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33rd. 겨울과 봄, 시작과 끝의 경계선에서 (2)
마른침을 삼키던 그 순간,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집에··· 안 갈래.”
오. 마이. 갓!!!
헛것을 들었나 싶었다. ‘나 오늘 집에 안 갈래’라니!
머릿속에서 한 여자 가수의 노래가 맴도는 가운데 장하연이 멍한 내 얼굴을 새초롬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나, 오늘 집에‘만’! 안 갈 거야. 다른 건 꿈도 꾸지 마?”
“아하하하···.”
유난히도 ‘만’을 강조하는 장하연을 보며 정신을 차린 나는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알맹이는 오십대 중반이나 된 놈이 주책 떠는 꼴이라니. 젠장.
웃음을 흘리던 나는 장하연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 다른 호텔 잡고 캔 맥주나 마실까?”
“좋아. 다른 건 절대 안 돼?”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장하연을 보니 누가 보면 내가 그녀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나, 그런 놈 아닌데.
***
선글라스에 목도리로 얼굴을 숨긴 우리는 고려호텔이 아닌 다른 호텔에 들어갔다. 우리는 데스크에서 키를 받자마자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들어갔다.
“휴우-.”
나와 장하연은 선글라스와 목도리를 풀어서 협탁에 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사귄다는 걸 장호건이 알고 있어도 재벌 후계자들의 연애는 파파라치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그 바람에 이렇게 꽁꽁 싸매고 다른 호텔에 온 것이었다.
“누나, 아저씨한테 전화부터 넣자.”
“응?”
“아저씨가 누나 아끼는 거, 아는 사람들은 다 알잖아. 누나 어머님 쪽 사람들도 그렇고.”
“아···.”
나지막이 탄성을 흘리던 그녀가 얼른 전화를 걸었다.
“네, 아버지. 주변에 아무도 없죠? 네.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백화점 컨설팅 때도 캠코더 녹화 뜬 게 괜한 게 아니었네.’
돌려서 말했는데도 장하연은 황 씨 가문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던 장하연이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저, 오늘 성민이하고 있다가 내일 바로 회사에 출근할게요. 옷이요? 사무실에 있는 여벌옷, 대표님께 갖다달라고 부탁드리려고요. 네. 네.”
두 부녀의 통화를 듣던 나는 입이 벌어졌다. 외박했다는 사실이 고려호텔 내부에 퍼질 것을 우려한 장호건이나, 대비책을 짜낸 장하연이나 조심성 하나는 끝내줬다.
통화를 마친 뒤, 장하연이 살풋 미소를 띠었다.
“문제는 다 해결됐고··· 2차 시작할까?”
“콜.”
대답을 한 나는 미니바에 있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 두 캔과 육포 봉투를 가지고 와서 장하연이 세팅한 탁자에 올려놨다.
휴지로 캔 입구를 닦고 치익 소리와 함께 뚜껑을 따서 장하연에게 건네준 뒤, 내가 마실 맥주를 따고 캔을 쥔 손을 내밀었다.
“건배!”
가볍게 깡 소리를 내며 캔 끝을 부딪친 우리는 맥주를 들이켰다.
“후우-! 우리 이렇게 마시는 거 처음이지?”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며 숨을 가볍게 내쉰 장하연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끔씩 포장마차도 가고 치킨집도 갔는데···.
장하연은 새초롬한 눈빛으로 나를 곱게 흘겨봤다.
“이런 데서 마시는 거 말이야.”
“아···.”
나는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그녀를 바라봤다. 나나 장하연이나 호텔방을 빌려서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앞으로는 종종 이런 데서 봤으면 좋겠어. 우리 둘이서만 있는 곳에서 술 마시면 편할 것 같거든.”
“콜. 나도 이제는 자리 잡았으니까 태진이 형도 크게 터치 안 할 거야.”
이렇게 종종 만나기로 약속한 우리는 캔 맥주를 비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땐 많이 오글거렸지?”
“언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던 장하연에게 조금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영원히 체포되겠다고 한 거.”
꿈속에서 그 날 그 장면이 나오면 이불킥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뭔가 멋진 멘트를 날리고 싶었는데 이런 쪽으로는 순 젬병이니, 젠장.
“음··· 조금? 후훗.”
뻘쭘해하는 나를 보며 장하연이 엄지와 검지를 살짝 벌린 손을 들어보였다. 어색하게 미소를 띤 나를 보며 장하연이 말했다.
“그런 건 상관없어. 너 볼 때마다 나 보는 것 같았거든.”
“무슨 소리야, 누나?”
취기가 살짝 올라온 장하연의 말에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장하연도 쑥맥이었나 싶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린 둘 다 원하던 거 포기하고 이 길 가고 있잖아.”
“아···.”
대답을 듣고서야 나는 나지막이 탄성을 흘렸다.
나는 역사학자, 장하연은 예술가를 포기하고 재벌가 후계자라는 숙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나. 나는 쓴웃음을 머금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렇지, 뭐. 누나는 이 길 들어온 거, 후회해?”
“아니. 만족하고 있어. 예술은 계속 할 수 있으니까. 너는?”
“나도 만족해. 내가 역사를 쓰고 있으니까.”
지금의 나는 처음과 달라졌다.
복수에 한이 맺혔고, 순수함마저 옅어졌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 때문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장하연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그녀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지금도 쓰고 있으니까.
“그런데 너, 전에 말했던 꿈 기억해?”
“회장 자리 관심 없다는 거?”
장하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물었다.
“그거, 아저씨 때문이야?”
“응?”
“아버지한테 들었어. 아저씨, 경영학 교수 되고 싶었다고.”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경영학 교수가 되고 싶어 했다니?
“진짜?”
목소리 끝이 높아지자 장하연의 눈이 커졌다.
“···몰랐어?”
“응···.”
나는 잘 모르던 아버지에 대한 퍼즐을 또 한 조각 선물 받았다. 나창석과 회식할 때 들었던 아버지 이야기도 신기했는데···.
“그랬구나.”
“응··· 고마워, 누나.”
그렇게 우리는 아버지와 장호건의 이야기에 이어서 두 사람의 자식들답게 앞으로의 미래, 그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래서 그렇게 달러를 모으는 거였구나?”
“어쩔 수 없지, 뭐. 언제 시작할지는 몰라도 호주나 파나마에서는 우리 쪽 재무구조를 많이 따지고 있으니까.”
맥주를 마시며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해동그룹 계열사들이 내년 외환위기에 대비해서 달러를 끌어 모으는 걸 알려줄 수는 없었다.
해동그룹의 준비는 완벽 그 자체.
세 원로 대표이사와 이명진의 지휘 하에 해외공사 수주나 수출에 공격적으로 나서서 달러를 모으고 원화 비중을 줄이며 그룹 임직원들의 예금까지 해동종금에 최대한 끌어 모으는 등 외환위기 대비의 최종단계에 돌입했다.
그렇다면 고승주는 놀고만 있냐고? 천만에.
고승주는 조영찬과 함께 그룹 전체의 자금흐름을 조율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지시로 명동 쩐주들에게 시켜서 재력가들이 꽁꽁 숨겨둔 달러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킨 나는 장하연에게 물었다.
“누나네 회사는 어때? 다음 달이면 고려호텔 강남점 오픈하잖아. 이터널스퀘어 들어갈 공사도 해야 할 테고.”
“알면서 묻기는? 그보다는··· 장수연, 안 궁금해?”
나는 나를 은근히 떠보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별로. 난 지금 누나바라기인데 다른 해를 볼 이유가 있겠어? 궁금할 것도 없어.”
“으휴, 닭살.”
나는 장하연이 손으로 팔뚝을 문지르는 걸 보며 웃었지만 장수연에 대한 소식은 할아버지 정보통을 통해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박무진이나 장호건이나 자식들 때문에 골 아프게 됐더구나, 으허허.]
처음 들었을 땐 의외였지만 할아버지 비웃음대로 유유상종이다 싶었다. 장수연, 박남준 모두 전생에도 대한민국 상류층 내에서 손꼽히게 발정 난 연놈들이었으니 오죽할까?
그 뒤로도 나는 범 신성 가문의 이야기를 그녀에게서 들었다.
“할아버님 제삿상에서 그런 얘길 했다고?”
“그렇다니까? 아버지가 너 얘기하면서 고모님 얼마나 약 올렸다구.”
장하연은 말하는 것만으로도 고소해했고, 나 또한 웃음만 나왔다.
현금 동원력이 빵빵한 신세기그룹이라도 해동그룹에 비하면 비웃음거리도 안 된다. 아이디어까지 앞서는 우리가 유통업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게 당연했지만 장호건, 장호경, 장호민이 얼마나 남보다 못한 사이인지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처숙부님은?”
“숙부님은 조용히 술만 올리고 가셨는데, 아버지나 고모님이 처숙부님을 제일 경계하던 게 뭔가 이상했어.”
두 사람이 장호민을 경계했다면 우리 측에서 수집하는 정보가 맞을 터. 조용히 현금을 모으면서도 한고그룹의 주채권은행 은행장들이나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한다고 하니 한고제철 인수전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던 중 장하연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침구류가 전부 갖춰진 호텔방에서 술을 마셔서인지, 나를 믿어서인지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침대의 이불을 한쪽으로 걷은 뒤, 장하연을 들어 안아서 뉘여 주고 이불을 덮어줬다.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자는 모습을 보니 천사가 잠을 자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준 나는 창밖으로 걸어갔다. 눈밖에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음 달이면 1997년··· 슬슬 데려와야겠군.”
스탠더드 캐피털 본사에서 벼려진 창과 단단해진 방패를 말이다.
***
이성민, 장하연 커플이 둘만의 첫 외박을 하며 토요일 아침 하늘을 맞고 있을 때, 장호민은 회의실에서 임원들과 함께 한고제철 인수합병 최종 검토에 여념이 없었다.
“자금은 준비됐고··· 은행장 노친네들에 금뱃지들만 움직이면 끝이군.”
“예, 부회장님. 정치꾼들이 정택주 손 놓고 은행에서 어음을 돌리면 한고그룹은 내일이라도 도산할 겁니다, 흐흐.”
“청와대도 손 쓸 방법이 없을 겁니다. 레임덕이 시작됐는데도 안기부법과 노동법 개정 통과에 정신이 없으니까요. 두 번 다시 안 올 기회입니다, 부회장님.”
장호민과 임원들은 하나같이 음침하게 웃고 있었다.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던가? 한고제철을 집어삼킬 날을.
이 날이 오기만 기다리며 금융권과 기관투자자, 여의도 정치인들과 광화문의 고위 관료들까지 구워삶은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다.
만면에 미소를 띠던 장호민이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야. 무조건 돈값하게 만들어.”
“네, 부회장님!”
언제든 말 바꾸는 놈들이 정치꾼들이고 은행장들이다. 정치권과 은행권에서 정택주와 한고그룹의 목을 치기 전까지 절대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임원들과 함께 한고제철 인수합병계획을 검토하던 장호민은 점심이 되자 명동의 한 고급 일식집으로 갔다.
직원이 열어준 문을 넘어 장호민이 방으로 들어갔고, 미리 와서 식전차를 마시고 있던 은행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장 부회장님?”
“식전차는 잘 드셨습니까? 하하.”
장호민이 특유의 허허실실한 표정으로 웃으며 자리에 앉았고, 곧바로 상이 세팅됐다. 높으신 분들이 그렇듯 그들은 골프 이야기나 자식들 유학 이야기 등을 하며 회의 쫀득쫀득한 식감을 즐겼다.
“이거, 회가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부회장님께서 사주시는 건데 입에 안 맞을 리가요, 허허.”
껄껄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 제일은행 은행장을 보며 장호민이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회는 쫀득쫀득한데 은행장님들 사정은 팍팍하실 것 같아서 말이죠.”
싸늘한 목소리가 비수처럼 꽂혔는지 은행장들의 표정이 굳었다. 장호민은 술잔을 비운 뒤, 주전자를 들어 술을 채우며 말했다.
“요즘 은행장님들 사정이 말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한고그룹 어음 지급이 계속 밀린다면서요?”
주전자를 내려놓은 장호민의 귀에는 은행장들의 침음성만 들리고 있었다. 이들 모두 한고제철, 한고건설 등 한고그룹에 어음과 대출이 적게는 6천억, 많게는 1조 이상 물린 자들이 아닌가?
“한고제철, 1조 원이면 제철소 짓는다고 큰소리 떵떵 치더니 5조가 넘게 퍼먹고도 고로 하나 못 올렸습니다. 그런데도 정택주 일가는 끝도 없이 돈 달라며 징징거리고 있고요.”
장호민의 얼굴에 드러난 한심함과 경멸은 그 정택주 일가를 향한 것이었다. 은행장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 중 한 명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도 지금 미치겠습니다. 한고제철에 물린 채권에 어음이 원화 4조 5천억에 달러 대출은 12억 불이나 돼요.”
“제철만 문제 있는 게 아닙니다. 한고건설도 유동현금이 한 푼도 없다고 우리 쪽 임원이 그쪽 사람한테 들었습니다.”
“정택주 그 영감 고집통에 우리만 죽어나게 생겼습니다. 소통령과 금뱃지들만 아니었으면 벌써 걷어치웠을 텐데···.”
정택주 일가와 한고그룹을 성토하고 술을 들이켜는 은행장들을 보며 장호민이 미소를 띠었다.
“여러분들이 지금 비운 술잔처럼 한고그룹은 현찰 한 푼 없습니다. 그렇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은행장들 중 한 명이 장호민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래서,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장호민 부회장님?”
다른 은행장들도 장호민을 쏘아봤다. 모두의 날카로운 시선이 집중됐지만 장호민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은행장님들을 놀리려는 게 아닙니다. 술부터 받으시죠.”
장호민은 은행장들을 달랜 뒤, 주전자를 들어 은행장들의 빈 잔에 술을 채워줬다. 지금껏 그가 가득가득 따라주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술이 반절씩만 채워졌다.
은행장들은 그 잔을 보고는 그대로 장호민을 노려봤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대신한 메시지가 아닌가? 한고제철을 인수하면 많아봐야 부채의 반절까지만 떠안겠다는 메시지 말이다.
“어차피 한고제철을 가져갈 회사는 없습니다. 우리 형님은 반도체에 정신 팔렸고, 자동차에 영등포 재개발까지 하느라 정신없습니다. 태현은 하동에 제철소를 짓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겠죠.”
장호민의 확인사살이 시작되자 외환은행 은행장이 서둘러서 반격에 나섰다.
“그래도 GK는···.”
“GK정유 지분 거둬오느라 엔고투기 때 벌어온 달러 다 썼습니다. 그리고 오 씨 가문과 해 씨 가문 성격 상 제철소처럼 거친 일이 맞을까요? 계열분리도 준비하는 것 같은데?”
“해동도 있습니다, 장 부회장님. 해동물산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공사 수주로 쌓아둔 달러에 국내공사에서 입금된 원화도 만만치 않아요. 다른 계열사들도 건실하고요.”
뒤이어 들어온 조흥은행 은행장의 반발에도 장호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해동그룹이야 해외광산 개발에 눈 돌아갔는데 제철소 인수할 여유가 있을는지··· 이대수 회장님이 텅 빈 깡통 같은 한고그룹을 거들떠볼지나 모르겠습니다, 하하.”
자신들이 내밀 카드가 모두 바닥난 은행장들은 입을 다문 채 끙-하는 소리만 내며 장호민을 바라봤다.
“제가 채워드린 술잔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고제철에 물린 여러분들 은행의 채권은 최대한 해결해드리죠. 정치권과의 협상도 마무리됐으니 공적자금도 지원될 겁니다.”
공적자금이라는 말에 은행장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부에서 국민들 돈으로 은행의 부실 상당부분을 메워주면 어느 정도 손실은 감내할 수 있었다.
장호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 노친네들의 가장 큰 약점을 끄집어냈다.
“여러분들 모두 돌아가신 제 부친께서 밀어주고 끌어준 분들이시죠. 그만큼 드러내기 싫은 일도 많으실 테고요. 아닙니까?”
은행장들은 장호민이 손을 펼쳐 가리킨, 반절만 채워진 술잔을 바라보며 마른침만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