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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58화 (57/229)

58화. 18th. 뿌린 대로 거둔다기엔 (4)

며칠 뒤.

할아버지와 고승주에게 연락을 넣고 한국행 비행기를 탄 우리 셋은 이태원 집에 도착해서 짐을 푼 뒤, 지하차고로 내려갔다.

“많이 쌓였네요.”

“벌써 4개월이잖습니까. 연말에 들어와서도 손을 안 대셨으니 어쩔 수 없지요.”

차에 소복이 쌓인 먼지만큼 해낸 일도 많았지만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게 피부에 와 닿고 있었다. 먼지를 닦은 우리는 차를 타고 삼청동 본가에 들어갔다.

“오느라 고생했어. 여독도 못 풀었을 텐데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형님. 우리처럼 종이장사 하는 놈들이야 유목민처럼 살잖수, 흐흐.”

선해철은 고승주의 얼굴을 보며 여유 있게 웃어보였다.

그의 말대로 그나 나나 유목민처럼 살아갈 것이다. 그저 그런 양치기가 아니라 세계를 뒤흔드는 칸으로서 살겠지만 말이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백부님.”

“그래. 어서 가자. 회장님 기다리신다.”

응접실로 들어간 우리 셋은 할아버지에게 큰절부터 올렸다.

“다녀왔습니다, 회장님.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아버지.”

“만리타향에서 일하느라 욕 봤다. 어여 앉어.”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리에 앉은 우리는 고용인들이 가져온 녹차를 마셨다.

“이번에 보성 다원에서 처음 딴 이파리로 덖은 거다. 향도 좋고 맛도 좋을 게야.”

다원에서 일하는 분들이 일일이 손으로 딴 찻잎을 정성껏 덖어 만든 유기농 녹차는 정말 끝내줬다. 적당히 쌉싸름한 맛과 싱그러운 향이 피로회복제가 따로 없었다.

선해철은 잔을 내려놓고 미소를 띠었다.

“제 보스도 좋아할 것 같네요, 하하.”

“그렇지 않아도 해철이 네가 모시는 양반한테 갖다드리라고 한 상자 챙겨뒀다. 서양 양반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만 노인네 선물이라고 말하고 건네 줘, 허허.”

껄껄 웃던 할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녹차와 다과를 모두 비우고서야 무거운 이야기로 넘어갔다.

“너희들 덕분에 묶인 돈을 풀었으니 고맙단 말부터 하마. 다들 욕 봤어.”

“아닙니다, 할아버지. 로렌스 대표가 도와줘서 쉽게 성사됐습니다.”

할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저번에 봤을 때도 여장부라고 생각했는데··· 잘 모시고 배우거라. 미스 로렌스 몫으로도 한 상자 챙겨 놨으니 전해 줘.”

껄껄 웃는 할아버지를 보니 속에서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클레어가 내 대리인인 걸 알면 기절하실 테니 웃지는 못하고 겸손히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오냐. 돈 문제는 해결됐으니 다른 걸 물어보마.”

올 것이 왔다는 걸 예감한 우리는 할아버지의 이어지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너희들 오기 전에 정부와의 관계 조정을 두고 고 실장이나 배 대표, 태 대표, 조 대표, 그리고 이 사장과 얘기했었다. 우릴 지들 돈주머니 취급하는 저놈들하고 그대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말이다. 성민이 네 생각은 어떠냐?”

역시나였다. 하늘보다 높은 자존심 때문에 지난 십여 년의 시궁창 같던 시간 동안 경영인으로서 겨울잠을 청했던 분이라 그런지 이번 정권에게 당한 수모가 뼈에 사무친 것 같았다.

더 말할 게 있나.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밀어줘야 합니다, 할아버지.”

“한 번 더 밀어줘라··· 이유를 말해 보거라.”

대답하기에 앞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본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확인하고 넘어가야 했다.

“할아버지, 해동건설에서 경상도 쪽 공사도 맡고 있습니까?”

“경상도? 그건 왜 묻는 게야?”

“작년부터 쭉 해동건설이 관급공사도 맡고 안전 용역도 맡고 있잖습니까. 정부 여당 텃밭인데 그쪽 입김이면···.”

눈을 껌뻑이던 할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내 말을 끊었다.

“영호남 갈라치기로 청와대 가져간 놈들이다. 우리 덕분에 성수대교, 아현동 사고 다 막았어도 지들 텃밭까지 내줄 성 싶으냐? 미룡그룹, 청수그룹 할 것 없이 그 동네 놈들이 여당에 발라준 돈이 얼만데?”

맞는 말이다. 지금의 여당은 ‘초원 복집 사건’으로 지역감정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고, 대구경북 기반의 미룡그룹, 청수그룹은 여당의 돈줄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놈들이 이젠 우리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 들고 있다. 네 숙부가 막은 사고마다 지들 치적이라고 떠벌리더니 일본에서 벌어온 돈까지 우려내려 들지 않더냐? 그 돈을 한고그룹 버러지들에게 밀어주려는 건 또 어떻고?”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회귀자로서 나 혼자 떠안은 문제에 대한 답이 나왔다.

‘더 이상 바뀌면 안 돼. 여기서 잘라내야겠어.’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 내가 멈춰야겠다.

도쿄에서의 그날 이후로 회귀자로서의 같잖은 위선과 양심 따윈 집어던지고 내 욕망이 가리키는 대로 달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서 떠들어봐야 씨알도 안 먹혀. 세상 사람들에게 난 조금 유별난 재벌가 후계자일 뿐이니까.’

이번 생에서의 내 본모습을 모두 아는 건 선해철과 박태진뿐이다. 그들마저도 내가 회귀자라는 건 모르고 있다. 그러니 ‘다가올 비극’은 나만 묻고 가면 아무도 모른다.

“괜히 여쭤봤네요.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일부러 침울한 표정을 짓고 대답한 뒤,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내게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할 거 없다. 그쪽 공사 없어도 손이 부족하다고 네 숙부가 하소연해서 하반기 공채도 늘리기로 했어, 으허허.”

나를 위로해주는 것처럼 들리는 웃음소리에 그 같잖은 양심이 또다시 일어났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젠장.

껄껄 웃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헌데··· 경상도 관급공사는 왜 물어본 게야?”

“예?”

“지금 내가 물어본 건 정부와의 관계 조정이다. 네 숙부 사업이 왜 나온 게야?”

이런!

미래의 일은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데 할아버지 촉이 너무 좋았다.

얼마 후에 터질 대형 참사는 이제 나로서도 손을 쓸 수 없다. 나는 재빨리 내 뒤를 쫓아오는 그 같잖은 양심과 할아버지의 촉에게서 도망칠 문을 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전라도라고 경상도에 못 들어갈 수는 없잖습니까? 제대로 된 장사꾼이라면 어디서든 장사해야죠, 하하.”

“흐음···.”

할아버지는 여전히 날 뚫어지게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괜히 물어봤다. 젠장.

할아버지가 턱을 만지던 손을 내려놨다.

“맞다. 진또배기 장사꾼이면 사적인 감정은 던져버리고 돈을 벌어야지, 으허허.”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그러니 채권 매각을 미끼로 해동건설의 경상도 진출과 해동종금 추가 출점을 거래했으면 합니다.”

“호오···.”

할아버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고, 고승주도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여세를 몰아서 더 밀어붙여야겠다.

“해동건설은 성수대교 사건 이후로 브랜드가치가 높아졌고 해동종금만 해도 타사의 열 배가 훨씬 넘는 자본금에 대출 회수율도 높습니다. 선거자금을 밀어주는 조건으로 두 사업을 더 키워야 합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고승주를 불렀다.

“고 실장 네 생각은 어떠냐?”

“이 사장이나 조 대표님 의견을 들어봐야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회장님.”

고승주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내리며 말하고 있었다.

그룹 중공업계열의 전방 견인차인 해동건설의 사업영역이 늘어나면 시멘트, 제강, 중공업도 클 수 있다.

여기에 그룹의 은행인 해동종금의 영업망이 넓어지면 자산 규모를 불려서 계열사에 제공할 수 있는 대출한도도 늘어난다. 그룹 살림을 도맡는 사람이니 고승주는 휘파람을 불고 싶을 것이다.

할아버지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지 주름이 펴진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채권 팔고 나면 자네가 만나서 선거자금 찔러줘. 한 5월이면 적절하겠구먼. 선거에 불이 붙을 테니, 흐흐.”

이번 지방선거는 처음으로 실시되는 선거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상징성 때문에라도 죽을힘을 다해 맞붙을 터.

할아버지는 가장 치열할 때 저울추를 얹을 것 같았다. 먼저 배팅한 곳들도 뭉갤 만큼 꼬리표 없는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분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감사는 무슨. 한순간의 화를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고 했어. 우리 장손 인내심이 쇠심줄 같으니 할애비 마음이 든든하구나, 허허.”

할아버지 웃음소리를 들으니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없었다. 이번 일도 테스트였단 말인가?

“할아버지?”

“모처럼 만에 들어왔으니 푹 쉬거라. 네놈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게 아니냐? 흐흐.”

할아버지는 나처럼 당황한 기색을 못 감추는 선해철과 박태진을 보며 낄낄 웃었다.

그러고 보니 장하연 얼굴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안배를 뒀다니··· 할아버지 배려도 있으니 지금은 장하연에게 집중해야겠다.

***

이대수는 세 사람을 물린 뒤, 고승주를 보며 껄껄 웃었다.

“고놈 참 신통방통하단 말이야. 어찌 내 속을 저리도 꿰뚫어보고 있누?”

“어지간한 점쟁이들도 성민이 앞에서는 명함을 못 내밀 것 같습니다, 하하.”

“담배나 술은 몰라도 정치꾼과 공무원들은 쉽게 끊으면 안 되는 법이지. 엽전 한 푼 더 쥐여 주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구먼, 으허허.”

두 사람은 이번 거래로 그룹의 사업을 키우기로 결정했었다. 이성민의 깜냥을 보고자 답안지를 정해놓고 해답을 가져오게 했는데 그룹의 세 축 중 빛을 못 보고 있던 해동종금까지 키우자는 건 120퍼센트의 모범답안이었다.

“안목도 안목이지만 해철이가 모신다는 헨리라는 사람과 딜을 하다니··· 대단합니다, 하하.”

“무슨 거래를 주고받았는지는 몰라도 그런 거물까지 구워삶은 걸 보면 미국서 일하게 해주길 잘한 것 같네, 으하하.”

호탕하게 웃던 이대수가 웃음을 그치고 입술을 뒤틀었다.

“이번 일 마무리 지으면 슬슬 그룹에 끌어들이고 싶은데··· 그리 똘똘한 놈을 말단부터 내돌릴 수도 없으니 환장하겠구먼.”

이대수는 내심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당장이라도 본사에 임원 사무실을 내주고 싶어도 대대로 내려온 ‘후계자의 관례’를 깰 수는 없었다. 이성민만 자신의 핏줄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스탠더드 캐피털에 한국법인을 내달라고 요청하기도 꺼림칙했다. 지난 엔고투기에 스탠더드 캐피털이 함께 한 걸 세 그룹이 알고 있으니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그대로 둘 수밖에 없겠군. 그래도···.”

이대수가 말끝을 흐리며 손톱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뭔가 고민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연말 되면 지분정리 준비하게. 물산이 쥔 중공업 계열사 지분부터 지주사로 분리해. 그리고···.”

새로 만들 중공업 지주사와 해동종금의 지분 50퍼센트는 해동물산이 보유하고, 이명진에게는 중공업 지주사, 이성민에게는 해동종금 지분의 나머지 50퍼센트씩을 주라고 했다.

“회장님?”

고민을 마친 이대수의 지시에 고승주는 진심이냐고 되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해동그룹은 지배구조도 깔끔하고 오너 가문의 지분이 압도적이라 눈 깜짝할 새에 지분정리가 끝난다. 그러나 이대수의 지시대로 지분을 정리하면 해동물산을 지배구조 최상단에 두는 것에 불과했다.

‘회장님이시면 깔끔하게 분리해서 넘겨주실 텐데···.’

수십 년이나 이대수의 곁을 지켜온 고승주도 이번만큼은 이대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본인 나름의 선에 대해 맺고 끊음이 확실한 양반이 아닌가?

이대수는 고승주의 의아한 눈길을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바람이 심상치가 않아서 그러네.”

‘바람’이라는 말에 고승주의 표정이 바뀌었다.

“바람이라 하시면···?”

“이 나라 안팎에서 부는 바람 말이네.”

그때서야 고승주는 이대수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았다.

“경제위기가 올 거란 말씀이십니까?”

이대수의 굳은 얼굴을 보고 고승주가 마른침을 삼켰다. 10여 년을 누워있었지만 이 나라 재계에서 누구보다 통찰력이 넓고 깊은 이대수의 말이니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었다.

“국민소득 1만 불 만든다고 외환보유고 풀어서 환율 끌어내리고 정택주 그 쓰레기한테 수천억을 또 밀어주고··· 아도그룹은 분식만 1조가 훨씬 넘잖나. 양놈들하고 쪽발이들이 지난달에 엔화 값 깎기로 작당한 건 또 어떻고?”

그때서야 고승주는 이대수가 뭘 염려하는지 깨달았다.

“그러겠군요. 우리나라는 속이 썩고 있는데 일본은 역 플라자 합의로 환율이 회복될 테니까요.”

“엔화 환율이 회복되면 우리는 미국 시장에서 일본을 절대 못 이기네. 그런데도 너 나 할 것 없이 흥청망청하니 걱정이군.”

극단적인 비약이지만 남들이 낙관할 때 최악을 대비했기에 해동그룹은 지금껏 살아남아왔다. 그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왔기에 이대수도 고승주도 지금이 가장 위험하다고 여겼다.

“허면···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선제조치이신 겁니까?”

“어쩌겠나? 나라살림 거덜 나면 금뱃지건 공무원이건 윗대가리들과 만날 일이 많아질 텐데. 그렇다고 두 녀석이 윗대가리들까지 선이 닿아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나설 수밖에.”

경제위기가 닥치면 재벌들은 정관계와 공조해야 살아남는다. 부채관리에 철저한 해동그룹이라도 보험 하나는 더 확보해둬야 안전이 보장되니 고승주는 이대수의 뜻을 모두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통지는 언제 하면 되겠습니까?”

“여야 양쪽에다 선거자금 건네준 다음에 알리게.”

뒤로 물러나 자식과 손주가 홀로 서서 크는 걸 보고 싶어도 나라 안팎의 꼴 때문에 이대수는 가장 노릇을 놓을 수 없었다. 고승주는 이대수의 고뇌를 읽고 그 뜻을 받들 뿐이었다.

***

집에 돌아온 나는 헛웃음을 짓고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회장님께서 괜히 기인이라 불리는 게 아니야. 그래도 점수 한 번 더 땄으니 축하한다, 흐흐.”

선해철은 날 보며 낄낄 웃었지만 언제까지 시험이 계속될지 모르겠다. 적어도 해동종금은 올해 안에 물려받아서 튼실한 돈줄로 만들어야 하는데···.

다른 소파에 앉은 박태진도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도련님 나이에 벌써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만들었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십시오. 지금처럼만 가시면 언젠가는 회장님처럼 큰 산이 되실 겁니다.”

“고마워요, 형.”

박태진의 말을 들으니 조바심이 가라앉았다. 한결 가벼워진 내게 박태진이 중요한 일을 상기시켜줬다.

“모처럼 만에 돌아오셨으니 회장님 말씀대로 하시죠. 벌써 못 본지 석 달이 훨씬 넘지 않았습니까? 많이 서운해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겠어요. 연말에 보고 통 못 봐서 안 삐졌을지 모르겠네요.”

듣고 보니 장하연이 걱정됐다. 석 달 넘게 미국에서 일하느라 연락 한 번 못했으니 얼마나 서운해 하고 있을까?

선해철은 박태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물었다.

“대체 여자친구가 누구길래 그래? 너 같은 놈 남자친구로 뒀으면 어지간해서는 고무신 거꾸로 못 신을 텐데?”

박태진은 고개를 갸웃하는 선해철을 보고 피식 웃었다.

“글쎄요, 형님. 누군지 아시면 놀라실 텐데요?”

“누군데 그래? 동업자한테 비밀 만드는 거 안 좋아? 나하고 클레어 관계도 안 놈들이···.”

우리 삼촌, 삐지기 전에 얼른 말해줘야겠다. 어디 가서 동네방네 떠들 양반도 아니고 남도 아니니.

“하연 누나요.”

“하연 누나? ···너?”

선해철이 크게 뜬 눈으로 날 쳐다봤다.

떠올리기 싫은 일, 삼촌 놀란 모습 보면서 덮어버려야겠다. 내 머릿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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