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33rd. 겨울과 봄, 시작과 끝의 경계선에서 (1)
박태진은 지금 그룹에서 임원들에게 내주는 승용차를 몰고 하이마트 은평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1997년까지 얼마 안 남은 1996년 12월의 길거리는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중간에 일식집에 들러서 미리 주문해 둔 초밥 20인 분을 차에 싣고 다시 길을 달리던 박태진의 눈에 ‘하이마트’라고 적힌 대형 간판이 걸린 은평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할수록 참···.”
박태진은 말끝을 흐리면서도 미소를 띠었다.
해동그룹보다 작은 재벌도 그룹의 이름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 그런 재벌들에게 건물에 내걸 간판만큼 좋은 홍보수단도 없다.
그런데 이성민은 끝없는 확장, 정확히는 그로 인해 쏠릴 질시를 고려해서 간판을 바꾸자고 했다. 박태진은 그 치밀함에 감탄하는 건 둘째 치고 얼마나 그룹을 키우려고 저렇게 간판을 바꾸자고 했을지 궁금했다.
“4년간 한 것만으로도 엄청나지만··· 후후.”
나지막이 웃던 박태진의 얼굴에 흐뭇함이 드러났다.
병원에서 눈 뜨고부터 지금껏 하루도 안 거르고 개인사부터 집안과 그룹, 스탠더드 캐피털까지 관리하는 이성민이 아닌가?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지금껏 보여준 게 이 정도라면 그 끝이 어디일지는 박태진도 짐작할 수 없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운 그는 뒷좌석에 실어둔 대형봉투들을 양손 가득 들고 하이마트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례합니다.”
박태진이 사무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최선임인 나창석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왔어, 박 이사?”
“곧 있으면 저녁때라서 사왔습니다, 이사님. 오늘도 야근하실 거 아닙니까? 하하.”
박태진의 사람 좋은 미소에 나창석이 겸연쩍은 미소를 띠었다.
“그러게 말이야. 회사가 너무 빨리 커도 문제라니까? 영등포점까지 오픈하면 11호점이니, 하하.”
나창석의 너스레에 박태진이 껄껄 웃었다.
“덕분에 내년부터 상무 명패 쓰시잖습니까? 하하.”
“그러긴 한데··· 쑥스럽구만, 하하.”
나창석은 연말 종업식 때 발표될 인사발령에서 상무로 승진할 예정이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인천, 대전, 전주, 광주, 부산에 총 10개의 점포를 공격적으로 오픈한 만큼 하이마트사업부의 조직 확대를 절감한 그룹 수뇌부의 결정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여기 있는 친구들도 다들 승진하게 됐어. 태 대표님 말씀대로 말뚝 박고 뿌리까지 내려야겠어, 하하.”
껄껄 웃던 나창석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손으로 불러 모았다.
“다들 뭐해? 박 이사가 가져온 거, 빨리 세팅해.”
“네, 이사님.”
남자 직원들이 봉투를 넘겨받고 도시락을 풀어놨고, 여자 직원들이 물통과 종이컵, 식기 세팅을 마치자 모든 사무실 직원들이 모여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지난여름에 호주하고 파나마 다녀왔다고?”
나창석이 초밥 한 점을 삼키고 던진 질문에 박태진도 초밥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소문이 빠르군요. 호주는 배 대표님과 이사님 모시고 다녀왔고, 파나마는 뉴욕법인 김 이사님과 이사님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그 뒤로도 호주와 파나마에서 있었던 일들 중 알려줘도 될 만큼만 박태진이 알려주자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젓가락으로 집은 초밥을 입에 넣다 말고 입을 떡 벌렸다.
“햐아, 어마어마하네. 대체 돈이 얼마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장래를 바라보면 큰 사업이 될 겁니다. 초대 회장님 때부터 숙원이었던 사업이라 회장님이나 부회장님, 대표님들, 실장님께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셨고요.”
나창석은 박태진의 대답에 탄성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겠네. 작년에 카자흐스탄에 투자한··· 카작무스! 카작무스도 내년부터 배당 들어오고, 호주 아연광산도 잘 돌아간다며?”
“네. 이번에 영국 딜로이트 본사에 의뢰해서 실사를 했는데···.”
실사 결과를 듣자 식사를 하던 사람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사, 삼십억 달러? 대체 얼마를 남긴 거야?”
“다섯 배 하고도 반절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이사님께서 미국 오가면서 자료 모아서 정리했고, 회장님께서 그거 보시고 결정하신 일이죠, 하하.”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껄껄 웃는 박태진을 보며 나창석이 혀를 내둘렀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더니··· 회장님이나 이사님이나 차원이 달라. 무서운 분들이야.”
나창석의 너스레에 팀원들이 그를 보며 낄낄 웃었다.
“그러니까 이사님이 하이마트 토대 잡은 거 아닙니까, 이사님?”
“맞습니다, 이사님. 매장도 착실히 늘리고 있고 영업방식이나 실적도 우리가 위에 있으니 내년이면 신세기를 확실히 따돌릴 겁니다, 흐흐.”
직원들의 말대로 하이마트는 SSK마트를 추월하는 해를 내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출점경쟁이든, 판매 방식이든, 매출과 순이익이든 모든 면에서 신세기그룹을 따라잡을 거란 자신감이 모든 직원들의 얼굴에 가득했다.
“나중에 이사님 모시고 와, 박 이사. 오시면 깜짝 놀라실 거야, 하하.”
껄껄 웃는 나창석이 말한 ‘이사님’이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
식사를 마치고 일을 돕던 박태진은 유현정과 함께 퇴근,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태원과 가까운 실내포차에 들어갔다.
“많이 피곤하신 것 같아요, 태진 씨.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현정 씨.”
소주잔을 비우며 서로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
지난 연말부터 두 사람은 하이마트 내에서 공인된 커플이었다. 유현정이야 워낙 싹싹한데다 일솜씨도 좋고, 박태진도 두 말 할 것 없는 완벽남에 ‘회장님’의 아들 같은 최측근이 아닌가?
그런 둘을 하이마트 식구들이 밀어줬으니 적어도 하이마트 내에서 이 커플을 시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유현정의 소주잔을 채워주고 박태진이 술병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현정 씨도 내년이면 차장 진급하죠?”
“네. 그래도 태진 씨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어요. 태진 씨는 벌써 임원이잖아요, 후훗.”
유현정은 살풋 웃으면서도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박태진은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를 띠었다.
소주잔을 가볍게 부딪친 뒤, 유현정이 술잔을 비우고 가볍게 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런데 태진 씨.”
“네, 현정 씨.”
“이사님 모시는 거 안 힘들어요?”
“무슨 말씀입니까?”
“이사님 일하시는 거 보면 저는 모실 엄두도 못 내겠어서요. 백화점에 할인점에 자원개발, 종금까지··· 휴우.”
말끝을 흐리던 유현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전 유통만 6년째 파고 있는데 이사님은 고사하고 태진 씨 눈에 찰지 모르겠어요.”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게··· 우리 사업부는 잘 되고 있어서 대표님께서 좋아하시는데 다른 계열사나 부서들은 다들 난리거든요.”
“난리요?”
“이사님 때문에요.”
유현정의 토로는 과장이 아니었다.
손대는 것마다 성과를 내는 이성민 때문에 그룹의 중역들부터 말단 사원들에 이르기까지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었다. 이는 모두 이대수가 뉴욕 출장을 다녀온 뒤에 일어난 해동그룹 수뇌부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내가 이 이사처럼 호주 아연광산 같은 거 알아오라고 했어, 뭘 했어? 그런 것도 아닌데 기일을 못 맞춰? 에잇!]
[이봐, 이 이사는 백화점, 할인점 돌면서 성과까지 냈어. 매장부지 사들이는 게 그렇게 어려워? 대체 뭐하자는 거야?]
[이 이사하고 내가 미국에 투자해서 벌어오는 돈 까먹으면 어쩌자는 건가? 대출심사 똑바로 한 거 맞나?]
[나도 허리띠 졸라매고 있고, 이 이사도 그룹 키우겠다고 밖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법인카드 펑펑 쓰고 싶습니까? 예?]
배재훈과 태재호, 조영찬, 이명진 등의 그룹 수뇌부들은 이성민을 들먹이며 휘하 임원들을 유례가 없을 만큼 호되게 갈궜다.
총수의 장손, 타 그룹 후계자들과 결이 다른 장손이 비교대상인지라 임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갈굼을 먹어야 했다. 당연히 임원들이 당한 화는 하급 관리자들에게까지 미쳤다.
[이 이사님, 남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우리 회사 일까지 보시는 분이야. 쉴 시간이 어딨어? 내 밑으로 전부 커담 없애고 그 시간에 일 해! 야근수당 챙길 수작은 꿈도 꾸지 마!]
[이 이사님은 그 나이에 우리 백화점 본점 살렸는데 그 매출 나오고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어! 눈에 띄는 성과를 못 내면 일이라도 효율적으로 하던가!]
[엄한 회사에 돈 빌려주면 다들 옷 벗을 줄 알아! 회수 가능한 대출인지, 일을 제대로 하는 회사인지 확실히 파악해!]
[회식비는 손 안 댄다. 비품 낭비, 야근수당, 철저히 줄여!]
누구는 더 출세하기 위해서, 누구는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해고되기 싫어서 치는 몸부림에 해동그룹 곳곳에서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60세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복리후생도 좋고 성과만큼 보상이 주어지길 망정이지 해동그룹 임직원들은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사표 쓸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뉴욕 출장 다녀오고 결정된 일이지만 다들 난리시군. 내년 때문에 다들 연막을 치신다지만 성민이를 기준으로 잡으시다니··· 후후.’
그룹 내 사정을 들려준 뒤, 침울한 표정으로 술잔을 채우는 유현정을 보며 박태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성민과 함께 말석이지만 해동그룹 수뇌부의 일원으로서 왜 이런 난리가 났는지 이유를 알고 있지 않나?
그래도 자신의 여자가 기죽은 모습을 보기 싫었기에 박태진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걱정 말아요, 현정 씨. 이사님, 식구들에게 책임 떠넘기는 분 아닙니다.”
“정말요?”
“하이마트 때 겪으셨잖습니까? 가끔은 내가 배워야 할 때도 있어요.”
박태진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이성민이라는 남자는 자신이 해낼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내고 넘기지, 대번에 못한다며 구성원들에게 떠넘기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내색은 안 해도 박태진은 동생 같고, 조카 같은 아이를 제대로 돕지 못함에 자괴감이 컸었다. 출신이 비천했지만 서울대 경영대와 특전사 장교 출신으로서 어디서도 꿇리지 않을 거라 여기던 자신의 가치에 회의를 느낄 만큼 이성민은 큰 산이 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박태진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 그 결과, 이성민이 자신이 옆에 있어주기를 원하고, 그 속에서 안정을 얻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박태진은 이성민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정했고, 곁을 지키며 필요에 맞게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 박태진의 속도 모르고 유현정의 눈은 어느 새 생기를 되찾았다.
“진짜죠, 태진 씨?”
“약속드립니다, 현정 씨.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지금처럼만 열심히 잘하면 됩니다, 하하.”
껄껄 웃던 박태진은 유현정과 소주를 비웠다. 유현정은 말끔히 비운 잔을 내려놓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태진 씨.”
“네, 현정 씨.”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씨, 씨 붙여서 불러야 해요?”
“무슨 말씀입니까?”
박태진이 눈을 껌뻑거리는 모습을 보고 유현정이 서운한 눈길을 보냈다.
“우리 사귄지 벌써 1년째예요. 게다가 태진 씨, 저보다 나이도 많은데 저 부를 때 현정 씨라고 하는 거 보면 아직도 벽을 친 것 같아요.”
“아···.”
직설적인 말이었지만 유현정도 박태진이라는 사람의 성격을 잘 알기에 1년째 꾹 참다가 토로하는 것이었다. 박태진은 민망한 표정으로 흘리던 탄성을 멈췄다.
“미안합니다, 현정 씨.”
“또! 또! 편하게 해줘요, 태진 씨. 말만 놔줘도 되잖아요?”
유현정이 목소리를 높여도 박태진은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당사자가 편하게 대해주길 원하는데 그걸 거절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 아닌가?
박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현정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자신의 품 안으로 당겼다.
“그럼 오늘부터 다시 1일인 걸로 할까?”
“태, 태진 씨?”
순식간에 돌변한 박태진의 박력 있는 모습에 유현정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박태진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이라는 녀석이 유현정의 얼굴에 찾아들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도 돼?”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박태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현정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사귄지 1년이 되어서야 마음의 벽을 허물고 유현정의 어깨를 토닥여주던 박태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성민이도 잘 하고 있으려나?’
***
박태진과 헤어진 나는 장하연과 저녁을 먹은 뒤, 늘 그랬던 것처럼 이태원의 칵테일 바에 갔다.
“너희 삼촌, 결혼하셨다며?”
술을 마시던 나는 장하연이 툭 던진 질문에 사래가 들렸다. 극비리에 진행한 비밀결혼식인데 어떻게 알고?
“콜록! 콜록!”
“괘, 괜찮아?”
난 얼른 손으로 입을 막고 고개를 돌려서 기침을 했고, 장하연이 내 등을 두들겨줬다. 기침이 잦아들면서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그녀에게 물었다.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버지께서 내무부 쪽 소식 듣고 알려줬어. 네 삼촌이라는 분은 나이도, 국경도 극복했는데 넌 겨우 두 살 더 많은 나 두고 언제 결혼할지 모르겠다고 하셨거든. 난 지금처럼 천천히 가도 좋은데···.”
아아, 미치겠다.
장호건 이 인간, 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거냐? 장하연도 괜찮다는데.
내 결혼은 아무리 빨라도 내년 12월 말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 전까지 장호건에게서 최대한 많이 뜯어내고 결혼해야 장하연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지 않겠나?
나 또한 이런 나 스스로가 비겁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마음에 안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두고 계산기를 두들기는 나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일어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장하연만 바라보며 살기에는 내 복수심을 삭힐 수가 없었다. 장용재는 한 번 물 먹였으니 조금은 분이 풀렸지만 장수연 그 빌어먹을 여편네가 완벽하게 망가지는 꼴까지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내 눈으로 직접 봐야 했다.
‘돌아버리겠다. 사랑과 복수를 둘 다 해결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무의식중에 밀려 올라온 한숨을 내뱉자 장하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안해, 성민아. 나도 아버지가 답답해서···.”
장하연이 자신을 자책했지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놈은 나였다. 나란 새끼는 지금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여자에게 계속 거짓말하는 중이잖나.
때가 때여서인지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본모습을 장하연이 알았을 때 날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
솔직히 두려웠다.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는 장하연이 내가 자신의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그런 나를 지금처럼 사랑해줄 수 있을지 두려웠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짐을 그녀에게 떠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누나. 올해 들어서 할아버지 호출 받고 여기저기 다녀왔잖아. 누나한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었는데 아직도 멀었네.”
멋쩍은 웃음을 흘리는 나를 장하연이 촉촉한 눈으로 바라봤다. 모처럼만에 보는 그녀의 눈빛에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성민아.”
“···응.”
정신연령은 오십대 중반인데 왜 이렇게 주체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 술도 별로 안 마셨는데 입 안이 바싹 말라붙고 얼굴까지 뜨거워지고 있었다.
“나, 오늘···.”
잠시 머뭇거리며 쭈뼛쭈뼛하는 장하연. 그녀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