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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56화 (55/229)

56화. 18th. 뿌린 대로 거둔다기엔 (2)

그 말을 끝으로 이대수는 네 사람을 보내고 고승주만 응접실에 남겨뒀다.

“청와대 놈들, 우리한테만 삥 뜯을 놈들이 아니다. 다가올 선거 때문에 우리 같은 놈들을 아랫것 다루듯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게야. 대통령이 북경 갔을 때 강택민(江澤民)이 앞에서 빳빳이 고개 세웠잖나. 아현동에서도 열심히 사진 찍었고.”

정초에 있었던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과의 회담 때 현직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있다.'라며 해동그룹과 신성, 태현, GK의 일본 엔화 공격을 자랑스레 떠벌렸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해 12월에 해동건설에서 잡아낸 아현동 가스배관 부실시공 현장에는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납셔서 온갖 아는 체를 하며 보여주기 식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토록 여당과 청와대가 쇼맨십에 혈안이 된 건 오는 6월 말에 치를 지방선거 때문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눈깔 돌아가는 놈들이니 오죽하겠냐마는 처음 치르는 지방선거라고 완전히 정신줄을 놔버린 것 같더군. 외교 현장에서 그 따위로 하면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에잉, 쯧쯧.”

혀를 차는 이대수의 얼굴에는 경멸과 혐오가 가득했다. 아무리 그래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의 뒤통수를 갈긴 일인데 조용히 덮어도 모자랄 판에 중국 주석 앞에서 대놓고 엔고투기를 자랑하다니!

고승주 또한 정치권에 대한 한심함을 숨기지 않고 이대수에게 말했다.

“회장님 말씀대로 선거철에 제정신인 정치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기려면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족속들이 아닙니까?”

“그렇지만서도··· 신성, 태현, GK는 어찌됐나? 청와대가 우리한테 이런 짓거릴 할 정도면 세 집도 만만치 않게 피 봤을 텐데?”

고승주는 질문이 나오기만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청와대 경제수석한테 들었는데 이번에 번 돈의 반절로 기존 대출을 상환하라고 했답니다. 세 그룹 모두 따르기로 했고요.”

“뭐라? 대출상환?”

믿을 수 없었다. 드러난 덩치가 해동보다 더 큰 세 그룹이 뭐가 아쉬워서 청와대에 굴복했단 말인가? 이대수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고 고승주에게 물었다.

“공짜로 그랬을 리는 없을 테고··· 뭘 해주겠다고 했나?”

“자신들이 지정한 금융회사들이 빌려준 돈을 갚으면 다른 곳에서 대출받을 때 금리혜택을 주겠다고 했다는데··· 대출을 갚으라고 지정한 곳들이 석연치 않습니다, 회장님.”

말이 끝나자마자 고승주는 서류 하나를 이대수 앞에 펼쳐 놓았다. 책상에 있던 돋보기안경을 가져다 준 건 물론이었다.

“조흥, 제일, 한일, 상업···.”

안경을 쓴 이대수가 중얼거리듯이 서류에 나온 금융회사들의 이름을 읽다가 인상을 구기며 서류를 툭 던졌다.

“더 볼 가치도 없구먼. 청와대 주인장 아들내미하고 한고그룹 정택주가 작당한 게지?”

해동그룹과 명동 사채조직의 정보망을 한 손에 움켜쥔 이대수다. 하루하루 온갖 정보들을 받아보는 그에게는 고승주가 가져온 몇 개의 단서만으로 모든 그림이 보이고 있었다.

“명단에 들어간 금융사 대표들과 정택주 회장, ‘소통령’을 비롯한 여당 실세들이 요즘 들어 회동이 잦다고 합니다. 아마도 각 금융기관별 여신한도 때문에 신성, 태현, GK 세 곳에 대출 상환을 독촉했을 겁니다.”

고승주가 말한 건 이대수도 예측하고 있었다.

금융권에서 가장 많은 돈을 빌린 세 그룹의 대출을 일부라도 회수하면 해당 금융기관에는 대출여력이 생길 게 터.

고승주는 그렇게 여유가 생긴 대출한도를 한고그룹이 다 삼킬 거라 보고 있었고 의견을 들은 이대수 또한 그리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안 좋은 소식은 아직도 더 있었다.

“또한, 산업은행에서 조만간 후순위채를 발행할 거라고 합니다. 정부에서 우리에게 국고채를 팔고 받은 돈으로 후순위채를 인수할 것 같은데···.”

“그 돈으로 늘릴 산업은행 여신한도까지 정택주 아가리에 처넣어주겠다?”

고승주는 이대수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걸 보고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 겁니다. ‘소통령’을 비롯한 여당 실세들 모두 정 회장한테 보통 받아먹은 게 아니니까요. 선거가 코앞이잖습니까?”

환투기일지언정 회사의 운명을 걸고 벌어온 천금 같은 돈이다. 자신이 벌어온 돈을 뜯어다가 재벌놀이에 눈이 뒤집힌 한고그룹을 밀어주겠다니? 꽉 쥔 이대수의 주먹 위로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한참동안 부들부들 떨리던 이대수의 주먹이 멈췄다. 그의 얼굴색도, 눈빛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놔둬. 정치꾼하고 붙어먹은 놈들 건드려봐야 좋을 거 없네. 우리도 장부 메우고···.”

말끝을 흐리던 그가 입을 열었다. 뭔가 결심을 한 것 같았다.

“고 실장아.”

“예, 회장님.”

“스탠더드에 연락해. 내 새끼 깜냥 좀 시험해보자.”

이대수의 얼굴은 손자가 부릴 재롱을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

미국에서의 일을 마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탠더드 캐피털과 해동그룹 관련 사업 자료들도 챙겨놨으니 오늘 밤 비행기만 타면 됐다.

“또 가는 거야?”

“가야죠. 한국도 제가 뛰는 무대니까요.”

아직은 스탠더드 캐피털 한국법인을 세울 수 없으니 태평양을 오가며 내 살림과 집안 살림을 챙겨야 했다.

클레어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 사이 그녀가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Hello, this is claire··· 아, 네. 알겠습니다, 미스터 고.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클레어가 수신부를 손으로 막고 내게 말했다.

“고승주 실장님이야. 너 바꿔 달라고 하는데?”

‘갑자기 이 양반이 왜 전화했지? 무슨 일 생겼나?’

전화를 건네받은 나는 목소리 톤을 낮추고 말했다.

“연락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백부님. 회사 일이 워낙 바빠서 그만···. 네. 저희 쪽은 정산 끝났습니다. 본가는 무탈하죠?”

[후우-,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할아버지와 나 중 누가 더 많은 칩을 땄나 궁금해 하던 중 고승주의 한숨소리를 듣고 뒤통수가 싸해졌다. 헨리 쪽에서 분명히 계약대로 한국 물주들에게 수익을 분배해줬을 텐데?

“무슨 일 있나요, 백부님?”

[그게 말이다. 청와대에서···.]

고승주는 내가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들려줬다.

“6천억이요?”

[그래. 우리는 배팅이 컸으니까 꽤 많이 남았는데 태현, 신성, GK는 죽 쒀서 개줬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존파 사건이네 뭐네 했어도 명진이 덕분에 시설 사고는 안 났는데 여당 놈들, 선거 때문에 미친 것 같구나.]

그 말을 듣고 순간 휘청거렸다.

원래대로면 할아버지는 일선에서 물러나 당신 가실 날만 기다렸을 분이다. 여기에 여당은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 각종 안전사고 때문에 레임덕이 가속될 운명이었다.

어느 정도 감안했지만 내가 바꿔버린 두 줄기의 운명들이 환장스럽게 꼬여서 나비효과를 일으킬 줄이야··· 잠시 멍했던 나는 고개를 흔들고 수화기에 말했다.

“국고채 문제 처리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실장님. 돌아갈 때까지 유예해달라고 전해주십시오.”

혹여나 할아버지가 여당과 등을 돌리면 아직도 산더미 같은 해외사업 진출에 차질이 생긴다. 직면한 문제부터 처리하고 한국에 돌아가서 말려야겠다.

전화를 끊자 선해철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6천억이라니? 헨리 쪽에서 계약대로 수익 분배해줬잖아? 국고채는 또 뭔 소리야?”

통화하는 내내 날 바라보면서도 꾹꾹 참다 이제야 내지른 선해철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옆에 있던 박태진도, 클레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부에서 우리그룹 분식 정리하는 거 조용히 처리해줄 테니까 국고채 인수하라고 했대요. 10년 만기에 연이율 8퍼센트라는데··· 지방선거 때문에 삥 뜯긴 것 같다고 하네요.”

내뱉듯이 말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합법적인 거래로 만들려고 다른 재벌들을 끌어들이고 트라이엄프를 선수로 내세워서 엔고 배팅에 나섰건만 오는 6월에 다가올 지방선거를 간과했다.

선거철만 되면 돈이 급한 정치꾼들이 아닌가? 한고그룹은 그 틈을 노려 선거자금을 먼저 찔러주고는 그놈들을 시켜 우리 돈을 우려낸 거다. 빌어먹을.

그 뒤로도 고승주에게서 전해들은 국내 상황을 알려주자 세 사람 모두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분식회계는 다른 놈들이 더 많이 했어. 억지로 장부 맞추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뜯어낸 돈을 다른 놈한테 빌려줘? 이건 어느 나라 경우냐?”

선해철은 소리치는 와중에도 얼굴이 구겨졌고···

“형님 말이 맞습니다, 도련님. 적어도 3,4천억은 정부에 뜯길 텐데 이건···.”

박태진은 기가 막힌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으며···

“말도 안 돼! 테두리 안에서 설계된 거랜데 어떻게 정부에서 그런 짓을 해? 한국 대통령, 미친 거 아냐?”

미국인인 클레어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이제 겨우 군바리들 쫓아냈을 뿐이에요, 클레어. 진짜 민주정치가 시작되려면 아직도 멀었어요.”

지금 대통령은 반독재투사였지만 권위주의적인 면까지는 버리지 못했다. 측근들은 그 대통령을 믿고 우리 집안에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거다.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반으로 쪼개죽일 놈들.

클레어도 목소리를 높이다가 내 얼굴에 깔린 씁쓸한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돈을 뜯긴 것에 분노만 하면 할아버지를 뵐 낯이 없다.

집안을 일으키겠다고, 그렇게 일으킨 집안의 힘으로 복수와 사랑을 쟁취하겠다고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이 짓거리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을 정리하려고 마른세수를 하던 나는 얼굴을 문지르던 손을 떼고 말했다.

“클레어, 헨리하고 약속 좀 잡아줘요.”

“국고채 때문에 그렇지?”

“어떻게든 현금으로 회수해야죠. 다른 데 투자하면 벌이가 더 좋을 텐데.”

폭풍이 불어 닥칠 때까지 햇수로 3년, 아니 2년 반 정도 남았다. 앞으로 높아질 원 달러 환율을 생각하면 국고채에 묶일 수천억 원을 달러로 바꿔서 해동그룹의 히스파니아를 넓히는 게 남는 장사다.

클레어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Okay, Just a moment.”

클레어는 핸드폰을 들어서 번호를 눌렀다.

“네, 아버지. 조니가 사업 때문에 만났으면 한다고 하네요. 어떠세요? 네. 알겠어요. 네.”

헨리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보니 관계가 많이 회복된 것처럼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전화를 끊은 클레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주말 저녁 때 보자고 하셨는데 괜찮지? 정산하고 한 번도 못 봤다고 식사부터 하자는데?”

클레어의 밝은 미소를 보니 얘기가 잘 풀릴 것 같다. 그래도 공짜는 없으니 거래를 해야 한다면 기꺼이 하겠다.

***

며칠 뒤, 토요일 저녁.

차를 타고 헨리의 저택에 도착한 우리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헨리를 보고 재빨리 차에서 나와 인사를 올렸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헨리?”

“잘 지내다마다. 조니 자네 덕분에 요즘 같기만 하면 바랄 게 없다네. 들어가서 식사부터 하세, 하하.”

헨리는 숙였던 허리를 세운 나와 악수를 한 뒤, 식당으로 우릴 안내해줬다.

유럽 왕실이나 귀족들의 저택에 있을 법한 긴 식탁에 앉은 우리는 고용인들이 손수레로 가져와서 세팅해주는 코스요리들을 먹었다. 와인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푸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헨리는 와인 한 모금을 마신 뒤, 냅킨으로 입을 닦고 말했다.

“이번 일로 회사 안팎에서 나와 내 파벌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네. 조니 자네에게 뭐라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조지 소로스가 가져갔어야 할 ‘요카이(妖怪, 요괴)’라는 별명을 가져갔을 만큼 엔고투기의 최대승자가 된 헨리.

헨리와 그의 파벌은 수익분배 과정에서 해동그룹과 신성, 태현, GK그룹이 보유했던 트라이엄프 캐피털 전환사채까지 거둬들였다.

‘헨리도 보통 강심장은 아니란 말이지.’

헨리는 이번 배팅 때 자신의 모든 개인재산을 우리 집안과 세 그룹에게 발행한 전환사채를 비롯한 모든 자금 조달 보증에 썼었다. 나야 성공할 걸 알고 있었지만 헨리로서는 오로지 나의 계획과 클레어, 선해철을 믿고 배팅한 것이었다.

아무튼.

이번 엔고투기는 트라이엄프 캐피털의 이름 하에서 헨리와 그 휘하 물주들의 돈으로만 진행된 일이다. 헨리와 그의 파벌은 엔고투기 수익금으로 전환사채를 전부 거둬들여 주식으로 바꾼 덕분에 내부 투쟁에서 고지를 점했다.

“축하드립니다, 헨리.”

“축하는 무슨. 다 조니 자네나 내 딸, 내 친구, 그리고 미스터 박이 도와준 덕이지. 자! 한 잔 더 들지.”

헨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옆에 대기하고 있던 소믈리에가 천으로 감싸 쥐고 있던 로마네 콩티를 듬뿍 채워줬다. 벌써 두 병째 마시고 있었는데 해마다 1만 병도 생산되지 않는 귀한 술을 물처럼 마시고 있었다.

서로를 둘러보며 각자가 든 잔을 살짝 기울인 우리는 와인을 비웠다.

달큰하면서도 자극적인 향에 코가 반해버렸고,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농밀하고 힘이 넘치는 질감에 미뢰 하나하나가 환희에 겨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정말 훌륭하네요. 괜히 마법의 와인이라 불리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하.”

“조니 자네, 투자 감각에 미각까지 뛰어나군. 맘에 들면 내 저걸로 한 궤짝 챙겨주겠네, 하하.”

헨리의 미소를 보니 우리 집안 문제는 식사를 마치고 얘기해도 될 것 같다.

***

그렇게 우리는 헨리와 주거니 받거니 정담을 나누며 식사를 마치고 응접실로 가서 코냑을 마셨다.

“밥 먹는 자리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아서 이제야 묻는군. 무슨 사업 때문에 보자고 한 건가?”

“본가 소식을 들었는데 대한민국 국고채를 인수할 것 같습니다.”

모노클 너머로 보이는 헨리의 눈이 번쩍거렸다.

“대한민국 국채라··· 수익률이 어떻게 되나?”

“연이율 7퍼센트에 만기는 10년입니다. 규모는 원금 기준 4천억 원이고요.”

헨리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갸웃하고는 코냑으로 입술을 축였다.

“수익률은 나쁘지 않은데··· 자네가 팔고 싶다니 이상하군. 한국 정도의 나라가 발행한 국채는 자산운용의 베이스가 아닌가?”

자산운용을 축구로 치면 한국 정도의 나라가 발행하는 정부 채권은 골키퍼나 수비수다. 그럼에도 몇 년 뒤면 그 골키퍼와 수비수가 제 임무도 못하고 병신이 될 터라 빨리 방출해야 했다.

사실을 말할 수 없던 나는 화제를 돌렸다.

“내년이 미국대선이죠? 벌써부터 월가 자본들이 민주당과 클린턴에게 줄을 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네. IT 투자 덕분에 일자리도 늘고 경기도 좋아지고 있으니 연임이 유력하잖나. 도박꾼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걸세.”

미국 대선은 돈의 향연이다. 양당에서 공식적으로 집행하는 자금만 조 단위이니 비공식 자금까지 합쳐서 수천억이 돌아다니는 대한민국 대선은 명함도 못 내민다.

당연히 그 돈의 향연은 공짜가 아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당선된 곳은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해줘야 한다. 그 배당의 희생양이 어디가 되던 말이다.

나는 내 말에 수긍하는 헨리에게 말했다.

“대선이 끝나면 도박장이 열리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 도박장은 아시아에 열릴 겁니다. 피날레는 대한민국에서 열릴 테고요.”

담담히 말하고 코냑을 음미하는 나와 달리 세 사람과 헨리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은 집시나 점쟁이를 보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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