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47th. Dirty, Sexy Gold (1)
해동증권에서의 미팅을 끝낸 나는 박태진과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조영찬을 만날 생각에 입꼬리가 절로 씰룩거린 나를 박태진이 바라보며 미소를 띠었다.
“뭔가 재밌는 일을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사업만큼 재밌는 일은 없으니까요, 후후.”
손대는 사업마다 승승장구하게 됐는데 어떻게 재미가 없을까? 이기는 게 즐거운 것이라는 모토인 나는 또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젠 슬슬 금을 모아볼까.’
내 기억이 맞으면 오늘부터 공식적인 금모으기 운동이 시작된다.
누군가에게는 나라를 위해 자신도 한몫했다는 자부심을 안겨준 일이었지만 경제인인 내가 봤을 때는 국가적 차원의 멍청한 짓이었다.
‘너무 성급하게 금을 팔았어.’
달러보다 더 확실한 만국 공통의 안전자산인 금.
그 귀중한 금을 정관계의 미숙한 대응, 재벌들의 탐욕 때문에 헐값으로 해외에 유출시킨 게 금모으기 운동의 부끄러운 진실이었다.
‘그 소중한 금, 잘 써먹어줘야 예의겠지.’
속으로 미소를 띠던 나는 박태진에게 말했다.
“모처럼만에 본사 왔으니까 실장님이라도 뵙고 인사드리세요.”
“이사님?”
자신을 떼어놓고 조영찬과 만나겠다는 것 때문에 박태진이 조금은 아쉬운 눈길을 보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박태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하고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일하시려면 지금부터 준비하셔야죠. 안 그래요?”
고승주의 다음을 이을 만큼 자신이 빨리 크길 바란다는 내 마음이 전해졌을까, 박태진이 겸연쩍은 미소를 띠었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하하.”
‘훗, 그래야 내 사람답지.’
껄껄 웃는 박태진을 보며 미소를 띤 나는 박태진과 헤어져서 조영찬의 집무실로 갔다.
“드디어 왔군, 이 이사. 해동증권은 잘 보고 왔는가?”
“부회장님 덕분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습니다, 하하.”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대로 국내 주식 매입을 지시한 조영찬 덕분에 배재훈, 이명진과 당진에서 의논했던 ‘경쟁그룹 개목줄 채우기’ 계획은 내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참 대단한 분이란 말이지.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다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웃던 내게 밀크티 한 모금을 들이켠 조영찬이 말했다.
“우리처럼 돈으로 돈 버는 사람들에게 지금 같은 때는 10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하네. 무작정 싼 맛으로 사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하하.”
조영찬이 호탕하게 웃을 만했다.
다른 놈들이 동남아 부실채권이나 국내 대출에 돈이 물려서 밑구멍까지 탈탈 털렸을 때 우린 미국 증시 투자와 홍콩 프로젝트로 밑구멍이 삐져나올 만큼 돈을 벌지 않았나? 나 또한 미소를 숨기지 않고 조영찬에게 물었다.
“해동종금 자본과 부채 현황이 어떻게 되죠?”
“해동종금은 CMA 예금에 대손충당금을 포함한 부채가 5조 원 남짓인데 자기자본은 해동증권 지분을 빼도 한화 2조 원에 미화 20억 달러일세. 재작년부터 도입된 BIS 비율로 치면 50퍼센트를 넘었다네.”
‘BIS 비율 50퍼센트라···.’
지금까지 BIS 비율 50퍼센트가 넘는 금융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해동종금이 종금사인지 은행인지 따지는 게 무의미할 만큼 탄탄한 재무구조에 내 입꼬리도 절로 올라갔다.
흡족함을 숨기지 않은 나와 달리 어느 새 표정을 가다듬은 조영찬이 물었다.
“헌데, 문제가 있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뜻밖의 질문에 눈을 깜빡거린 내게 조영찬이 말했다.
“CMA 환차익 말이네. 약정금리 외의 초과수익은 전부 해동종금에 귀속된다고 약관에 명시했고, 안내 우편도 보냈지만 진상고객들이 나올 걸세. 어떡하는 게 좋겠나?”
십 수 년 뒤에 정보장사에 대한 약관을 깨알처럼 넣어 국민 욕받이가 된 모 기업과 달리 해동종금은 초과수익에 관한 약관을 큼지막하게 적어서 안내우편을 뿌렸었다.
그럼에도 조영찬의 말대로 돈을 더 내놓으라고 깽판을 부릴 ‘손놈’들은 반드시 나온다. 나 또한 생각해둔 바가 있기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가장 먼저 기존 고객들에게 특별이자 12퍼센트를 얹어주는 게 좋을 듯합니다.”
“특별이자?”
조영찬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나는 그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습니다. 욕먹으면서 토해낼 바에야 시원하게 뿌리고 이미지 마케팅에 쓰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겁니다.”
“흐음···.”
금융은 수익률도 챙겨야하지만 신뢰를 담보로 펼치는 사업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낸 의견이었지만 조영찬은 침음성을 흘리며 콧수염을 매만졌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조영찬이 가장 원할 것 같은 이유를 보탰다.
“회장님께서도 저처럼 지시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회장님께 누를 끼칠 수는 없으니 잡음 날 일은 사전에 차단해야겠지요.”
대한민국에서 총수와 그룹은 한 몸이다. 오죽하면 법으로도 동일인이라고 못을 박아뒀겠나?
두 번째 이유를 내게서 듣고서야 조영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네. 자기자본도 여유가 있으니 돈 뿌리면서 매스컴에 홍보하면 아주 좋을 걸세. ‘고객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해동종금’으로 내보내면 좋겠는데 어떤가? 흐흐.”
마다할 리가 있나. 이 기회를 제대로 살려보자는 조영찬의 제안에 나는 미소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부회장님. 이번 기회에 언론사마다 광고비 듬뿍 뿌리시죠, 흐흐.”
조영찬과 마주보며 웃던 나는 특별이자 지급과 함께 한 큐에 처리해야 할 사항을 짚어줬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시중은행 금리에 맞춰서 금리를 내려야 합니다. 이 점 또한 특별이자 지급과 함께 알려야 합니다.”
더 이상 12퍼센트의 금리를 유지했다가는 회사가 거덜 난다. 조영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담담한 표정으로 나에게 대답했다.
“물론이네. 지금 같은 시국에 특별이자까지 지급하고 금리를 조정하면 우리로서는 할 만큼 한 셈이니 말이야.”
해마다 12퍼센트의 복리이자를 붙여줬고, 안 줘도 되는 12퍼센트의 특별이자까지 줬다. 조영찬 말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도리는 다 한 셈이었다.
이런 호의에도 불구하고 꼭 한 명쯤은 과욕을 부리는 놈들이 나온다. 그런 놈들은 욕심을 부린 것보다 못한 대가를 치루어 정신을 차리게 해줄 생각이었다.
해동종금의 환차익 문제를 처리한 나는 다음 화두로 넘어갔다. 시간이 금이니만큼 허투루 쓸 수 없었다.
“해동증권 자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부회장님?”
내 질문에 조영찬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몰라서 묻는 건가, 이 이사? 돈이 아주 철철 넘치고 있어, 으하하.”
조영찬이 또 다시 크게 웃었다. 내 자랑 같지만 홍콩에서 한몫 단단히 땡겨온 덕분에 자기자본 기준으로 국내 최대의 증권사 수장을 겸하게 된 사람이 아닌가?
“이제부터 많이 바빠질 걸세. 지점도 늘리고 금융부문 자금을 굴릴 자산운용회사에 벤처캐피털도 세우고··· 여의도에서 실력 좋은 놈들은 최대한 빨아들일 거라네, 흐흐.”
“저도 부회장님 의견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업은 맨 파워가 핵심인 사업 아닙니까? 하하.”
나나 조영찬이나 생각만 해도 즐거워죽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미래에셋이든 한국투자금융이든 아무리 애써도 해동그룹 금융부문을 따라올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렇게 키울 친구들 시켜서 형님들이나 이 부회장 사업 방해할 놈들 주식을 더 사들이면 볼 만할 걸세, 흐흐.”
능글맞게 웃는 조영찬도 참으로 악독한 양반이었다. 앞에서는 사업으로, 뒤에서는 주식으로 경쟁업체들을 괴롭히자니.
‘나쁠 건 없지. 지금처럼 주가가 낮을 때도 없으니까.’
앞으로 해동그룹과 경쟁할 회사들은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는 회사들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주식 바겐세일 시즌을 놓칠 수는 없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회장님. 당진에서 두 분 부회장님과도 경쟁업체들 주식을 사두는 게 어떨까 운을 뗐었는데 먼저 손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내게 조영찬이 손을 휘휘 내저어보였다.
“감사는 무슨? 밀어주고 끌어주려고 있는 그룹이 아닌가? 하하.”
껄껄 웃으며 차를 마시던 중 조영찬이 찻잔을 내려놓고 내게 물었다. 나를 바라보는 조영찬의 눈에는 의구심이 담겨있었다.
“헌데, 두 회사에 남은 달러로 뭘 할 생각인가?”
“한화(韓貨)로는 못 할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부회장님.”
“한화로는 못 할 투자?”
“네. 이번 외환위기로 해외투자 규제가 심해지겠지만 스탠더드 캐피털 한국법인을 통해 우회해서라도 해외에 투자해야 합니다. 해외투자는 숙명입니다, 부회장님.”
‘회귀자라서 로또 급 투자처마다 말뚝 박으려는 게 아니야.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거라고.’
죽음의 강을 거슬러 올라온 지도 올해로 6년째.
지금까지 내 머리를 쥐어짜낸 덕분에 해동그룹도, 스탠더드 캐피털도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하는 일 하나 하나가 어떤 나비효과로 일어날지 모르기에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허나, 역사는 이미 변하고 있고 나와 우리 집안, 우리 그룹도 역사의 물결에 휩쓸릴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이제부터는 역사의 물결을 내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꿀 것이었다.
대답을 마친 뒤, 속으로 다짐하며 차를 마시던 내게 조영찬이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이 이사. 대한민국은 시장 규모가 작아서 더 큰 수익을 내려면 해외투자 외엔 답이 없네. 나도 해외투자를 고려했는데 자네가 말해주니 고맙군.”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영찬이 흐뭇한 눈길로 나를 바라봤고, 나도 그 신뢰가 가득한 눈빛에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며칠 뒤에 금을 사겠다는 내 계획을 들으면 조영찬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
그 뒤로도 조영찬과 함께 향후 투자전략에 대해 논의를 마치고 해동종금을 나온 나는 박태진과 함께 차를 타고 여의도 스탠더드 캐피털로 가고 있었다.
“이사님.”
“네, 형.”
“해동증권의 15억 달러 중 10억 달러는 스탠더드 캐피털을 통해서 미국 증시에, 나머지는 다른 투자처를 알아보기로 하셨지만 해동종금의 20억 달러는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목소리에서 호기심이 묻어난 박태진에게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요즘에 민간단체에서 금모으기 하는 거 아시죠? 국채보상운동 때처럼 나라 빚 갚자고요.”
“알고 있··· 도련님?”
잠시 멈칫하던 박태진이 예전 버릇대로 날 불렀다. 운전 중이라 나를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박태진의 놀란 표정을 보니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래요, 형?”
“실장님과 만났을 때 조만간에 정부 차원에서 금모으기를 추진할 거라 들었습니다. 설마··· 그 금을 전부 사시겠다는 겁니까?”
잠깐의 틈도 안 주고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네.”
투자차익이 크지도 않은 금에 왜 투자하냐고 나에게 욕을 퍼붓는 인간들이 수도 없이 많겠지만 내겐 널리고 널린 게 돈을 벌 기회였다. 금에 투자하는 건 돈 그 이상의 것을 얻을 기회였다.
“해동종금에서 금을 대량으로 갖고 있으면 은행보다 더 신뢰받는 종금사가 될 거예요. 형 생각은 어때요?”
선문답 같은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박태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러겠군요. 지금처럼 종금사들과 시중은행이 무너지는 시국에 시중은행에도 없는 금을 대량으로 보유하면 고객들의 신뢰를 얻을 겁니다.”
박태진이 내놓은 100퍼센트의 답안에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금을 고른 거죠. 부자들은 비상금, 중앙은행들도 외환보유고로 갖고 있을 만큼 가장 안전한 자산이니까요.”
“그래서 금을 사겠다고 하신 거군요, 하하.”
껄껄 웃던 박태진이 추가답안을 제출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입할 금을 한국은행에 예탁하는 조건으로 해동종금 출점 확대를 거래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호오? 우리 형, 업그레이드 된 것 같은데?’
박태진의 성장한 모습에 흡족했던 나는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럴 거예요. 정부는 지금 돈이 없으니까 그 금을 담보로 쓸 수 있게만 해줘도 해동종금 출점 규제를 풀어주겠죠? 후후.”
종금사는 수행 업무의 특성상 점포 출점이 매우 까다롭다. 2년 전에도 정치자금을 뿌리고 국고채 수천억을 사주고서야 지점을 늘리지 않았나? 나는 이번에 모을 금으로 해동종금의 출점 규제까지 풀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사님, 20억 달러를 전부 금 매입에 투입하시면 기회손실이 크실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박태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수틀리면 금을 전부 한국은행에 매각해서 손 털고 다른 데 투자해도 되겠죠. 중요한 건 우리가 금을 얼마나 끌어안을 수 있느냐를 보여주고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거니까요.”
플랜 B에 대한 대답을 내게서 듣고서야 박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금은 쥐고 있으면 좋지만 정부에 넘겨도 딱히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금을 사들이는 일은 박태진에게 들려준 것 외에도 하나 더 있으니 말이다.
***
한편, 이성민과 박태진을 보낸 조영찬은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예, 회장님. 조영찬입니다. 방금 전 이 이사와 만났는데···.”
금융부문의 사업 방향에 대해 이성민과 주고받은 내용을 조영찬이 들려주자 수화기에서 이대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으허허허, 자네 짐이 홀가분해졌겠어. 그런데··· 그놈이 달러로 다른 투자를 할 거라 했다고?]
“예. 한국 돈으로는 할 수 없는 투자를 하겠다고 했는데 어디에 투자할지는 조만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조영찬도 그 점이 의문이었다.
35억 달러면 현 상황에서 5대 그룹 중 하나를 통째로 잡아먹거나 뒤흔들 수 있는 돈이다. 그 돈으로 무슨 돈벌이를 할 생각인지···.
갈피를 못 잡은 나머지 고개를 모로 꼬던 조영찬에게 이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라면 어디에 투자하고 싶나?]
“해동증권 쪽 15억 달러는 미국 증시에 투자하겠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외화 반출이 쉽지는 않을 텐데?]
“때문에 이 이사 실적도 챙겨줄 겸 스탠더드 캐피털에 위탁투자를 맡길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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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서재에서 조영찬의 자신 있는 목소리를 듣던 이대수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스탠더드 캐피털의 주인이 이성민인데 누가 누구의 실적을 챙겨준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성민과 스탠더드 캐피털의 관계를 알려주기엔 너무 일렀다. 이대수는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의 조영찬에게 말했다.
“허면, 종금에 남은 20억 달러는 어찌할 생각인가?”
[금에 투자하는 게 좋겠지요. 금모으기 운동으로 나오는 금을 우리가 최대한 매수하고···.]
한국은행에 예탁하거나 아예 매각하는 조건으로 해동종금의 출점 규제를 끊어버리자는 조영찬의 계획에 이대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알겠네. 이 이사하고 잘 의논해서 그쪽으로 풀어보게. 성민이 이놈 덕분에 해동종금 말고도 ‘다른 일’까지 쉽게 풀리겠군.”
[다른 일이라 하시면···?]
조영찬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이대수의 대답이 들렸다.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대로 종합상사 구조조정부터 할 거라고 했잖나? 신성, 태현, GK, SG 할 것 없이 죄다 금을 내다 팔 게 분명하이. 우리가 거둬들일 금으로 한 집만 잡고 끝내면 좋겠는데··· 어떤가?”
조영찬에게 질문을 던진 이대수의 표정은 전에 없이 무표정했다. 그 얼굴은 마치 피바람을 각오한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