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44th. 도장깨기 part.1 (3)
할인점 부지를 다 찍은 뒤에도 점포개발부 담당자들과 나창석은 나와 백화점 개발까지 의논한 뒤에야 내가 준비해 온 사업계획서를 들고 나갔다. 둘만 남은 집무실에서 나와 태재호는 소파에 앉아 숨을 돌렸다.
“다들 치열하더군요.”
“그럴 수밖에. 저 친구들이 물류유통부문의 정찰대 아닌가, 허허.”
맞는 말이었다. 점포개발부 담당자들이 지방에 나가서 입지를 선정하고 땅을 사서 매장 건물을 올려야 하이마트와 해동백화점의 영토가 더 넓어지니까.
“저 친구들,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땅 보러 다닌 친구들인데 이 이사한테 군소리 없는 거 보면 맘에 들어하는 걸세.”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태재호는 나를 보며 손을 내저었다.
“감사는 무슨.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조사 결과는 1,2주 정도 뒤에나 나오겠지만 지도만 봐도 좋은 땅들이었어.”
푸근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태재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다른 백화점은 눈길도 안 주는 건가? 지금 부동산 시장에 나온 점포들이 꽤 될 텐데.”
지금의 백화점 시장 또한 현찰 많은 놈들이 게임을 주도하는 타이밍이다. 대농그룹을 비롯한 여러 재벌들이 빚 갚느라 백화점 건물을 죄다 매물로 토해내고 있으니까.
나는 의문 섞인 눈길을 보내는 태재호에게 말했다.
“분명히 꽤 큰 이익이 되긴 할 겁니다. 하지만 백화점이라는 건 고객들에게 좋은 감정을 입혀주는 사업 아닙니까?”
“좋은 감정을 입혀준다···.”
“네. 백화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특별한 사람이 됐다는 우월감을 입혀줘야 합니다. 나갈 때는 그 우월감을 벗어놓는 아쉬움을 입혀보내야 하고요.”
백화점에 대한 내 큰 틀을 듣고 태재호가 표정을 바꿨다.
“다른 건 없나? 구체적으로 말이네.”
“말씀드리자면 앞으로의 백화점은 통일성이 중요합니다.”
“통일성?”
눈을 껌뻑거리는 태재호를 보며 나는 빙긋 미소를 띠었다.
“쉽게 말하자면 백화점도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해진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지을 우리 백화점 점포의 디자인이나 매장 규모의 기준을 강남점으로 잡았으면 합니다.”
“이유는?”
“지금은 내수가 얼어붙었지만 강남점은 이 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곳의 한복판에 있고 시설 규모와 질, 입점 브랜드 등 모든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죠. 고급 백화점의 대명사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감을 드러내는 나와 달리 태재호는 나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로엘그룹이 소공동 본점 옆에 있는 다른 백화점 건물들이나 다른 지역 점포들까지 쓸어 담을 거라는데 괜찮을까?”
“괜찮습니다, 부회장님. 강남점은 수도권만 아니라 다른 지방까지 연결된 매장이니까요.”
“다른 지방이면···.”
잠시 말끝을 흐리던 태재호가 무릎을 탁 쳤다.
“그러겠군! 버스터미널을 통해서 지방 고객들까지 올라와서 쇼핑을 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이 양반도 할아버지와 호형호제하는 사람 아니랄까봐 시야가 보통 넓은 게 아니었다.
해동백화점 강남점은 전생에 신성백화점 강남점이었던 시절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고객들이 매출의 25퍼센트를 채워줬었다. 나는 태재호에게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강남점은 소공동 로엘백화점 본점보다 잠재적 배후상권이 넓고 큰 대표 점포입니다. 해동백화점의 디자인 표준으로는 충분할 겁니다, 부회장님.”
“그러겠군. 다른 곳에 강남점과 똑같은 디자인의 점포를 내면 지방 사람들도 우리 백화점에 있는 시간만큼은 강남에 왔다는 느낌을 줄 테니 말이야, 허허.”
달마대사처럼 생겨서인지는 몰라도 태재호는 사람들의 심리를 헤아리는 감각이 그 나이대의 양반들과 남달랐다. 그 모습에 나는 자신감을 얻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린 경쟁사들과 달리 초대형 점포 위주로 자체 출점을 해야 합니다. 브랜드 관리까지 철저히 하면 향후 해외 사치품 브랜드 유치에도 도움이 될 테니 더더욱 자체 출점을 고수해야 합니다, 부회장님.”
명품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 때문에 입점할 백화점의 브랜드 이미지도 깐깐하게 따진다. 앞으로 백화점의 수익률이 명품 매출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초대형 백화점 자체 출점을 고수한 것이었다.
‘로엘그룹, 열심히 주워 담아봐라. 잘 키운 점포 하나가 고만고만한 놈들보다 백 배는 낫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나는 백화점 업계 최후의 승자가 해동백화점이 될 것을 의심치 않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
그 뒤로도 나는 유통사업 부문의 다른 안건들에 대해 태재호와 얘기했다.
“센트럴스퀘어 지분 50퍼센트 인수도 부회장단 회의에서 얘기하도록 하지. 부채를 모두 갚을 만큼 값을 쳐주고 경영권을 보장하면 신 회장도 고민해볼 것 같으니.”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신호진의 센트럴스퀘어는 현재 부채 규모만 4천억 원이 넘었다. 그 부채를 털어낼 만큼 우리가 값을 지불하면 신호진은 빚을 털어내고 우리는 세입자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 회장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다고?”
“네. 센트럴스퀘어 직원들한테 들었는데 센트럴스퀘어 전산망을 신 회장님이 짰다고 하더군요.”
천재들이 수두룩하게 나온 집안 출신인지 신호진은 경영학과 출신임에도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홈페이지를 짤 만큼 실력이 좋았다. 내 말을 듣고 태재호가 턱을 매만졌다.
“신 회장, 머리도 좋지만 기발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지.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해외 바이어한테 꿇리기 싫다고 다른 회사 배에 유신그룹 로고를 칠했거든. 거기에···.”
배에 불을 질러서 화재진압을 명분으로 선적을 앞당기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지자 화물선 대신에 화물이 가득한 트럭을 실은 전차상륙함을 상륙작전마냥 해변에 접안시켜서 바이어들에게 물건을 납품했다는 이야기에 눈이 커졌다.
“사실입니까?”
“그 시절엔 그게 가능했었다네. 이 나라에서 나는 물건만 때 맞춰서 해외 바이어들에게 납품하면 달러가 쏟아지는 시절이었으니 말이야.”
“그랬군요.”
꿈만 같은 시절이었다. 지금이었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신호진에 대한 감탄을 숨기지 못한 내게 태재호가 말했다.
“그래서 자네 부친이 신 회장더러 햄릿의 심장과 돈키호테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었지. 신 회장 감각에 실력이면 나 상무나 다른 친구들하고 전자상거래에 대해 통하는 면이 있을 걸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우리 집안하고 왕래했던 양반이 건물주로 녹스는 걸 볼 수는 없지.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백부님.’
신호진이 우리가 내민 손을 잡아주길 바라며 우리는 유통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
여기까지가 기존 사업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와 태재호는 간식을 먹으며 새로운 사업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엔 대양상선을 인수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지분 전량을 3천억에 인수하고 해동물산 해운사업부로 합병시킬 생각인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대양상선이면 법정관리 중인 회사죠?”
태재호가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재무구조나 실적은 괜찮은데 오너 일가 상속 문제로 법정관리 중인 회사네. 벌크선 위주로 선단을 꾸려서 광물이나 곡물 운송에 특화됐고. 이 이사는 어떻게 생각하나?”
말할 게 있나. 나도 집에서 그룹 사업구조 짤 때 원 픽으로 찍어놓은 회사인데.
앞으로 배재훈의 상사부문이 해외 각지에서 개발할 광산이 쏟아낼 철광석과 구리, 석탄, 아연 등을 운반하려면 반드시 가져와야 할 회사가 아닌가? 나는 재깍 대답했다.
“반드시 가져와야 합니다, 부회장님. 그리고.”
내 대답을 듣고 흡족해하던 태재호에게 의견을 계속 내놨다.
“인천, 평택, 군산, 광양 등 국내 주요 항만과 홍콩, 싱가포르, 로테르담, 롱비치 같은 해외 항만의 터미널 지분까지 확보해야 합니다. 선적 처리 수수료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당장은 목돈이 들어가겠지만 지금부터 항만 지분을 확보해놓지 않으면 지금 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경쟁사들에게 바쳐야 한다. 반드시 인수해야 했다.
“알겠네. 그리고··· 조만간 국내 해운시장에 꽤 많은 선박들이 매물로 나올 걸세.”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묻자 태재호는 나를 귀여운 손주 보듯 바라보며 대답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IMF에서 대기업 부채비율은 200퍼센트, 은행 부채비율은 500퍼센트로 줄이라고 통보할 거라더군. 우리에겐 기회인 셈이지.”
이름값을 하는 건지 태재호의 눈이 호랑이처럼 번쩍거렸다.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양아치 같은 IMF 놈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군.’
IMF 총재인 미셸 캉드시 그 흰둥이의 턱주가리를 위아래로 찢어버리고 싶었다. 연 초만 해도 한국은 믿을만하다고 했던 놈이 이제 와서 안면몰수하고 한국을 쓰레기 국가로 매도하지 않았나?
‘두고 보자, 캉드시. 나중에 우리나라에 와서 이마빡을 땅바닥에 찧어야 할 거다.’
속에서나마 끓었던 감정을 삭인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기존 해운회사들이 보유하던 선박들을 인수하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괜찮은 놈들로 골라도 척당 3,4백억에 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나는 태재호에게 말했다.
“금액 기준으로 1조 원까지는 해동종금이나 은행권에서 융통해서 매물로 나올 선박들을 인수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겨우? 난 최소 2조는 지를 생각이었는데?”
태재호의 눈에 실망이 비쳤지만 나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우리에게 배를 팔 곳들은 해동종금과 해동증권에서 10년 만기 후순위채를 인수해주겠다고 할 생각입니다. 그걸 미끼로 화주들도 넘겨받아야죠.”
음침한 미소를 띤 나를 보며 태재호가 껄껄 웃었다.
허허, 일감도 챙기고 금융 수익도 내자는 거군. 10년 만기 후순위채면 이번 위기가 끝날 때까진 충분히 자본으로 잡힐 테니 그치들도 꽤 솔깃할 걸세.”
후순위채는 상환순위가 낮은 덕분에 현행 회계기준에 따르면 자본으로 잡히는 채권이다. 보통의 후순위채는 금리가 높은 게 흠이지만 난 현재 금리에 비해 아주 싼 금리를 부를 생각이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입꼬리가 귀에 걸리던 태재호가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건 조 부회장하고도 얘기해봐야겠구먼. 금융 쪽하고 연관된 일이니.”
“다른 부회장님들도 봬야하니 조 부회장님께는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고, 허허.”
껄껄 웃는 태재호를 보며 마지막 핵심을 제안했다.
“그리고··· 용선(傭船, 다른 선주에게서 배를 빌리는 것)은 신중히 하셔야 한다고 봅니다.”
“왜 그런가?”
“선박공급량과 물동량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힘들게 돈을 벌어도 선주들 배만 채워줄 겁니다.”
불안정한 요소를 짚어주자 태재호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그럼, 어떡해야 한다고 보나?”
“용선 계약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지만 해외업체 인수합병이 유리할 겁니다.”
“인수합병?”
눈을 껌뻑거리는 태재호에게 나는 내가 준비해온 서류를 가방에서 꺼내 내밀었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해운 시황이 그닥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이 점차 커지면 물동량이 폭증할 겁니다.”
“흐음··· 중국이 클 건 기정사실이지. 지금도 세계의 공장이 될 거란 말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야.”
“네. 그러니 해외업체 인수합병이 절실합니다. 그 중에서도 영국 P&O 그룹의 컨테이너선 사업 인수는 반드시 추진했으면 합니다.”
전생에는 머스크라인이 ‘P&O 네드로이드’로 간판을 바꿀 P&O 그룹 컨테이너선 사업을 인수했었다. 덕분에 머스크라인의 시장점유율은 12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수직상승했다.
‘그 합병은 무조건 막는다. 머스크라인이 P&O 네드로이드 먹고부터 스위스 MSC와 손잡고 양민학살을 시작했잖아. 2M이라는 이름으로.’
바이킹의 후예인 덴마크 머스크라인이 스위스로 이민 간 이탈리아계 MSC 사와 손잡고 깡패 짓하기 전에 깽판을 쳐놔야 했다. 향후 해운동맹에서 한국이 나가리 되는 꼴을 면하려면 말이다.
미래를 떠올리며 속으로 각오를 다지던 나는 고개를 갸웃하는 태재호를 계속해서 설득했다.
“앞으로 세계화가 계속될수록 어떤 업종이든 인수합병이 치열해질 겁니다. 해운업계도 예외는 아니고요. 발을 들여놓은 이상 5위 안으로 올라가야 생존이 보장될 겁니다.”
“흐음··· 그 P&O 그룹 컨테이너선 사업 인수는 시작에 불과하단 말인가?”
“네. 자체 확장도 충실히 해야겠지만 P&O 그룹과의 거래를 시작으로 홍콩의 오리엔탈 오버시스(OOCL), 함부르크 쥐트(Hamburg Süd) 정도까지는 인수해야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을 겁니다.”
태재호가 내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나같이 다들 우리가 인수할 대양상선에 비해 거대한 업체들이네. 그런데도 그 업체들을 모아야 겨우 버틸 거라니···.”
“치킨게임이 시작되면 규모와 체질 모두 받쳐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인수합병은 불가피합니다, 부회장님.”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듯 태재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걸리는 문제를 토로했다.
“인수합병도 결국 사고 파는 거래인지라 가격이 문제일세. 해동물산이 현금도 넉넉하고 부채비율도 낮다지만 해운업만 하는 것도 아닌데 자금흐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태재호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던진 질문에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부회장님, 혹시 배재훈 부회장님이나 회장님께서 저에 대해 들려주신 말씀이 없으신지요?”
잠시 미간을 찡그리던 태재호가 인상을 펴고 입을 열었다.
“자네가 스탠더드 캐피털에서 핵심인사라는 거?”
“네, 부회장님. 스탠더드 캐피털은 저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제가 스탠더드에서 받은 수익분배금도 충분히 쌓여있고요. 자금 걱정은 안 하셔도 되십니다, 하하.”
여유를 보이며 웃는 나를 보고 태재호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걸 깜빡했군. 든든한 물주가 밀어주겠다는데 걱정할 게 없지, 흐흐.”
“게다가 우리는 호주와 파나마 광산 덕분에 잠재적 일감도, 수익도 충분합니다. 향후, 광산개발로 회사가 안정되면 이를 기반으로 인수합병을 추진하고 초대형 선박 경쟁에 뛰어들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더 큰 선박이라···.”
말끝을 흐리는 모습을 보니 신형 선박 발주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목소리에 더 힘을 줬다.
“당장 하자고 권하는 건 아닙니다, 부회장님. 앞으로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클 때에 맞춰 대응하자는 거죠. 해운업계 치킨게임이 시작되면 인수합병만으로는 부족하니까요.”
부담 주기 싫어서 한 발 물러섰지만 머스크라인이나 MSC, CMA-CGM 등 유럽의 거대 해운회사들은 인수합병과 동시에 초대형 선박 발주로 경쟁자들을 말려 죽였다. 살아남으려면 선박이든 점유율이든 그들만큼 체급을 맞춰야 했다.
태재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나를 보며 물었다.
“그 배는 전부 해동중공업 진해조선소에 발주해야겠지?”
“우리 조선소 놔두고 다른 곳에 발주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대답을 마친 나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STP그룹의 공덕필 회장이 생각났다.
‘해동물산 해운사업은 절대 안 망할 거다. 공덕필처럼 배 만들라고 선주들이 준 선수금으로 다롄에 조선소를 짓는 미친 짓도 안 할 거고 해동그룹이라는 화주도 있으니까.’
해동그룹은 앞으로 더 큰 물동량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물동량과 점유율이면 2M이든 뭐든 모조리 찍어 누를 수 있었다.
‘더 큰 계획이 있는데··· 나중에 풀어도 되겠지. 더 말했다간 과부하 걸리실 테니.’
지금은 여기까지만 밝혀놔도 엄청난 스케일의 계획들이다. 숨을 고르며 물을 마신 태재호가 나를 바라보는 복잡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걸로 첫 번째 도장깨기는 성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