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27th. 잡고 잡히는 발목 (1)
신성그룹의 앞으로의 명운이 달린 일이었기에 이수한은 그 일에 대해 박태곤에게 물었다.
“호주 쪽 일, 어떻게 되고 있나?”
‘호주 쪽 일’은 장호건, 그리고 그 장호건을 보좌하는 이수한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작게는 해동그룹에게 카자흐스탄 구리광산 사업을 빼앗긴 한을 푸는 일이고 크게는 다가올 내전에 대비해서 본진인 신성물산을 크고 튼튼한 성으로 만들기 위한 일이 아닌가?
박태곤도 비서실에 들어와서 그룹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얼른 입을 열었다.
“호주법인에서 노력하고는 있는데 진전이 없습니다. 얼마를 줘도 회사 주식은 양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지독한 여편네군. 올해 안에 끝내야 하는데···.”
박태곤의 어두운 표정처럼 이수한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신사협정이 끝나면 범 신성그룹의 내전이 시작된다.
전쟁을 준비하려면 장호건 계열의 본성(本城)인 신성물산을 키워야 하는데 그 사전작업이 삐걱거리니 장호건의 수석참모인 이수한으로서는 답답하기만 했다.
핸콕 프로스펙팅만 인수하면 신성물산 건설부문과 상사부문을 동시에 키울 수 있다. 광산에서 캘 철광석은 상사부문에서 팔아주고, 광산 인프라를 건설부문이 만들면 상사부문에서 투자한 돈을 공사비로 회수할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 아닌가?
“일단, 계속 접근해보고 다른 방법도 찾아보도록 하지.”
이수한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핸콕 프로스펙팅 인수는 해동그룹과 고승주에게 보란 듯이 먹일 한 방이 될 테니까.
***
신성물산 호주법인 사람들은 북반구에 있는 본사 수뇌부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기에 오늘도 퍼스의 한 조그만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오늘로 몇 번째지?”
“주마다 한 번씩 왔으니 스무 번째일 겁니다, 이사님.”
“빌어먹을. 대체 이딴 쥐꼬리 같은 회사에 왜 이리 매달리는 거야?”
신성물산 호주법인장 주병태는 부하직원의 말을 듣고 인상을 박박 구겼다.
지금 그들 앞에 있는 건물은 핸콕 프로스펙팅의 사옥이었다. 이 회사 주식을 얻으라고 본사에서 닦달하는 통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드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퍼스 공항에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했다.
“여기 상태, 어떻다고 했지?”
“리오틴토에 광산 개발권을 내주고 매출의 2.5퍼센트만 로열티로 받아서 근근이 버티는 실정입니다. 부채도 재작년에야 300만 불 밑으로 줄였고요.”
“광산 개발은?”
“호프다운스와 로이힐을 중심으로 탐사 중이라는데 문제는 돈입니다. 인수에 성공해도 돈을 뽑아내려면 플랜트부터 철도, 항만까지 전부 우리 돈으로 깔아야 하니까요.”
대답을 들은 주병태의 이마에 골이 패였다.
“윗선에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자동차 사업까지 벌이는 마당에 무슨 생각으로 이런 회사를 인수하려고 하는지, 원.”
아무 것도 없는 광산에 돈을 뽑아낼 제반설비를 까는 건 한두 푼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사업을 벌이려는지 말단 이사인 주병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다른 광산 지분을 얻는 게 나을 텐데··· 아쉽습니다, 이사님.”
“그러게 말이다. 널린 게 광산인데 이게 뭐하는 짓인지···.”
두 사람 모두 윗선의 생각을 헤아릴 수 없었다. 이미 개발된 광산에 투자하면 바로 돈을 벌 텐데 광맥을 발견한 것 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회사에 왜 이리 목을 매는지···.
하지만 오너가 시키면 거시기로 밤송이를 까라고 해도 이 악물고 해야 하는 게 대한민국 샐러리맨의 서글픈 삶이 아닌가? 그래서 주병태와 직원은 오늘도 이 회사에 와야 했다.
“그래도 이번 일만 어떻게든 해내시면 금의환향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야지. 이 건 메이드 해도 본사로 안 부르면 정말···.”
옆에서 바라보던 직원의 위로에도 투덜거리던 주병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잘못하면 선을 넘을 뻔해서였다.
“가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까지 부딪쳐야 상사맨 아니겠냐.”
주병태와 직원은 이를 악 물고 회사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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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뒤.
핸콕 프로스펙팅 사옥 앞에서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휴우, 이번이 몇 번째냐?”
“재작년 4월부터 주마다 왔으니 88번째입니다.”
해동물산 호주법인장 마영민 이사는 함께 온 해동물산 호주법인 부장의 말을 듣고 인상을 구겼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이쯤 되면 윗분들도 포기할 만하실 텐데 왜 이리 매달리시는지 원.”
옆에 있던 부장이 마영민의 눈치를 슬쩍 보고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본사에서 엔고투기로 벌어들인 돈이 20억 달러나 훨씬 넘게 남아있는데 그 돈이면···.”
“작년에 카자흐스탄에 투자한 구리광산이든 우리 법인이 작업한 퀸즐랜드 아연광산이든 예닐곱 번은 인수할 돈이지.”
마영민은 부장의 말을 끊고 대답하면서도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이따위 코딱지 같은 회사, 호주 아연광산이나 카자흐스탄 구리광산과 비교할 수 없이 형편없는 곳이 아닌가?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된다는 거다. 차라리 기존 광산 지분을 인수하는 게 더 좋을 텐데···.”
말끝을 흐리던 그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한 대만 태우고 들어가자. 그냥 들어갔다가는 그 여자 때문에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 향수, 챙겨왔지?”
“예, 이사님.”
미팅 시각은 1시간 뒤.
마영민은 현관에서 떨어진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를 태웠고, 부장은 골목 입구에서 주변을 살폈다.
“어? 저 사람···?”
고개를 갸웃한 부장을 보고 마영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뭔데 그래?”
“이사님께서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마영민은 담뱃재를 톡톡 털면서 골목 입구로 나왔다. 부장의 팔 때문에 골목 입구에 딱 멈춰선 그는 사옥에서 나온 두 사람을 보고 눈이 커졌다.
“신성물산 주병태잖아?”
마영민은 주병태를 알고 있었다. 만리타향에서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끼리 만든 친목회에서 만나던 사람이 이 회사 건물에서 나오다니?
마영민의 머리가 부지런히 굴러갔다. 금세 계산이 끝났는지 그의 눈이 치켜떠졌다.
“저 새끼들, 우리한테 카자흐스탄 사업 뺏겼다고 엿 먹이겠다는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습니다, 이사님. 어쩌면 신성 때문에 핸콕이 우리 제안을 거절한 걸 수도 있습니다.”
부장의 말을 듣고 마영민이 땅에 떨군 담배꽁초를 밟아 비볐다.
“니기미, 그 고집쟁이 여편네가 요즘 들어 더 뻗댄 이유가 있었군.”
최근 들어 더 고까워진 제인 레온하트의 태도를 씹으며 마영민이 핸드폰을 빼들었다. 변수가 생긴 이상 보고는 필수였다.
***
그 시각, 서울 본사에서 일을 보고 있던 배재훈은 지구 반대편에서 마영민의 전화를 받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슨 소린가, 마 이사? 신성 놈들이 어떻게 그 회사를 알고 접근해?”
[방금 전에 봐서 저희도 아직 사태 파악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알겠네. 지금 바로 시드니에 연락해서 신성 놈들 캐보라고 해. 여기도 움직이겠네.”
[미팅은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일단은 만나도록 해. 티 내지 말고.”
마지막 지시를 끝으로 배재훈은 전화를 끊고 집무실을 나갔다.
“오늘 오후 일정 뭐, 뭐 있나?”
“예?”
“아니네. 일정표 있으면 얼른 주게.”
“예···.”
배재훈은 얼떨떨한 표정의 비서에게서 일정표를 받아보고는 얼마 안 돼서 돌려줬다.
“오후 일정 전부 취소해.”
“대표님?”
“중요한 일이 생겼네. 적당히 둘러대고 다음으로 미뤄.”
비서가 빵꾸난 일정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배재훈은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곧장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대, 대표님?”
“고 실장 있는가?”
“예. 지금 안에···.”
자리에서 일어난 직원의 말을 들을 새도 없이 배재훈이 벌컥 문을 열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고승주는 배재훈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씀도 없이 어떻게···?”
“승주야, 신성 놈들이 핸콕에 접근했다.”
“예?”
고승주의 눈이 커졌다. 신성에서 어떻게 그 회사를 알고?
“방금 호주법인 마 이사한테 연락받았는데···.”
배재훈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고승주의 얼굴이 굳었다.
“큰일이군요.”
굵고 짧은 고승주의 대답에는 모든 뜻이 담겨 있었다.
핸콕 프로스펙팅 투자는 해동물산 상사부문뿐만 아니라 해동건설을 비롯한 중공업 부문을 동시에 키울 기회였다.
해동물산이 광산개발에 자금을 대고 중공업 부문에서 광산 인프라를 만들면 그룹 전체가 커질 수 있다. 그 엄청난 먹거리를 뺏기면 언제 그런 기회가 또 올지 기약할 수 없었다.
배재훈 또한 이를 모르고 있지 않았기에 마음이 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호주법인에서 보내줄 걸 봐야 알겠지만 회장님부터 봬야 할 것 같다.”
“다른 분들께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표님.”
“스탠더드에도 연락해. 이번 일, 세 녀석도 와야 할 거다.”
“예. 지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고승주는 재빨리 수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번호를 누르는 그의 손놀림에서 다급함이 보였다.
***
고승주의 연락을 받고 들어간 삼청동 서재에서 우리는 할아버지의 굳은 얼굴을 봐야 했다.
“우리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디밀다니··· 고얀 놈들.”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불쾌함이 확 드러났고 책상 앞에 앉은 우리도 굳은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도 잠시, 할아버지는 기업인답게 단순히 분노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침착한 목소리로 고승주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다고 보나, 고 실장? 굳이 사업을 하고 싶다면 우리와 손잡고 하는 게 좋았을 텐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들리는 말에 따르면 장호건, 장호경, 장호민의 신사협정이 올해 연말까지라고 합니다.”
고승주의 말을 듣고 할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전 때문이라는 건가?”
“예. 정확히는 내전에 앞서 본진을 굳혀두려는 의도가 아닌가합니다. 해외투자자산의 가치를 부풀리고 광산 인프라 공사까지 맡으면 신성물산의 시가총액도 커질 테니까요.”
장호건은 현재 자신의 실명주식과 차명주식이 집중된 신성물산과 신성전자를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짜고 기관투자자들과 은행권까지 끌어들여 전자-물산 계열을 지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장호건의 지분이 많은 신성물산은 신성전자 주식을 꽤 많이 쥐고 있다. 남매간의 내전에 앞서 본거지인 신성물산을 보강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숨을 가다듬었다.
“그건 장 씨 것들 사정이다. 그놈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밟아놔야 한다.”
할아버지의 주문은 별 거 아닌 것 같았지만 그 주문을 실은 목소리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먼저 찍어놓은 호주 광산사업에 찝적거리는 신성그룹을 쫓아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어떻게 알아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성 놈들이 자원개발에 뛰어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이사.”
할아버지가 나를 이 이사로 불렀다. 분위기가 분위기이니 나 또한 공적으로 할아버지를 대해야 했다.
“네, 회장님.”
“어떡하면 좋을지 말해봐. 호주 사업, 자네 아이디어 아닌가?”
잠시 고민하는 체하던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신성그룹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라도 영등포 재개발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살을 내주더라도 뼈를 취하면 그만입니다, 회장님.”
내가 내주자는 ‘우리 그룹의 살’이 누군가에겐 역린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1년만 있으면 그 살이 붙은 뼈까지 신성그룹에서 뜯어올 수 있었다. 의견을 내놓은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호기심이 일었다.
“어떻게 말인가?”
“백화점 본점 건물 두 동에 문래동 의류공장 부지에 올릴 업무단지, 영등포 재개발 부지에 지을 해동마트 건물, 여기에 현찰 4천억까지 얹어서 신성물산과 합작법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합작법인?”
할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함께 있는 다른 어른들도 고개를 갸웃하거나 미간을 찌푸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차분하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네. 장호건 회장의 최우선 목표는 내전에 앞서 본거지인 신성물산을 튼튼한 요새로 만드는 것일 겁니다. 해동물산과 신성물산이 50 대 50으로 합작법인을 만들고 지분 가치를 높이면 신성물산의 시가총액도 커지게 됩니다.”
할아버지가 가소롭다는 눈길로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영등포 땅에 문래동 땅을 계획대로 개발하면 시가로 5천억은 훌쩍 넘을 게다. 현찰 4천억까지 얹으면 신성물산은 못해도 7천억을 대야하는데 장호건 그놈이 퍽이나 대겠다.”
“그러니 신성물산에는 현찰 4천억만 들고 오라고 해야 합니다, 회장님.”
“뭐라? 4천억?”
할아버지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대답한 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린 게 고작이었지만 다른 어른들은 충격이 큰 모양이다. 7천억도 부족한데 4천억에 넘기겠다니 얼마나 황당할까?
“이 이사. 방직공장 땅이야 이미 약속됐어도 문래동 땅 또한 초대 회장님 때부터 한 평, 두 평 넓힌 땅이네. 해동그룹 제조업의 고향인 그 땅들을 죄다 장호건에게 넘기겠다고?”
그 중에서도 배재훈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내가 그 방직공장에서 뽑은 가트라 원단으로 아랍에서 일본 놈들을 재꼈네. 의류공장에서 여공들이 고사리손으로 만든 옷, 어떻게든 수출하겠다고 양놈들한테 손바닥까지 비볐고. 그런 땅을 팔아먹자는 게 말이 되나?”
배재훈의 애착이 큰 땅들인 건 충분히 알고 있다. 해동물산 섬유부로 시작해서 일본이 꽉 잡고 있는 고급 가트라 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던 사람이 아닌가?
“자네가 장호건 첫째 딸을 좋아하는 것 또한 알고 있네. 청춘사업도 좋지만 가업이 우선이네!”
나를 쏘아보며 일갈한 배재훈의 눈에서 실망과 분노가 파도쳤지만 나 또한 장 씨 것들 덕분에 죽음의 강을 거슬러 온 놈이다. 당연히 장하연을 좋아하는 것과 그놈들을 짓밟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나와 배재훈의 눈빛이 허공에서 엮이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중간에 들어왔다.
“배 대표.”
“예, 회장님.”
“이 이사가 그리 멍청했으면 장호건이한테 카자흐스탄 사업을 뜯어올 생각도 못 했을 게야. 신성과 얽히진 않았지만 호주 아연광산은 또 어떻고?”
할아버지가 짚어준 두 사업에 배재훈의 얼굴이 붉어졌다. 상사부문에 수십 년간 해마다 수천억 원씩 벌어줄 사업이 아닌가?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경솔했습니다.”
고개를 숙인 배재훈을 보며 할아버지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네. 자네가 그 땅 얼마나 아끼는지 이해해. 땅의 가격이 아니라 땅에 스며든 추억 때문이 아닌가. 이 이사, 계속해.”
“예, 회장님.”
할아버지가 배재훈을 위로하고 나서 내린 주문에 나는 담담하게 설득을 다시 이어갔다.
“제가 장하연이라는 여자를 사랑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청춘사업과 가업이 별개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크흠···.”
“흠흠···.”
내가 털어놓은 속마음에 어른들 모두 헛기침을 하거나 딴 곳을 바라봤지만 유일하게 할아버지만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고 나를 바라봤다.
“개인사는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될 일이다. 그런 놈이 왜 헐값에 우리 땅을 팔아먹자는 게냐? 네놈 약혼예물로 넘기자는 게냐?”
할아버지의 느물느물한 표정과 목소리··· 인간적으로 싫지는 않지만 사업적으로 좋지도 않다는 것 같았다.
“우리가 왜 달러를 쌓고 부채비율을 줄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해주십시오, 회장님.”
당신이 원하는 답이 나올 기미가 보였을까, 내 대답에 할아버지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