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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24화 (24/229)

24화. 7th. 3억 불짜리 과제 (3)

소리 죽여 끅끅 웃던 나는 웃음을 멈추고 숙였던 허리를 폈다.

“삼촌, 와서 보세요.”

“뭔데 그러냐?”

“왕건이 하나 건졌습니다, 흐흐.”

“거 참, 뭐가 좋다고···.”

선해철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 곁으로 와서 망원경에 눈을 댔다.

“어? 저게 뭐야?”

“왜 그러십니까, 형님?”

“와서 봐봐.”

선해철은 박태진을 향해 손짓을 하고는 혀를 내두르며 나를 바라봤다.

“저거, 어떻게 안 거야?”

“우리나라 건설사들 별 수 있나요. 보증기간만 넘기자는 주의잖아요?”

재벌 대기업이든 중소, 중견기업이든 규모와 액수만 다를 뿐 건설업은 눈 먼 돈이 천지삐까리로 돌아다니는 곳이다.

도급부터 시작해서 단계별 하도급, 심지어 말단 인력사무소와 자재업체까지 골고루 돈을 빼먹지 않는가? 공사를 따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상납하는지, 뒷돈 빼돌리기 좋아서 공무원들과 결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호오··· 누가 보면 건설회사에서 한 20년 구른 줄 알겠다?”

20년 조금 넘게 구르긴 했습니다. 건설사가 아니라 신성그룹에서 개처럼 굴렀지만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날 보며 씩 웃던 선해철이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명진이 불러다가 보여줘야겠어.”

“전문가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거죠?”

선해철은 내 질문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래. 네 숙부, 건축학과 나와서 건축사까지 따지 않았냐, 흐흐.”

그밖에도 이명진은 금속공학이나 기계공학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양반이니 저 문제의 다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금방 검증할 거라 믿었다.

“도급순위고 나발이고 저거 터뜨리면 해동건설 주가 상한가 치는 데 내 돈 모두하고 내 손모가지 건다, 흐흐.”

선해철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미소를 감추질 못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삼촌도 참··· 우린 어디까지나 해동건설이 일을 잘하는 회사라는 것만 보여주면 돼요. 건설만 해도 제강, 시멘트, 중공업처럼 우리집안 사람들이 21퍼센트, 물산이 30퍼센트, 전현직 대표님들이 10퍼센트 쥐고 있어요. 주가 차익은 주주들한테 양보해야죠.”

이번 일은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푼돈 먹자고 달려 들었다가 주가조작 혐의를 뒤집어 쓸 수 있으니 한 치의 의심까지 없애야 했다.

낄낄 웃던 선해철이 내 말을 듣고 멋쩍은 미소를 띠었다.

“농담이야, 인마. 명진이한테 보여주고 얘기해보자, 흐흐.”

선해철은 얼른 이명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명진은 30분도 안 돼서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무슨 일입니까, 형님? 강남터미널 공사 입찰 한 방에 해결할 거라뇨?”

“하나뿐인 네 조카가 좋은 거 발견했다. 이거 터뜨리면 강남터미널이 문제가 아냐. 해동건설 상한가 칠 건수다, 흐흐.”

선해철이 웃자 이명진은 의아한 표정을 띠었다.

“상한가라뇨?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저거부터 봐.”

이명진은 선해철이 가리킨 망원경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형님, 저 지금 강남터미널 때문에 계열사 사람들 모아다가 가격 깎고 공기 맞추느라 죽을 지경입니다. 아버지께서 돈 문제는 해결해주셨다고 해도 한가하게 망원경이나···?”

정색하며 말하던 이명진은 선해철이 자신을 보면서도 망원경 끝에서 다리로 손가락을 옮기는 걸 보고 하던 말을 멈췄다.

“보고 얘기하자.”

“예···.”

망원경에 눈을 댄 이명진은 다리를 보자마자 망연자실한 목소리를 흘렸다.

“저럴 수가···.”

“됐지? 얼른 고개 들어봐.”

고개를 든 이명진의 얼굴은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역시 해동그룹의 기술통답게 다리 상태가 안 좋은 걸 금방 알아챘다.

“왜 그래, 명진아? 저거 작살내면 해동건설 한 방에 치고 올라가는 거 아냐?”

“형님 말이 맞습니다, 사장님. 강남터미널뿐만 아니라 해동건설이 치고 올라갈 기회가 아닙니까?”

선해철과 박태진이 채근해도 이명진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숙부님?”

“저 다리 지은 게 동화건설인 건 알죠, 형님?”

이명진의 물음에 선해철이 눈을 껌뻑거렸다.

“동화건설? 63빌딩 짓고 리비아 대수로 깔고 있잖아?”

동화건설은 동화그룹의 모기업으로 동화생명, 동화화재, 동화통운까지 계열사로 두고 있었다. 그런데 왜?

“거기 회장이 주태연인데 제 친구입니다.”

젠장, 동화그룹 회장이 이 양반 친구였다니?

동화그룹이 지은 성수대교를 무너뜨리면 주태연의 뒤통수를 까는 게 된다. 이명진의 성격상 자기가 뒤통수를 맞을지언정 남의 뒤통수치는 짓은 절대 못할 터.

잔뜩 실망한 가운데 이명진이 옅은 미소를 띠었다.

“과거형이지만 말이죠. 지금은 원수 같은 놈입니다.”

“네?”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었다. 친구가 원수 같은 놈이라니?

“성민아, 아버지나 나 때문에 교도소 다녀오고도 임원 못 단 사람들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니?”

이 당시의 나는 신성그룹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해동그룹 내부 관행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아뇨. 그건 잘···.”

“우리 그룹 시멘트나 철근 파는 대리점이나 인력사무소 하면서 살고 있어. 전부 챙겨주기에는 임원 명패가 부족해서 그런 거야. 돌아가신 할아버님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란다.”

어느 그룹이나 그 정도의 보상은 해줘야 뒤탈이 없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말없이 이명진의 정색한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그놈이 그 사람들한테 부도를 냈었다. 3년 전에.”

“부도요?”

동화건설 같은 대형업체가 부도를 냈다니···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깜빡거리던 내게 이명진이 담담하게 얘기했다.

“동화라는 이름을 안 쓰는 계열사였는데 50억을 부도냈어. 푼돈 때문에 의 상하기 싫어서 우리 비자금으로 메웠는데 작년에도 또 그러려고 해서 끊어버렸다.”

50억 원이면 지금의 나는 몰라도 할아버지나 이명진에게는 없는 셈 쳐도 되는 돈. 이명진은 주태연의 사람됨에 실망한 게 분명했다.

잔뜩 골이 난 이명진의 모습에 선해철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저 다리 교량등급이 DB-18인데 근처에 레미콘 공장이 있어서 저 지경이 됐을 겁니다. DB-24 기준으로 지었어야 했는데··· 제가 알기로는 보수공사도 날림으로 했을 겁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하는 걸 보니 왠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주태연 그 자식, 저 다리 공짜로 지어주면서 생색 오지게 냈습니다. 우리 조카가 소스도 줬으니 이젠 그 자식 통곡하는 꼴 좀 봐야겠네요, 흐흐.”

우리 숙부님, 역시 할아버지 아들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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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바로 우리는 삼청동에 들어가서 할아버지에게 우리 계획을 보고했다.

“확실해?”

“예, 아버지. 확실합니다.”

“흐음···.”

할아버지가 침음성을 흘리자 이명진이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리 난간에 들어가서 확인했는데 철골도 부식됐고, 콘크리트에서도 균열이 보였습니다. 어차피 무너뜨려야 할 다리라면 다치는 사람 없이 무너뜨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 해동건설은 지금까지 부실공사 한 번 안 했으니 성민이 말대로 역량을 입증할 기회가 될 겁니다, 아버지.”

굳은 얼굴로 이명진의 호소를 묵묵히 듣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해.”

***

성의원에 있던 장호건은 방금 들어온 이수한의 보고에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사실인가, 이 실장?”

“예, 회장님. 방금 전 확인된 정보입니다. 지금 다리 양쪽 입구에 트럭들을 세워놓고는 본인부터 해동건설 임직원들이 다리 안쪽에 텐트를 치고 농성 중이라고 합니다. 또한···.”

장호건은 다리 중앙에서 텅 빈 덤프트럭들이 돌아다니는 사실까지 이수한에게서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명진 그 자식이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할 놈이 아닌데··· 뭘 잘못 먹었나?”

“저도 그 부분이 석연치가 않습니다. 신성물산 박 사장을 불러다가 물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박병준?”

“예. 건설 경험이 풍부하니 의견을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수한은 장호건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고 30분도 안 돼서 인터폰이 울렸다.

[회장님, 신성물산 건설부문 박병준 사장 들어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성 한 명이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회장님?”

“아, 박 사장. 오랜만입니다. 자리에 앉아서 얘기합시다.”

장호건은 박병준을 소파에 앉히고 자신도 상석에 앉았다.

“박 사장, 해동건설 소식 들었습니까?”

“해동건설이면···.”

“방금 전에 일어났으니 모르겠군요. 이 실장, 알려줘.”

뒤에 있던 이수한이 앞으로 나서며 장호건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자 박병준의 표정은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불가능합니다, 회장님. 건설사가 비자금 창구 노릇을 해도 최소한의 선은 지키면서 공사를 합니다. 장 부회장님 쪽에서 구포역 사고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저희 물산은 다릅니다.”

“안 무너지는 거, 확실합니까?”

“예, 회장님. 확실합니다.”

장호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박병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 말 꼭 책임져야 할 겁니다.”

“물론입니다, 회장님. 제 자리를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박병준은 자신의 가슴까지 두들기며 호언장담한 뒤 방을 나섰고, 장호건은 그가 나간 문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저 새끼, 원래 호민이 편이었지?”

“예, 회장님. 그래도 저 양반 안 잡아뒀으면 물산 건설부문에 그쪽에서 만든 돈까지 부회장에게 넘어갔을 겁니다.”

“자네 말이 맞지만 방금 전 그 태도를 봐. 내 앞에서 할 짓인가? 건방진 놈.”

장호건도 사실은 인정했지만 박병준의 저 오만한 태도는 참을 수가 없었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쳐내야 할 놈들이 너무 많아. 젠장.”

누이와 동생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직도 내부의 적이 많은 걸 실감한 장호건은 소파에 몸을 묻고 한숨을 내쉬었다.

***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KBC 주미나 기자입니다. 이명진 사장님, 며칠 전부터 해동건설에서 성수대교를 무단점거하고 농성 중이십니다. 진심으로 성수대교가 무너질 거라 보십니까?”

“현재 성수대교는 붕괴 직전입니다. 여러분들께 보여드린 사진과 자료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상태가 매우 심각합니다.”

플래시가 펑펑 터지고 방송국에서 보낸 사람들이 촬영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이명진은 침착하지만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깔끔한 방송국 기자와 달리 이명진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며칠째 텐트생활을 하느라 기름기가 넘치는 머리는 포마드가 필요 없을 정도였고, 턱선과 입 주변에는 수염까지 숭숭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다 현장 점퍼까지 입었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노숙자나 노가다꾼처럼 보이겠지만 살아있는 눈빛만큼은 그런 몰골로도 가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몰골과 대비되어 비장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교량이 무너진 적은 없었습니다. 균열 정도야 어떤 다리에도 있지 않습니까?”

“모르는 말씀입니다. 성수대교 교량등급은 DB-18로 32.4톤이 최대 하중이지만 다리 인근에 레미콘 공장이 있어서 과적 차량들이 자주 통행한 탓에 피로가 누적됐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통행 중에 교량이 붕괴될 겁니다.”

이명진이 전문지식을 써가며 반박하자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슬쩍 물러났다.

그렇게 성수대교가 막힌 지 한 시간이 넘자 경찰버스들이 도착했고 그 안에서 보호구를 착용한 전투경찰들이 쏟아져 나와 대열을 갖췄다.

[경고합니다! 지금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이 다리는 무너져야 합니다!”

확성기를 입에 댄 지휘관의 경고에 이명진과 임직원들도 소리소리 지르며 버텼다.

수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해동건설 임직원들이 물러서길 포기하지 않자 전경 지휘부도 인상을 찌푸렸다.

“어떡할까요, 대대장님?”

“어쩌긴 뭘 어째? 투입해!”

지휘관들의 일사불란한 지시에 따라 전투경찰들이 위압적인 군홧발 소리와 곤봉, 방패를 부딪치며 천천히 전진했다.

그 반대편의 이명진과 해동건설 임직원들은 자신들과의 거리를 좁혀오는 전투경찰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키고 다리를 떨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낀 팔짱에 힘을 줬다.

“와아아아!”

전투경찰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던 그 순간.

콰르릉!

귓전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교량 한가운데가 끊어지며 한강으로 떨어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 광경을 본 전경들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이명진과 해동건설 임직원들은 경찰들과 반대로 스크럼을 풀고 두 동강 난 다리 가운데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무너질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시간으로 벌어진 광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뭐해! 빨리 찍어!”

이명진에게 집중하던 카메라들도 무너진 성수대교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며 현장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인터뷰를 했던 기자가 카메라맨과 함께 이명진에게 다가왔다.

“이명진 사장님,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부 예전의 낡은 관행에서 빚어진 대참사가 아닙니까? 해동건설은 신한국 창조라는 시대적 과제에 모든 노력을 다해 동참하겠습니다.”

이명진이 굳은 표정으로 현 정부가 제시한 목표를 옹호하듯 대답하자 기자가 다시 물었다.

“해동건설도 역사가 오래된 만큼 종래의 관행을 답습하지 않았겠습니까?”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었지만 미리 짜고 치는 연극인지라 이명진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해동건설은 지금까지 부실공사 한 번 없이 성실히 공사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국민 여러분들이 믿고 쓸 수 있는 건물을 짓겠습니다.”

이명진이 지금 하는 말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

허나 강남터미널을 짓는 걸 시작으로 가족들과 함께 그룹과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다짐이라는 건 그만의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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