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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28화 (28/229)

28화. 9th. 뚫어야 한다 (1)

장하연과 헤어진 나는 서울 시내의 한 성당에 도착했다.

“여기가 맞으려나···.”

기공식에 참석했던 나는 박태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형, 이 분 좀 찾아주세요.]

[누구신데 그러십니까?]

[은퇴하신 신부님이에요.]

[···알겠습니다.]

태진이 형이 알아봐 준 게 맞아야 할 텐데···.

기대와 걱정을 안고 본당으로 들어간 나는 정면에 걸려 있는 예수상을 보고 성호경을 그었다. 증조부님 때부터 모태신앙이 시작된 터라 무조건반사적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신지요, 형제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돌리니 수녀님 한 분이 자애로운 얼굴로 날 마주하고 있었다.

“아··· 임수웅 사도요한 신부님을 뵈러 왔습니다.”

“무슨 용무로 오셨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사실 저는···.”

우리 집안이 증조부님 때부터 나까지 4대에 걸쳐 천주교 신자인 것부터 강남터미널 이야기까지 들려주니 수녀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 형제님이 마르코님 손자셨군요.”

마르코는 할아버지의 가톨릭 세례명이다. 처음 보는 수녀님이 왜 익숙한 것처럼 말하지? 우리 집안 교적은 이 성당이 아니라 명동성당에 있는데··· 찜찜한 기색을 지우지 못해서 수녀님에게 물었다.

“혹시 저희 할아버지를 아시는지?”

“마르코님 덕분에··· 아···.”

반갑다는 목소리로 말하던 수녀님이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가렸다. 궁금했지만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었기에 나는 손을 저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밝히기 힘드시면 괜찮습니다, 수녀님. 신부님은 계신지요?”

오늘 이 성당에 온 건 임수웅 사도요한 신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맨입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건 내 성격에도 안 맞기에 이번 일만 도와주면 사례금조로 교구청에 특별헌금 5억 원을 내겠다고 말한 건 물론이었다. 하지만···.

“어쩐다··· 어제부터 출타 중이신데.”

“언제쯤 돌아오실 것 같습니까? 집안어른들께서 바쁘신 통에 염치없이 제가 왔지만 시간을 다투는 일입니다, 수녀님.”

“글쎄요. 그때그때 다르신 터라···.”

수녀님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럴 것이다. 그 분이 하는 일은 복불복이 따로 없어서 빠르면 하루 이틀 안에 끝나지만 늦으면 기약이 없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수첩을 꺼내 워터맨 만년필로 전화번호를 적어서 뜯어줬다.

“제 전화번호입니다. 신부님 돌아오시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더 있어봤자 별 소득이 없을 게 뻔했다. 수녀님도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수녀님.”

나는 수녀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성당에서 나왔다. 마음은 급했지만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 공사현장에 가봐야겠다. 이 양반, 요즘 들어 담배 무지하게 피운다고 숙모님하고 사촌동생들이 걱정하던데···.

***

이성민이 성당에 가서 허탕을 치고 있을 무렵.

이명진은 강남터미널 공사장에 가건물로 만든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테이블에 놓인 지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사현장을 확대한 지적도에는 가위표가 수십 개나 쳐져 있었다.

“미치겠군. 수맥 찾자고 들어간 돈이 5억이 넘는데 아직도 못 찾았다니.”

“죄송합니다, 사장님.”

옆에 서 있던 임직원들이 한숨을 내쉰 이명진에게 죽을죄를 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기공식을 하고 삽을 뜰 때만 해도 날아갈 것 같았는데 첫 걸음부터 무슨 날벼락인가? 수맥 하나 찾느라 5억이 넘게 쓰다니!

이명진은 그들을 보며 손을 내저었다.

“우리들 눈이 엑스레이는 아니잖나. 터질 때까지 계속 뚫어봐야지. 주문한 파이프는 언제 도착한다고?”

“1시간 뒤면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때 맞춰서 시추를 재개하겠습니다, 사장님.”

자신의 질문에 시추 담당자가 부동자세로 말하자 이명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나온다고 조바심 내지 말고 신중하게 뚫어. 여기 땅 무른 거 알지?”

“예, 사장님.”

강남터미널 공사는 이명진을 다른 공사 때보다 더 까칠하게 만들 만큼 중요한 사업이었다.

공사를 딴 덕분에 이대수에게서 비자금 2,500억 원을 받기도 했지만 해동건설 사상 최초의 턴키방식 사업으로 입찰가격 내에서 설계, 시공, 감리 등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공기를 단축시키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수록 이익이 늘어나지만 그 반대가 되면 적자가 나는 공사였다.

그럼에도 턴키방식으로 강남터미널 사업을 따낸 건 해외 건설시장의 대세가 턴키가 될 거라는 이명진의 신념 때문이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만큼 하자도 없어야 하고 공기도 단축시켜야 하며 수익도 챙겨야 하니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3호선 밑으로 지하철 노선 두 개가 더 지나갈 수도 있어. 잘못하면 우리도 성수대교 꼴 나니까 조심, 또 조심해.”

“시추 팀에서도 각별히 주의해서 작업 중입니다, 사장님. 염려 놓으십시오.”

이명진은 재차 안전을 강조한 뒤, 밖에 나와서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정말 일이 안 풀리면 나오는 습관인데 수맥이 막힌 뒤로 하루 한 갑씩 태워서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답답하군, 젠장.”

푸념을 늘어놓던 그는 듀폰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내뿜었다.

믿고 의지하던 형과 함께 했다지만 전쟁터와 가까웠던 이라크 송유관 공사현장에서조차 담배 한 대 안 피웠었다. 수맥 하나 못 찾아서 담배를 태우다니··· 죽은 형은 물론이고 이 기회를 만들어준 조카를 볼 낯이 없었다.

***

차를 타고 현장으로 온 나는 담배를 태우고 있던 이명진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역시 힘드나 보다. 일하다가 막힐 때나 담배를 태우는 양반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있으니 골초였던 전생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숙부님?”

“사장님, 괜찮으신지요?”

“그렇지 뭐, 하하.”

이명진은 나와 박태진을 보며 씁쓸하게 웃고는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후우-, 이런 공사는 처음이다. 물이 안 나와서 고생이야. 벌써 5억이 넘게 썼는데도 수맥을 못 찾고 있으니 원.”

이럴 줄 알고 내 사비로 특별헌금을 내서라도 모셔오려고 했는데 출타 중인 양반을 억지로 끌고 올 수도 없고··· 내가 다 안타까웠다.

“다음 단계는 못 나가셨겠네요.”

“그렇지. 여기 지반이 무른데다 지하철까지 지나고 있어서 작업이 까다롭게 됐는데··· 계속 뚫어봐야지 어쩌겠냐.”

까먹고 있었다. 이 밑으로 7호선에 9호선까지 지나갈 텐데! 섣불리 공사하면 해동건설이 망하는 건 둘째 치고 사람들이 얼마나 상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는 건 어떠세요? 나중에 이 땅 밑으로 지하철 노선이 더 지나갈 수도 있으니까 튼튼히 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나 해서 말했더니 이명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입찰 들어갈 때 설계에 반영했는데 호진이 형님도 그걸 좋게 봤다고 들었어. 잘못하면 사람 다치고 그룹 망할 텐데 조심해야지. 조카님은 걱정 붙들어 매둬요, 하하.”

일처리 하나는 정말 야무진 양반이다. 거기까지 염두에 뒀다니··· 잠깐? 호진이 형님이라고? 이명진이 신호진을 친근하게 부르는 걸 보니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숙부님, 신 회장님 아세요?”

“알다마다. 돌아가신 우리 형님 과 선배인데다 회사 차리고 삼청동에 자주 드나들었거든. 친분하고 일은 칼처럼 잘라서 아쉬운 양반인데 사람 하나는 진국이야.”

그러고 보니 신호진도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었다. 우리 집안과 보통 거래처가 아닌 건 할아버지에게 들어서 알았지만 아버지나 이명진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을 줄이야···.

이명진은 웃음을 멈추고 날 보며 물었다.

“근데, 형님은 왜?”

“아, 아뇨. 얼마 전에 할아버지께서 그 분 얘기 들려주셨거든요. 그 분이 왜 망했는지요.”

“아버지께서?”

당신과 친하게 지냈던 사람의 일 때문일까, 이명진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계속했다.

“네. 4공 시절에 여당이든 재계 어른들이든 영남 출신 분들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신 회장님하고 유신그룹을 무너뜨렸다고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우리 집안에 빚 대신 넘기려 했던 강남터미널 땅을 할아버지와 증조부님께서 안 받은 것까지 알려주고 나니 이명진의 얼굴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할아버님이나 아버지라면 그러고도 남으셨겠지. 형님이 유신그룹을 안 세웠으면 우리 그룹 경영진으로 들이고 싶어 하셨으니까. 불쌍한 양반.”

툭 내뱉은 이명진은 땅바닥에 떨어뜨린 담배꽁초를 작업화로 꾹꾹 밟아 비볐다.

“아무튼, 고려호텔을 끼워줘야 할아버님, 아버지 숙원사업 시작할 텐데··· 그 양반, 장 씨 집안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허락해줄지 모르겠네.”

그러게요. 신부님이 빨리 돌아오셔야 다들 웃을 텐데.

***

며칠 뒤.

한 저택의 대문 앞에 선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뉘시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리자 얼른 입을 열었다.

“해동그룹 이성민입니다. 신호진 회장님 계십니까?”

[···명우 아들이냐?]

“네. 제 부친 휘자(諱字)가 이 명 자 우 자 입니다.”

[얼른 들어오너라.]

찌리링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고 대문을 통과한 나는 정원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많이 컸구나, 허허.”

반팔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아버지를 어떻게 아는지는 몰랐지만 부탁을 하러 온 만큼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신호진 회장님이신지요?”

“회장은 무슨. 네 애비하고 형동생하던 선후배였으니 백부님이라고 편히 불러, 하하.”

“네, 백부님.”

졸지에 백부님이 한 명 더 생겼지만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강남터미널에 고려호텔을 넣어달라고 부탁해야 하지 않는가? 신호진 그가 다시 일어설 유일한 발판인 강남터미널을 도둑질하려고 했던 장 씨 일가의 고려호텔을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염치없지만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 집안의 사업을 위해 강남터미널에 고려호텔을 넣어야 했다.

소탈하게 웃는 신호진과 달리 긴장을 품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가정부가 내 온 커피를 마셨다.

“네 아버지를 쏙 빼닮았구나. 제수씨도 닮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신호진은 날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저런 양반에게 뻔뻔한 부탁을 해야 하니 속이 편하지가 않았다.

“무슨 일로 온 거냐? 요즘 수맥 찾는 거 때문에 명진이가 고생한다고 들었는데. 잘 되고 있다던?”

“쉽지는 않은데 찾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지만 신호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떻게 찾는다고 하더냐?”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밀이라고 하시더군요, 하하.”

그걸 어떻게 말하나.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데.

“공개입찰로 해동건설 뽑았다고 네 숙부가 단단히 삐졌나보구나, 하하.”

장난 섞인 농담까지 치는 걸 보니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운을 떼볼까?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백부님.”

“말해 보거라.”

“저희 해동에서 호텔 임대보증금을 내고 고려호텔에 위탁경영을 맡겼으면 합니다. 저희 백화점도 입점 시키고 싶고요. 할아버지께서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흐음···.”

신호진의 입에서 침음성이 새어나왔다. 해주기도 안 해주기도 난감한 일이 아닌가?

“알고 있겠구나. 장 씨 남매들이 강남터미널 먹으려고 했던 거.”

모를 리가 있나. 전생에도 있었던 일이고, 올해 초에 미국에서 돌아와서 삼청동 들어갔을 때 고승주가 나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일인데.

“네. 기왕이면 면식도 있고 동향인 분들끼리 손잡는 게 좋지 않겠냐고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호진은 굳은 얼굴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위약금만 회장님께서 내주시면 장호경은 얼마든지 내치마. 하지만 고려호텔에 위탁경영을 맡기는 건 어렵겠구나.”

내가 신호진이라도 범 신성그룹을 갈아 마시고 싶을 것이다. 99개 가진 놈이 한 개를 더 채우려든다고 자신이 다시 일어설 유일한 발판까지 빼앗으려 들었던 자들이 아닌가?

그래도 할아버지가 내준 과제는 전부 풀어야 했다. 이번 시험은 한 개라도 해답이 빠지면 빵점인 시험이니까.

나는 말라붙은 입 안에 커피를 적시고 말했다.

“백부님, 저하고 내기 하시겠어요?”

“내기?”

“네. 내기요.”

신호진이 날 보며 피식 웃었다.

“네 아버지하고 포커만 쳤다하면 매번 깨졌는데 피는 못 속이는구나. 무슨 내기를 할까?”

“강남터미널에서 온천이 터지면 고려호텔 위탁경영을 승낙해주십시오. 온천이 안 터지면 깨끗이 포기하겠습니다.”

신호진이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고려호텔 위탁경영은 당연히 안 되는 일이야. 온천이든 맹물이든 수맥도 당연히 찾아야 하는 일이고. 내기를 하려면 조건이 맞아야지?”

“당연히 그래야죠. 그래서.”

말을 끊고 가방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냐?”

“온천수가 안 터지면 제가 가진 해동그룹 지분 전량과 대한이동통신 주식 32만 주까지 넘겨드리겠습니다, 백부님.”

계약서를 든 신호진의 손이 떨리는 걸 보고 굳은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하고 포커 자주 치셨죠? 전 여기에 올인 했습니다.”

신호진이 계약서를 내려놓고 나를 노려봤다.

“왜 그리 장 씨 놈들한테 목을 매는 거냐? 네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짓을 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나머지 장 씨 놈들 전부 밟아 비비는 게 제 삶의 이유입니다, 백부님. 그 여자에게 즐거움과 기쁨만 안겨주면서 복수하고 싶은 걸 어떡합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거짓말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성당에 갔습니다.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올렸죠. 죽도록 미운 인간이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장용재와 장수연 그 연놈들을 떠올리며 말했지만 신호진이 손을 들어 내 입을 막았다.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내밀라고 들었겠지.”

“···예.”

상투적인 말이었지만 신호진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16년 전 일이다. 내가 망하고 있을 때 하루는 네 아버지와 술을 펐었다. 잔뜩 취해서 푸념을 늘어놨지. 내가 무슨 죄냐고, 나만 그런 게 아닌데 왜 나만 당해야 하냐고 말이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젊은 나이에 회사를 세워서 3년 만에 훌쩍 커버렸다고, 장인어른이 반독재 성향의 인사라고 밟히고 뭉개졌으니.

장 씨가 아니라고 개처럼 일만 하다 마누라, 처남 손에 죽은 내게 신호진의 천일야화는 남 일 같지가 않았다.

과거가 떠올라 분노를 삼키는 와중에도 신호진의 이야기는 계속 들렸다.

“그때 명우가 말했다. 성민이 네가 들었던 말 그대로.”

“······.”

“그 말까지만 들었으면 네 아버지를 원망했을 텐데··· 그러면 언젠가는 반드시 보답 받을 거라고 했지.”

신호진의 표정은 어느 새 담담하게 변해 있었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신 네 증조부님과 이대수 회장님께 빚진 돈을 갚으려고 강남터미널 땅을 드리러 갔었다. 그런데 두 분께서는 빚을 안 갚아도 된다고 하셨어. 오히려 삶은 돼지고기에 막걸리를 내주셨지. 참 맛있었는데··· 허허.”

회상에 젖은 채 웃던 신호진이 웃음을 그쳤다.

“내기는 받아들이마. 대신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이길 바라며 그의 입만 바라봤다. 긴장한 나를 보고 신호진이 손을 저었다.

“그룹 주식은 됐다. 그거까지 받으면 나중에 명우 볼 면목이 없지. 회장님께서 아시면 안 될 테니 비밀로 해주마.”

“감사합니다, 백부님.”

소파에서 일어나 큰절을 올렸지만 신호진은 여전히 못 미더운 것 같았다.

“온천수가 나오면 그거대로 좋겠다마는 쉽지 않을 거다. 쉽게 터질 온천이면 사람들이 왜 찾아다닐까, 하하.”

나올지 안 나올지는 파봐야 알겠죠, 백부님.

***

며칠 뒤.

대한이동통신 주식을 사들이던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네, 해동그룹 이성민···.”

[요한 형제님?]

그때 그 수녀님 목소리였다.

“네, 수녀님. 요한입니다.”

[신부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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