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21st. 지피지기 (4)
공성필.
전생에 신성물산 상사부문 사장까지 올라갔다가 여비서와의 혼외자식 문제가 터지면서 그간의 성폭행 문제에 규정 이상의 환치기까지 털어서 이수한과 내가 자른 놈이다.
그러면서도 나를 뒤에서 흉보고 앞에서도 무시하던 놈들 중 가장 질 나쁜 이 자식이 벌벌 떠는 꼴을 보며 마음껏 비웃어줬다.
“하루도 안 거르시더군요. 그 내연녀가 들어갔다 나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어휴, 애팔래치아 산삼이라도 달여 드시는 겁니까? 그렇게까지 떡 치면 어디가 됐든 땡땡해질 텐데, 흐흐.”
나는 손가락으로 손을 꼽다가 과장되게 한숨을 내쉰 뒤, 공성필을 비웃어줬다. 공성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게 변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 꺼냈다.
“귀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도 많은데 패스하죠. 사람들 많은 밥집에서 틀. 어. 주. 기. 에는 남사스러우니까, 후후.”
자신이 부른 콜걸과 떡을 치며 낸 색소리까지 녹음한 자료도 있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겨주니 공성필이 말을 더듬거렸다.
“워, 원하는 게 뭐야?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말까지 더듬으며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치는 공성필에게 차갑게 쏘아붙였다.
“닥쳐, 이 새끼야. 넌 지금 나한테 코 꿰였어. 분위기 파악 안 돼?”
“으으···.”
공성필은 나를 노려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다른 그룹 오너 가문 사람이라도 조카뻘 되는 놈한테 쌍욕에 반말까지 들으니 얼마나 분하겠나.
하지만.
그건 지 사정이지 내 알 바가 아니다. 나한테 거머리를 붙인 주제에 어디서 쫀쫀하게 쳐다보나? 나는 공성필을 노려보며 쿵 소리가 나게 책상을 내려쳤다.
“눈깔에서 힘 안 빼? 지금 이 자리에서 묻는 건 나야. 험한 꼴 보기 싫으면 묻는 말에나 대답해!”
스물다섯 이성민에서 오십대의 이성민으로 변하면서 날을 세우자 공성필도, 박태진도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나는 공성필을 노려보며 물었다.
“누구야? 누가 시켜서 날 쫓은 거지?”
“그, 그게···.”
“누군지 맞춰볼까? 장수연? 아니면··· 황나연 여사님? 두 사람도 아니면 황현성 조국일보 회장님이나 그 동생 분들?”
말끝을 흐리며 내 눈을 피하던 공성필이 입을 떡 벌렸다. 얼빠진 표정으로 할 말을 잊은 그를 보며 식탁을 쿵 내리쳤다.
“대답해. 어서!”
“네, 네!”
엉겁결에 대답한 공성필은 앞에 놓인 물 컵을 비운 뒤, 한숨을 내쉬었다.
“···황나연 여사님께서 지시하신 일입니다.”
“왜지?”
“아가씨 물 먹인 놈 망신거리 줄 거 찾으라고 해서···.”
백화점에서 장수연이 내게 본모습을 들킨 일 때문일 것이다. 집에서 그 난리를 쳤다는 걸 듣고 느낌이 쌔했는데···.
말끝을 흐리던 공성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쿵 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식탁에 박고 소리쳤다.
“살려주십시오! 회장님 귀에 들어가면 전 죽습니다!”
“내가 왜? 뭘 믿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비아냥거리자 공성필은 고개를 번쩍 들고 간절하게 날 바라보며 외쳤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그 말, 어떻게 믿지?”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공성필은 부리나케 핸드폰을 빼들고는 볼륨을 최대치로 키워서 번호를 눌렀다. 누구한테 하려는 전화일까 지켜보던 중 공성필이 입을 열었다.
“공성필입니다, 사모님.”
[오늘은 어때요?]
핸드폰 수신부에서 황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용한 룸 잡고 녹음기 가져오는 거였는데··· 이놈을 끌어들이려고 룸을 약속장소로 잡았으면 의심하고 안 왔을 테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공성필은 입술을 깨문 나,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박태진의 살기등등한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이성민이,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사무실에서 일만 하고 있습니다.”
[사실인가요?]
“예. 아스토리아 호텔 일반 객실에 머물고 있는데 매일같이 해동 쪽 사람들이 객실 검사를 합니다. 도청장치 설치는 불가능할듯합니다.”
일반 객실을 예약한 걸 알았나 싶어 인상을 쓰고 노려보자 공성필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 자식 순발력은 꽤 알아주는 편이었으니 임기응변을 발휘한 것 같았다.
핸드폰에서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한숨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도청은 포기하죠. 그래도 내 딸한테 모욕 준 놈이니 동선은 확실히 파악해둬요. 혹시나 사고 치면 바로 연락하고.]
“예. 알겠습니다.”
공성필은 통화를 마친 뒤, 녹음을 못한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내게 말했다.
“뉴욕에 계시는 동안에는 사모님께 평범하다고 보고하겠습니다. 일주일마다 한국으로 사진을 보내라고 했는데 적당히 찍어서 넘겨주시면 알아서 처리하죠. 미행도 없을 거고요.”
입 속의 혀처럼 구는 재주 덕분에 사장 자리를 꿰찬 놈답게 공성필은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짚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뚝뚝하게 물었다.
“그 말, 어떻게 믿죠?”
“이미 제 목줄을 틀어쥐고 계시잖습니까? 그리고··· 도련님 부친께서 회장님 절친이셨으니 언제든 연락하실 수 있잖습니까?”
천하의 공성필이 이렇게 쩔쩔 매면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거리는 모습을 보니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전생에 나를 얼마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던 놈인가?
그래도 성에 차지가 않았던 나는 살기를 누르며 당장이라도 공성필을 씹어 먹을 듯이 말했다.
“황나연 여사님 쪽 그룹 임원 명단, 전부 내놔요.”
“예?”
공성필이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자기 심장을 뽑아서 손에 쥐겠다는 게 아닌가?
“선수끼리 뭘 그렇게 놀라죠? 당신이 허튼 짓 하면 회장님한테 보내야죠.”
“그래도 그건 좀···.”
좀 강하게 나간 건데 이래도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니 채찍방법은 안 통하는 모양이다. 나는 잠깐 뒤로 물러섰다.
“싫으면 관두고요.”
아쉬울 거 없다는 듯 말한 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당근, 당근이면 통할 거다. 천하의 공성필도 탐내할 그런 당근 말이다.
이래저래 갈등하는 기색을 보고는 포켓에서 꺼낸 파커 듀오폴드 만년필을 볼링공 치듯 굴려 던진 뒤, 통장 하나도 던져줬다.
“이 정도면 당신도 관심이 생길 겁니다.”
“이게 뭡니까?”
“케이맨 제도 로열뱅크 오브 캐나다에 뚫은 통장입니다. 꼬리표 깔끔히 뗀 돈이라서 먹어도 탈 안 날 겁니다.”
공성필은 통장을 펼치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처, 천만 달러?”
“신성에서 잘려도 몇 대에 걸쳐 먹고 살만큼은 될 겁니다. 적어준 자료는 묻어두도록 하죠. 당신이 뒤통수치기 전까진.”
갈등이 심할 때는 칼과 약을 모두 써야 한다. 칼로 쑤실 만큼 쑤셔놨으니 상처를 꿰매주고 약을 발라줄 차례였다. 이놈을 내 애완견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천만 달러나 되는 거금도 아깝지 않았다.
공성필은 꼼짝할 수 없는 덫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차피 죽은 목숨인데 살아날 구멍에다가 돈까지 찔러주니 지가 버티겠어?’
속으로 비웃던 나는 몇 번 더 공성필을 압박하고 달콤한 말을 흘리기를 반복하며 그를 구슬렸다. 평생 놀고 먹어도 될 만큼의 돈 때문인지 공성필은 결심을 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저라도 거부할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대신에 약속은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쪽이 배신하지 않는 한.”
내 대답에 공성필은 애처로운 눈길로 나를 보더니 이내 결심한 듯 펜 뚜껑을 따고 황나연 쪽에 붙은 인사들의 이름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
한편, 황나연은 공성필의 보고를 받고 못마땅한 표정을 한 채 팔짱을 꼈다.
“샌님 같은 놈, 사내새끼가 돼서 회사에서 일만 한다고?”
자기 아들들이 그런다면 둘도 없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자기 딸을 물 먹이고 남편이 데려온 계집과 놀아나는 놈이 그러니 약이 바짝 올랐다.
한숨을 내쉰 황나연이 시계를 바라봤다.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였다.
“12시면··· 빨리 준비시켜야겠네.”
방을 나선 황나연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발이 멈춘 곳은 장수연의 방 앞이었다.
“수연아, 일어나야지? 오늘 선 보는 날이야. 네가 보겠다고 고집 부렸으면서 지금까지 자면 어떡하니?
“우우웅···.”
장수연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기지개를 켰다.
“바뻐, 얘. 곧 있으면 머리하고 화장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자고 있을래?”
“알았어요, 엄마.”
장수연은 툴툴 거리면서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머리를 말린 그녀는 출장 헤어 디자이너와 메이크업 디자이너의 손길을 받으며 화려하게 변해갔다.
두 시간에 가까운 출장 메이크업이 끝나자 디자이너가 황나연에게 말했다.
“다 됐습니다, 사모님.”
“수고했어요. 그런데··· 너무 튀지 않아요?”
장수연은 자신을 훑어보고 디자이너들에게 되묻는 황나연을 보며 말했다.
“엄마도 참. 이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에요. 잘 꾸미고 나가야죠. 올라갈게요.”
방에 올라간 장수연은 단아해 보이는 원피스를 입은 뒤, 클럽에 갈 때나 입을 법한 훅 파인 블라우스와 쫙 달라붙는 가죽스커트를 옷가방에 넣고 지하차고로 내려갔다.
차를 타고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녀는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옷가방을 카운터에 맡겨두고는 힐튼 호텔에 있는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장수연 씨죠?”
장수연은 자신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뚜쟁이들이 보여준 프로필 사진처럼 어깨도 넓고, 키도 크고, 얼굴선도 뚜렷했다.
“네. 박남준 씨?”
“네.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장수연 씨.”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새로 시킨 커피를 식탁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님께서···.”
“무진 로펌의 박무진 대표변호사십니다. 신성그룹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규모는 아니지만 찾아주시는 클라이언트들 덕분에 먹고 살고 있습니다.”
박남준의 소탈한 소개에 장수연은 그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싱긋 웃어줬다.
“박무진 변호사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저희 아버지만큼이나 이 나라에서 힘쓰는 분이잖아요?”
무진 로펌은 민우 로펌과 더불어 국내 로펌의 양강이고 그 설립자인 박무진은 법조계의 장호건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손에 쥔 부는 몰라도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력만큼은 아버지 못지않은 사실은 장수연도 익히 알고 있었다.
“장호건 회장님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있는 분입니다. 그런 분에 비하면 저희 아버지는 그저 평범한 변호사죠, 하하.”
호구조사마냥 집안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 중 장수연이 화제를 틀었다.
“과일 뭐 좋아하세요? 저는 복분자 좋아하는데.”
“과일이라··· 예?”
말을 되씹던 박남준이 크게 뜬 눈으로 장수연을 바라봤다. 복분자라니?
장수연은 박남준을 짓궂은 미소로 바라보며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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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제정신이냐? 박남준이라고?”
“그래, 수연아. 엄마가 봐도 그놈은 아닌 것 같다. 하고 많은 놈들 중에 왜 박남준이니?”
장호건과 황미연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장수연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왜요? 법조계의 종마라서요?”
“알면서 묻는 거냐? 그 자식, 이 나라 사람들은 몰라도 하버드 로스쿨 유학 때···.”
“알고 있어요. 연말 파티 때 여자 다섯 녹다운 시켰다면서요?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요.”
장호건은 자기 말을 잘라먹고 자신이 반대하는 이유를 또박또박 말하는 둘째 딸을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 자식, 여자라면 똥오줌을 못 가리는 놈이다. 그자식이 붙어먹은 여자의 국적만 표시해도 이미 세계지도를 다 칠한 놈이란 말이다! 그런 놈을 애비 사위로 받으라고?”
“그러니까요. 신성그룹에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글로벌 기업으로 크려면 사위도 글로벌한 경험이 있어야죠?”
“너, 너···!”
장호건은 눈을 똑바로 뜨고 말대답하는 장수연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치던 중 눈을 질끈 감고 다른 손으로 뒷목을 주물렀다. 딸이 반반하고 힘 좋은 남자라면 환장하는 건 알고 있지만 하다하다 어찌 그런 난봉꾼을 골랐단 말인가!
장수연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뭐, 꼭 그런 거 때문에 고른 건 아니에요.”
“저, 저···!”
“능력하고 배경이 더 좋아서 고른 거니까.”
눈을 치켜뜨고 목소리를 높이던 장호건은 딸의 이어지는 대답을 듣고 눈을 껌뻑거렸다. 능력과 배경이라면?
장수연은 아버지의 가라앉은 노기를 읽고 말을 이었다.
“무진 로펌, 신성그룹 법무실보다 승소율 높은 곳이에요. 그런 로펌이면 우리 집 경비견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
길길이 날뛰던 장호건이 장수연의 반문에 눈을 껌뻑거렸다.
“흐음···.”
장호건은 그대로 턱을 매만지며 침음성을 흘렸다. 박남준에게 하자가 없거나 박무진에게 다른 아들, 그것도 반듯한 다른 아들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장수연을 그 집 며느리로 보냈을 테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저, 다른 집안하고는 결혼 못해요. 재계의 쌍년이라고 소문 다 났잖아요.”
“그러게 그렇게 놀고 다니라고 했니? 조신하게 굴었으면 좀 좋아?”
황미연은 사실대로 말하는 딸 때문에 속이 타들어갔다. 장하연처럼 일에 파묻혀 살았더라면 좋은 혼처를 알아봤으련만 남성편력 때문에 뚜쟁이들도 죄다 10위 바깥의 재벌이나 고만고만한 졸부들의 자제들만 물어오지 않았나?
“그. 러. 니. 까. 제가 뿌린 씨, 제가 거둔다고요. 기껏해야 우리 집안보다 훨씬 처지는 집안들일 텐데 그런 데 며느리 되는 건 사양하고 싶어요.”
장호건은 딸이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려 한다는 걸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물어보마. 후회 안 할 자신 있겠냐?”
“네. 그 사람이 바람피우면 저도 맞바람 피죠, 뭐.”
장호건이 침음성을 멈추고 소파 팔걸이를 내려쳤다.
“그 말, 기억해 두거라.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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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연은 당황한 박남준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내숭 그만 까죠?”
“수연 씨?”
“나, 재계에서 쌍년이라고 소문난 년이에요. 지금까지 내 손 안 거친 배우, 가수··· 못 생긴 애들 빼고 손에 꼽혀요. 남준 씨 집안 정도면 나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텐데요?”
박남준은 이 건방진 여자의 뻔뻔한 고백에 화를 내지도, 소리를 치지도 못했다. 자신도 장수연이라는 여자보다는 그 뒤에 있는 신성그룹을 바라보고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나?
장수연은 입술을 움찔거리던 박남준에게 제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는 알 거예요. 남준 씨가 얼마나 힘 좋고 테크닉 좋은 남자인지 아니까. 오죽하면 법조계의 종마라고 불리겠어요?”
박남준은 자신의 별명을 태연하게 씹어뱉는 장수연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집안에서 부쳐준 풍족한 돈으로 후리고 다닌 년들의 입을 싸물게 만들었건만 신성그룹이 왜 신성그룹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한숨을 내쉰 그가 썩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서로 가면 벗고 솔직하게 얘기하죠. 어떱니까? 장. 수. 연. 씨?”
“바라던 바예요. 박. 남. 준. 씨.”
이유는 몰라도 어딘가가 심하게 뒤틀어진 두 남녀.
그 둘이 서로가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