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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139화 (138/229)

139화. 40th. 거래 준비 (3)

‘김 후보’와의 통화를 끝낸 뒤, 이대수는 야당 후보와의 통화를 마친 뒤, 고승주와 세 대표, 이명진을 불렀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회장님?”

“김 후보 쪽에서 다른 요청은 없었습니까?”

“선거자금이 더 필요하면 명동 쪽에 말해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장님.”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앞서 말하는 다섯 남자들.

이번 대선은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동그룹이 지난 수십 년간 영남 정권에 당했던 온갖 설움을 갚을 기회였다. 스스로 나서겠다는 그들에게 이대수가 손을 내저었다.

“얘기는 잘 됐네. 당선만 되면 해동종금 점포 출점이나 우리가 원하는 다른 것도 지킬 것만 지키면 협조하겠다고 하더군.”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한 이대수를 보며 다섯 사람의 얼굴이 상기됐다. 은행 간판만 달지 못할 뿐 은행이나 다름없는 종금사인 해동종금의 지점들을 전국 곳곳에 출점하게 됐으니 재벌 중 유일하게 은행을 갖게 된 셈이 아닌가?

“다른 그룹들이 초칠 수 있겠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십니다, 회장님. 해동증권과 해동종금의 자금으로 주식과 채권을 사두면 충분히 방어가 가능합니다.”

그룹 내에서 이번 거래의 최대 수혜자가 된 조영찬이 그냥 방어도 아닌 공세적 방어를 외치자 이대수가 미소를 띠었다.

“이제야 조 대표 어깨에 힘이 들어가겠구먼, 허허.”

“다 이 이사와 박 이사 덕분이지요, 하하.”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저도 이번에 살림이 커졌는데 대표님도 이제야 살림을 키우시겠군요, 하하.”

껄껄 웃는 조영찬을 보며 이명진이 밝은 표정으로 축하인사를 건넸다.

이 자리에서 가장 막내인 자신도 아도자동차와 한고제철을 품으면서 살림이 몇 배나 늘어났는데 자신보다 위인 조영찬도 맡고 있는 살림이 커진 것에 한결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대수가 입을 열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지만 알려줘야 할 게 아직도 남아 있어서였다.

“김 후보가 자신이 당선되면 우리가 가진 달러 중 일부를 시중에 풀어달라고 했네. 선거자금은 금 회장이 넘겨준 돈에서 5백억 건네준 걸로도 충분하다고 했으니 달러만 팔아주면 될 걸세.”

어차피 팔아야 할 달러라면 선심 쓰듯이 적당한 이익만 챙겨서 팔면 된다.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이대수가 고승주에게 물었다.

“고 실장, 우리가 쓸 달러 빼면 얼마나 남나?”

“해동증권에서 처분 가능한 57억 달러와 체이스맨해튼과 계약한 40억 달러 대출 등 총 100억 달러입니다.”

“확실한가?”

“예, 회장님. 물산과 종금에 남길 달러는 제외한 액수입니다.”

확신이 가득한 고승주의 대답에 이어 조영찬이 물었다.

“회장님께서 종금과 증권에서 각각 20억 달러와 15억 달러는 남겨두라고 하셨지만 구제금융이 본격화되면 환율이 떨어질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해동증권에서 정산을 받으면서 해동종금은 그렇게 팔아댔던 달러가 20억 달러로 늘어났고, 이성민에게서 증여받은 해동증권 지분 15퍼센트도 그 가치가 수십 배로 불어났다.

허나 조영찬은 35억 달러를 팔지 말라는 이대수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대수 또한 그 지시를 내리게 한 이성민의 부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놈의 자식이 또 뭔 장난을 치려고···.’

이대수는 이성민이 뭔가를 숨기고 있을 거란 생각에 잠시 뚱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뒤틀었다. 그래도 큰 이익을 남길 장난이라 확신했기에 표정을 풀고 고개를 저었다.

“놔두기로 하지. 대선 끝나면 내가 신호 줄 테니 100억 달러 전부 외환시장에 던져.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이대수가 가장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명동 녀석들한테도 내가 말하면 그간 모아둔 달러 전부 던지라고 해. 정리만 끝나면 우리가 끌어안고 터뜨린 부실어음 3조 원은 복구하고도 남을 게야.”

“작년부터 모아둔 외화가 50억 달러라서 쩐주들 모두 회장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손실은 괘념치 마십시오, 회장님.”

고승주의 위로 섞인 대답에 이대수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그 친구들한테 고맙군.”

이대수 휘하의 쩐주들 모두 이대수의 선친 때부터 이 집안 밑에서 명동을 휘어잡았던 이들의 자식손자들이다. 그들 모두 군소리 없이 자신의 지시대로 달러를 모으면서 부실어음까지 끌어안았기에 이대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 뒤로도 이대수는 종자회사나 해운회사 등 괜찮은 매물들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리고서야 모두를 물렸다.

“어쩔 수 없지.”

이대수는 ‘김 후보’에게 휘하 사채조직이 건재한 것도, 그들이 50억 달러를 쥐고 있다는 것도 알리지 않았다. 삼청동 서재의 주인으로서 이 집안의 볕 드는 땅만 아니라 그늘진 땅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어서였다.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이대수가 서재 진열장에 놓인 흑단 피에타를 바라보기만 했다. 피에타를 바라보는 이대수의 눈에는 용서를 구하는 심정이 가득해보였다.

***

헨리와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네. 네, 할아버지. 헨리도 타이밍 맞춰서 터뜨리겠다고 했습니다. 김 후보 쪽은 어떻게 됐나요? 다행이네요. 체이스맨해튼 들러서 대출 계약 마무리 짓고 돌아가겠습니다. 네.”

수화기를 내려놓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통화하는 내내 지켜보고 있던 박태진이 내게 물었다.

“잘 되신 겁니까, 이사님?”

“네, 형. 김 후보 쪽에서 당선 되고 나면 우리 쪽 사업에 대해서는 총재 권한으로 소속 의원들 단속하고 정부 각료들도 잡아주겠다고 했어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나를 보며 선해철이 피식 웃었다.

“회장님이나 너나 참 신기해. 선을 넘지 않다니.”

“절제를 못하면 망하는 법이니까요. 해동종금을 은행처럼 키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수확이잖아요, 하하.”

선해철에게 지금 한 말은 나만의 정신승리가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재벌들에게 유일하게 안 되는 게 은행을 소유하는 것이다. 가면 갈수록 정관계에서는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과 비금융을 분리시키려 하지 않던가?

그런 미래 속에서 해동종금 지점을 전국에 늘릴 수 있다는 것은 은행 간판만 달지 못할 뿐 은행을 갖게 해준 특혜 중의 특혜다. 시중은행이 아니니 은산분리 제한도 비껴나간다.

그러니 최대주주인 나나 해동물산에는 차고 넘치는 성과다. 법이 정한 만큼만 대출을 받겠지만 배당금만으로도 나와 그룹에 든든한 현금줄로 키울 테니 말이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지주회사 인베스터 AB가 자회사로 둔 SEB처럼.

또 한 번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던 나는 기분 좋게 코웃음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 쪽 일도 확인했으니 가볼까요? 40억 달러 빌리러요.”

“콜. 클레어도 같이 가야겠지? 흐흐.”

선해철이 짓궂은 미소를 띠며 웃었다. 막대한 환차익을 누릴 우릴 보며 썩어 들어갈 체이스맨해튼 은행 담당자들의 쌍판때기를 클레어에게도 감상시켜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형수님도 오시긴 오셔야겠군요. 우리 그룹 대출의 보증인 대표이기도 하고 그 흰둥이들 면상이 어떻게 변할지도 보여줘야 하니까요, 흐흐.”

박태진도 이번만큼은 정중한 태도를 집어던지고 노골적인 비웃음을 드러냈다. 우리가 해동물산의 가치를 알려주기 전까지만 해도 거만했다가 노나는 대출이라는 걸 알려주고서야 안면을 싹 갈아엎은 체이스맨해튼 놈들이 아닌가?

“당연히 그래야죠. 본점 정문 앞에서 만나는 걸로 해요.”

우리는 코트를 걸치고 숙소를 나섰다. 30여 분만에 체이스맨해튼 본점에 도착해 로비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문을 넘어 들어오는 클레어를 보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다들 잘 지냈죠? 후훗.”

“잘 지내다마다. 홍콩하고 한국에서 수십억 달러 딜을 메이드했잖아? 하하.”

선해철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클레어가 살풋 웃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고생했어, 조니. 홍콩에서 수익 낸 덕분에 미국 증시에 투자한 돈, 한 푼도 안 깼어.”

“고생은요. 클레어가 아니었으면 100억 불은 없었을 거예요. 우리 사람들도 키워주고 소스도 알려줬잖아요, 후후.”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클레어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찰리나 제이슨,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싹이 보였으니까 해낸 거지. 태진 씨도 고생 많이 했어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클레어. 저도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하.”

인사를 마친 뒤, 우리 네 사람은 체이스맨해튼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윌슨 부행장과 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윌슨.”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리. 앉아서 차부터 한 잔씩 드시죠.”

윌슨이 정중하게 손을 뻗어 가리킨 자리에 앉은 우리는 직원들이 가져온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대단합니다, 미스터 리. 이렇게 될 걸 알고 있던 겁니까?”

윌슨은 나를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물어보는 뉘앙스를 짚어보니 한국에 닥친 외환위기가 일시적일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뻔뻔하게도 어깨와 겉눈썹을 들썩거리고 윌슨에게 말했다.

“글쎄요. 우리 해동은 초대 회장님의 유훈을 받들고자 자원개발 사업을 준비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돼버렸네요. 이 또한 초대 회장님의 보살핌이라면 보살핌이겠죠.”

하늘에 계신 증조부님께서 보시면 뭐라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철판을 깔고 윌슨에게 대답했다. 윌슨은 그런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흠··· 아무튼 좋습니다. 이걸로 해동그룹이 우리 체이스맨해튼에서 빌릴 40억 달러 대출은 확실히 상환할 수 있게 됐으니 우리로서도 다행스런 일입니다, 하하.”

표정을 풀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윌슨이나 다른 임원들을 보니 맥이 빠졌다. 썩어 들어갈 얼굴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꼴에 체이스맨해튼 간판을 뒤에 두고 있다고 체면치레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허탈한 표정을 띤 나를 보고 윌슨의 표정이 굳었다.

“대출, 안 하실 겁니까?”

“아닙니다, 윌슨. 첫 미팅 때와 분위기가 달라서 그만··· 하하.”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는 나를 보며 윌슨이 미소를 띠고 말했다.

“해동그룹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총 부채는 3조 원 남짓인 데 반해 보유 현금만 한화 4조 원에 미국 달러도 80억 달러 이상이더군요. 괜찮은 기업들도 인수했고요.”

체이스맨해튼에서 우릴 주시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홍콩 증시에서 큰 판을 돌린 것도 알았을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윌슨의 공치사를 들었다.

“그 정도 현금과 사업 수완이면 우리 체이스맨해튼도 해동그룹과 오래도록 거래하고 싶습니다. 케일러 행장님이나 록펠러님께서도 기대가 크다고 하시더군요, 하하.”

체이스맨해튼이라는 대농장의 우두머리 마름과 지주가 나와 우리 집안에 대한 평가를 높이다니··· 향후 일을 진행할 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이 인정해준 것도 고마운데 두 분까지 인정해주시니 더더욱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윌슨. 40억 달러 대출은 12월 20일부터 시작하는 걸로 하죠.”

“좋습니다, 미스터 리.”

선선히 대답한 윌슨은 미리 준비해 둔 계약서를 임원을 시켜 내게 전달했다. 나와 윌슨은 계약서에 각자의 서명을 넣은 뒤, 다시 계약서를 바꾸고 서명을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계약서를 들고 가운데에서 만났다.

“첫 미팅 때는 실례가 컸습니다, 윌슨.”

앞으로 좋은 인연을 만들어야하기에 나는 윌슨에게 지난 미팅 때 일을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숙였던 고개를 들자 윌슨이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미스터 리. 당신처럼 젊고 유능한 분이 있는 해동그룹이니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매너까지 갖추셨으니 더더욱 기대되는군요, 하하.”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걸까, 껄껄 웃던 윌슨이 오른손에 쥔 계약서를 내밀면서 왼손을 내밀었다. 나 또한 손에 쥔 계약서를 그에게 건네주면서 그가 내민 계약서를 잡았다.

윌슨이 계약서를 가져가면서 가벼워진 오른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윌슨도 미소를 품은 얼굴로 나를 보며 악수를 받았다.

“앞으로도 좋은 거래가 이어지길 바라겠습니다, 미스터 리.”

“물론입니다, 윌슨. 위에 계신 분들께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윌슨과 악수를 나누며 체이스맨해튼과의 거래를 시작했다. 윌슨이 손에 넣는 힘이 적당히 강한 게 좋은 거래가 된 것 같았다. 돈이든, 관계든.

***

이성민 일행이 체이스맨해튼 은행과의 대출을 트고 나서 스탠더드 캐피털 미국 본사에 머물며 현지 사업을 점검하고 있는 사이,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열해지고 있었다.

선거를 며칠 안 남겨둔 어느 날.

낯선 백인 남자들이 김포공항 입국장을 넘어왔다. 수십 명의 경호원들을 벽처럼 양옆에 친 백인 남자들 중 가장 앞에 있는 중년 남자는 오른쪽 눈에 금실이 달린 모노클을 끼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헨리?”

뒤에 있던 임원 한 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헨리에게 물었지만 뒤돌아선 헨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일세. 그 지긋지긋한 요카이 소리를 더 이상 안 들을 수만 있다면 100억 달러를 써도 상관없네. 이미 수익도 충분히 낼 수 있도록 사전작업을 해두지 않았나?”

헨리의 질문에 임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동료였고, 헨리의 최측근인 선해철을 통해 해동그룹과 밀약을 체결해두고 해동그룹 상장계열사 주식을 여러 경로로 20퍼센트 이상씩 모아두지 않았나?

“그래도 코리아의 대통령 선거가 우리 계획대로 안 풀리면 낭패를 볼 수도···.”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임원이 조심스럽게 우려를 드러냈지만 헨리의 입에서 난 쓰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쓸데없는 소리. 5년 전에 ‘뺀질이 윌리’가 부시와의 토론 때 했던 말, 그새 잊었나?”

어떻게 잊겠는가? ‘뺀질이 윌리’ 빌 클린턴이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로 냉전 종식과 걸프전 승리의 주인공이었던 ‘조지 H.W 부시’를 백악관에서 밀어냈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임원들을 보며 헨리가 말했다.

“그 뺀질이 말대로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게 없네. 나라살림 말아먹은 놈들을 또 다시 찍어줄 유권자들이 어디 있겠나?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성공시키는 데만 집중하도록.”

“Yes, sir.”

임원들이 굳게 다져진 눈빛으로 헨리를 보며 대답했다. 헨리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항 출입구를 향해 캐리어를 끌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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