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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82화 (81/229)

82화. 24th. 염탐 (2)

그와 함께 간 곳은 신성그룹 본관과 가까운 곳에 있는 고급 일식집이었다.

“모처럼만에 거기 곰탕 놓고 소주 마시나 했는데 다 버렸다. 매운탕이나 먹자.”

“그러자, 형.”

“여기 우럭 대 자에 매운탕 하나. 둘 다 한꺼번에 줘요.”

“예, 고객님.”

주문을 넣은 장용재는 뚜껑을 딴 맥주병을 잡았다.

“오랜만인데 한 잔 하자. 박 차장님도 한 잔 들어요.”

우리 둘의 잔에 맥주를 채워준 그는 자기 잔에도 맥주를 채웠다.

“크으, 그룹 이미지 다 말아먹을 뻔했네. 그거 터졌으면 기자 새끼들한테 술 먹이고 돈 넣어주느라 왕창 깨졌을 거다.”

순식간에 맥주잔을 비운 그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속으로 웃음만 터졌다.

이 새끼가 안 보이는 데서 후린 여자만 관광버스 몇 대를 채울 정도였고 그 여자들한테 뿌린 씨 없애고 입막음에 쓴 돈만 천억이 넘었다. 콘돔을 끼면 쾌감이 떨어진다나?

그런, 아니 그럴 놈이 회사 이미지 운운하고 자빠졌으니 가소로워서 말도 안 나왔다. 씨 발라버릴 놈.

그러나 지금은 맞장구를 쳐야했다. 비행기를 태워줘야 좋다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마구 떠들 놈이 아닌가?

“그래도 형이 짠! 하고 등장해서 멋지게 수습했으니까 미담으로 바뀌겠네?”

딱!

“바로 그거야! 이미지 관리는 이렇게 하는 거다, 성민아. 작은 구멍이라고 놔두면 댐이 무너지는 거야. 형이 오늘 보여준 거 잊지 마라, 흐흐.”

장용재는 손가락까지 튕기며 웃었지만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백날 작은 구멍 틀어막으면 뭐하나? 부산 신호동에 돈 빨아먹을 블랙홀을 만들었는데.

이 자식과 장호건이 밀어붙여 짓고 있는 신성자동차 부산 공장은 매립지 특유의 연약지반 보강에만 8천억, 완공까지 총 1조 6천억 원을 빨아먹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협조를 구하려고 군산이나 평택, 창원에 같은 공장을 서너 개씩은 지을 돈을 공장 하나에 처박은 것이었다.

물론.

이 결정은 오로지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나온 게 아니었다. 제휴업체인 닛산에서의 부품 수입과 완제품 수출 등도 반영된 일이었지만 상용차 공장까지 팔아가며 짓느라 대구와는 수십 년간 원수가 됐고,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그룹을 휘청거리게 했으니 신성그룹 최악의 흑역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자식에게 미래를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이놈이 벌써부터 소극적으로 나서게 되면 신성그룹을 파먹고 들어갈 틈새가 안 보일 테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이놈의 이성을 날려버리고 끊임없이 무리수를 두게 만들어야 한다. 나에 대한 열등감, 장호건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서 말이다.

본심을 숨기고 장용재와 함께 식사를 하던 나는 신성그룹 소식을 들을 겸 일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신성물산 건설부문은 어때?”

“갑가기 그건 왜?”

“사고공화국이잖아. 건설회사들이 깨끗이 공사해야 그런 사고가 안 생길 텐데.”

장용재가 인상을 찌푸렸다.

“말도 마라. 우리 아버지, 너희 숙부님이 성수대교 부순 거 때문에 사장단 쫙 불러놓고 한 따까리 했었어.”

“진짜?”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장용재는 자기 애비 속을 쫙 긁어놓은 장본인이 나라는 것도 모르고 푸념을 늘어놨다.

“그래. 박병준 사장, 그거 때문에 파나마로 쫓겨나고 난리도 아니었다.”

장용재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하고 회를 씹어 먹었지만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내가 아는 박병준은 신성물산 수석대표이사까지 맡았던 인간이다. 그 사건 때문에 좌천당한 것도 모자라서 하필이면 파나마로 쫓겨났다니?

자세한 이유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찍어놓은 먹거리 중 하나가 파나마에 있는데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그걸 노리고 박병준을 보낸 거라면 큰 낭패를 볼 테니 말이다.

“무슨 말이야? 그 아저씨가 왜 쫓겨났어?”

“건설 짬밥이 있는데 그거 하나 몰랐냐고, 가서 복습하고 오라고 했어. 차라리 이집트였으면 유럽이라도 오가지, 파나마에서 교량공사 한다고 거기로 보냈다.”

장용재는 자기 아버지라도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식사를 계속했다. 그나마 내가 노리는 걸 건드린 건 아닌 듯했지만 장호건의 지독함에 입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장용재가 피식 웃었다.

“너도 놀랬으니 난 오죽했겠냐. 위치가 사람 만든다고 아직 상무나부랭이라 은근히 쫄리더라.”

멍청한 놈. 내가 놀란 이유를 몰라서 다행이었다.

원래대로면 앞으로 20년쯤 뒤에 개발될 노다지가 파나마에서 나오는데 박병준이 장호건에게 그 노다지를 보고하면 낭패를 보게 된다. 좀 더 캐볼까?

“형, 파나마 공사는 언제 끝나?”

“내년쯤에 끝날 걸? 아버지도 그때쯤 그 양반 본사로 부를 거라고 했어. 할아버지 때부터 온갖 오물 다 뒤집어 쓴 양반이고 일처리도 좋아서 최소한 고문 자리는 내줄 거다.”

별 거 아니라는 듯 답하던 장용재의 눈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근데 그건 왜 물어봤냐?”

“응?”

“너무 깊게 물어보는데?”

이 자식 눈치가 날카로운 걸 까먹고 있었다. 젠장.

“아니, 우리 집도 건설 사업하잖아. 형네 회사에서 쫓겨나면 숙부님한테 말해서 고문으로 모시는 게 어떠냐고 말해볼까 했지. 건설은 인맥이 크잖아, 헤헤.”

철모르는 애처럼 굴자 장용재가 피식 웃었다.

“아직 멀었구나, 너? 한번 신성에 들어온 사람은 죽을 때까지 신성 사람이야. 그리고.”

말을 끊은 그가 맥주로 입을 헹궜다.

“너희 집도 요즘에 사업 많이 하잖아?”

“응?”

“몰라서 그래? 백화점, 할인점이야 네 손 탔으니 알 테고, 온갖 건설 공사부터 카자흐스탄 구리광산에 호주 아연광산, 부산항 컨테이너 터미널, 신성전자 대출까지··· 해동그룹에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룹 임원들이 얘기 많이 하더라.”

정확히는 이놈도 지 애미한테 들었을 것이다. 조국일보를 등에 업고 그룹 임원들을 수족 부리듯 하는 황나연의 장남이 아닌가? 그룹 임원 명단이 내 손 안에 있다는 걸 알면 놀라 자빠지겠지만 시치미 뚝 떼고 말했다.

“우리 집도 이제는 살림 늘려야지. 그래서 이번에 지배구조 바꿨잖아.”

원론적인 얘기로 퉁 치자 장용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예전에 같이 모여서 드라이브하던 애들이 부러워죽겠다고 하더라. 우리 또래 중에 네가 제일 부자일 걸?”

“에이, 형이야 그룹 회장되면 돈 금방 모으겠지. 연봉에 배당금에··· 오히려 형이 더 부러워.”

당치도 않다는 표정과 함께 손을 내젓고 되묻자 장용재가 낄낄 웃었다.

“아직 모르는구나?”

“뭘?”

“돈 버는 거, 따로 있다?”

“뭔데?”

“건설자재, 작업복, 인력소개, 부품 하청··· 돈벌이가 지천에 깔렸어, 흐흐.”

진부한 새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가 아는 수법들을 늘어놓고 자빠졌다.

죄다 앞에서 돈 벌어오는 계열사들 등에 빨대 꽂고 쭉쭉 등골 빨아먹는 짓거리 아닌가? 부속실로 유배됐을 때 장하연을 제외한 장 씨 것들이 그딴 식으로 싸지르는 똥 치우느라 위아래 어금니를 죄다 임플란트로 바꿨었다.

“아··· 그렇구나?”

상 밑에서 핏줄이 불거져라 주먹을 꽉 쥐면서도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묻자 장용재의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갔다.

“다른 그룹들도 비슷할 걸? 나나 수연이, 민재는 그렇게 벌면 돼.”

“하연이 누나는?”

장용재는 그 순간 굳은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아무 것도 못 가져갈 거야.”

“왜?”

“알면 다친다.”

더 말하기 싫은지 무게를 잡았지만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 너희 세 남매가 나눠가질 몫보다 내가 불려줄 장하연 재산이 더 커질 테니까.

***

장용재는 식사를 마친 뒤, 회사로 돌아와서 옥외 흡연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온 그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이 자식, 뭘 숨기는 거지?”

불을 붙이고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입에서 흐트러져 나오는 연기와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예전에 어머니 쪽 사람들을 통해 들은 얘기가 맞으면 해동그룹과 신성그룹의 백화점 관련 거래는 이성민이 장하연을 통해 부탁해서 이뤄진 것.

뿐만 아니라 백화점과 할인점 컨설팅도 척척해낸 걸 보면 서방질에 미친 동생년이 그놈을 잡지 못한 게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오늘 본 이성민은 볕 드는 땅에서의 일에만 신경 쓸 뿐, 그늘진 땅은 모르는 샌님이었다. 그나마 경험 좀 했다고 얘기한 것도 같잖기 그지없었다.

“지켜보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담배를 빨아들이던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신성물산 장용재··· 회장님이요?”

핸드폰을 끈 그는 구겨진 얼굴로 담배를 끄고 황급히 뛰어 내려갔다. 아버지의 불시점검이라니!

***

집에 돌아온 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박태진도 씁쓸함을 머금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지독하네요. 하나도 안 주려고 하다니.”

“장용재 씨 입장에서는 하연 아가씨가 못마땅하겠죠. 장호건 회장님은 피를 나눈 형제들과도 싸우고 있잖습니까.”

“하긴··· 실시간으로 보고 배울 텐데 형 말이 맞겠네요.”

박태진의 말이 맞았다. 장호건이 장호민, 장호경과 싸우는 걸 보고 있으니 자신도 형제들과 싸워야 할 걸 직감할 터.

싸움을 하던 타협을 하던 자기 몫을 늘리려면 배다른 형제인 장하연부터 쫓아내야 하는 걸 장용재는 잘 알 것이다.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자 박태진이 빙긋 웃었다.

“그래도 하연 아가씨 옆엔 도련님이 있잖습니까. 앞으로도 옆에서 든든히 지켜주십시오, 하하.”

“형도 마찬가지에요. 내년부터는 이사 명패 손에 쥐고 유 과장 지켜주면 되겠어요, 후후.”

서로를 보며 웃던 중 박태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신성물산 박병준 사장 이야기가 나왔을 때 뭔가 걸리신 것 같습니다.”

“네?”

눈치 하나는 귀신이다. 특전사 장교 출신, 그것도 정보사까지 차출됐던 사람이라 주의력이 보통이 아니겠지만···.

나는 그를 보고 얼른 예전에 있던 일을 꺼냈다.

“귀국 전에 뉴욕에서 백화점 갔던 거 기억하죠?”

“예. 그날 쇼핑 중에 회장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셨잖습니까?”

“맞아요. 클레어하고 차 타고 가던 중에 UN 쪽 자료 봤었는데 파나마 구리광맥 탐사를 후원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서야 박태진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민감하셨던 거군요.”

“네. 자료 보니까 매장량이 꽤 될 것 같기도 하고 해안과 가까워서 운송도 편리할 거라고 적혀있었어요.”

코브레파나마라고 불릴 그 구리광산은 카리브 해 방면 해안에서 내륙으로 20여 킬로미터 밖에 안 떨어져 있다. 구리 원광물 매장량도 31억 8,300만 톤이나 되는 데다 순도도 높고, 금, 은, 몰리브덴까지 함유돼서 채산성이 좋은 광산이다.

차마 이 사실은 말하지 못했지만 박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큰일이군요. 박병준 그 사람, 신성에서 그 정도까지 올라갔다면 본진으로 복귀하려고 안간힘을 쓸 겁니다. 어쩌면 그 정보도 올릴 수 있고요.”

“그럴 거예요. 호건이 아저씨, 자동차에도 돈 꽤나 쓰고 있지만 자원개발 사업도 키우려고 할 테니까요.”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박태진이 흥미로운 제안을 던졌다.

“공성필에게 시켜서 인터셉트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인터셉트라··· 좋네요, 후후.”

그럴 생각이었지만 잠시 고민하는 체하고 대답했다. 오너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받고 결정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의 말을 듣고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이면 그 콜걸과 신나게 떡치고 있을 텐데 산통 깨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았다.

신호가 멈춘 걸 확인한 나는 수화기에서 들리는 여자의 신음소리를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이성민입니다, 공 이사.”

[아,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신성물산에서 파나마 쪽 교량 공사를 한다던데 맞습니까?”

[예? 예! 저희 법인에서 현지와 본사를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혹시, 거기 책임자가 박병준 씨입니까?”

[예. 작년 초에 도련님 숙부님 일로 파나마 공사현장에 파견됐습니다.]

사실을 확인한 나는 공성필 옆에서 구시렁거리는 양년 소리를 그만 들을 겸 본론을 꺼냈다.

“파나마 쪽 사업자료 중에 특이한 거 올라오면 저한테만 알리세요.”

[예?]

“건설공사 보고 외에는 나한테만 알리고 짬시키라는 겁니다. 그에 따른 보상은 합당하게 해주죠.”

이렇게까지 나가는 건 바뀌고 있는 역사 때문이었다.

엔고 투기로 제법 벌었는지 태현그룹은 조만간 이라크 미수금을 손실처리하면서 내년 중에 하동 제철소를 짓기로 했고, 외가인 GK그룹은 계열분리 사전작업인지 GK정유에 있는 미국 칼텍스 측 주식 전량을 거둬오기 위해 협상 중이다.

전부 원래의 역사와 달라진 일인데 우리가 끌어들인 세 집 중 신성그룹만 잠잠하다. 그런 마당에 신성물산은 해동물산에게 카자흐스탄 구리 광산을 뺏겼고, 대체처가 있는 파나마에는 본사에서 좌천된 고위급 인사가 파견되어 있다.

그러니 나비효과가 파나마에서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파나마 구리광산 개발 허가는 내년에나 나올 테고, 신성물산은 자동차에 돈을 꼬라박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회사 좋을 짓 해봐야 당신한테 돌아오는 거, 내가 채워주는 것보다 못하잖습니까? 장호건 회장님보다 내가 챙겨준 게 더 많을 텐데요?”

[그렇지요. 게다가 최근에는 본사 비서실에서 파견된 사람까지 있습니다.]

공성필의 목소리에서 불만이 묻어나왔지만 내게는 기회였다.

“그 사람 철저히 배제하고 공 이사나 공 이사 사람들 먹고 살 방법만 찾아요. 토사구팽이 뻔히 보이는데 멍청하게 당하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 친구들 몫도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 사람들 주머니도 두둑하게 채워주죠.”

염탐질에 얼마가 들어도 좋다. 신성을, 장 씨 가문을 나와 장하연, 그리고 우리 집안 발밑에 둘 수만 있다면 싸게 먹힐 테니까.

전화를 끊고 숨을 돌린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봤다.

오늘 날짜가 12월 2일··· 슬슬 잡스가 초대장을 보낼 때가 됐는데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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