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33rd. 겨울과 봄, 시작과 끝의 경계선에서 (3)
스탠더드 캐피털 뉴욕 본사.
아침부터 민주형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물고 있었다.
“휴우···.”
입 안에서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던 민주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맞은편 책상에 앉아있던 주승빈은 그 모습을 보고 마시던 커피를 내려놨다.
“왜 그러십니까, 차장님?”
“벌써 12월이다. 우리가 여기 온 게 언제냐?”
민주형의 우울해 보이는 얼굴을 보고 주승빈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요. 대표님 성격이면 벌써 부르셨을 텐데···.”
“그렇지? 그런데 우리가 여기 와서 업무에 투입된 게 작년 9월이다. 벌써 1년하고도 3개월째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시간만큼이나 실력도 쌓였지. 월가는 몰라도 한국에서 우리 이길 놈은 손에 꼽힐 걸?”
민주형의 심드렁하게 던진 말에 주승빈이 미소를 띤 얼굴을 끄덕였다. 스탠더드 캐피털에서 혹독하게 단련됐기에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주승빈뿐만 아니라 함께 온 다른 이들도 미소를 짓거나 기분 좋은 코웃음을 흘렸다.
“슬슬 돌아가서 여의도 좀 흔들어봤으면 좋겠는데··· 언제 불러주시려나, 쩝.”
“그러게 말입니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다른 놈들 콧대를 눌러주고 싶은데 말이죠.”
“그러게 말이다. 앙-.”
입맛을 다시던 민주형은 주승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쩍 벌린 입에 샌드위치를 깊숙이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샌드위치가 반으로 줄어든 걸 보고 주승빈의 눈이 커졌다. 민주형은 입 안 가득 베어 문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면서도 마우스와 키보드를 부지런히 만지작거리며 주식을 거래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밤 8시가 되었고, 민주형과 주승빈 등해동증권 20인은 컴퓨터를 끄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서류들을 정리하던 그들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찰리! 제이슨!”
민주형과 주승빈이 클레어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보스.”
“정리하는 대로 다들 회의실로 와요. 지금 바로요.”
스무 명의 눈이 반짝거렸다. 클레어의 지시에서 묻어나는 뉘앙스가 자신들이 학수고대하던 일이 아닐까 해서였다.
그들은 부지런히 자리를 정리하고 맨 위층에 있는 회의실에 들어갔다. 스무 명의 동양남성들이 자리에 앉자 상석에 있던 클레어가 입을 열었다.
“오늘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일단, 비밀유지각서에 서명부터 하시죠.”
자리에 앉은 이들은 각자의 앞에 놓여있는 각서에 서명한 뒤, 옆으로 넘겨서 클레어에게 전달했다.
“말씀하십시오, 보스.”
“여러분들의 고향집인 해동그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돌아와서 시작하자고 하더군요. 해동증권.”
모두들 애써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흥분을 숨기지는 못했다.
아무리 스탠더드 캐피털 식구들이 잘해줬다고 해도 사람이란 고향을 그리워하는 동물이고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를 택하는 존재가 아닌가? 클레어는 그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많이들 그리웠나 보네요.”
“아닙니다, 보스.”
“괜찮습니다, 보스.”
민주형과 주승빈이 얼른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숙였지만 클레어의 얼굴에는 언짢은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이들 또한 자신의 친구인 ‘존 데이비슨 리’를 도와줄 사람들이 아닌가?
“그간 사업 확장 때문에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다는 조니와 미스터 조의 사과가 있었습니다.”
“조니라뇨, 보스?”
민주형은 조니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미스터 조는 조영찬이겠지만 조니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클레어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민망한 미소를 띠었다.
“이대수 회장님의 장손인 이성민 이사입니다. 우리 스탠더드 캐피털에서 가장 중요한 인재죠.”
“네?”
민주형은 물론이고 주승빈이나 다른 남자들도 입이 벌어졌다. 자신들의 그룹 총수가 아끼는 장손이 스탠더드 캐피털의 핵심 인물이라니? 이곳에 와서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조니는 우리 회사 최고의 인재입니다. 멕시코 페소 투기부터 엔고투기 등 우리 회사에 중요한 건들을 설계했으니까요. 지금 한 말 역시 비밀유지각서에 포함된 내용이니 외부에 발설하지 마세요.”
스무 명의 남자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어린놈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상대로 수백억 달러를 털어먹은 프로젝트를 설계했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사실입니까, 보스?”
민주형의 질문에 클레어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찰리. 조니의 직감은 당신만큼 날카로울 겁니다.”
대답을 돌려받은 민주형은 자신의 바로 밑이자 콤비인 주승빈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을 받고 주승빈도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럼 리스크 관리 능력은···.”
“제이슨 당신만큼 출중하죠. 조니가 해동종금의 최대주주가 되고나서 CMA를 통해 미국증시에 간접투자 한 이유를 잘 생각해보세요. 한국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까지 고려해서요.”
클레어가 낸 문제를 받고 주승빈이 곧바로 답을 냈다.
“한국 정치권이나 다른 그룹들의 견제 때문입니까?”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니까요. 그 아이디어는 조니의 아이디어입니다. 내가 보증하죠.”
클레어의 단언에 스무 명의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의 해동그룹은 덩치가 작았다. 기존 정재계의 견제를 피하면서 해동종금을 키우려면 간접투자가 답이었다.
그런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할 수 있는 건 총수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이성민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해동증권에 끌어들이고 이곳으로 보내준 장본인이 아닌가?
“돌아가시면 여러분들이 떠나기 전보다 훨씬 커진 해동그룹이 여러분들을 반겨줄 겁니다. 잠시나마 스탠더드의 식구였다는 것을 잊지 말고 열심히, 잘 하세요.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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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의 주문에 대한 대답을 끝으로 회사를 나온 민주형과 주승빈 등은 펍에서 술을 마셨다.
“너희들, 스톡옵션 어떻게 생각하냐?”
술을 마시던 민주형의 질문에 주승빈이 꺼림칙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그땐 어린놈이 까분다고 생각해서 철판 깔고 받았는데 오늘 보스한테 들은 얘기를 생각하면··· 휴우···.”
주승빈은 이성민이 그런 능력자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두 건의 환투기를 설계한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일인데 그 뒤에 ‘등’이라는 글자가 붙을 정도면 얼마나 대단하며 얼마나 눈이 높다는 소리인가?
“쥐약이었어, 젠장.”
민주형이 푸념하듯 맥주를 들이켰고, 다른 이들도 한숨을 내쉬며 맥주를 마셨다. 그럼에도 눈빛이 단단해진 걸 보면 다들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
나와 조영찬은 소파에 앉아서 직원이 가져온 밀크티 한 모금을 마시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는 무슨. 나도 그 친구들 언제 부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이사가 먼저 꺼내줘서 고맙네, 하하.”
조영찬은 20분 전에 회사로 찾아온 내 부탁을 받고 클레어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내용은 민주형과 주승빈 등을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껄껄 웃으며 밀크티를 마시던 조영찬이 입을 열었다.
“우리 둘 다 서로 아귀가 맞아떨어져서 처리했네만 그 친구들을 전부 홍콩 지점으로 보내는 연유가 뭔가?”
“본사에서 전해준 정보인데 내년이면 중국 본토 기업들이 홍콩 증시에 상장될 거라고 합니다. 조만간 홍콩 증시가 뜰 테고, 당연히 항셍지수도 오를 겁니다.”
“그럼··· 항셍지수 선물에서 판을 돌리려는 건가?”
역시나 조영찬은 예리했다. CMA를 S&P 500 위주로 투자하자고 할 때도 보여줬던 그의 촉이나 지식은 얼치기 종금사 사장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네. 그걸 노리고 한 건 아니지만 때가 맞아떨어졌으니 항셍지수 선물에 투자했으면 합니다.”
내 의견을 듣고 조영찬이 가벼운 침음성을 흘렸다.
“자네, 내년에 더 심각한 문제가 터질 거라고 보는 건가?”
“네. 백부님께 들었지만 장호민 부회장이 한고그룹 주채권 은행의 은행장들이나 여당 정치인들과 회동이 잦다고 들었습니다. 한고그룹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한고그룹이 무너지면 거기서 끝날 문제가 아니건만···.”
조영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눈앞만 바라보고 일을 처리하는 정재계의 높으신 분들의 경멸이 가득했다.
“연쇄부도가 시작되겠죠. 홍콩에서 선물을 굴리려는 건 그 뒤를 대비하기 위해서고요. 가능하다면 선물뿐만 아니라 옵션거래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홍콩에서 최대한 땡겨 오겠다는 건가? 그 친구들 시켜서?”
“네. 얼마나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1달러라도 더 긁어올 생각입니다.”
절대 실수는 없다. 나비효과를 주의해야겠지만 ‘홍콩 프로젝트’까지 성공하면 해동그룹은 IMF 이후에 새로 짜일 판을 리드하는 데 필요한 카드를 전부 손에 넣는다.
큰 그림을 알려주자 조영찬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짚어줬다.
“홍콩에서 굴릴 자금은 어떡할 건가?”
“일단, 1억 1천만 불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증권에서 5천만 불, 물산과 종금에서 3천만 불씩 분담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일단’이라는 말에 조영찬의 눈이 커졌다. 지금껏 집안과 그룹에 벌어다 준 돈에 비하면 적은 규모지만 액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 것 같았다.
“알겠네. 자금 문제는 회장님이나 고 실장, 형님들과 의논해서 처리해줌세. ‘일단’이라는 단어는 빼고 말이야.”
역시 나와 손발이 척척 맞는 양반이다. 나는 조영찬과 악동 같은 미소를 띠며 모닝 밀크티를 깨끗이 비웠다.
***
클레어에게서 통보를 받은 민주형과 주승빈 등 스무 명은 인수인계와 송별회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며칠 뒤, 나와 조영찬, 박태진은 이들을 위해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다들 애썼네! 먼 곳에서 배우고 오느라 고생했어!”
“아닙니다, 대표님! 대표님과 이사님 덕분에 귀한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하하!”
“민 차장님 말이 맞습니다, 대표님. 돈 주고도 얻지 못할 귀중한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하하.”
민주형의 호탕한 웃음이든 주승빈의 점잖은 웃음이든 두 사람을 비롯한 스무 명의 해동증권 멤버들 모두 만족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했습니다, 여러분! 맘껏 드세요!”
“네, 이사님!”
스무 명의 남자들이 큰소리로 대답했고, 나는 조영찬에게 조용히 말했다.
“대표님, 건배 제안 한 번 하시고···.”
“응··· 그래··· 그렇게 해야겠구먼.”
조용히 대답한 조영찬이 글라스를 들었다.
“자, 다들 잔들 채우게! 오늘처럼 좋은 날이 없네그려!”
조영찬의 호쾌한 외침에 모두들 글라스에 새 맥주를 채우고 높이 들었다.
“해동증권을!”
“위하여!”
쨍쨍!
가볍게 글라스를 부딪친 모두들 맥주를 단숨에 비웠다.
“크으! 좋구먼! 자네들하고 노니까 나도 회춘하는 것 같아서 참으로 좋아! 으하하!”
“하하하하!”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웃음꽃이 잦아들었고 조영찬이 파이프 담배를 꺼내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한 대씩 태우면서 얘기하지.”
“예, 대표님.”
조영찬이 파이프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들이켜는 사이, 민주형이나 주승빈 등의 남자들도 담배 한 대씩을 입에 물고 고개를 돌려 불을 붙였다. 무슨 타박콜레기움(Tabakskollegium)도 아니고···.
담배 한 모금씩을 내뱉자 방 안이 너구리굴이 되었고, 나는 조영찬, 박태진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사인을 주고받은 조영찬이 박태진을 불렀다.
“박 이사.”
“네, 대표님.”
“우리가 준비한 거, 이 친구들한테 돌리게.”
“예.”
박태진은 곧바로 재떨이에 담뱃불씨를 눌러 끈 뒤, 한쪽에 놔뒀던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양쪽 상석에 있던 민주형과 주승빈에게 열 부씩 나눠서 건네줬다.
민주형과 주승빈은 각자가 받은 서류들을 각자의 이름이 적힌 것만 남기고 옆으로 넘겼고, 다른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보면 나오겠지만 자네들 직급과 업무가 적혀있네. 민주형 차장, 주승빈 과장.”
조영찬의 부름에 두 사람이 재깍 대답했다.
“예, 대표님.”
“민 차장은 이사, 주 과장은 부장이네.”
“감사합니다, 대표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두 사람이 조영찬을 향해 큰소리로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머지 멤버들도 한 계급씩 승진할 걸세. 지금은 조직이 작아서 현재 인원을 유지해야겠지만 앞으로 신참들이 들어오고 자네들 성과도 받쳐주면 계속 올려줌세.”
조영찬의 웃는 얼굴을 보며 나머지 열여덟 명도 큰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자자, 인사는 그만하지. 중요한 건 지금부터일세. 다들 서류부터 보고 얘기하지.”
조영찬의 권유에 모두들 서류 표지를 뒤로 넘기고 내용을 살펴봤다. 그들 중 가장 빠른 반응은 민주형과 주승빈에게서 나왔다.
“대표님?”
“이사님?”
둘의 뒤를 이어 서류를 보다 말고 고개를 들어 나와 조영찬을 바라봤다. 점점 얼굴이 상기되는 그들에게 이 자리의 연장자로서 조영찬이 말했다.
“나와 이 이사는 절대로 지금에 안주할 생각이 없네. 아쉬운 소리까지 해가면서 내 자식 같은 자네들 밖에서 공부시켰는데 녹슬게 둘 수는 없잖나? 그러니.”
조영찬이 말을 끊고 파이프 담배를 뒤집어 재떨이에 털었다. 마치 판사가 봉을 두드리듯 파이프를 두들겨 담뱃재를 다 털어낸 뒤에야 조영찬이 말했다.
“다들 며칠 쉬었다 홍콩으로 넘어가게. 거기서 나하고 이 이사가 부를 때까지 실력발휘 좀 해봐. 알았나?”
조영찬의 지시에 모두들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자본주의의 정글인 뉴욕에서 타잔처럼 날아다니던 그들에겐 좁은 무대일지 몰라도 홍콩 또한 세계적인 금융시장이다. 모두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상석에 앉은 나와 조영찬, 박태진을 보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 대표님!”
“시원시원해서 좋구먼. 나와 이 이사, 박 이사는 큰 줄기만 잡았네. 세세한 건 자네들이 직접 현장에서 판단하고 실행해보게.”
홍콩에서는 저들이 실력을 발휘하게 만들고자 우리 셋은 보고서에 큰 맥만 짚어 놨다. 회사가 커질수록, 계열사들이 늘어날수록 내가 모든 걸 컨트롤하기 어려우니 이번 기회에 옥석을 가려내야 했다.
상기된 그들의 얼굴을 보며 흐뭇해하던 조영찬이 내게 눈짓을 줬다. 나는 그의 눈짓을 받고 민주형, 주승빈 등에게 말했다.
“이번에 추진할 프로젝트는 해동증권을 중심으로 해동물산과 해동종금이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절대 망할 수 없는 프로젝트이니 스톡옵션은 지금 쓰시길 바랍니다.”
강요나 마찬가지지만 클레어를 통해 귀띔을 받았다면 이들은 내 실력을 믿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이들에게도 하늘같은 클레어가 나를 신임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세요.”
손을 들고 허락을 구한 민주형이 입을 열었다.
“저희들 스톡옵션을 반으로 줄이겠습니다.”
‘이럴 수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와 조영찬, 박태진이 크게 뜬 눈으로 민주형을 바라봤다. 자기들 복을 자기들 발로 차겠다니?
의아해 하는 우리를 보며 주승빈도 입을 열었다.
“저희들 모두 합의해서 결정한 일입니다. 스톡옵션, 절반만 받겠습니다. 이사님.”
“그렇습니다, 이사님.”
“절반만 받아도 충분합니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자진삭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그들에게 물었다.
“왜죠? 여러분들도 키워갈 회사라서 드린 건데?”
“저희에게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사님.”
“그렇습니다, 이사님. 이사님이 그런 분이신 줄도 모르고 저희들 욕심이 지나쳤습니다.”
민주형과 주승빈 외에도 다른 이들에게서 비슷한 대답을 듣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클레어 통해서 적당히 흘린 게 쇼크가 컸나보네. 스톡옵션 주고 미국 연수 시켜준 거, 말짱 꽝 되겠는데?’
내가 이들에게 스톡옵션을 1퍼센트씩 주고 미국 연수까지 시켜 준 건 해동증권의 경영전반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를 믿게 하려고 한 일이 이들을 주눅 들게 했다니···.’
클레어를 통해 나에 대해 흘린 게 사족이 된 것 같았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나는 굳은 표정으로 민주형과 주승빈 등을 뚫어지게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