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46th. 도장깨기 part.2 (5)
집무실을 나온 나와 이명진은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정말 고생 많이 했지. 네 숙모가 챙겨준 보약 아니었으면 러시아 친구들하고 술친구되기 전에 간이 썩었을 거다, 하하.”
“그러셨겠어요. 러시아 사람들, 술 잘 마시잖아요, 숙부님.”
소탈하게 웃는 이명진이 걱정됐다. 초내열 합금 기술을 얻겠다고 주당들이 득실거리는 러시아에서 보드카 대작을 하며 연구원들과 엔지니어들을 구워삶아야 했으니 몸이 버틴 게 용할 지경이었다.
내 눈길에서 걱정을 읽었는지 이명진이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걱정마라, 성민아. 이 숙부님, 그렇게 약골 아니니까. 내가 해동건설 공사 현장에서 일했을 땐 말이야···.”
일용직 노동자들과 함께 흙푸대를 나르거나 취할 때까지 막걸리를 마신 이야기, 일과가 끝나면 불을 지핀 드럼통에 석쇠를 올려서 고기를 구워먹은 얘기를 들려줬다.
“할아버지한테 서운하지 않으세요? 다른 그룹 분들은 그런 거 안 겪고 올라갔잖아요.”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어깨띠를 두르고 아파트 분양 전단지를 나눠줬던 건 이명진의 밑바닥 경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기가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와 달리 이명진은 푸근한 표정을 지었다.
“서운하긴? 태현자동차 선구 형님도 태현건설 공사장에서 공구리치고 벽돌까지 날랐는데. 오히려 현장과 노동자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많이 도움 됐어, 하하.”
껄껄 웃던 이명진의 얼굴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다른 재벌가 후계자들과 달리 자신도 공사판에서 굴러봤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애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애들?”
“성문이, 성우, 성아요.”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고 물어본 나를 보며 이명진이 피식 웃었다.
“그 녀석들도 밑바닥 겪게 해야지. 셋 다 석사까지는 따고 싶다니까 그거 뒷바라지는 해줄 건데···.”
말끝을 흐리며 턱을 매만지던 이명진이 씩 웃었다.
“성문이, 성우는 석사 따고 전문연구요원 마치면 우리 그룹 종합연구소에서 열심히 돌려야지. 성아는 딸이니까 고민 좀 해보고, 흐흐.”
‘불쌍한 녀석들, 숙부님 밑에서 열심히 갈리겠구나.’
웃음을 흘리는 이명진의 표정이 세상 사악하게 보인 건 처음이었다. 자기 자식들까지 가차 없이 갈아버리겠다니···.
두 녀석을 불쌍해하던 내게 이명진이 말했다.
“불쌍해 할 거 없다. 형님 살아계셨으면 너도 열심히 갈아 넣었을 걸?”
“네?”
순간 깜짝 놀라서 목소리가 높아진 나를 보며 이명진이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네가 형님을 집에서만 봐서 모를 텐데 형님 생전에 나하고 사무실에서 차 마실 때 그랬어. 성민이 너, 군대 다녀오고 대학 졸업하면 해동물산 인천창고 일꾼부터 시켰을 거라고 말이야, 흐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인천항 물류창고 중에서 가장 큰 해동물산 창고에서부터 아버지가 날 내돌리려고 했다니··· 몸을 부르르 떨던 내게 이명진이 말했다.
“그래도 너 이렇게 큰 거 보셨으니까 생각을 바꾸지 않으셨을까 싶다. 이렇게 잘 컸으니 말이야, 하하.”
“감사합니다, 숙부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저 위에서 나를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알 수는 없지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았다.
***
두어 시간쯤 걸려서 대전에 도착한 우리는 대덕 연구단지에 있는 해동그룹 중공업 부문 종합연구소에 도착했다. 연구원들과 간단한 통성명을 마친 우리는 가스터빈 연구개발 최고책임자인 임도현 박사의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임 선배, 이거 한 번 보시죠.”
이명진보다 두 학번 높은 서울대 공대 출신의 임도현은 이명진이 내민 서류에 눈을 껌뻑거렸다.
“이게 뭡니까, 부회장님?”
“우리 이 이사가 가스터빈 개발에 대한 계획을 짜왔습니다. 임 선배도 구미가 당길 만한 자료인 것 같아서 이렇게 내려왔습니다, 하하.”
껄껄 웃는 이명진과 달리 임도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문과 출신인 내가 기술에 대해 얼마나 알겠냐는 생각을 하는듯했지만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살펴보기라도 해주시죠, 박사님.”
“흠··· 알겠습니다, 이 이사님.”
손을 내밀며 권한 나를 보며 침음성을 흘리던 임도현이 대답을 마치고 서류 표지를 넘겼다. 한 장씩 내용을 살피던 임도현의 심드렁한 표정에 점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임도현의 눈빛이 먹잇감을 발견한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마지막 장까지 본 서류에서 눈을 뗀 임도현이 멍한 표정으로 나와 이명진을 바라봤다.
“그거, 1억 달러 부어서 만든 리스트입니다. 박사님.”
서류에 정리된 가스터빈 부품업체나 연구소들은 전부 그 바닥에서 알아주는 곳들이었다. 그 업체들과의 제휴를 준비하느라 스탠더드 캐피털에서 여러 번 세탁해서 투자한 돈만 1억 달러였다.
“이, 이 이사님, 이, 일억 달러면···.”
임도현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나는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임도현을 바라봤다.
“현재 환율로 1,600억쯤 될 겁니다. 큰돈이긴 하지만 가스터빈을 개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습니까?”
심드렁하게 대꾸했지만 가스터빈이 괜히 ‘기계공학의 꽃’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터빈 블레이드가 머리카락 두 개 두께의 진동만 일으켜도 작동을 멈출 만큼 섬세한 물건 아닌가?
‘토성그룹이 가스터빈 때문에 안살도 에네르기아를 인수하려다 이탈리아 정부가 국가 전략사업이라고 반대해서 무산된 게 괜한 건 아니었지. 1억 달러면 싸게 해결한 거야.’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도 1억 달러는 결코 비싼 대가가 아니다. 원천기술의 가치는 절대 가볍지 않고 그 원천기술인 가스터빈은 해동중공업의 백년 먹거리가 될 테니 말이다.
생각을 접은 나는 아직도 얼떨떨해하는 임도현을 보며 말했다.
“박사님 이하 연구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꼭 성공해서 일본 놈들은 반드시 찍어눌러주십시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일본을 극복하는 건 이 나라 사람에게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나는 그 앞을 내가 있는 해동그룹이 이끌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임도현을 바라봤다.
“이, 이사님···.”
“솔직히 저는 기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발전소에서 해동중공업의 가스터빈이 돌아가길 바랍니다. 오너 가문의 사람이 아닌 젊은 친구의 치기 어린 바람이지만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임도현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오너 가문 사람이 임직원에게 쉽게 고개를 숙인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상관없다. 해동그룹 사람이면 우리집안 사람인데 집안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대수인가? 부탁할 때는 화끈하게 부탁하는 게 그 사람의 가슴에 울림을 주기도 하니 한 점의 거리낌도 없었다.
“우리 이 이사가 이렇습니다, 선배님. 사람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거 보면 먼저 간 형하고 많이 닮았지요, 하하.”
이명진은 임도현에게 말하면서도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임도현은 숙였던 고개를 든 나를 굳은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 이사님.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데도 해내지 못하면 제 20년 연구원 생활에 지워지지 않을 후회가 남을 것 같군요.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 박사님.”
임도현과 나는 서로가 내민 손을 굳게 잡았다.
***
가스터빈 개발 연구팀과의 미팅을 끝낸 나와 이명진은 다른 연구동으로 넘어갔다.
“여긴 무슨 연구를 하는 곳입니까, 부회장님?”
“들어가면 알아, 흐흐.”
이명진은 그저 나를 보며 웃기만 했지만 집무실에서 ‘대전에 오면 보여줄 게 있다.’라고 한 걸 떠올리면 내가 아는 해동중공업의 또다른 ‘비밀 프로젝트’일 것 같았다.
‘재미를 깨면 안 되니 맞춰드려야겠군, 흐흐.’
속으로 씩 웃던 나는 이명진과 함께 유리문을 열고 연구동 복도로 들어섰다.
[자력갱생! 공업독립은 우리 손으로!]
흰 바탕에 시뻘겋게 쓰인 전위적인 문구의 플랜카드를 본 나는 소름이 쫙 돋았다. ‘공업독립’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내가 아는 ‘비밀 프로젝트’를 보러 가는 게 맞다는 확신이 점점 짙어져서 전율이 휘몰아쳤다.
“이 이사, 벌써 감 온 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회장님?”
철판을 깔고 눙치는 나를 보며 이명진이 말했다.
“저 문구 보고 몸 떠는 게 여기서 뭐 만드나 눈치 챈 게 아닐까 해서 말이야.”
“아··· 저 플랑 보니까 운동권 선배들 생각이 나서요, 하하.”
되도 않는 운동권 팔이를 했지만 이명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제조업을 알면 얼마나 잘 알겠습니까, 부회장님? 아직도 배울 게 태산인 걸요.”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인하는 체하는 나를 보며 이명진이 침음성을 흘렸다.
“흠··· 그러긴 한데 가스터빈만 해도···.”
“빨리 보고 싶습니다, 부회장님. 가시죠, 하하.”
더 이상 변명할 게 없던 나는 얼렁뚱땅 넘긴 뒤, 이명진과 함께 우리가 봐야 할 ‘비밀 프로젝트’를 보러 갔다. 복도 맨 끝에 ‘접근금지’라고 적힌 문 앞에 도착해서야 이명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잠깐만 기다려, 이 이사.”
“네, 부회장님.”
이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모른 체했다.
이명진이 벽에 숨겨진 카드잠금장치를 열고는 품 안에서 꺼낸 카드키를 쓱 긁었다. 띠리링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나는 이명진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엘리베이터야. 워낙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거라 지하시험장에서 테스트 중이거든.”
‘그랬구나···.’
내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이곳은 파괴된 기계들만 있어서 을씨년스럽다 못해 소름이 끼치는 곳이었다. 그게 전부 테스트 중인 기계들이었다니···.
점점 더 내가 아는 ‘비밀 프로젝트’라는 확신이 짙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띠었고, 이명진은 나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는 지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고, 나는 문 너머에 펼쳐진 광경에 입이 벌어졌다.
“와아···.”
그곳에는 수십 대의 공작기계와 로봇 팔, 공장 라인이 특유의 기계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작동되고 있었다. 그 기계들의 틈새를 점퍼를 입은 백여 명의 남자들이 서류판과 펜, 스톱워치를 든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CNC 공차 얼마나 나왔어?”
“공차 범위 0.005 내에서 제어되고 있습니다, 선배님! 볼 스크루, 백래시 제거 장치, 인덱스 유닛도 정상입니다!”
“PLC 제어는 어때?”
“시퀀스대로 작동중입니다, 부장님! 오늘만 넘기면 2천 시간째 오작동 없이 돌아갈 겁니다!”
눈앞에 펼쳐진 별천지에 탄성을 멈추질 못하는 나를 보며 이명진이 씩 웃었다.
“여기 있는 건 모의공장이야. 우리가 개발한 PLC, CNC, 서보메커니즘을 테스트하는 곳이지.”
공장을 사람으로 치면 PLC, CNC는 대뇌와 신경계, 서보메커니즘은 손발에 들어가는 힘과 방향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힘과 기술 같은 장비와 소프트웨어들이다.
‘하나만 해내도 대단한 산업자동화 설비 3대장을 모두 연구하고 있었다니···.’
내 안에서 우러난 감탄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도 튀어나왔다.
“대단하네요. 정말로요.”
“꽤 오래 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야. 내가 대학생일 때, 그러니까 초대 회장님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시작했거든. 이제야 빛을 보고 있는 셈이지.”
이명진의 대답을 듣고서야 나는 지금까지 해동중공업의 순이익이 왜 바닥을 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연구를 다 하고 있었으니 적자를 면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 지분이 많아서 가능했겠지.’
현재 우리 집안과 해동물산, 그룹 임직원들이 보유한 해동그룹 중공업 계열사 4사의 지분은 각각 60퍼센트를 훨씬 웃돌고 있다. 여기에 평균 16퍼센트가 넘는 트라이엄프의 지분까지 합하면 나머지 주주들의 간섭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숙부님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쉽지 않았을 텐데···.’
사운을 좌우할 투자는 오너도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이명진의 확고한 신념, 그 신념을 성공시키기 위해 쏟았을 노력에 경외감마저 일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물었다.
“부회장님, 해동중공업에서 각 설비마다 하위 장치까지 만든 겁니까?”
“물론이지. 소프트웨어부터 엔드밀, 서보모터, 컨트롤러 할 것 없이 핵심부품 모두 해동중공업에서 만들었어. 전부 저 모의공장에서 테스트 중인데 목표대로만 성능이 나오면 미쓰비시 전기나 화낙하고도 붙어볼 만할 거야, 흐흐.”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했지만 이명진은 내 예상을 확 뛰어넘었다. 이명진의 개구진 웃음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 그룹 연구소마다 외계인이라도 고문하는 건가?’
해동물산 전주공장과 섬유소재 연구소에서 경악했던 건 지금 내가 겪은 충격에 비하면 깃털만큼 가벼웠다. 기술력이 완전히 밀리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 바닥에서 손꼽히는 기업들과 대등해진다니···.
‘하긴··· 산업자동화 설비를 연구했던 기업들이 한두 곳은 아니었지.’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꽤 늦은 70년대부터 산업자동화 설비를 개발해왔다. 그럼에도 미쓰비시나 화낙과 맞먹는 성능의 설비를 만들 수 있다니···.
연신 감탄하던 나는 이명진에게 가장 중요한 걸 물었다.
“거래처 선정이 문제일 것 같네요. 워낙 보수적인 시장이잖습니까?”
산업자동화 설비는 한 번 들이면 설비를 통째로 갈아엎지 않는 이상 그 기업을 통해 유지보수를 해야 하기에 선발주자들의 벽을 넘어서는 게 힘들다. 산통을 확 깨는 질문이었지만 이명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긴 해. 품질이든 가격이든 자신 있는데 거래처를 뚫는 게 문제야. 첫 거래만 뚫고 성능만 제대로 입증되면 주문이 쏟아질 텐데 말이지.”
그 거래처를 뚫고 설비를 납품하는 게 쉽지 않았기에 이명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이명진을 보며 말했다.
“해동자동차에서 추가 공장 짓거나 개수공사 할 때 테스트 해보시죠, 부회장님. 금 회장님부터 본사의 로렌스 대표님, 회장님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제안에 이명진의 눈이 커졌다.
“이, 이 이사, 자동차 공장에 저 설비들을 깔려면 수천억은 깨질 텐데···.”
어느 새 이명진의 얼굴에 걱정이 드리워졌다. 조카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라는 건가?
‘걱정 마세요, 숙부님. 제가 팍팍 밀어드릴게요.’
그 걱정을 걷어내고 싶어서 나는 이명진의 말을 끊었다.
“성능만 확실하면 못 쓸 이유도 없잖습니까? 성공하시면 꼭 알려주십시오, 부회장님. 조영찬 부회장님께도 말씀 드려서 할부금융상품도 출시하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장 돈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거의 모든 재벌들이 외면해온 산업자동화 설비 연구를 수십 년간 묵묵히 해온 우리 집안이다. 일본업체들과 같은 성능만 나오면 안 쓸 이유가 없으니 그룹 차원에서 밀고 당겨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답을 마친 나를 이명진이 굳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 이사. 성공하면 회장님 다음으로 자네한테 먼저 알려주지.”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이명진은 내 손을 잡고 의지가 넘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숙부님. 처음이 힘들지 그 다음은 쉬워지니까요.’
산업자동화 설비 시장은 한 번 뚫는 게 어렵지 뚫기만 하면 유지보수 수익이 첫 설비 판매 수익의 몇 배가 넘는 시장이다. 해동중공업의 백년 먹거리가 될 사업이기에 나는 이명진이 꿋꿋하게 밀고 나가길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