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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90화 (89/229)

90화. 27th. 잡고 잡히는 발목 (3)

화장실에서 돌아와 일하던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스탠더드 캐피털의 이성민입니다.”

[나다, 성민아. 오늘 정말 고생했다.]

고승주의 목소리였다. 짧지만 굵은 그의 격려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백부님.”

[배 대표님이 너한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 하시더구나, 하하.]

“아닙니다, 백부님. 저도 잘못했으니 괜찮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너희가 가고 나서 중대한 일이 하나 더 결정됐다.]

“중대한 일이요?”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무슨 일이 결정됐기에?

[회장님께서 주식 증여를 결정하셨다.]

“주식 증여요?”

[그래. 그 전에 알려줄 게 있는데 회장님께서 그룹 내 모든 자산을 재평가하기로 하셨어. 카자흐스탄 구리광산과 호주 아연광산 가치도 재평가하기로 하셨고.]

자산 가치 재평가를 하면 기존의 서류 상 자산 가격이 높아진다. 당연히 담보 가치가 올라가니 향후 해외 금융기관에서의 외화 대출도 유리하지만 상속세도 올라간다. 할아버지··· 나를 믿는 걸까, 아니면 통찰력이 좋은 걸까?

“그러셨군요.”

[그 전에 너하고 성문이, 성우, 성아한테 지분을 넘겨주시는 게 좋을 것 같더구나. 그래서 나와 네 숙부가 회장님께 말씀드렸다.]

고승주다운 판단이었다. 정공법으로 상속을 한다고 해도 한 푼이라도 더 아끼는 게 좋지 않겠나? 사촌동생들은 주식 한 주 없어서 늘 마음에 걸렸는데 반가운 소식이었다.

“감사합니다, 백부님. 그런데··· 증여세는 어떻게 처리하기로 하셨나요?”

[연부연납으로 처리할 거다. 이자가 비싸도 한꺼번에 뭉텅이 돈을 버릴 수는 없잖냐, 하하.]

시간은 충분히 벌어뒀다. 상속세 문제야 연부연납 기간 내에 처리할 방법이 있으니 집안 어른들이 장호건을 함정에 밀어 넣는 것만 지켜보면 되겠다.

***

한 달 뒤.

여의도가 선거철을 맞고 있을 때 고승주, 배재훈, 태재호, 조영찬, 이명진은 이른 아침부터 비서실장실 옆 회의실에 모여서 영등포 재개발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사업이면 각 계열사 대표나 고승주 선에서 처리할 수도 있다. 사세를 바꿀 사업이고 장호건을 잡을 덫이기에 이대수에게 결정권을 위임받은 수뇌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는 것이었다.

“어떠십니까, 대표님?”

고승주가 눈치를 살피며 묻자 배재훈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더 볼 것도 없어. 부회장과 태 대표가 틀 잡고, 조 대표하고 자네가 자금계획 짰잖나. 상사 기획실에서도 호주 사업에 투입할 자금이 부족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네.”

이번 일에서 배재훈은 한 다리 건너의 옵저버로서 의견을 내놨다.

지금 그들이 최종점검을 하는 사업은 해동그룹의 엘리트 집단이 한 달 내내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짠 함정이다. 그 함정에 신성물산을 끌어들이면 배재훈은 호주와 파나마에서 모든 사업을 먹고 돈도 벌어올 자신이 있었다.

배재훈의 말을 듣고 조영찬이 콧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자금은 걱정 안 하셔도 되십니다, 형님. 합작법인의 현금을 해동종금에 예치시켜서 굴리면 수익이 꽤 짭짤할 겁니다. 광산 사업은 고 실장과 제가 확실히 뒷받침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후방보급은 걱정 말라는 조영찬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고 태재호가 피식 웃었다.

“우릴 빼면 섭하네, 조 대표. 물류유통 쪽 유동현금은 전부 종금에 맡겨둠세. 부회장도 그리하기로 했네. 안 그러나?”

“물론입니다, 대표님. 건설과 제강, 시멘트에서 영등포 재개발로 회수할 돈 전부 종금에 밀어드리겠습니다.”

이명진도 옆에 있던 태재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맞은편에 있는 조영찬에게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태재호와 이명진 두 사람은 공격수와 수비수를 겸했다. 영등포 재개발에 뭉텅이 돈을 쓰면서도 각자가 벌 돈을 전부 해동종금에 맡겨 그룹의 자금을 불려야 하니 둘의 콤비플레이가 중요했다.

고승주는 각자의 의견과 포지션을 못 박은 네 사람을 보며 빙긋 웃었다.

“이제 신성을 끌어들이는 일만 남았군요. 약혼예물이 먹힐지 모르겠습니다, 흐흐.”

모두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바람잡이 역할을 맡은 고승주가 입꼬리를 올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

이수한은 일식집에서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승주와 마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이수한은 뜨끔한 속내를 철저히 감추고 용건을 물었다. 해동그룹과 호주 사업을 두고 경쟁 중인데 고승주가 그 점에 대해 항의하지 않을까 싶어 짤막하게 물은 것이었다.

고승주는 손에 쥔 젓가락으로 회를 가리키며 이수한을 바라봤다.

“회부터 먹고 얘기하세, 이 사람아. 자네하고 먹겠다고 혼마구로로 떠놓으라고 했어.”

“형님 덕에 호사를 누리겠네요, 하하.”

이수한은 고승주와 함께 참치 회의 고소한 맛을 즐기며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고승주가 입에서 뗀 술잔을 내려놨다.

“자네, 재작년에 우리와 신성이 거래한 거 기억하나?”

“기억하죠. 호텔 임대 하나 넣으려고 시작한 일이 점점 커지지 않았습니까?”

내색은 안 했지만 이수한에겐 속 쓰린 기억이었다. 카자흐스탄 구리광산을 놓친 건 둘째쳐도 해동종금에서 빌린 3천억으로 반도체 공장을 다 지어놓으니 반도체 값이 떨어지지 않았나? 엔고투기로 번 돈이 없었으면 타격이 컸을 것이다.

고승주도 신성전자 내부 사정을 찌라시를 통해 접한 지라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숨기고 태연하게 미소를 띠었다.

“그랬지. 그때 우리가 신성에게 제안한 것 중에 기일이 점점 다가오는 게 있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네.”

“···영등포 쇼핑몰입니까?”

“기억하는군. 그 건 때문에 보자고 했네.”

고승주는 옆에 둔 서류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 이수한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제목이 없군요.”

서류철을 본 이수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평소의 고승주라면 표지에 제목을 붙였을 텐데··· 고승주는 이수한을 보며 미소를 띠었다.

“손해 보는 일은 아닐 테니 보고 얘기하지.”

“그러지요.”

대답을 마치자마자 이수한이 서류를 펼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용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의 냉정함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혀, 형님?”

“맘에 드나, 수한이?”

말까지 더듬고도 입을 닫지 못한 이수한과 달리 고승주는 승자의 여유를 즐기며 느물느물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수한은 자신이 지금 펼쳐 본 사업이 현실인가 싶었다.

기존의 해동백화점 본점 건물 두 동에 최고급 호텔과 테마파크, 영화관, 오피스텔 등이 연계된 복합쇼핑몰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이 벌어질 일이다. 그것도 모자라 문래동에 젊음의 거리, 할인점, 오피스텔, 아파트 단지까지 세우겠다니?

“이번 기회에 해동건설과 신성물산 모두 PM 사업에 진출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두 집 모두 언제까지 공사판 십장 노릇만 해서 먹고 살 수는 없잖나?”

이수한은 고승주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를 잡으면 신성물산 건설부문은 PM, 다시 말해 대형 토목건설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경험을 쌓는다. PM 경험을 쌓으면 외국 건설회사 밑에서 서러움 당할 일도 줄어들고 장호민의 주력회사 중 하나인 신성건설을 재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사업에 신성물산에 남은 가용자원을 돌리면 호주 광산개발 사업은 뒷날로 미루거나 접어야 한다. 양 손에 쥔 떡 중 하나를 버려야 하다니··· 이수한은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뭘 그렇게 망설이나? 확실하게 돈이 될 사업인데 쇼핑몰만 짓고 끝낼 건가?”

고승주의 도발 섞인 핀잔에 이수한은 물 한 모금 없이 고구마만 꾸역꾸역 먹은 것 같았다. 카자흐스탄 사업을 놓친 것을 만회하려고 호주 광산개발권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하필이면!

이수한의 이마에 골이 파이거나 말거나 고승주는 사업계획을 알려줬다.

“곧 있으면 선거철이네. 두 그룹에서 여야 3당에 사과박스 넉넉히 갖다 주면 토지 낙찰은 문제없을 걸세.”

“문래동 의류공장은 어떡하실 겁니까? 그 땅도 정부에 넘길 겁니까?”

“누구 좋으라고 정부에 넘기나? 우리 그룹 땅인데.”

고승주는 손을 내저은 뒤, 새로 술을 따르며 말했다.

“문래동 의류공장 부지에는 업무용 대형빌딩들을 올리기로 그룹 수뇌부 회의에서 결정했네.”

“아파트가 낫지 않겠습니까? 자금회전이나 마진율 면에서 훨씬 더 좋을 텐데요?”

이수한이 아쉬움을 드러내도 고승주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서류부터 마저 보고 얘기하지. 괜히 준 게 아니잖나?”

고승주의 핀잔에 이수한은 겸연쩍은 웃음과 함께 천천히 서류를 넘겨봤다. 이번에도 이수한은 입을 떡 벌렸고, 고승주는 그런 이수한을 보며 피식 웃어주고 말했다.

“거기에도 나와 있지만 장 회장님만 좋다고 하시면 그 업무지구의 개발과 관리까지 두 그룹 합작으로 추진하고 싶다고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네.”

고승주가 차분하게 말해도 이수한의 귀에는 하나도 안 들렸다. 해동물산이 영등포 땅 수만 평과 현금 4천억 원을 내는 데 반해 신성물산은 현금 4천억 원만 내는데도 지분은 반반씩 나누자니?

이 계획대로 개발되면 해동물산의 영등포 일대 부동산은 시가로 조 단위를 가볍게 뛰어넘는 금싸라기 땅으로 변한다. 어디 그뿐인가. PM으로 벌어들일 돈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50 대 50으로 동업을 하자니··· 이수한은 경계 섞인 눈빛으로 고승주를 쳐다봤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형님?”

“해동건설이 요 몇 년간 상승세라도 신성물산을 넘어서려면 아직도 멀었네.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이름값까지 감안하면 50 대 50이 맞지 않겠나?”

분명히 신성물산 건설부문의 브랜드 가치가 높다고 해도 해동건설 또한 만만치 않다. 재무구조까지 보면 해동건설이 훨씬 건실한데···.

“그래도 유동자산이 너무 많이 묶이지 않겠습니까?”

이수한이 다시 한 번 떠봐도 고승주는 끄떡하지 않았다.

“부동산만큼 안정적인 사업이 또 있나? 땅이나 건물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올라갈 텐데?”

한 글자도 안 맞는 말이 없기에 이수한은 아무 말도 못하고 침음성만 흘렸다.

겨우 4천억으로 해동물산의 땅 위에 올릴 복합쇼핑몰과 상업용 빌딩들의 지분 50퍼센트를 손에 넣으면 수지맞는 장사다. 신성물산 건설부문의 가치까지 높일 수 있으니 신성물산을 견고한 성으로 만드는 건 물론이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사업이다. 그렇지만···.’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만큼 탐나는 사업이기에 그만큼 독소도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린 이수한은 한 번 더 고승주를 찔렀다.

“이게 전부입니까, 형님?”

쉽게 물지 않는 이수한을 보며 고승주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수한답군. 저놈을 어떻게든 꿰어놔야 신성의 현금을 영등포에 묶어놓을 텐데.’

해동그룹 제조업의 역사가 시작됐고 앞으로의 가치도 무궁무진할 영등포 땅을 미끼로 쓰는 게 아쉬웠지만 고승주는 이성민을 믿기로 했다.

이성민이 보여준 실력이면 영등포 땅은 충분히 찾아올 테니 자신은 이수한의 코를 꿰어놔야 했다.

“그뿐만이 아닐세. 거기 보면 기존의 해동백화점 본점 건물 두 동에 새로 개발할 땅에 올릴 하이마트 영등포점 건물까지 전부 신설법인에 묶을 거라고 적혀있네.”

고승주의 느물느물한 목소리에 이수한은 얼른 계획서를 살펴봤다.

“혀, 형님?”

내용을 살펴본 이수한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쇼핑몰 부지도 모자라서 전국 백화점 점포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해동백화점 본점에 하이마트까지 묶어서 임대수익까지 나눠주겠다니?

그 조건으로 합작법인의 현금 8천억 원을 해동종금에 예치해야하지만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해동종금의 CMA 금리를 고려하면 금융자산이 늘어나면서 합작법인의 지분 가치까지 올라간다.

터무니없이 좋은 조건에 위화감을 견디지 못한 이수한이 본심을 드러냈다.

“선수끼리 히든 다 까고 얘기하죠. 진짜 이유를 말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고승주가 입을 열었다.

“성민이 장가보내야지.”

“장가요?”

고승주가 무심하게 내뱉은 대답에 이수한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장손을 장가보내겠다고 해동그룹의 알짜배기 땅들을 훌러덩 넘기겠다니?

고승주가 이수한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께서도 내색은 안 하셨지만 성민이가 장 상무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신 것 같네. 따라야지 어쩌겠나? 신랑 쪽 약혼예물이라 생각하게.”

해동그룹 수뇌부의 비밀이지만 이대수가 장하연을 손주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들어 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백화점 컨설팅 때 해동그룹 수뇌부를 모아놓고 둘을 결혼시키겠다고 선포하지 않았나? 이성민이 장호건에게 안 잡아먹힐 만큼 커야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해동그룹 내부 사정을 알 턱이 없겠지만 고승주의 말을 듣고 이수한은 이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이대수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자식손주들 사랑이 지극한 노인네인 것도 사실이다. 그 점들을 감안하면 지금 사업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모든 계산을 때리고 이수한이 짐짓 조심하는 체하며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 말씀드린 뒤에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각 당 공천 끝날 때까지 알려주게. 공천 끝나면 싹 쓸어 담아야 하니 마이야, 하하.”

고승주는 이수한의 상기된 얼굴을 보며 껄껄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이 모든 계획의 뼈대를 잡은 이성민 때문이었다는 건 고승주만의 비밀이었다.

***

고승주는 이수한을 감쪽같이 속여먹은 뒤, 회사에 들렀다가 스탠더드 캐피털로 넘어왔다. 혹시 모를 이수한의 미행 때문에 차까지 갈아타고 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백부님.”

고승주는 나를 보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고생은 무슨. 영등포 땅 되찾는 건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백부님. 종금사들이 폭주할 테니까요.”

올해부터 거의 모든 종금사들은 단기외채를 마구 끌어다가 러시아와 동남아 부실채권에 꼬라박을 것이다. 당장은 이자 수익의 달콤함에 취하겠지만 내년이면 지독한 금단현상에 시달릴 터.

그럼에도 고승주의 얼굴에서 걱정이 지워지지 않은 걸 본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안 내놓는다고 하면 미국 본사를 설득해서라도 합작법인 지분을 인수하고 넘겨드리겠습니다, 백부님.”

짐짓 비장한 표정까지 얼굴에 띄우자 고승주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다. 여하튼 장호건도 지금쯤이면 사업 제안을 들었을 테니 고민이 클 거다.”

“그럴 겁니다. 자기 숙원사업이지만 불확실한 모험을 할지, 아니면 하나뿐인 딸을 챙겨주면서 확실한 이익을 챙길지 고민해야 하니까요.”

입꼬리를 올린 나를 보며 선해철이 가볍게 혀를 찼다.

“이거, 이거, 벌써부터 처가 벗겨먹을 생각이나 하고. 조카며느리가 알면 많이 서운해 하겠어?”

“먼저 통수 친 건 신성이니 어쩔 수 없죠. 우리만 조용하면 작정하고 끌어들인 것도 모를 테니 상관없습니다, 삼촌. 그렇죠, 형?”

박태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련님 말이 맞습니다. 우리 이익을 위해 엔고투기에 끌어들였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고 했잖습니까? 합작 조건도 신성에 유리하니 안 넘어오고는 못 배길 겁니다.”

나비효과는 각오했지만 이익이 충돌하는 이상 봐줄 수가 없다. 우리가 찍어놓은 수십 년 먹거리를 가로채려고 했으니 봐줄 이유가 더더욱 없었다.

선해철이 박태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걸리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긴 한데··· 장호건이 종금에 갚을 신성전자 채권 만기 늦춰달라고 하면 어떡할 거냐?”

“이번엔 안 봐줄 겁니다. 자금운용도 빡빡하게 짜둬서 할아버지 말씀대로 금리라도 올려야 해요. 무엇보다.”

나는 잠시 멈췄던 말을 다시 이어갔다.

“아저씨는 절대 그런 소리 못할 겁니다.”

“어떻게 장담하는 거냐?”

나는 미심쩍어 하는 고승주, 그리고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띠었다.

“해동물산이야 아직은 제 회사가 아니니 뒤통수 쳤겠지만 해동종금에서 빌린 3천억은 만기 때 갚겠다고 누나 통해서 전했거든요, 흐흐.”

장호건 성격상 장하연에게 시킨 말을 번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장하연은 장호건에게 전부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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