을 받아서 대출 장사를 할 수 있으니 그깟 은행 간판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하나 더. 해동증권이 쥐고 있는 주식은 또 얼마나 되는데.”
해동증권 또한 해동종금 못지않은 자금력을 내세워 이 나라 주요 대기업과 시중은행들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씩 웃었다.
“그 두 회사 최대주주가 나야. 그것도 50퍼센트 이상의 주식을 쥔 최대주주.”
장용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꽉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나는 저놈의 쌍판때기를 마주보며 속 긁을 말을 더 던졌다.
“그리고 나, 해동물산 대주주야? 처남이 쥔 신성물산 지분율보다 내가 쥔 해동물산 지분율이 훨씬 높을 걸? 뭐가 아쉬워서 욕 먹어가며 남의 회사를 인수하겠어? 안 그래?”
무엇보다 내가 악다구니 써가며 지금 먹지 않아도 대주그룹 금융계열사는 결국 내 손 안에 들어온다. 신세기그룹까지 이자로 얹어서 말이다.
저놈에게 내 빅 픽처를 알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이미 장용재의 표정은 충분히 일그러졌다. 나를 놀리러 왔다가 오히려 내게서 비웃음을 잔뜩 먹었으니 얼마나 열이 뻗칠까?
“지분이 많다고 다가 아닐 텐데? 네 숙부님이 금융 빼고 다 가져가면 어쩌려고?”
나와 우리 집안에 불안과 불화의 씨앗을 심으려고 애쓰는 장용재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나는 그런 장용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우리 집안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교통정리 다 끝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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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장하연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해동물산과 고려호텔의 합병을 마친 할아버지는 고려호텔이 장하연의 몫이라는 것을 못 박아두면서 승계 계획까지 선언했다.
“새천년의 마지막 날에 맞춰 계열분리를 단행할 거다. 나는 뒤로 물러날 거고.”
“아버지?”
“아버님?”
“할아버지?”
“할아버님?”
우리 가족 모두가 놀라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 사이에도 할아버지는 승계 계획의 내용을 알렸다.
“아범에겐 기존의 건설, 제철, 시멘트, 중공업에 해동자동차 지분 50퍼센트, 여기에 해동물산이 해외에 보유한 각 철광과 탄광 지분 중 2할, 유동현금의 65퍼센트를 나눠줄 거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의 입이 떡 벌어졌지만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승계 계획을 밝혔다.
“성민이는 그룹의 모체인 해동물산과 해동정유 이하 석유화학 계열사, GK금속 지분 50퍼센트, 해동물산이 보유한 금융계열사 지분 전부를 물려받을 게다. 그리들 알어.”
이명진은 그 결정에 반대했다. 보통의 재벌과는 색다른 이유로.
“말도 안 됩니다, 아버지. 성민이가 키우는 해동자동차를 어떻게 저희가 가져갑니까?”
“아버지 말이 맞습니다, 할아버지. 형이 스탠더드 캐피털 자금까지 끌어와서 해동자동차를 가져왔는데···.”
이성문을 비롯한 사촌동생들도 전부 해동자동차 지분 50퍼센트를 받는 것을 반대했지만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성민이 걱정해주는 거다. 게다가 저놈은 문과라서 기술머리가 안 돼. 회사 안 말아먹으려면 너희가 가져가야지, 으허허.”
할아버지의 계열분리는 아주 현명한 조치였다.
자동차 사업처럼 기술로 승부하는 사업은 연구개발 비용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해동물산을 쪼개서 탄생할 이명진의 지주회사에는 돈이 많이 있는 게 좋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사업은 기술에 밝은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니 괴수급 공돌이인 사촌동생들도 경영에 끌어들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해동물산의 해동자동차 지분 50퍼센트를 이명진에게 넘겨도 나머지 50퍼센트는 스탠더드 캐피털, 다시 말해 내 몫이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할아버지는 지분구조와 각자의 역할을 고려해서 결정했을 터.
껄껄 웃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웃음을 거둬들이고 짤막한 탄성을 터뜨렸다.
“아! 내 개인 명의로 된 해동종금 지분은 조만간 성문이, 성우, 성아 너희들한테 똑같이 나눠줄 거다.”
“하, 할아버지?”
세 녀석이 벙찐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었지만 할아버지는 벙긋 웃었다.
“놀랄 거 없다. 앞으로 할애비가 가진 주식 물려받으려면 세금 낼 일이 많아질 게야. 성민이가 두둑하게 배당 뿌려줄 테니 차곡차곡 잘 준비해둬. 안 그러냐, 장손?”
“물론입니다, 할아버지. 동생들 배당금, 스탠더드에서 열심히 굴려주겠습니다, 하하.”
스탠더드 캐피털은 우리 집안과 해동그룹을 번창시키기 위해 세운 투자회사다. 해동자동차를 인수할 때 했던 약속은 허언이 아니었기에 나 또한 흔쾌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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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리 집안 사정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지만 장용재는 지금까지 들은 것만으로도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분수도 모르고 까불긴.’
말 대신 왼쪽 입꼬리를 올린 나는 남은 커피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얘기할 거 없으면 그만 올라갈게, 처남. 커피 값은 내가 계산하지.”
명선구와 내가 백부조카 사이가 된 건 말해줄 필요도 없을 만큼 내 속을 긁으러 왔던 장용재는 충분히 녹다운 됐다. 나는 빙긋 웃으며 계산대로 걸어갔다.
***
얼마 뒤.
나와 장하연은 장호경을 찾아갔다. 일전에 조영찬을 통해 전해들은 바가 있으니 인사는 올려야 할 것 같아서였다.
“안녕하셨습니까, 고모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늦기는. 우리가 한가한 사람들도 아닌데 와줬으니 그걸로 됐어. 뭐 마실까?”
“오렌지 주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장호경의 살가운 환영에 나와 장하연은 미소를 띠었다. 우리 때문에 두 번이나 물을 먹었는데 대주그룹 금융계열사 인수에 손대지 않겠다는 게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다 내 손에 들어올 회사지만 지금은 즐겨두게 놔두는 것도 좋겠지.’
한껏 올라가있을 때 추락하는 것만큼 절망과 충격을 주는 방법도 없다. 장호경과 함께 자리에 앉은 우리는 직원이 가져온 주스를 마셨다.
“생과일주스군요.”
“내가 좀 입맛이 까다로워서 말이야. 그래, 양보해줘서 고맙긴 한데··· 정말로 괜찮겠어?”
눈빛을 보아하니 우리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속셈이 있냐는 뉘앙스 같았다. 나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고모님. 지금 있는 재산만 잘 키워도 저희 내외가 밥 굶을 걱정은 없잖습니까? 하하.”
“밥 굶을 걱정이라니? 종금, 증권에 쌓인 현금만 해도 몇 대가 먹고 살 텐데. 이제 보니 우리 조카사위, 욕심이 많은 것 같네?”
‘당신이나 당신 아들딸보다야 더하겠습니까? 성욕은 또 어떻고요.’
장호경의 남성 편력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영화 ‘돈의 맛’에서 백금옥 여사가 주영작을 역강간하는 건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이니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이었다.
당연히 이 여편네의 피가 반은 섞인 장녀 채윤정도 만만치 않은 성욕의 소유자였다. 그나마 지금은 진심으로 좋아하는 남자배우와 결혼해서 죽고 못살 만큼 깨가 쏟아진다지만 어머니와 남동생이 들들 볶아대고 있으니 오래 가진 못할 터.
잠시 나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머쓱한 미소를 짓고 장호경에게 말했다.
“저와 제 와이프는 지금 물려받을 것만 건사하는 것도 벅찹니다, 고모님. 보험이나 카드는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그렇지?”
“네, 고모님. 게다가 이이가 그룹 일만 하는 것도 아니라서 신경 쓰지 못할 거예요.”
장하연까지 나서서 내가 해동그룹에만 얽매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넌지시 알려줬다. 그때서야 장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네. 지금 파고 있는 우물만 파도 바쁘겠어, 후훗.”
장호경은 가벼운 웃음을 치고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나는 그런 장호경을 보며 미소를 띠었다.
‘맘껏 웃어두시죠. 6년만 지나면 다시는 웃지 못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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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외가 장호경을 방문하고 난 뒤 많은 일이 있었다.
장하연은 임신 4개월 차라는 게 밝혀지면서 집안과 그룹에서 축하세례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해서 그룹 사람들 사이에서는 ‘장하연이 일로 태교를 한다.’라는 농담 섞인 말이 돌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장하연이 임신한지 얼마 안 돼서 유현정도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쌍둥이를 임신해서 선해철-클레어 부부와 동점이 됐다.
집안과 그룹의 개인사처럼 사업도 순조롭게 풀렸다.
해동그룹과 GK그룹은 모든 화력을 동원한 여론전 끝에 GK반도체 조기매각을 선언하면서 정부와 태현그룹을 상대로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게 됐다.
GK반도체의 모든 주식과 부채를 태현전자에 넘기면서 현금 2조 원과 태현전자 디스플레이 사업을 받았고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데이콤 인수까지 성사된 것이었다.
당연히 해동그룹도 GK금속의 공동대주주로서 대주금속을 인수했고, 여기에 더해 GK그룹과 합작으로 데이콤 주식을 각각 30퍼센트씩 총 60퍼센트를 인수, 이익을 공유했다.
물론, 해동그룹만의 이익도 톡톡히 챙겼다.
해동물산은 대주그룹의 서울역 본사와 미안먀 가스전, 남산 힐튼 호텔과 대한신용유통을 인수하며 자체 사업을 확장했다.
여기에 중공업 부문은 트라이엄프-스탠더드 컨소시엄이 100퍼센트의 지분을 인수한 대주중공업을 3년 뒤에 인수하기로 밀약을 체결했고 태현자동차와 협의한 대로 대주자동차를 나눠먹는 등 한 계단 더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그 와중에 장호경은 대주그룹 금융계열사를 헐값에 집어삼키고 축배를 들었다. 지금이야 좋다고 난리브루스를 추겠지만 얼마나 오래 갈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이제 내게 남은 중요한 일은 미국 증시에서의 일밖에 없다. 8월까지 열흘쯤 남았으니 빨리 미국으로 넘어가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