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44th. 도장깨기 part.1 (4)
이성민을 보낸 뒤.
집무실에 남아있던 태재호가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허허··· 큰형님 장손 아니랄까봐.”
태재호가 마주했던 이성민은 젊은 시절의 이대수와 다를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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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전. 1950년 4월의 어느 날.
“형, 미쳤수? 멀쩡히 장사 잘하고 있는데 뭔 소리요? 쉰밥 드시고 신소리 하는 거요?”
해동물산 영등포 본점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태재호는 다짜고짜 서울의 모든 점포에 있는 문서와 현찰, 상품을 부산으로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대수의 지시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잔말 말고 형이 시키는 대로 해, 인마. 덩치는 산만한 놈이 왜 이리 겁이 많아?”
“그, 그건 아닌데···.”
태재호가 얼버무리는 걸 본 이대수가 표정을 가다듬고 귓속말을 건넸다.
“아버지, 부사장님, 전무님, 상무님 회의에서 나온 얘기야. 38선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대. 그래서 점포 재산부터 영등포 방직공장 설비까지 부산 서면으로 옮길 거랬어. 회사 사람들도 전부 보낼 거라고 했고.”
“아저씨들하고 아버지도 그랬다고요?”
태재호의 눈이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
해동물산 전무인 자신의 아버지, 부사장인 배재훈의 아버지, 상무인 조영찬의 아버지가 모일 때마다 회의록을 기록하는 이대수의 말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 언제 갈지는 모르겠는데 서울 점포들부터 준비해놔야 인천이나 다른 곳도 준비할 거 아냐? 트럭 수배하고 창고에 있는 물건들마다 품목, 수량 정리하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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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서울권 점포들의 철수 준비를 미리 마친 덕분에 해동물산은 한국전쟁 발발 전에 전국 30여 개 점포와 방직공장의 모든 문서와 재산, 사람들을 부산으로 보냈다. 태재호에겐 그때의 이대수나 지금의 이성민이나 다를 게 없었다.
“시야가 참 넓은 아이란 말이지···.”
태재호가 본 이성민은 공간이든, 시간이든 이대수만큼의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멕시코와 일본에서 두 차례의 환투기로 돈을 벌었고, 지금 이 나라에 닥칠 외환위기를 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작업들을 주도하지 않았나?
그런 녀석이 자신의 앞에서 말한 것들은 왠지 모를 믿음을 주는 뭔가가 있었다. 확신이 가득한 눈빛과 당당한 목소리··· 그 옛날의 이대수가 보여줬던 것들을 또다시 볼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의욕만 가득한 것도 아니고···.”
하는 말마다 나름의 논거가 있었다. 디테일한 숫자는 빠져있지만 그룹에서 반평생 이상 보낸 자신조차 직관적으로 ‘이거다!’라는 느낌을 주는 말들만 했으니 부정할 수 없었다.
“앞으로 은퇴하기 전까진 바빠지겠군.”
흐뭇한 표정을 띤 태재호는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늘그막에 배워서 속도는 더뎠지만 태재호는 입가에 미소가 번진 채 자판을 두들겼다.
***
다음 날 아침 6시.
“성민이 너, 왜 이렇게 쎈 거야?”
“누나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식사를 하던 나와 장하연은 서로의 눈가에 진 다크서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젯밤만 해도 세 번이나 하지 않았나? 아주 격렬하고 아주 농밀하고 아주 길게.
“오늘은 어느 분 만나는 거야?”
“배재훈 부회장님. 오전에는 회사에서 미팅하고, 오늘 오후부터 내일 오후까지는 서산 거쳐서 전주 공장까지 돌아봐야 할 거야.”
일정을 알려주자 장하연의 얼굴에 실망이 비쳤다.
“오늘은 나 혼자 자야하는 거야?”
“미안해, 누나.”
배재훈의 관할 사업 특성상 서산과 전주까지 들러야 하고 이명진의 당진제철소도 서산 옆에 있으니 연말까지 체크할 건 최대한 체크해야 했다. 전부 우리집안 사업이 아닌가?
미안해하는 표정의 나를 보던 장하연이 수저를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 옆으로 다가온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오늘 못 해줄 거, 지금 해주고 가.”
“누나?”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침부터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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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하며 침대에 끌려간 나는 새벽 6시부터 세 번 연속으로 장하연에게 기를 빨려버렸다. 회사에 도착한 날 맞아준 배재훈은 더 퀭해진 내 얼굴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 이사 자네 괜찮나? 신혼인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네? ···네.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여자는 서른부터라더니 장하연이 딱 그 과였다. 새해부터는 반드시 보약을 챙겨먹어야 할 것 같았다. 반드시!
배재훈은 힘없이 대답하는 나를 보며 낄낄 웃었다.
“힘들겠어. 아침에는 회사 나와서 우리랑 일해야지, 밤에는 와이프 건사해야지··· 밤낮없이 쥐여 짜이는구먼, 흐흐.”
“아하하하···.”
어색하게 웃던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응?”
손으로 코 밑을 쓱 문지르니 피가 묻어나왔다. 젠장!
“으하하하! 우리 이 이사 큰일이구먼! 아직 신혼이 한창인데 벌써부터 기력이 달리면 어쩌자는 겐가? 응? 으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배재훈을 보고 나는 얼른 티슈를 뽑아 코를 틀어막았다. 배재훈은 나를 보더니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가져와서 내게 내밀었다.
“이건···?”
“공진단일세. 서른 들어오고부터 하루 한 알씩 꼬박꼬박 챙겨먹어서 지금도 기력이 받쳐주고 있지. 어서 들게. 아무나 주는 거 아니니까, 으하하.”
말은 나를 위하고 있지만 이건 분명히 날 맥이는 거였다. 약을 내밀면서 웃는 게 장난이 아니면 뭔가?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먹어야지. 이러다 진짜 기 빨려 죽을 것 같으니···.’
공손히 공진단을 받은 나는 포장지를 뜯어서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먹었다. 더럽게 쓴 맛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자 손주 보듯 바라보던 배재훈이 껄껄 웃으며 물을 가져다줬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물까지 받아 마신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천하의 이성민이 벌써부터 약에 기대야 하다니. 배재훈은 그런 나를 지그시 보며 말했다.
“장난이 아니라 진지하게 권하는 건데··· 꼬박꼬박 보약 챙겨먹게. 안팎에서 뺏길 기운 보충 못하면 몸 축나는 거 금방이야. 일도 몸이 건강해야 하는 법일세, 이 이사.”
“새겨듣겠습니다, 부회장님.”
걱정이 담긴 배재훈의 눈빛을 보니 인생 선배로서 충고해주는 것 같았다. 먼저 겪은 양반이 해주는 충고는 받아들여야지.
한 차례의 신혼신고식을 마친 뒤, 배재훈은 나와 함께 마시던 차를 내려놨다.
“자, 그럼 기력 회복제도 먹었으니 시작해야지? 자원개발, 어떻게 보나?”
“지금 광산을 개발할 수는 없습니다, 부회장님. 우리가 분명히 이번 외환위기 속에서 자금을 불렸지만 환율이 안정될 때까지는 시기상조입니다.”
광산개발은 원자재 슈퍼사이클의 초입에 맞춰서 추진할 작정이었다. 지금 개발해봐야 채산성도 안 맞고 가채연수만 갉아먹는 삽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는 못했지만 배재훈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호주 철광들은 2001년 봄까지 묵혀놔야겠군.”
“네. 그때 추진해도 충분할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배재훈이 내게 물었다.
“그러면 이르쿠츠크 천연가스전 개발은 어떤가? 저번에 인수한 한고에너지 말일세.”
잠시 고민하는 체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당장 추진할 사업은 아닙니다. 우린 예외지만 이번 외환위기 때문에 국내 종금사들이 러시아 채권을 투매한 터라 러시아 정부에서 우릴 보는 눈이 곱지 않을 테니까요.”
어떤 사업보다 자원개발만큼 국제정치에 얽매이는 사업이 없다. 러시아로서는 자국 채권 투매로 러시아 루블의 가치를 떨어뜨린 한국이 곱게 안 보일 터.
배재훈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이걸 보고 얘기하도록 하지.”
현재 개발권을 확보한 사업을 모두 보류하자고 해서인지 배재훈은 굳은 표정으로 소파에서 일어나 책장을 문처럼 열고 붙박이로 된 금고에서 A4용지 박스 하나를 가져왔다.
“···부회장님?”
“아직은 환율문제 때문에 광산개발이 어려울 것 같으니 개발권만 따두거나 지분을 확보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여기 있는 거 전부 그 문서들이네.”
배재훈의 눈에서 굳은 의지가 드러났다. 나는 박스 맨 위에 있는 각 건별 리스트를 살펴봤다.
‘이럴 수가?’
내가 준비한 사업계획서와 큰 틀에서 일치하고 있었다. 종합상사 정보력이 좋은 건 알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왜 그러나, 이 이사?”
“제가 준비해 온 것도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그 전에 저와 부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자원개발 사업 대전략의 핵심 코드 두 개를 쪽지에 써서 교환하는 게 어떠십니까?”
개구진 표정으로 묻는 나를 보며 배재훈이 피식 웃었다.
“적벽대전 앞둔 제갈량과 주유 흉내 같구먼. 좋네.”
나와 배재훈은 쪽지에 각자가 생각하는 단어들을 적어서 서로에게 내밀었다.
“으하하하!”
“하하하하!”
쪽지를 본 배재훈과 나는 서로를 보며 껄껄 웃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적어서 준 종이에는 ‘6대 전략광종’과 ‘희토류’ 두 단어가 똑같이 적혀있었다.
“이심전심이 따로 없구먼! 작년부터 우리 애들 매섭게 채찍질해서 뽑아낸 계획이었는데!”
“아하하하···.”
갑자기 우리 회사 해외주재원들이 불쌍해졌다. 저 불같은 성격에 얼마나 쪼아댔을까? 어색한 웃음만 흘리던 나는 웃음을 거둬들이고 내가 가져온 서류를 배재훈에게 넘겨주며 본격적인 사업 얘기를 시작했다.
“부회장님이나 저 모두 6대 전략광종(유연탄, 우라늄, 철, 구리, 아연, 니켈)과 희토류에 집중하자는 대전략이 같으니 다행입니다.”
껄껄 웃는 배재훈을 보며 나도 기분 좋게 화답했다.
“누가 아닌가. 우라늄이야 정치나 방사능 때문에 개발이 까다롭겠지만 나머지 다섯 개 광종과 희토류는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보네.”
“맞습니다, 부회장님. 경제의 근간은 제조업이고, 그 제조업은 원자재가 필수 아닙니까?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광산을 확보해야 합니다.”
탈석탄, 탈원전 문제야 나중의 일이고 지금처럼 원자재 가치가 낮은 때도 없으니 최대한 쓸어 담아야 한다. 이런 사정을 알려줄 수는 없었지만 배재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안 가는 길이지만 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겠지. 원자재 수입으로 나가는 달러를 우리가 다시 가져오면 그게 우리 나름의 애국이니 말이야.”
“그렇죠. 단군왕검께서 부동산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원자재가 없어서 해외에 지불하는 달러가 얼맙니까? 그나마 시멘트, 텅스텐은 괜찮지만···.”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쓴웃음만 흘렸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가 실효지배를 하는 휴전선 이남에서는 그 두 개를 빼면 채산성이 극악 아닌가?
“그나마 한반도에서 제일 쓸 만한 무산철광은 북한에 있으니 말 다한 셈이지. 그 빨갱이들은 믿을 족속들이 못 돼. 차라리 호주나 캐나다, 미국, 브라질, 몽골, 동남아, 아프리카에 투자하는 게 나을 걸세.”
고개를 끄덕인 나는 각 지역의 광종별 사업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며 내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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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광산.
세계 3대 니켈광산으로 불리는 노천광산으로 원광 매장량 약 1억 4천만 톤에서 1억 9천만 톤으로 추정되며 니켈 함유량 0.94퍼센트, 코발트 함유량 약 0.09퍼센트다.
전생의 이 광산은 향후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될 이영백의 자원개발 사업 중 유일하게 억울한 사업이었다. 니켈 시세가 역대 최고점일 때 마다가스카르 쿠데타가 터진 바람에 투자비용이 늘어나서 오명을 쓴 사업이 아닌가?
그 밖의 모든 사업들은 재계에서도 쉬쉬하고 넘어간 쓰레기 사업들이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현재 상황은 이 무렵에 개발권을 쥐고 있던 미국의 펠프스 닷지 사- 훗날, 프리포트 맥모란에 합병된다. –가 3억 달러에 사업권 양도를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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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오유톨고이 광산.
원광 매장량 약 31억 톤에 구리 함유량 0.7퍼센트, 금 매장량은 톤당 0.35그램인 초대형 노천광산이다.
전생에는 리오틴토와 아이반호 마인즈가 광산을 가동하면서 2019년 기준 연 매출 10억 달러, 순이익 2억 달러를 기록했을 만큼 충분히 사업성이 보장된다.
현재는 호주의 BHP가 개발권을 갖고 있지만 합작사를 구한다는 핑계로 단계적 철수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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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타반톨고이 광산.
총 매장 50억 톤에 이르는 초대형 노천탄광으로 그 안에 있는 챤키 탄전 1광구는 매장량 12억 톤의 제철용 유연탄이 매장된 곳이다.
현재 상황은 BHP에서 채산성 문제로 손을 뗀 상태. 몽골 정부와 협의하면 사업권 획득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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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광산에 대한 자료 외에도 다른 광산들의 자료들을 살펴보며 기억을 떠올리던 나는 서류를 내려놨다.
“지금이야 채산성이 떨어져도 부회장님께서 보여주신 자료대로 암바토비와 오유톨고이, 타반톨고이는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현지에서 벌어질 문제들도 대비해야 하고요.”
“현지 정부와의 수익 배분 문제라면 걱정 말게.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제가 생각하는 건 그 이상의 문제입니다, 부회장님.”
나는 배재훈에게 내가 알고 있는 일, 그러면서도 배재훈이 못 봤을 수도 있는 일을 알려줬다.
“예를 들어 몽골에서 광산을 열면 광부들이 몽골 전역에서 몰려 들겠죠?”
“당연한 걸 왜 묻나? 상동 광산이 한창 흥했을 땐 전국에서 힘깨나 쓰는 남자들이 몰려들어 난리였다네.”
싱겁다는 투로 배재훈이 대꾸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그럼 그 힘깨나 쓰는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광산촌에서 여자 문제가 안 터질 수가 없겠죠?”
“여자 문제?”
배재훈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점점 굳는 배재훈의 얼굴을 보며 나는 정확한 문제를 짚어줬다.
“집창촌으로 인해 퍼질 성병 문제입니다. 매독, 임질, 에이즈··· 현지 사정을 고려하면 분명히 터질 겁니다.”
“이런··· 그걸 놓칠 뻔했군.”
몽골이라고 좋아서 그런 게 아닌 건 나와 배재훈 모두 잘 알고 있다. 나라 자체의 인구밀도가 희박하고 의료복지 시스템이 촘촘하지 못하니 성병 환자 관리가 되겠는가?
‘리오틴토 놈들도 그 일 때문에 골치가 썩었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노력한다.’
나는 구겨진 표정의 배재훈에게 담담히 말했다.
“혈기 넘치는 남자들만 모이는 광산촌에서 다달이 현찰을 받으면 백 퍼센트 터질 일입니다. 광산 개발권을 획득하게 되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부회장님.”
사랑이 오가든 돈이 오가든 인간의 성욕을 무시하면 안 된다. 나만 해도 오늘 아침에 장하연에게 기력을 빨렸다가 배재훈이 준 공진단을 먹고 간신히 회복하지 않았나.
“그러겠지. 아무 준비 없이 개발했다가 터졌으면 국제망신에 양국 외교문제로 번졌을 걸세. 거기에 우리 둘 다 회장님께 불벼락을 맞았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생각만 해도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던 배재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룹 일로 잡음을 안 내려고 임직원들의 급여와 복지를 후하게 챙겨주는 할아버지다. 그런데 그룹 사업현장에서 성병이 터진다? 삼청동 서재가 뒤집어엎어지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그러니 몽골 광산 사업은 노동자들 건강상태부터 체크하고 채용해야 합니다. 그밖에도 콘돔 배포, 광산촌 남성들과 여성들의 정기 무료검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해야 회장님과 한-몽 양국도 인정할 겁니다.”
남의 나라 땅 파서 장사하는 우리로서는 현지인들에게 최대한 좋은 대접을 해주고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게 최선이다. 잠시 침묵하던 배재훈이 말했다.
“광산 가동에 맞춰 병원을 운영하는 게 좋겠군. 그룹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도 좋은 효과를 볼 것 같네.”
나 또한 현지에서의 병원 운영이 사업적 관점에서 좋은 홍보 수단이 될 거라 여겼다. 내친김에 하나 더 알려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