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44th. 도장깨기 part.1 (6)
눈을 껌뻑거리는 배재훈과 이명진을 보며 나는 살짝 뽐내듯이 말했다.
“해동증권을 통해 대한제철 주식을 대량으로 취득하면 좋을 듯합니다.”
“주식 매입이라···.”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그룹의 경쟁자가 되겠지만 대한제철도 좋은 회사입니다. 스탠더드 캐피털도 작년부터 대한제철 주식을 매수하고 있으니 양쪽 합쳐서 35퍼센트 이상 보유하면 될 겁니다.”
대한제철이 물량 공급으로 해동제철을 압박한다?
그럼 우린 최대주주로서 모든 회사 경영 안건을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게 만들거나 이사진 선임에 태클을 거는 식으로 똥바가지 휘두르고 쥐약까지 뿌리면 된다. 10여 년 정도는 투자 가치가 충분한 대한제철이니 손해 볼 일도 없었다.
그때서야 배재훈이 표정을 펴고 음침한 미소를 띠었다.
“주주총회라··· 재밌겠군, 흐흐.”
“제 조카지만 참 악독합니다, 흐흐.”
“지금은 돈으로 다 해결되니까요, 흐흐.”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기에 나와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세상 사악한 미소를 띠었다.
***
제철소 이야기를 끝낸 우리는 잠시 차 한 잔을 마시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이 이사가 아침엔 아주 맛이 가려고 하더군. 그래서 내 공진단 한 알 먹여서 이렇게 살려왔다네, 흐흐.”
“와하하하! 우리 조카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부회장님!”
배재훈과 이명진이 껄껄 웃는 틈바구니 속에서 난 그저 겸연쩍은 미소만 흘렸다.
‘휴우, 서울 올라가면 보약부터 한 재 지어야겠네. 공진단도 지어야할 것 같고.’
하루 한 끼 이상은 양기 빵빵한 음식들로 챙겨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왜 이리 기력이 후달리는지 모르겠다. 지난밤부터 아침까지 반나절 사이에 여섯 번이나 했으니 공진단 한 알에 기력을 차린 게 용하긴 하지만···.
‘서로 좋아서 했으니 어쩌겠어.’
한창 깨가 쏟아지는 때가 아닌가? 일이고 뭐고 하루는 땡땡이치면서 ‘Calendar Girl’을 틀어놓고 아침부터 밤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 달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빌어먹을 장 씨 것들을 족치기 위한 내 목적만 아니면 말이다.
서울에 있는 하연이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가자 이명진이 껄껄 웃었다.
“우리 조카, 조카 며느리 생각하나 보네?”
“네? ···아··· 네, 하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는 내게 이명진이 말했다.
“나도 우리 집사람 눈에 밟혀 죽겠다. 우리 애들도 보고 싶고, 후후.”
“숙부님···.”
재벌가 사람들, 재벌그룹 수뇌부들이 전부 서울의 안락한 오피스에서 고상 떨며 일하는 건 아니다. 우리 그룹이 유독 별나지만 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날인데도 나나 배재훈, 이명진 할 것 없이 지방 현장을 돌며 일을 챙기고 있지 않나?
잠시간의 동병상련 끝에 이명진이 말했다.
“올라올수록 참 무거워지더라. 그룹이 커지는 건 좋은데 그만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아니냐.”
“그건 그렇죠.”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임직원들의 일터를, 가정을 책임질 수 있을지 말이다.”
전생이라면 몰라도 이번 생의 나로서는 백 번 공감하는 말이었다. 좋은 일자리와 좋은 제품, 좋은 서비스로 사회에 기여하며 영속하는 게 우리 집안과 그룹의 목표 아닌가?
그렇다고 아가페를 실현하자는 소리는 아니었다. 생산적인 논쟁이라면 모를까 소모적인 분란을 일으킬 종자들은 가차 없이 잘라내야 조직이 안정되고 발전하니까.
앞으로 경영자로서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접고 나는 대답했다.
“고민이 크시겠어요, 숙부님. 부회장님께서도 힘드실 것 같고요.”
배재훈에게 눈길을 들리며 말하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자네하고 영등포 재개발 때문에 싸웠던 게 그 때문이 아니었나? 섬유소재 연구개발 투자도 그래서 그런 거고.”
배재훈의 표정을 보니 섬유소재 쪽 아이템 두 개도 준비하길 잘했다 싶었다. 자세한 기술적 의견은 낼 수 없어도 큰 줄기는 기억하고 있으니 국내 섬유공장 일자리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죠, 하하.”
멋쩍은 내 미소를 보며 배재훈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당진에서 볼 일은 다 본 것 같으니 우린 서산으로 넘어가겠네. 서울에서 보세, 부회장.”
자리에서 일어난 배재훈의 말에 이명진도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잘 다녀와라, 성민아.”
“네, 숙부님.”
인사를 마친 나는 배재훈과 함께 차를 타고 당진제철소를 떠났다. 아직은 황량하지만 나중에는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 고로가 가득할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코크스 가스를 정제해서 수소를 생산한다거나 수소환원제철법(코크스 대신에 수소를 넣고 철을 만드는 것)은 나중에 얘기해도 되겠지.’
어차피 부닥쳐야 할 미래라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좋지만 일정이 빠듯한 게 아쉬웠다. 새해에 만나면 얘기해봐야지.
***
이성민과 배재훈을 배웅해준 이명진은 사무실로 돌아와서 공사현황을 체크하던 중 피식 웃었다.
“거 참··· 형을 쏙 빼닮았단 말이지.”
“예?”
곁에서 공사현황을 함께 살피던 담당자들이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명진이 미소를 띠었다.
“돌아가신 내 형님 말일세. 그 분하고 형수님 하나뿐인 아들이 이 이사 아닌가?”
“그렇습니다만···.”
여전히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담당자들에게 이명진이 말했다.
“형님께서도 다른 나라 출장 다녀올 때마다 나한테 말씀하셨네. 나중에 우리 회사가 더 커지면 현지인들과 상생해야 한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 이사가 얘기한 광해방지사업이나 광산촌 병원 같은 게 형님 핏줄 아니면 나올 얘기 같나?”
“아···.”
탄성을 흘리는 담당자들을 보며 이명진이 말했다.
“이번에 체결된 교토의정서, 우리 해동제철도 자유롭지 못할 거라고 보네. 제철소만큼 온실가스를 내뿜는 곳도 없잖나? 자리가 잡히는 대로 코크스 대신에 수소를 넣고 쇳물을 끓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걸세. 잡설은 여기까지 하지.”
이명진은 다시 설계도를 검토하느라 여념이 없어졌지만 먼저 간 형의 아들 이성민이라면,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현명한 조카 이성민이라면 자신이 꿈꾸는 친환경 제철소에 대해 찬성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차를 타고 당진에서 서산으로 넘어온 우리는 대산석유화학단지의 옛 태현정유와 태현석유화학 본사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이곳이 해동정유와 해동석유화학, 해동정밀화학의 본사였다.
“어마어마하네요.”
“나도 마찬가질세. 여기서부터 저 독곶 끝까지 전부 우리 공장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구먼.”
독곶면에 있는 공장은 장호민에게서 가져온 신성그룹 석유화학계열의 공장이다. 여기서부터 그 공장까지 전부 해동그룹의 계열사가 된 것이었다.
“신성과 태현이 경쟁하듯 만들어준 덕분에 우리만 대박 났네요.”
“그런 셈이지. 자네와 스탠더드가 신성그룹, 회장님께서 태현그룹 공장 가져오지 않았나, 흐흐.”
음침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배재훈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할아버지··· 참 무서운 분이란 말이지.’
할아버지가 추가한 계획이었지만 나와 선해철이 한고제철 관련 대출 건으로 장호민의 석유화학계열을 저당 잡았을 때부터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랬다면 할아버지는 정말 무서운 사냥꾼이었다.
잠깐의 단상에서 빠져나온 나는 배재훈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해동정유, 해동석유화학, 해동정밀화학입니다. 이제부터는 해동의 간판을 달았으니 최고로 키워야 합니다, 부회장님.”
“피는 못 속이는군. 잘해보세.”
배재훈은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띠고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
해동그룹에서 파견된 합동감사팀은 해동그룹 총수의 장손과 해동그룹 서열 2위가 온 것도 모르고 대회의실에서 정신없이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씨발, 어이가 없네. 걸프에서 여기까지 왕복 40일인데 뭐가 대단하다고 운임을 이렇게 지급한 거야? 일감 몰아주기도 정도껏 해야지, 염병할.”
“둘 중 하나일 겁니다, 팀장님. 본사 석유화학부나 중동 법인마다 연락해서 확인해봐야겠지만 태현상선에 골수 털리거나 리베이트로 슈킹 당한 거 아니겠습니까?”
해동물산 상사부문 감사팀 1팀장을 비롯한 담당자들은 해동정유가 태현정유 시절에 태현상선이 계약한 운임계약을 보고 비아냥거렸다. 원유운송을 오너 가문의 지분이 많은 태현상선에 평균 운임보다 비싸게 맡긴 것 때문이었다.
“니기미··· 이러니 빚덩어리였지. 김 과장!”
“네, 팀장님.”
쌍소리를 내뱉은 팀장이 큰 소리로 부르자 하늘색 셔츠에 푸른 넥타이를 맨 사내가 뛰어왔다.
“이거, 태현상선에 배정된 물동량하고 운임 자료인데 복사해서 물류유통부문 전략실로 보내. 우리도 배 띄워서 물건 나를 텐데 그놈들 빨대 걷어내야지, 흐흐.”
“그러믄입죠, 흐흐.”
곧 있으면 그룹 내에 해운회사가 생길 판에 남의 집 배불리는 짓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실실 웃으면서 복사할 서류를 주고받았다.
“차 과장, 문 대리도 의심되는 계약 전부 검토해. 해동 간판 밑에서 더 이상 잡초는 없어. 잔뿌리까지 다 뽑아내.”
“알겠습니다, 팀장님.”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팀장은 다른 자료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다른 직원 한 명이 서류 한 장을 가지고 팀장에게 왔다.
“팀장님, 이거 좀 보시죠.”
“이건 또 뭐야?”
팀장은 종이를 보고 열이 뻗쳤다.
“휴우-, 지랄 났네, 지랄 났어. 거래처한테 마진을 이만큼 챙겨줬다고?”
그가 넘겨받은 서류는 태현정유와 신성정유 시절의 국내유통망과 판매마진에 관련된 자료였다. 유독 다른 곳들보다 챙겨가는 돈이 많은 운송업체나 대리점들이 친절하게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거래처 사장들 인간관계부터 조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명단을 보니 태현그룹 시절 임원들 친인척일 가능성이 높은데 판매마진 중 일부는···.”
더 들을 것도 없었기에 팀장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을 끊었다.
“뻔해. 명 씨 집안 주머니로 들어갔겠지. 우리 그룹도 이런 짓은 안 하는데···.”
회사를 위해 구정물, 똥물 묻힌 전현직 임직원을 챙겨주는 건 해동그룹도 마찬가지지만 해동그룹 오너 가문은 뒷구멍으로 한 푼도 상납 받지 않았다. 다른 그룹의 더러운 면을 직접 봐서일까 팀장은 욕지기가 쏠리는 것 같았다.
“업체 규모도 확인해. 실소유주도 알아보고. 아! 영업담당자들도 전부 불러와. 죄다 족쳐야겠어.”
“예, 팀장님.”
팀원을 보낸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마누라랑 애들 데리고 스키장 가기로 했는데···.”
파면 팔수록 늘어나는 일거리에 얼굴이 구겨진 팀장은 계속해서 일을 봤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칼이네그려.”
홍당무처럼 얼굴과 손이 벌개진 남자가 문을 열고 손을 비비며 들어오자 감사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차라도 한 잔 하시죠. 뭐 드시겠습니까?”
“커피로 하지. 1대 1대 1, 알지?”
“알죠, 하하. 여기, 커피 두 잔! 1대 1대 1!”
“네, 팀장님!”
언제 그랬냐는 듯 정중하게 자리를 권한 팀장은 소파에 앉은 남자와 함께 씩씩하게 대답한 막내 대리가 타온 커피를 받았다.
“공장 쪽은 어떻습니까? 우리 애들만으로는 눈탱이 맞을 것 같아서 부회장님께 말씀드리고 선배님 쪽에 SOS 쳤는데.”
“자네, 나한테 한 턱 쏴야겠어.”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남자가 뜬금없이 던진 말에 팀장이 눈을 깜빡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애들이 여기 설계도랑 장부 들고 다니면서 계속 살펴보고는 있는데 더 보면 욕만 나오겠어. 개판이야.”
그 남자는 필요한 직원들과 함께 지원 나온 해동그룹 중공업부문 전략실 감사부 1팀장이었다.
원료나 운임, 판매망 문제는 상사부문 감사팀과 석유화학부에서도 점검할 수 있었지만 기계설비 관련 문제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상사부문 감사팀장의 요청을 받은 배재훈이 이명진에게 부탁해서 중공업부문 감사부에서도 파견된 것이었다.
“그럼···?”
해동물산 감사팀장이 어두운 얼굴로 말끝을 흐려도 중공업부문 감사팀장은 단단한 외모처럼 할 말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튜브 시트(Tube Sheet)에 포지드 넥(Forged Neck), 플렌지 채널(Flange Channel)··· 플랜트 설비 부품 모두 업계 평균보다 10퍼센트 더 비싸게 교체했네. 내역서 보니까 가동률 대비 교체 주기도 다른 회사보다 반 배나 빠르더군.”
“···?”
생판 처음 듣는 용어에 벙찐 후배를 보고 해동중공업 감사팀장이 겸연쩍은 미소를 띠었다.
“내부거래네. 전부 태현정밀에 발주를 넣었는데 그쪽에서 직접 못 만드는 것까지 지나치게 웃돈을 퍼주고 구매를 위임했어. 웃돈의 반절만 받아도 많이 받아먹은 건데··· 쯧.”
“부품 값으로 빼먹었군요. GK정유 여수공장보다 규모도 작으면서 유지비는 거의 맞먹는 게 이상하더라니···.”
해동중공업 감사팀장은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깨무는 후배에게 계속해서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알려줬다.
“것도 그렇지만 유지보수 업체도 문제가 많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배님?”
“사내하청으로 돌릴 이유가 없는 것까지 하청을 주고 있다는 거네. 우리가 직접 체크한다고 할 때 노조 대표들이나 시설관리팀 담당자들이 목에 핏대 세운 것도 걸리고···.”
“그럼··· 가라로 사람 넣고 공수 찍었단 겁니까?”
해동물산 감사팀장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해동중공업 감사팀장은 별다른 감흥도 없어보였다.
“놀랄 것 없네. 맘먹고 하면 못할 것도 없어. 현장 떠난 지 몇 년 됐지만 쇳가루, 모래바람 먹은 거 어디 안 가니 믿어도 돼.”
해동중공업 감사팀장과 달리 해동물산 감사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거 금덩어리가 아니라 똥덩어리를 산 것 같네요.”
“그래도 똥 걷어내면 금 드러날 거야. 석유화학회사는 시설관리 잘하고 기름만 잘 걸러내도 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그 후로도 일을 계속하던 해동물산 감사팀장과 다른 직원들은 문을 열고 들어온 반백의 반삭머리 장년 남성과 젊은 남성 한 명을 보고 얼어붙었다.
“부, 부회장님?”
“이, 이사님?”
***
나와 배재훈은 사무실로 들어가서 감사팀에서 제출한 현재까지의 감사 진행 상황 자료를 넘겨받았다.
“신성이고 태현이고 가지가지들 했군. 경쟁이 치열했던 걸 감안해도 재무상태가 이상하더라니···.”
“재벌 아니랄까봐 대단했네요.”
나와 배재훈 모두 서류에 나온 온갖 비리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유지보수 비용 부풀리기부터 전직 임원들이나 그 친인척을 사장으로 앉힌 유통업체에 대한 과도한 퍼주기··· 신성과 태현이 우리에게 석유화학 계열을 넘기기 전까지 해 처먹은 돈은 상상을 초월했다.
소파에 함께 앉아있던 해동물산 감사팀장이 배재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주제 넘는 생각이지만 도가 지나쳤습니다, 부회장님. 전부 원점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해동물산 감사팀장의 발언에 이어 해동중공업 감사팀장까지 의견을 보탰다.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지금까지는 부회장님 지시대로 비리 정황만 파악했지만 임원, 노조 전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기업과 노조가 싸우기만 하는 줄 알겠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파업을 일으킨 뒤, 회사 제품의 단가를 올려서 오너 가문을 중심으로 한 경영진들과 노조 지도부가 뒷돈을 챙기는 게 한두 번인가?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소비자들만 봉이야, 봉.’
내가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 사이에도 두 감사팀장의 적나라한 실태 보고는 계속됐다.
배재훈은 차분한 표정을 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날이 잔뜩 서있었다.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