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37th. 그 여름, 뜨겁게 움직이는 때 (2)
장하연은 장호건의 호출을 받고 성의원으로 달려왔다.
“많이 힘 드시죠, 아버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힘들 리가 있을까? 커피라도 한 잔 하자꾸나.”
장호건은 장하연을 소파에 앉게 한 뒤, 직원을 시켜 커피 두 잔을 가져오게 했다. 그런데··· 쟁반에는 커피뿐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타르트까지 있었다.
“이건 뭐냐?”
“본점 베이커리에서 가져온 거예요. 아버지 피곤하실까봐 드시고 힘내시라고 바로 만든 거 가져왔어요.”
장호건은 장하연의 대답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지극정성인 딸에게 몹쓸 부탁을 해야 하지 않는가? 주고받는 거래라지만.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다. 얼른 들자꾸나, 하하.”
장호건은 장하연과 함께 커피와 타르트를 먹으며 뜬구름 잡는 얘기만 했다. 딸에게 입힐 상처를 생각하니 그렇게 좋아하는 타르트가 오늘 따라 팍팍하기만 했다.
타르트 한 조각을 다 없애고서야 장호건이 티슈로 손과 입을 닦고 본론을 꺼냈다.
“성민이 만나서 신성전자 대출 만기 좀 늦춰봐라.”
“···아버지?”
장하연의 눈에 서운함이 차올랐다.
자신도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신성그룹의 후계자가 되어 좋은 경영자가 되고 싶었지만 혼외자식에 딸이라는 한계를 알고 자신의 욕심을 누른 것이었다.
그래도 늘 고생하는 아버지가 눈이 밟혀서 자신의 욕심을 눌러왔고, 위로하겠다고 온 자신에게 그런 요구를 하다니!
억장이 무너지는 장하연이 입을 열려고 하자 장호건이 얼른 손을 들었다.
“채권 만기 늦추면 고려호텔 지분은 전부 네게 넘겨주마.”
이어지는 아버지의 제안에 장하연의 표정이 멍해졌다. 호텔 지분을 전부 주겠다니?
“네?”
“해동종금 채권 문제, 너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야. 네가 그걸 해결하면 집사람도, 용재, 수연이, 민재도 너한테 불평하지 못할 거다.”
“그래도···.”
“안다. 집사람 친정이 얼마나 지독한지. 그래서.”
장호건은 커피를 마시고 끊었던 말을 이었다.
“해결만 하면 고려호텔을 신성물산에 합병시키고 자회사로 내려서 지분 100퍼센트를 넘겨주마. 조건이 좋으면 호텔 면세점에 물산 밑에 있는 리조트, 골프장, SH자산개발 지분까지 전부 묶어줄 거다.”
이수한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장호건은 이번 기회를 딸이 살리면 고려호텔을 구실로 최대한 많이, 안전하게 챙겨줄 생각이었다. 성과만 좋으면 누구도 납득하지 않겠나?
“아,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제안에 장하연은 말까지 더듬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비상장회사로 만들어서 넘겨주겠다는 말이 아닌가? 고려호텔, 아니 그 이상의 재산을.
“네가 그 일을 해내야 집사람이나 세 아이도 너한테 그만큼 주는 데 불평도, 해코지도 못할 거다. 애비를 이해해다오.”
장하연은 아버지의 애틋한 눈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양껏 챙겨주고 싶어도 조국일보 황 씨 가문 때문에 이런 방법까지 짜줬으니 거절하면 불효가 따로 없었다.
“너 시집 갈 때 들고 갈 예물로 넘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도 않을 거다. 그거 들고 결혼하면 해동물산에 합쳐서 아무도 못 뺏게 해. 이 회장님이나 성민이라면 널 지켜줄 거다.”
장호건의 당부가 끝났고, 장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버지. 꼭 해낼게요.”
***
회사를 나와 하이마트로 가려던 나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건물 밖을 나가려던 중 장하연의 전화를 받았다.
“응, 누나. 지금 보자고? ···알았어. 거기서 봐.”
평상시라면 절대 근무시간에 만나자고 할 여자가 아니다. 나에게 뭔가 부탁할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부탁할 만한 일이 뭘까 기억을 더듬던 나는 가장 중요한 게 생각났다.
“신성전자 채권 때문인가?”
혼자서 중얼거렸지만 그게 아니면 볼 일이 없었다. 평소라면 몰라도 조 단위의 인수합병 때문에 자금운용 계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테니 그거 말고는 이유가 없었다.
차를 몰고 약속장소에 도착한 나는 안쪽 테이블에 앉은 장하연을 보고 그녀에게 걸어갔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근무시간에 누나가 보자고 하다니. 햇빛에 타죽을까 걱정되네, 하하.”
분위기를 풀 겸 너스레를 떨며 앉자 장하연의 어두웠던 얼굴에 빛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무슨 드라큘라니? 햇빛에 타죽게.”
“맨날 밤에만 봤잖아. 밤에 하는 일은 안 했지만 말이야. 안 그래?”
능글맞은 미소를 띠며 던진 농담에 장하연이 두 팔로 X자로 만들며 앞을 가렸다.
“짐승! 남자들은 왜 그런지 몰라.”
“그래도 나, 여태까지 누나 지켜줬다? 청춘남녀가 호텔방에서 자는데 아무 일도 없는 게 더 신기하지 않을까?”
난 좀 더 당당하게, 뻔뻔하게 굴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내 앞에 있는 여자의 마음에 지워진 짐을 잊게 해주고 싶었다.
내 나름의 노력이 먹혔는지 장하연의 얼굴에서 어둠이 지워졌다.
“하긴··· 너 같은 남자는 보기 힘들 거야. 뭐 마실래?”
“아이스 블랙. 누나는?”
“나도 같은 거 마실래. 여기요.”
아이스 브레이킹을 마친 나는 장하연과 주문한 커피를 마신 뒤, 그녀가 나에게 부탁할 것 같은 일을 먼저 꺼냈다.
“해동종금 채권 문제, 할아버지하고 조 대표님께 말씀드려볼게.”
“서, 성민아?”
장하연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나는 빠져들 것 같은 그녀의 눈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요즘 신문 보니까 왠지 그 얘기 나올 것 같았거든. 아저씨, 아도자동차 때문에 태현그룹하고 결투 중이잖아.”
“그, 그러긴 한데··· 고마워···.”
장하연이 발그레해진 얼굴을 푹 숙이며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누나, 아저씨가 공짜로 시킨 건 아니지?”
“응?”
“자그마치 3천억이야. 그만한 돈 만기 늦춰주는 거 쉬운 일 아니다? 아저씨가 누나 공짜로 부려먹은 거면 저번처럼 성의원 쳐들어 갈 거야.”
지금 상황에서 신성그룹이 우리에게 갚아야 할 빚 3천억 원을 늦춰줘도 우리가 아도자동차를 인수하는 데는 하등의 문제가 없다.
그와 별개로 물려주지도 않을 신성물산의 자동차 사업을 키우겠다고 장하연을 공짜로 부려먹으려고 한 거라면 이 판을 엎어버릴 생각이었다.
잔뜩 굳은 내 얼굴을 보고 장하연이 황급히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런 거 아냐! 아버지가 나한테···.”
장하연이 이번 일만 잘 성사시키면 받을 것들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다.
“누, 누나?”
신성그룹의 모든 레저사업에 영등포 재개발 지분 50퍼센트면 거의 1조 원에 가까운 재산이다. 그 재산을 비상장회사로 묶어서 지분 100퍼센트를 넘겨주겠다니··· 말을 더듬는 나를 보며 장하연이 살풋 웃었다.
“그래도 나, 공짜로 물려받고 싶지는 않아. 무슨 뜻인지 알지?”
저 곧은 마음이 너무 좋았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내 여자답게 뚜벅뚜벅 왕도를 걸어가려는 장하연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홍콩에서 열심히 벌어 와야 할 것 같았다.
“알았어. 조 대표님하고 할아버지한테 여쭤볼게.”
핸드폰을 꺼낸 나는 조영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성민입니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나는 장하연의 사정을 알려준 뒤, 그녀가 만족할 만한 조건을 조영찬에게 알려줬다.
[갚아야 할 원리금을 원금으로 재조정하고 20년 만기에 6퍼센트라··· 알겠네. 신성전자 채권이면 부도는 없을 테니 회장님께는 자네가 전하게.]
의외였다. 경쟁 그룹의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라 수락을 해줘도 떨떠름할 줄 알았는데 선선히 답해주다니?
“대표님?”
[이럴 때 자네 여자한테 점수 한 번 더 따야지? 회장님도 장 상무하고 자네 혼인 수락하셨으니 그리 하게, 하하.]
“감사합니다, 대표님.”
기분 좋게 전화를 끊은 나는 똑같은 내용을 할아버지에게 들려줬다.
[호오, 장호건이가 큰 맘 먹고 우리 손주며느리 예물 뚠뚠히 챙겨주는구나. 연막을 치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만 조 대표도 수락했다니 그리 하거라, 으허허.]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두 통의 전화를 마치고 나니 장하연이 나를 보는 눈빛이 처음과 달라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적당히 가슴을 폈다.
“어때, 누나?”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바라보자 장하연이 샐쭉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너, 아무한테나 퍼주는 거 아니지?”
“누나니까 해주는 거야. 곧 있으면 우리집안 사람 될 거잖아.”
장용재, 장수연, 장민재라면 어림도 없다.
그놈들보다 위에 있는 장호경은 사업으로 쥐어짜고 있고 장호민 또한 한고제철 인수대금 대출로 개목줄을 걸어놨는데 날 죽인 연놈들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가 있겠는가?
“누나가 이렇게 애쓰는데 애인이 돼서 이거 하나 못해주면 어떡해? 아저씨한테 가슴 쭉 펴고 말해.”
내 사람, 내 사랑, 내 여자가 기죽어 사는 거, 나는 절대로 못 본다. 황나연, 장용재, 장수연, 장민재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감까지 줄 수 있으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고마워··· 성민아.”
장하연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고,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을 닦아줬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나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내 부탁을 얘기했다.
“누나, 나도 부탁 하나 해도 돼?”
“뭐든 말해. 다 들어줄게.”
“그 말, 되게 위험한 말인 거 알아? 정말··· 다 들어줄 거야?”
마음에도 없는 음흉한 미소를 띠며 묻자 장하연의 표정이 샐쭉하게 변했다.
“어휴, 진짜! 너, 정말 그렇게 그거 하고 싶어?”
“아니. 내 소원 들어줬으니까 됐어.”
내 말을 듣고 장하연이 눈을 깜빡거렸다.
“응? 내가 뭐했다고?”
“난 말이지, 누나가 우는 것보다 새침하게 삐지는 게 더 좋거든. 그러니까 지금 누나가 내 소원 들어준 거야.”
잠시 멈칫했던 장하연이 피식 웃었다. 장하연은 웃는 얼굴이 가장 예쁘니 내 소원을 완벽하게 들어줬다.
“너란 애는 정말··· 진짜 소원 말해봐.”
“나··· 회사에서 무기한 출장 명령 받았어.”
조금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말하자 장하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기한 출장이라니? 무슨 일 생겼어?”
“그게··· 홍콩에 가 있으래. 해동증권 사람들, 우리 본사에서 일했던 사람들이거든.”
“그런데 왜? 그런 사람들이면 알아서 잘할 거 아냐?”
“사실은··· 우리 회사도 해동증권에 1억 불 맡길 거니까 나한테 그 사람들하고 일하면서 선물옵션 배우고 오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려니 양심이 찔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도자동차 인수에 나설 스탠더드 캐피털과 해동그룹이 손잡을 때를 대비해야 하니까.
“어떡해···.”
서운함과 안타까움이 뒤범벅된 얼굴의 장하연. 나는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적어도 1년은 각오해야 할 거야.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지?”
손을 잡자마자 새빨개진 장하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내년이면 그녀는 서른이 아닌가? 나는 간절함을 담아서 장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서 열심히 노력할게. 성과만 좋으면 일찍 들어올 수 있을 거야.”
장하연이 잠시 흐른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1년이 아니라 10년이라도 기다릴게.”
장하연의 목소리에서 굳은 결심이 느껴졌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속에서 울렁거리는 물결을 참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 입술은 장하연의 입술에 포개졌다.
순식간에 장하연의 눈이 커졌다.
커졌던 그녀의 눈이 감겼고, 나도 내 눈을 감았다.
***
장하연은 가벼운 듯 강렬한 입맞춤을 끝내고 이성민과 헤어졌다. 성의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그녀는 차에 달린 거울을 보며 입술을 매만졌다.
“도둑놈···.”
입에서 튀어나온 말과 달리 장하연의 얼굴은 날아갈 것처럼 행복해보였다.
이성민이 병원에서 눈을 뜨고부터 5년째 만나왔음에도 키스 한 번 못하지 않았나? 그런 장하연이기에 오늘 이성민이 자신에게 찍은 도장이 썩 나쁘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장하연은 곧바로 장호건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두어 시간 만에 다시 돌아온 장하연의 당당한 표정을 보고 직원이 눈을 깜빡거렸다.
“사, 상무님?”
“회장님 계시죠?”
“네··· 그런데 지금은 회의 중이시라서···.”
“급한 일이에요.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일, 해결했다고 알리세요.”
평소와 달리 말을 끊은 장하연의 단호한 지시에 직원은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회장님.”
[회의 중인데 뭐하는 건가?]
장호건의 낮지만 묵직한 질책이 들렸지만 장하연은 직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인터폰에 대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장하연 상무가 회장님께서 시키신 일을 해결했다고 해서···.”
[버, 벌써?]
장호건의 놀란 목소리에 이어 임원들의 술렁이는 목소리까지 들리자 장하연이 인터폰에 대고 대답했다.
“네, 회장님. 방금 전에 해결했습니다.”
[···들어와.]
들어오라는 말을 듣고 직원이 놀란 눈으로 장하연을 바라봤다.
“수고하세요.”
장하연은 직원을 보며 살풋 웃은 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장 상무, 정말 해결한 거냐?”
장호건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을 비쳤지만 장하연은 자신 있게 목소리를 냈다.
“네, 회장님. 지금 바로 이대수 회장님께 확인하셔도 되십니다.”
장하연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이수한을 비롯한 임원들의 눈이 커졌다. 오직 장호건과 이수한만이 그들 사이에서 딸을 보며 슬쩍 미소를 띠었다.
임원들 앞이라 전화를 받을 때 요란을 떨었지만 장하연에게 예물을 챙겨줄 일이니 협조를 안 하겠나? 해동그룹에서.
“알았네.”
장호건은 곧바로 이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호건입니다, 회장님. 네. 제 딸아이가···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리 후한 조건으로 채권을 연장시켜주시다니요! 예!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장호건의 밝은 표정을 보고 임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장호건을 보고 이수한이 얼른 물었다.
“해결된 겁니까, 회장님?”
“연이율 6퍼센트에 20년 뒤에 갚으라더군! 하하하하!”
장호건의 시원시원한 웃음소리에 이수한을 비롯한 임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시중은행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 아닌가?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축하는 무슨! 내가 아니라 장 상무가 고생한 일인데, 하하하하!”
임원들의 빗발치는 축하 인사에 손을 내저었지만 오늘만큼은 장호건도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늘 아픈 손가락이지만 집안과 그룹을 위해 애쓰는 큰딸이 만루 홈런을 날리지 않았나? 겨우 두어 시간 만에!
한참동안 껄껄 웃던 장호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하연에게 다가갔다.
“고생했다. 정말 고생했어! 하하하하!”
장호건은 파안대소하며 이수한을 비롯한 임원들이 보란 듯이 딸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장하연 또한 그런 임원들이 보란 듯이 장호건에게 고개를 숙였다.
“별 일 아니었습니다, 회장님.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임원들은 장하연의 말을 듣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삼청동 짠돌이 영감’ 이대수를 상대로 3천억 원의 빚을 후한 조건으로 연기한 게 별 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임원들 중 유일하게 이수한만이 흐뭇한 표정으로 장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하연도 이수한이 보내는 무언의 칭찬에 미소를 띠었다.
“별 일이 아니라니?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내고도 별 일이 아니면 이 아비는 아도자동차를 꼭 인수해야겠구나? 하하.”
임원들과 달리 껄껄 웃던 장호건의 입에서 웃음이 잦아들었다. 이 자리에 있는 핵심 임원들도 장하연을 인정하는 지금이 기회였다.
“이번 인수전 끝나면 고려호텔과 신성물산을 합병하겠네. 합병 후 기존 고려호텔 사업에 신성물산 리조트 사업, 골프장, SH자산개발 지분까지 묶어서 자회사로 내릴 거고 그 다음에. 그 회사 주식 100퍼센트를 장하연 상무에게 넘길 걸세. 어떤가?”
장하연에 대한 상속선언을 떳떳하게 해서일까 장호건의 얼굴은 후련하고 홀가분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