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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67화 (66/229)

67화. 21st. 지피지기 (2)

나는 내 앞에 온 백인남성을 살펴봤다.

‘전직 군인 출신인가?’

호텔 매니저 복장이었지만 박태진 못지않게 단단해 보이는 몸, 옷이 미처 가리지 못한 목덜미 쪽의 칼자국을 보니 로이스 가문의 경호원 같았다.

“보스가 보냈습니까?”

“예. 말씀하신 대로 호텔 로비와 도로 쪽에 준비됐습니다.”

“좋아요. 데스크도 조치했죠?”

“물론입니다. 조니의 한국 이름으로 일반 객실도 예약해뒀고 펜트하우스 전담 직원들에게도 5만 불씩 현금으로 팁을 줬습니다. 물론, 조니의 계좌에서 인출한 돈이지만요.”

클레어에게 부탁한 일이지만 계획에 없는 지출은 불쾌함을 일으키는 일이다. 그 돈이면 지금 주가 기준으로 퀄컴이나 스타벅스 주식 수천 주를 살 텐데··· 언제든 어떻게든 이번 일로 쓴 돈 이상을 뽑아내리라 벼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보안이 중요하니까.”

“호텔 측에서 비밀을 누설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로이스 가문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데스크부터 가시죠.”

데스크에 간 우리는 나를 쫓는 놈들이 보란 듯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인 뒤, 호텔 키를 넘겨받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미팅 앞두고 잡친 기분, 도착할 때까지 추슬러야 할 텐데···.

***

이성민과 박태진이 백인 남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 로비 테이블에 앉아서 잡담을 주고받던 남자 둘 중 곱슬머리 백인 남성이 웃음을 멈췄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포마드 머리의 남성도 입을 다물고 일어났다.

데스크로 간 둘 중 곱슬머리가 물었다.

“방금 전 데스크에 온 동양 남자 둘, 어디에 묵는지 알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이시죠?”

“사업 제휴 때문에 제안할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광산 관련 개발 건으로 제안할 게 있어서 왔다고 전해주시면···.”

명함을 꺼내서 내밀던 그는 데스크 직원이 올린 손을 보고 입을 닫았다.

“죄송하지만 해당 고객님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거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쉽지만 로비에서 기다리시는 게 좋으실 것 같군요.”

곱슬머리의 남성은 데스크 직원의 정중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미간에 줄이 생겼다. 옆에 있는 포마드 머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그는 가방에서 돈 뭉치 하나를 꺼냈다.

“5천 달러요. 어딘지만 알려주면···.”

“이런 방식은 곤란합니다, 고객님. 우리 호텔은 이용객들의 프라이버시가 우선입니다.”

데스크 직원은 단칼에 곱슬머리의 말을 잘랐다. 창립 이래로 수대에 걸친 VVIP 고객의 오더인데다 현금 5만 달러를 팁으로 받았으니 5천 달러 따위로 흔들릴 수는 없었다.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두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호텔 밖으로 나갔다.

“빌어먹을. 지들 두 달 치 월급인데 이걸 거절해?”

“뭔가 있어. 보아하니 큰 건 같은데 미스터 공한테 착수금을 더 달라고 해야겠군.”

투덜거리던 곱슬머리는 포마드 머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리에 세워둔 차에 올라탔다.

차를 타는 그들의 모습을 그들의 등 뒤 편에 있던 남자가 지켜보고는 뒤돌아서서 이어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확인 완료. 차량 번호 2P23D. 맞나?”

[라저. 1시간 동안 주인어른과 아가씨 친구 분을 쫓아다닌 차량이다.]

“라저. 절대 놓치지 말 것.”

이어 마이크를 내려놓은 남자는 점점 작아지는 택시의 꽁무니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

띵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우리는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여기가 펜트하우스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내리는 층과 그 위층 전부가 로이스님의 펜트하우스죠, 하하.”

껄껄 웃는 경호원 앞에서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이 비싼 건물에 펜트하우스가 있는 것도 놀랐는데 세 층 전부가 펜트하우스라니···.

박태진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한국어로 말했다.

“도련님도 대한민국 최고 부자 가문의 장손이십니다. 회장님께서 지켜보신다고 생각하십시오.”

박태진의 격려를 받으니 어깨와 가슴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 채 복도를 걸었다.

복도 양쪽에 진열된 온갖 조각상과 도자기, 석판, 갑옷부터 동서양의 오래된 회화들부터 현대 회화들을 보니 플라자 호텔에 마련한 객실을 놔두고 이곳을 미팅장소로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참을 걷던 나는 클레어의 앞에 마주 서서 그녀와 간단히 포옹을 나눴다.

“오랜만이에요, 클레어. 도와줘서 고마워요.”

“고맙긴. 친구끼리 돕고 사는 거지. 오느라 고생했어.”

“대단하네요, 클레어.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차마 쪽팔리는 이야기를 영어로 할 수는 없어서 백인 남자가 못 알아듣게 한국어로 소감을 털어놨다. 클레어는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박물관이라고 생각해. 수고했어요.”

“예, 아가씨.”

백인 남자가 자리를 비켜주자 클레어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폈다.

“그럼, 가볼까?”

“그러죠, 후후. 형은 잠시 쉬세요.”

“예, 도련님.”

나는 박태진을 다른 방으로 보낸 뒤, 이브 생 로랑에서 맞춘 양복의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클레어와 함께 방 안으로 걸어갔다.

방에 들어가자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옆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 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니.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마스 칼라일 포드입니다.”

“구찌의 CEO 도미니코 데 솔레입니다.”

입가와 턱을 덮은 진한 수염자국과 짧은 머리, 선이 굵은 얼굴을 실제로 보니 왜 톰 포드, 톰 포드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남자가 봐도 Real Bad-Ass가 아닌가?

“만나서 반갑습니다, 존 데이비슨 리입니다. 조니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하하.”

감탄을 숨기고 간단한 소개를 한 뒤, 손을 내밀자 내 손을 본 톰 포드의 눈이 반짝거렸다.

“불가리군요. 남자 분들은 소화하기 힘든 물건인데.”

오른손에 채워진 뱅글 팔찌를 보고 말한 그를 보며 빙긋 웃고는 왼손으로 팔찌를 매만졌다.

“제 연인과 맞춘 선물입니다. 그녀의 마음을 훔친 죄로 저 스스로 그녀와 찬 사랑의 수갑이죠.”

“위트가 남다르시군요. 사랑의 수갑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말끝을 흐리던 톰 포드가 미소를 보였다.

“불가리 뱅글만큼 매혹적인 사랑의 수갑도 없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조니 같은 남자를 체포했다면 대단한 분일 것 같습니다.”

“그 사람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과 악수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사람한테 잡혀보겠다고 노력했더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품고 톰 포드와 악수를 나눴다. 혹여나 애인이 있다는 뉘앙스의 내 대답에 언짢아할까 걱정됐는데 악수를 나누는 손에서 기분 좋은 힘이 느껴지는 게 스타트는 좋은 것 같았다.

이어서 도미니코 데 솔레와도 악수를 나눈 나는 소파에 앉아서 직원들이 가져다 준 홍차를 마셨다. 홍차에서 잔잔하게 느껴지는 코냑의 풍미가 찌꺼기나마 남아있던 안 좋은 기분을 말끔히 씻겨줬다.

“조니를 보니 왜 그런 스케치가 나온 지 알 것 같습니다. 미스 로렌스가 그런 주문을 할 만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미스터 포드. 왠지 모르게 당신에게 그 스케치를 보내드리고 싶더군요. 직감적으로요.”

예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대충 얼버무렸지만 톰 포드는 오히려 그런 내가 맘에 드는 것 같았다. 그의 눈꺼풀이 잠시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걸 보면 말이다.

“직감으로 그런 결정을 하셨다니 더더욱 놀랍군요. 그럼 우리 제안을 들으시고 그 이면에 숨겨진 목적까지 맞춰보셨으면 합니다, 하하.”

“퀴즈는 즐거운 놀이죠. 그럼 문제를 들어볼까요?”

톰 포드의 퀴즈 제안에 빙긋 웃는 나를 보며 도미니코 데 솔레가 말문을 텄다.

“우리 구찌에서는 스탠더드 캐피털에 8억 달러의 유상증자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기존 주식의 50퍼센트를 추가로 발행해드리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유상증자를 통해 33.3퍼센트의 주주로 받아주겠다는 내용을 듣자마자 이들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찬찬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구찌의 세계를 더 넓히고 싶으신 거군요.”

“우리 결정이 틀리지 않은 것 같군요. 당신과 미스 로렌스가 보낸 스케치를 보고 대화가 통할 거라 생각해서 왔는데 이 자리만큼 즐거운 미팅은 없을 것 같습니다.”

껄껄 웃던 톰 포드가 홍차 한 모금을 축이고 말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우린 구찌의 세계를 넓히고 싶습니다, 조니. 당신이 입은 이브 생 로랑이나 팔에 찬 불가리도 그 세계의 일부로 만들고 싶고요.”

예상대로였다. 톰 포드는 구찌가 프랑스의 PPR에 인수된 뒤로도 여러 브랜드의 인수합병을 주도했는데 이번 생에서는 나로 인해 그 텀도 빨라지고 규모도 커질 것 같았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순간 눈이 커졌다. 상표를 안 보고도 이브 생 로랑인 걸 알아채다니?

“야망도, 안목도 대단하군요. 훌륭한 제안입니다, 미스터 포드.”

톰 포드를 추켜세워 준 나는 어느 새 마시기 좋게 식은 홍차를 쭉 비웠다.

“잠시 인터미션을 뒀으면 합니다. 본 협상은 30분 뒤에 하죠.”

***

30분 뒤.

톰 포드는 나와 클레어가 내민 투자제안서를 받아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신의 목적이 뭡니까, 조니?”

“16억 달러씩이나 제시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도미니코 데 솔레도 혀를 내둘렀다. 돈을 더 태우고 기존 발행 주식과 똑같은 양의 주식을 달라고 할 줄은 몰랐겠지. 나는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보며 말했다.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에게서 예술의 세계를 지키려는 거죠.”

“베르나르 아르···.”

담담한 내 대답에 톰 포드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리다 말았다.

‘하긴, 그 양반이 사치품업계의 볼드모트 같은 존재니까 얼마나 꼴 보기 싫겠어.’

전생에 세계 최대의 사치품 제국을 만든 남자의 이름을 부르다 만 톰 포드. 적개심인지 혐오심인지 몰라도 부정적인 감정이 묻어나는 그의 목소리에 이어 대화를 이어갔다.

“그 늙은 늑대는 마구잡이로 양떼들을 물어뜯고 있습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해도 도가 지나치죠. 과도한 하청생산, 브랜드 아이덴티티 파괴··· 끝도 없을 겁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톰 포드는 알 것이다. 본인의 개성을 입히느라 브랜드 가치를 정도 이상으로 훼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흐음···.”

톰 포드는 얼굴이 굳었지만 침음성만 흘렸다.

투자액수도 투자액수지만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펜디, 아자로, 몬타나, 크뤼그, 태그 호이어, 불가리 등 전생의 그들이 인수했거나 인수하지 못한 브랜드 목록을 친절히 깔아놓지 않았나? 우리가 건네준 제안서에.

도미니코 데 솔레도 마찬가지였다. 브랜디를 넣은 홍차를 마셨어도 얼굴이 지나치게 달아올라 있었고 수시로 목울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구찌의 재정을 챙겨야 하는 사람이니 16억 달러라는 거액을 무시하지 못한 것 같았다.

클레어는 두 사람이 품고 있는 걱정을 지워주려는 것처럼 싱긋 미소를 띠었다.

“자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16억 달러를 구찌에 투자해도 30억 달러가 넘는 현금이 있으니까요. 증시에 투자해둔 주식도 계속 상승 중이고요.”

옆에서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와 달리 두 사람은 크게 뜬 눈으로 클레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보던 나는 옆에 있던 클레어와 눈으로 사인을 주고받은 뒤,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어떻습니까? 우리 스탠더드를 구찌의 세계에 초대하겠습니까?”

도미니코 데 솔레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치고 말했다.

“당장 답해드리기 어렵습니다. 한국 시장에 대한 수수료율 책정권과 출점권, 1999년 12월 IPO 등은 기존 투자자인 인베스트콥과 협의해야 합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답해달라고 부탁드린 게 아닙니다. 기존 투자자 분들과 협의하고 결정하셔야죠. 그리고···.”

말끝을 잠시 흐리던 나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말했다.

“투자 협정만 성사되면 우리 측 요구사항을 제외한 경영은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 다만 두 분 모두 두 분의 짐을 나눌 후계자들을 키우는 데도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스탠더드 또한 그런 인재들을 찾는 데 손을 보태겠습니다.”

톰 포드가 떠난 뒤, 구찌 그룹은 그의 공백을 메우려고 4인 체제로 바뀌었었다. 할 말은 많지만 그 네 사람으로도 톰 포드의 출중한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는지 구찌의 실적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등판할 때까지 추락했었다.

아무튼.

한 사람이 모든 걸 다하는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톰 포드와 도미니코 데 솔레 콤비만큼 출중한 이들이 각 브랜드에 한 쌍씩은 버티면서 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살려야 장수할 수 있으니 반드시 주문해야 할 내용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톰 포드는 도미니코 데 솔레와 눈을 마주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거대한 세계를 혼자서 지탱할 수는 없으니 두 분 제안을 새겨듣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초대장을 보내드리죠.”

“초대장,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톰 포드와 도미니코 데 솔리는 우리 둘과 악수를 나눈 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을 받고 아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클레어가 긴장이 훅 풀린 듯 한숨을 내쉬며 몸을 벽에 기댔다.

“16억 달러, 정말로 투자할 거야? 회장님께 효도한다고 해도 무리하는 거 아냐?”

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미소 짓던 클레어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불안해하는 그녀와 달리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해동백화점에 구찌 입점 시키려고 투자하려는 거였는데 두 사람 만나고 나니까 생각이 바뀌었어요. 두 사람이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더 멋지게 그려줄 거예요. 나는 돈이 있고, 그 사람들은 영감(靈感)이 있으니까요.”

내 대답에 클레어가 가볍게 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조니 감각이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 믿고 배팅할 수밖에. 저번에 보여줬던 럭셔리 펀드는 폐기하는 거지?”

백화점 전세쇼핑 이후에 있었던 일을 되짚으며 묻는 클레어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제안서에 들어있던 브랜드들, 전부 럭셔리 펀드에 담으려고 했던 브랜드들이잖아요. 두 사람한테 공을 넘겼으니 알아서 잘하겠죠, 후후.”

클레어는 빙긋 미소를 띤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조니도 참 지독해. 두 사람한테 럭셔리 펀드 운영하라고 시킨 거구나?”

“어쩔 수 있나요. 의욕이 넘쳐서 만들긴 했어도 그거까지 챙기기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데. 두 사람도 즐거워하는 일이니 그걸로 됐다고 봐요.”

삭막한 고속도로보다는 꽃과 나무가 드리워진 시골의 국도에서 사람냄새가 나지 않겠나. 돈과 복수만으로 도배하기보다는 나중에 돌아보면 잘했다 싶은 일들도 만들고 싶었다.

톰 포드와 도미니코 데 솔레는 꿈과 명예를 잡고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되면서 돈을 챙기니 이보다 더 좋은 윈윈이 어디 있을까?

빙긋 웃으며 클레어를 바라보던 나는 딱 한 가지만 주문했다.

“에르메스 주식만 우리 쪽 계정으로 매입해두세요. 지분 매입 끝나면 뒤마 가문에 연락해서 의결권하고 한국 쪽 사업권만 바꾸자고 하고요.”

다른 시장은 필요 없다. 한국만 내 손에 쥐고 흔들어도 훗날을 위한 포석 하나를 깔아놓는 셈이니까.

중요한 일 하나는 좋게 처리됐으니 나머지 일만 처리하면 될 것 같다. 얼마나 진도가 나갔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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