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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71화 (70/229)

71화. 22nd. 기브 앤 테이크 (1)

박태진에게 연락을 넣고 헨리의 저택에 머물며 투자할 영화 목록과 투자액수를 정하다보니 열흘이 훌쩍 지났다.

“제법 많군. ‘컷스로트 아일랜드’에 천만, ‘워터 월드’ 천만···.”

헨리는 우리와 함께 추려낸 영화 20여 개를 보며 모노클 테두리를 검지 끝으로 문질렀다. 나는 헨리를 보며 겸연쩍은 미소를 띠었다.

‘미안합니다, 헨리. 그래도 매번 감금당하고 싶진 않아요.’

리스트에 넣은 영화들은 거의 다 잘해야 본전치기, 심하면 원금까지 까먹을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흥행작만 쏙쏙 골라내면 이번 같은 반강제 감금이 반복될까봐 한 짓이었다.

“···그 날탱이 같은 놈들, 우리 돈으로 흥청망청하겠군.”

서류를 덮은 헨리는 맘에 안 드는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늘 실체가 있는 것에만 투자를 해온 사람이라 그런지 실체가 없는 영화에 투자하는 걸 돈 낭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헨리를 보며 나는 겸연쩍은 미소를 띠었다.

“어쩔 수 없죠, 헨리. 번만큼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말이 맞네. 우리 두 회사가 1억 5천만 달러씩 투자한다면 듣기 싫은 그 ‘요카이’ 소리도 조금은 지워지겠지. 그런데···.”

리스트 하단을 보던 헨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유난히 세 작품에 투자한 액수가 많군. 이유라도 있나?”

“직감이랄까요? 현실이 된 보드 게임, 외계인 침공에 맞서는 인류의 용기에 대한 찬가, 난파선에 얽힌 아련하고 애틋한 로맨스. 왠지 모르게 구미가 당기더군요, 하하.”

이번 투자의 트로이카는 ‘쥬만지’와 ‘인디펜던스데이’, ‘타이타닉’이었다.

헨리를 설득해서 세 영화에 배정한 두 회사의 투자금은 쥬만지 2천만 달러, 인디펜던스데이 2천 5백만 달러, 타이타닉은 초기 제작비 1억 5천만 달러 중 8천만 달러였다.

너스레를 떨며 웃자 헨리가 피식 웃었다.

“조니 자네, 영화에 푹 빠졌군, 하하.”

“집안 내력입니다, 헨리. 증조부님 때부터 흑백영화 필름이나 LP판을 모으고 있고 회사 차원에서도 문화 관련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소를 띠던 나는 삼청동 본가 지하에 있는 수장고가 생각났다.

온도와 습도가 자동으로 조절되고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그 수장고에는 찰리 채플린, 비비안 리, 오드리 햅번 등이 출연한 영화 필름에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등의 LP판이 보관과 감상 용도로 하나씩 있었다. 증조부님 때부터 축적된 이 컬렉션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내 말을 듣고 헨리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 문화 사업, 컬렉팅 때문에 시작한 건가?”

“그렇습니다. 해외법인에 오더를 넣고 증조부님과 할아버지가 사재를 털어 모으면서 시작됐는데 어느 새 사업이 되어버렸죠. 돌아가신 부모님 노래도 음반으로 제작했고요.”

그 때문에 출판문화사업부는 극장 사업을 통해 딱 적자만 면할 만큼만 굴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헨리 덕분에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게 됐으니 점차 배급과 투자도 하고 나중에는 가요계에도 투자할 생각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타 연주, 어머니의 목소리를 남겨준 사업이 아닌가?

부모님 얘기가 나오자 헨리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을 하면서 부모를 기리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지. 그래서 한국 배급권을 원한 거였군.”

“그런 것도 있지만 외국 영화가 많이 들어오면 국내 영화계에도 자극이 되고 양질의 영화들이 나올 테니까요.”

클레어를 바라보듯 푸근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던 헨리가 입을 열었다.

“이번 투자 집행 때 클레어와 함께 할리우드 사람들을 미팅시켜주겠네. 앞으로는 자네가 직접 투자해보게.”

“헨리?”

눈을 동그랗게 뜬 나를 보며 헨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온 세월이 세월인지라 가능성만 보고 투자하는 영화 산업은 안 맞는 것 같네. 객관적인 지표가 없으니 여간 골머리가 아픈 게 아니야.”

“그러셨군요.”

역시나였다. 자동차, 중장비, 우주항공, 반도체, 통신, 석유화학, 산업설비, 여기에 각종 금융기업들의 주식에 폭넓게 투자하는 트라이엄프 캐피털의 수장이 아닌가? 헨리는.

“차라리 조니 자네한테 내 사재를 맡기는 게 나을 것 같네. 자네 같은 겜블러라면 원금은 안 잃을 게 아닌가, 하하.”

“감사합니다, 헨리.”

나는 미소를 머금고 헨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년부터 만들 시네마 펀드에서 헨리의 개인재산을 알차게 불려주면 충분히 보답될 것이다.

***

헨리의 저택에서 호텔로 돌아온 나는 며칠 간 출근 시각과 퇴근 시각에 맞춰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은 뒤, 공성필과 일식집에서 만났다.

“미행, 없더군요.”

“칼을 꽂으려 한 놈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도련님? 저, 그렇게 멍청한 놈 아닙니다, 하하.”

공성필은 자신 있게 말하고 껄껄 웃다가 내 옆에 있는 박태진의 싸늘한 눈초리에 찔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눈을 내리깐 그에게 필름 통들을 건네줬다.

“믿어보죠. 하루에 아침 한 장, 저녁 한 장씩 섞어서 보내면 의심받지 않을 겁니다. 보낼 때 실수하지 마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일처리 실수는 절대 없습니다, 도련님.”

공성필 요놈은 이제 나를 거리낌 없이 꼬박꼬박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돈이면 애비 애미도 바꾼다는 말은 이놈에게 딱 맞을 것이다.

나는 공성필의 굳은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뒤, 그의 잔에 사케를 채워줬다. 여자 문제를 빼면 일처리는 괜찮았던 사람이니 잘 해낼 것이다.

“좋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뵙도록 하죠. 좋은 정보 있으면 연락해줘도 좋습니다. 사례금은 정보의 가치에 맞게 드리죠. 전번에 드린 계좌에요.”

“가, 감사합니다, 도련님!”

공성필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회사 정보를 팔아먹으면 꼬리표 없는 돈을 아무도 모르는 조세회피처 계좌에 꽂아주겠다고 했으니 오죽할까 싶었다.

“안녕히 돌아가십쇼!”

폴더 인사를 하는 공성필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박태진과 함께 발코니에 기댄 채 병 맥주를 마셨다. 기네스의 진한 풍미가 오늘 따라 착착 달라붙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도련님.”

“고생은요. 제가 선택하고, 제가 결정한 길인데. 책임도 제가 져야죠.”

앞으로도 난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으로 책임만 지다 끝난 비참한 삶은 죽음의 심연에 닿았을 때 끝난 일이니까.

빙긋 웃은 나는 밤하늘을 보며 맥주를 홀짝거렸다. 박태진은 그런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도련님이 공성필을 다루는 걸 회장님께서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하하.”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해야 하는 법이죠, 하하.”

적이 될 놈이라면 내 곁에 두고 관리하는 게 훨씬 낫다. 언제든 날 배신할 기미가 보이면 심장을 쥐어짤 것이다.

***

다음 날 아침부터 나는 다시 스탠더드 캐피털에 출근하며 월가의 치열한 삶에 젖어들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장내투자 종목 선정이었다.

“이 종목 모두 투자하실 계획입니까, 도련님?”

클레어의 대표이사실 옆에 마련된 방에서 간부회의를 하던 나는 맞은편에 앉아 서류를 보던 박태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퀄컴, 시스코 시스템즈, 오라클, 아메리카 온라인, 베스트바이, ASML,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스타벅스, 코스트코, 타깃, 에르메스 등에 집중해야겠어요.”

나만 아는 대박종목이지만 현재 수익률이나 전망도 나쁘지 않기에 박태진뿐만 아니라 클레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서도 퀄컴은 꽤 주목할 만할 거야. 기존의 GSM 방식보다 CDMA 방식이 훨씬 더 핸드폰 음질이 좋다고 하니까.”

“게다가 조니가 찍은 종목들 모두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 정책과 맞물리는 종목들이 많습니다. IT산업 전후방 섹터의 종목들이니 투자가치는 충분합니다.”

“물론, 스타벅스나 코스트코, 타깃, 에르메스는 예외지만 소비관련주이기 때문에 수익률을 방어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밖의 종목에 대해 다른 간부들도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나는 원탁에 둘러앉은 모두를 보며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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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 투자 외에도 우리는 구찌 측과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그 계약서에는 기존의 한국 사업권에 두 가지가 덧붙여져 있었다.

[향후 구찌가 OEM, ODM을 개시할 경우, 스탠더드 캐피털에서 투자할 업체에 OEM, ODM을 전부 맡긴다. 단, 해당 업체가 기존의 패션업체들에게서 OEM을 받았을 경우에 한하며 수익은 구찌 60, 해당업체 40으로 나눈다.

구찌 및 산하 브랜드들의 중국 본토 및 일본, 동남아시아 유통은 해동물산에 일임한다. 수익률 배분은 구찌 50, 해동물산 50으로 나눈다.]

16억 달러의 위력 덕분일까, 구찌의 기존 소유주였던 인베스트콥에서는 추가조건까지 흔쾌히 받아들였다. 덕분에 클레어와 톰 포드, 도미니코 데 솔레 등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투자 계약서에 서명했다.

“오, 조니!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

투자협정 이후의 리셉션에 나간 나를 톰 포드가 반겨줬다.

“이 옷, 맘에 드는 데요?”

내가 입고 온 옷은 내가 보내줬던 스케치를 토대로 톰 포드가 디자인해서 선물해준 첫 번째 윈저 정장이었다. 어깨를 으쓱한 나를 보며 톰 포드가 미소를 띠었다.

“조니 같은 핏을 가진 남자는 드무니까요. 우락부락하지도 않고 날렵한 역삼각형 라인이니 옷이 조니를 입은 거겠죠? 후후.”

기분 좋은 코웃음을 치며 톰 포드가 나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 순간 온몸에 닭살이 쫙 돋았다.

‘나, 임자 있는 몸이에요. 톰.’

어색하게 웃는 내게 톰 포드가 물었다.

“그런데, OEM 업체는 어딜 생각하는 겁니까, 조니?”

“비밀이에요, 톰.”

‘젠느(sienne)’라고 알지 모르겠네. 8년 전에 도나카란 핸드백 OEM을 뚫고 쾌속항진 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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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한국은 최초의 지방선거가 끝났다.

“우리가 이번에 뿌린 돈이 얼마라고 했죠?”

“실장님께 듣기로는 여당에 3백억, 제 1야당에 150억, 제 2야당에 100억이라고 들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문에 여당에서 대구경북 지역을 놓쳤다는데···.”

아귀지옥 같은 대한민국 정치판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박태진에게서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정말요?”

“예, 도련님. 이번에 해동건설에서 대구 지하철 2호선 공구를 낙찰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해동종금은···.”

저번에 할아버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종금사 최초로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국 주요도시에 지점을 냈다는 소식까지 들으니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휴우-, 그 정도면 선거비 뿌린 보람이 있네요. 대구경북이야 여당과 유착된 정치인들 텃밭이니 미련은 없어요.”

해동종금의 전국 14개 지점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숫자를 더 늘려서 시중은행과 맞먹는 종금사를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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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식을 나는 박태진과 함께 축배를 든 뒤, 캘리포니아로 넘어갔다. 건장하고 잘생긴 남자끼리 로우라이더를 몰고 산타모니카 해변의 비키니 입은 미녀들을 꼬시러 갔냐고?

천만에. 피부색이 제각각인 남자들과의 미팅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만난 건 잡스였다.

토이스토리 최종판을 보는 내내 잡스에게서 한 템포 빠른 스포일러를 당했던 나의 불쾌함은 잡스의 제안에 깨끗이 사라졌다.

“상장이요?”

“토이스토리 상영 일주일 뒤에 상장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조니 생각은 어때?”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픽사는 토이스토리 상영 일주일 뒤에 나스닥에 상장되니까.

“좋아요. 그런데··· 존 라세터와 만나도 될까요?”

“작품 관련 피드백?”

“아뇨. 스티브 당신만큼 제일 고생한 양반인데 선물 좀 주려고요, 후후.”

음흉한 미소를 띠던 나는 잡스를 통해 존 라세터를 1대 1로 만났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존.”

“아닙니다, 조니. 당신이 스티브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으면 그 빌어먹을 제프리 손아귀에서 고생했을 겁니다, 하하.”

소탈하게 웃는 걸 보면 사람은 괜찮은데 왜 그랬을지 모르겠다. 나는 라세터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픽사 스톡옵션 2천만 달러입니다. 그간 고생하신 것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 스탠더드에서 지급하는 겁니다.”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보던 라세터는 서류를 빠르게 읽었다.

“사생활 추문을 일으키면 사건이 드러난 시점의 주가의 열 배로 스탠더드에 배상할 것?”

표정이 굳은 라세터를 보며 나는 빙긋 미소를 띠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생활 추문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밑에 나와 있을 겁니다.”

서류를 보던 라세터의 표정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 양반 설마?

매의 눈으로 째려보자 라세터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조니! 약속드립니다!”

“그럼 빨리 그 계약서에 서명하세요. 당신은 픽사에 없으면 안 될 사람이니까요.”

라세터는 부리나케 계약서에 사인을 넣었다.

성추행 문제만 일으켜봐라, 국물도 없을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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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에서의 미팅을 마치고 만난 파트너들은 야후의 세 남자들이었다.

“제리, 데이비드!”

“조니! 미스터 박!”

우리 넷은 서로를 반갑게 부르며 포옹을 나눴다. 야후를 창업한 동지들이 아닌가? 포옹을 마친 나는 옆에 있던 손정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손.”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조니.”

정중히 서로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악수를 나눈 우리는 피자와 콜라를 먹으며 중요한 이야기를 나눴다.

“야후 상장, 언제하면 좋을 것 같습니까?”

손정의가 입에서 우물거리던 피자를 삼키고 던진 질문에 나는 콜라를 마시며 머리를 굴렸다.

“각자 상장을 원하는 연도와 월을 적어서 손바닥에 써서 보여주는 게 어떨까요?”

“하하하! 그거 재밌겠군요. 두 분은 어떻습니까?”

껄껄 웃던 손정의의 질문에 제리와 데이비드도 씩 웃으며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우리는 곧바로 펜을 꺼내서 손바닥에 날짜를 적었다.

“하나, 둘, 셋!”

셋에 맞춰 손바닥을 편 우리는 서로의 손바닥을 확인하고 박장대소했다.

“하하하하!”

기묘한 장난이었는지 과거를 아는 나뿐만 아니라 손정의, 제리, 데이비드 모두 1996년 4월을 적었다. 이 양반들, 설마 전생에도 이런 식으로 상장시기 정한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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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엔비디아였다.

엔비디아 사옥에 도착한 나와 박태진은 젠슨 황과 통성명을 한 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투자를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요, 젠슨?”

“그렇습니다, 조니. 처음에 우리 회사에 호의를 베풀어주신 걸 생각하면 염치가 없지만 스탠더드처럼 좋은 투자회사도 없어서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게 됐습니다. 이번에 연구하는 GPU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요, 젠슨. 당신이 만들 지포스(G-FORCE)는 세계 최고의 그래픽 카드라니까?’

어떻게든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일념이 가득한 젠슨 황의 설명을 듣던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면서도 입 밖으로는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침음성을 흘리던 나를 보고 젠슨이 말했다.

“이번에 투자해주시면 향후 파운드리 물량 70퍼센트의 배정권은 스탠더드에 맡기겠습니다.”

“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파운드리 물량 70퍼센트를 나한테 주겠다고?

나와 박태진이 눈을 껌뻑이는 가운데 젠슨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스탠더드가 그런 조건으로 거액을 투자해주지 않았다면 주주들의 간섭이 심했을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또 도움을 받으면 안정적으로 회사를 키우게 될 텐데 그 정도 보답은 해드려야죠.”

혹자는 작년의 내 엔비디아 투자를 호구나 병신처럼 여겼겠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은 본성이 글러먹은 놈이 아닌 이상 어렵고 힘들 때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법이다. 후한 조건으로 투자한 보람이 있다 여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1억 불, 투자하도록 하죠. 그 1억 불로 추가될 지분의 의결권도 젠슨 당신에게 넘기겠습니다.”

“조니?”

얼빠진 표정으로 날 부르는 젠슨 황에게 나는 미소를 띠었다.

“당신도 우리에게 파운드리 배정 물량을 더 늘려줬으니 우리도 보답해야죠. 앞으로도 좋은 관계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조니!”

나는 젠슨에게 손을 내밀었고, 젠슨도 내가 내민 손을 굳게 잡았다. 이게 바로 기브 앤 테이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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