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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50화 (49/229)

50화. 16th. 껄끄러운 동맹 (2)

장호건은 이수한의 궁금함을 풀어주듯 빙긋 웃었다.

“우리 딸내미한테 쇳복이 붙었다네. 1년 사이에 4백억 가까운 돈을 만들었어, 하하.”

장호건이 껄껄 웃을수록 이수한의 입은 턱이 빠질 것처럼 벌어졌다.

지금껏 호텔 일에만 매달려 살던 장하연이 무슨 수로 그 큰돈을 만들었단 말인가? 그 돈을 본인의 능력으로 만들었다면 장하연은 후계자 자격을 입증한 셈이었다.

“이번 일, 처가 쪽 놈들 전부 배제하고 조용히 진행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알아도 손도 못 쓸 겁니다. 우리가 돌린 땅 전부 처가 분들과 그 떨거지들이 매입했으니까요, 흐흐.”

이수한의 낮은 웃음소리에 호응하듯 장호건이 나지막이 탄성을 흘렸다.

“이런. 그걸 깜빡했구만, 하하.”

지난 달 말 들어서 조국일보 일가와 그 하수인들은 이수한을 비롯한 장호건 측 임원들이 돌리던 평택 땅을 총 700억이나 주고 샀다. 이번 밥상에 처가 쪽에서 들이댈 수저가 한 벌도 안 남았기에 장호건은 소파 팔걸이를 두들기며 껄껄 웃었다.

“회장님, 전화입니다.”

“아, 고맙네.”

장호건은 웃음을 멈추고 전화기를 들었다.

“장호건입니다.”

[날세, 장 회장. 자네 큰딸 덕분에 우리 백화점 본점 신관이 발 디딜 새가 없다네. 아주 훌륭한 딸을 뒀어, 허허.]

싫은 사람이라도 자식 칭찬은 부모를 춤추게 만드는 법. 굳어졌던 장호건의 얼굴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제 딸아이 솜씨가 쓸 만한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성물산에서 백화점 사업을 할 걸 그랬습니다, 하하.”

[흐흐, 신성물산이라··· 환율 관리는 잘 하고 있는가?]

갑작스런 기습공격에 장호건이 미간을 찌푸렸다. 좋게 해보려고 해도 밉상스럽게 말하다니.

“원하시는 게 뭡니까, 회장님?”

[내가 원하는 건 없네. 자네가 솔깃-할 돈벌이를 알려주려고 했는데 말하는 본새를 보니 필요 없을 것 같구먼. 이만···.]

이대수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장호건이 다급하게 부르짖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회장님. 뭔지는 알려주셔야···.”

[알고 싶으면 저녁 때 삼청동에 오게. 새로 올라온 막걸리에 삶은 돼지고기 내줌세.]

이대수의 통보를 끝으로 통화가 끊어졌다. 장호건이 수화기를 내려놓자 이수한이 재빨리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회장님? 이 회장님 전화 같던데···.”

“이 양반, 큰일을 꾸미려는 것 같군.”

“일이라뇨?”

“만나보고 알려주겠네. 그 집에서 막걸리에 수육 먹는 것도 수십 년만이겠군.”

낮은 목소리로 뇌까리는 장호건도, 그를 바라보는 이수한도 이대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저녁상을 차린 이대수는 야외에 설치한 대형 텐트 안에서 커다란 화롯불을 쬐며 전축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브라스를 타고 나오는 화음. 그 소리를 만들어낸 건 먼저 간 장남의 기타 연주, 그 장남과 함께 비명횡사한 맏며느리의 노랫소리였다.

[주인어른, 금강그룹 오현무 회장님 오셨습니다.]

“뫼시게.”

텐트가 걷히면서 떡 벌어진 어깨의 단단해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이성민의 큰외삼촌인 오현무 금강그룹 회장이었다.

“강녕하셨습니까, 사돈어른.”

“오랜만이오, 사돈. 앉아서 차부터 듭시다, 허허.”

오현무는 이대수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린 뒤, 자리에 앉아서 고용인이 내온 식전차를 마셨다.

“매제하고 미연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군요.”

“그러게 말이오. 사돈 누이나 내 장남 모두 살아서 성민이 크는 걸 봤으면 좋았을 것을···.”

이대수가 말끝을 흐리던 중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괜한 소릴 한 것 같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말이오, 허허. 내년이면 GK로 간판을 바꿀 거라 들었는데 왜 그러신 게요?”

이대수가 화제를 돌리자 오현무가 쓴웃음을 지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했는데 다른 나라마다 저희가 쓸 만한 이름들이 먼저 등록되어 있더군요. 그룹 분위기도 쇄신할 겸 사호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하하.”

“사돈댁이 가전제품을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런 것 같소. 어딜 가나 그런 소인배들이 있기 마련 아니오? 허허.”

이대수와 오현무가 사업 이야기를 하며 먼저 세상을 저버린 두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을 잊으려 노력할 때 집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어른, 태현그룹 명진호 회장님 오셨습니다.]

또다시 텐트 입구가 걷히면서 투덕투덕하게 생긴 백발의 노인이 장식용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왔다.

“오랜만이구먼, 이 회장. 헌데, 오 회장은 웬 일인가?”

“제가 여쭙고 싶습니다, 명 회장님. 어찌 된 일입니까, 사돈어른?”

명진호와 오현무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이대수는 태연하게 차를 마셨다.

“앉으시오, 형님. 사돈도 앉아서 기다려주시오. 한 사람이 더 와야 하오.”

이대수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나머지 한 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의문을 품었다.

[주인어른, 신성그룹 장호건 회장님 들어오셨습니다.]

그 자리의 주인이 들어온 걸 집사장이 알렸고, 텐트 안으로 장호건이 들어왔다.

“삼청동은 여전히 바뀐 게 없군···요.”

장호건은 인사를 하며 들어오던 중 명진호와 오현무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가 말을 맺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3대 재벌의 총수가 모두 모이자 이대수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올 사람들은 다 온 것 같군. 집사장, 상 내오게.”

“예, 주인어른.”

장호건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안 돼서 막걸리가 담긴 놋쇠주전자와 음식 접시들이 탁자에 깔렸다.

“한 잔 받으시오, 형님.”

“그러지.”

이대수는 주전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를 돌며 명진호, 오현무, 장호건에게 막걸리를 채워줬고,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그릇을 채웠다.

“겨울 막걸리라 맛이 진하구먼. 걸쭉하고 달달한 게 아주 좋아, 흐흐.”

술을 마신 명진호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고 낄낄 웃었다. 이대수도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입맛 하나는 귀신이구려. 김제에 있는 양조장에서 햅쌀로 담근 막걸리요, 흐흐.”

오현무 또한 반쯤 빈 놋그릇을 내려놓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모처럼만에 마시는 것 같습니다. 매제 내외 생전에 이태원 가서 종종 마시곤 했는데.”

“명우하고 자동차 고치면서 땀 한 바가지 흘리고 마시면 참 좋았지요.”

친구와의 추억을 되새긴 장호건도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남은 막걸리를 단숨에 비웠다.

주전자와 음식그릇이 다 비워질 무렵 이대수가 전화기를 손에 쥐었다.

“오늘 보자고 한 건 사업 때문이오. 잠시만 기다리시오.”

세 사람이 눈을 껌뻑이는 가운데 이대수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들어오게.”

짤막한 통화를 끝으로 고승주가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어김없이 서류 가방이 들려있었다.

“나눠드리게나.”

“예. 먼저 나눠드릴 건 비밀유지각서입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께 중대한 사업이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승주는 가방에서 서류철과 만년필을 꺼내 명진호와 오현무, 장호건, 이대수 앞에 놓고 이대수의 뒤에 섰다.

“서명부터들 하시오. 사업 이야기는 그 뒤에 알려주리다.”

“알겠네. 자네 차남이 우리 둘째 도와주는데 못할 것도 없지.”

재계의 1세대인 명진호가 계약서 내용도 안 보고 거침없이 서명하자 내용을 보던 오현무와 장호건도 부리나케 펜을 들었다. 연공서열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각자가 서명한 계약서를 옆으로 돌리며 종이마다 네 사람의 서명을 다 채우고서야 비밀유지 합의가 끝났다.

“나눠주게.”

“예.”

고승주는 이대수와 명진호, 오현무, 장호건에게 새로운 서류철을 나눠줬다.

“지금 보는 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잘 되자고 제안하는 사업이오. 찬찬히들 보시오.”

이대수가 건넨 말을 듣고 세 사람이 서류철을 펼쳐봤다.

“이 회장?”

“사돈어른?”

“회장님?”

누구랄 것 없이 모두들 이대수를 불렀다. 동시에 그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져있었다.

“내가 아들처럼 키운 놈이 양놈들 투자회사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소. 그 녀석이 나한테 물어다 준 건인데 나 혼자 먹기는 아쉬워서 판을 키워보자고 했소. 어떻소들?”

계약서에 적힌 대로 전환사채를 인수하면 위험부담이 줄어든다. 뒤늦게 올라온 술기운까지 겹쳐서인지 세 사람의 얼굴이 대번에 달아올랐다.

“그쪽에서 요구한 대로 태현건설, 신성전자는 2억 불, 사돈은 금강전자와 금강화학으로 1억 불씩 걸어주시오. 나는 해동물산으로 10억 불을 걸고 나머지 현금으로 세 분 보증을 서리다.”

이대수의 말을 듣고 명진호가 눈이 커졌다.

“자, 자네, 미쳤나? 10억 불 플러스 6천억이면···.”

“환투기에 그 돈 쓸 거면 형님 빌려달라는 거요? 태현건설 이라크 미수금 털어내게?”

이대수가 퉁명스럽게 물었지만 명진호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8.3 사채동결 때 신성의 장병호와 작당해서 뒤통수를 쳤는데도 이대수는 태현건설과의 동업으로 숨통을 터줬다. 합법적인 환투기까지 끼워주겠다는데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말할 수 있겠나?

“내 걱정은 마시오. 벌어들인다면 금융실명제 때 날려먹은 돈은 복구할 거 아니오, 으허허.”

지구 반대편에서 10억 달러를 번 장손의 실력과 운을 믿기에 이대수는 껄껄 웃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장호건이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뭔가 내키지 않는 기색이 가득했다.

“죄송하지만 회장님, 이번 일을 양놈들 손에 전부 맡길 수는 없습니다.”

“허면 자네가 직접 투기판에 뛰어들겠다는 겐가? 아니면··· 정창호 그 친구나 이수한이를 감옥소 보낼 생각인가?”

이대수가 굳은 얼굴로 비꼬듯 묻자 장호건의 얼굴도 굳어졌다.

“그럴 순 없죠. 각 그룹마다 참관인을 보냈으면 합니다.”

“참관인?”

“예. 그들이 얼마나 배팅규모를 늘리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수익을 정확히 배분받을 게 아닙니까? 어떻소, 사돈?”

장호건의 질문에 오현무가 딱딱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사돈이라니? 말조심하시오, 장 회장. 돌아가신 장 회장님이 군바리들한테 줄 대서 우리 집안이 반도체 진출하는 거 늦추고도 사돈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요?”

“그 대가는 다른 걸로 충분히 치렀잖소, 오 회장?”

금강그룹 오현무와 신성그룹 장호건이 선대 때 사돈에서 앙숙이 된 일 때문에 서로를 노려보며 불꽃을 튀기는 가운데 이대수가 양손을 들어 흔들었다.

“자자, 진정하시오. 장 회장 말이 맞는 것 같소. 정확히 정산하려면 한 명씩 차출해서 보내는 게 좋겠지. 정하는 대로 연락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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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회동을 마무리 짓고 세 사람을 보낸 뒤.

이대수가 고승주에게 검지와 중지만 펼친 손을 내밀었다.

“승주야. 한 대만 줘봐라.”

“예?”

고승주는 잠시 멈칫했다. 노인네냄새 피우기 싫다며 금연한 지 20년이 넘은 이대수가 담배를 태우겠다니?

“생각이 복잡하니 땡기는구먼.”

“···예, 회장님.”

고승주는 얼른 자신의 얇은 시가 한 대를 꺼내서 이대수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불까지 붙여줬다. 이대수는 한 모금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한숨과 함께 내뿜었다.

“큰일 날 뻔했군.”

이대수가 나지막이 뇌까렸고, 고승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금강과 신성의 거래 때문입니까? 신성그룹 장병호 회장이 성민이 외가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막은 대가로 넘겨준···?”

더 이상 말하기엔 껄끄러운 일이기에 고승주는 말끝을 흐렸다. 이대수는 고승주를 보며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 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그래. 진호 형님이 알면 사달 날 일이야. 어떻게든 신성을 자빠뜨리려는 양반이 아니냐?”

“그렇지요. 태현전자가 가전에 못 나선 것도 돌아가신 장병호 회장님이 막아서 그랬으니까요.”

“그 양반이 참 지독하긴 했지. 여하튼, 우리가 두 집안 거래를 아는 건 사돈이나 호건이도 모를 게야. 물량이 어느 정도였다고?”

“약 15퍼센트인데 금융실명제 이후로는 명동에서도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고승주가 고개를 숙였지만 이대수의 얼굴은 괘념치 않는 듯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니다. 우리 집만큼 사돈댁도 꼼꼼하니 어쩔 수 없겠지. 그 15퍼센트, 우리 장손한테 언제 알려줘야 할지 모르겠군.”

이대수는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

집에서 선해철, 클레어, 박태진과 함께 조촐하게 파티를 하던 나는 고승주의 전화를 받았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됐었네요. 감사합니다, 백부님.”

[고맙긴. 다른 계열사가 돈을 벌면 우리 사업에 변수가 생기니 바로바로 돈 쓰게 만들어야지, 흐흐.]

할아버지나 고승주나 노련한 사업가들이었다. 세 그룹 계열의 종합상사들과 해동물산과의 자원개발 경쟁을 막고자 돈 나갈 곳이 정해진 계열사들을 찍었는데 같은 생각이었다니.

싱긋 웃던 나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이어지는 고승주의 말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안 좋은 소식이요?”

[각 그룹마다 트라이엄프 일본 법인에 참관인을 보내기로 했다.]

“참관인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참관인이라니?

[신성 장호건 회장이 요구한 거다. 현장에서 얼마나 벌어들일지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정산이 확실할 거라며 고집을 피웠어. 미안하구나.]

빌어먹을.

이번 엔고 배팅은 내가 직접 핸들링 해야 한다. 한 명도 안 다치고 해피엔딩으로 끝내려면 직접 현장을 지휘해야 하는데 3대 재벌이 참관인을 보내면 내 뒷조사를 할 터.

“알겠습니다, 백부님. 대신에 참관인들도 일하게 해주세요. 똑같이 고생해야죠.”

[알았다. 우리 쪽은 태진이를 내세울 테니 해철이하고 로렌스 대표한테도 알려줘.]

“네.”

전화를 끊자 선해철이 샴페인 잔을 내려놨다.

“참관인이라니? 우릴 못 믿겠다는 거야?”

“회장님께서 그러신 건 아니지, 조니?”

클레어도 당혹해하는 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신성그룹에서 요청한 거예요.”

선해철이 눈을 껌뻑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신성? 장호건?”

“네.”

“빌어먹을 새끼. 명우 친구였다는 놈이···.”

선해철이 욕을 내뱉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클레어는 그 말을 듣고 눈이 커졌다.

“신성전자 장호건 회장이요?”

“맞아. 그놈이 이 녀석 아버지 친구야.”

“세상에··· 조니, 진짜야?”

선해철의 대답을 듣고 놀란 클레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예요.”

“오늘따라 달라 보인다, 얘.”

선해철은 토끼처럼 놀란 클레어를 보고 피식 웃었다.

“놀라긴 이를 텐데? 성민이 네 외가도 이번 배팅에 들어왔잖아?”

“무슨 말이에요, 썬? 태현이나 금강이 조니 외가라는 거예요?”

“당사자한테 물어봐, 흐흐.”

선해철은 클레어를 보며 낄낄 웃었다. 클레어는 살짝 토라진 체하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원한다면 얘기해줘야지, 뭐.

“금강그룹이 제 외가예요. 첫째 외삼촌이 그룹 회장님이고요.”

“진짜?”

“네. 그리고 금강전자하고 금강화학 지분 1퍼센트씩 어머니한테 물려받았어요.”

금강전자와 금강화학은 금강그룹의 양대 지주회사. 다시 말해 나의 외가인 오씨 가문, 어머니의 외가인 해씨 가문을 지탱하는 두 개의 대들보다.

그런 두 회사 지분을 외가의 보수적인 가풍 속에서 어머니가 1퍼센트씩이나 물려받은 건 2대 회장이었던 외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큰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때도 부자긴 했지. 그걸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전생의 이 시절에는 그저 회사에서 일만 잘해서 주식만 물려받으면 된다는, 아주 말랑말랑한 생각만 내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그게 얼마나 헛짓거리였는지는 장수연과 결혼하고 나서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말이다.

쓴웃음을 머금고 담담하게 말하는 나를 보며 클레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충분히 먹고 살만한데 왜 이 고생을 해?”

“똑똑한 토끼는 굴을 세 개는 파둔답니다, 하하.”

앞으로도 나는 여러 개의 굴을 팔 것이다. 미래는 알고 있으면서도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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