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7th. 3억 불짜리 과제 (2)
“회장님?”
선해철과 박태진이 놀란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올해부터는 볕 드는 땅의 가업도 키울 생각이다. 강남터미널 공사는 우리 해동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첫 사업이 될 게야. 고 실장, 알려줘.”
“예, 회장님.”
고승주가 할아버지의 부름에 답하고는 우릴 보며 말했다.
“너희가 미국에 간 사이에 신성그룹에서 강남터미널 공사를 파토 냈어.”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 신세기백화점에 고려호텔까지 임대 계약을 했는데 파토라뇨?”
“그렇습니다, 실장님. 게다가 작년에 신성건설이 부산에서 대형사고를 터뜨린 바람에 신성물산까지 일감이 뚝 끊겼는데 왜···?”
선해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고승주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덫이었다. 장호건 회장과 장호민 부회장이 신호진 회장에게 공사대금 절반을 강남터미널 지분 50퍼센트로 안 주면 없는 일로 하겠다고 했어.”
“그래서 엎어진 겁니까?”
“그런 셈이지. 신세기는 미적거리다가 계약을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강남터미널 삽 뜨는 거, 어려울 거야. 그 사업에 돈 대려고 했던 은행들 전부 신성 간판 보고 나선 거였잖냐. 덕분에 신 회장만 불쌍해졌어.”
고승주의 대답을 듣고서야 선해철과 박태진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
신성그룹의 강남터미널 탈취는 장호건, 장호경, 장호민 세 남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힘을 합친 프로젝트였다.
문제는 신호진에게서 강탈할 강남터미널 지분 분할에 불만을 품은 장호경이 이탈하면서 공사가 재개될 불씨가 살아남은 것이었다.
이후, 강남터미널 공사는 태현건설이 가져갔지만 늘어지는 공기를 참지 못한 신호진이 자신이 세운 건설회사를 내세워 마무리했다.
결국, 강남터미널 탈취 실패로 인해 장 씨 가문 세 남매가 완전한 앙숙이 되었으니 내가 장호건의 사위가 되어 처고모와 처숙부의 무릎을 꿇린 이유였다.
“그러니 우리 해동이 건설업을 키우기엔 이만한 기회도 없을 게다.”
할아버지와 달리 고승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해동건설 재무구조가 우량해도 도급순위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회장님. 작년에 토지를 매입한 건 둘째쳐도 앞으로 벌고 뒤로 빠지는 장사는 안 되잖습니까?”
“그렇습니다, 회장님. 행여나 이번 일로 덤핑 문제가 불거지면 다른 그룹들과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타 그룹과 충돌하면 사채자금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작년에 흔적을 지웠어도 아직은 위험합니다.”
고승주의 뒤를 이은 박태진과 선해철의 우려도 일리가 있었다.
해동건설의 현재 도급순위는 15위.
이 점을 생각하면 태현건설이나 대주물산 건설부문 등 상위권 건설사를 뚫고 공사를 수주하자면 저가입찰이 손쉬운 방법이다.
허나, 지금껏 다른 그룹들에게 사채를 빌려주던 우리 집안의 사정상 우리 집안 흔적을 명동에서 지웠다고 해도 조심할 필요가 있으니 하책 중의 하책이었다.
뜨거운 감자를 문 것 같은 세 사람의 표정과 달리 할아버지는 짓궂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니 그 공사를 가져오면 3억 불을 성민이 수업료로 주겠다고 한 거다. 수익률은 5퍼센트로 맞춰 보거라. 어떠냐, 장손?”
할아버지가 밝힌 거래 조건에 당황한 고승주가 얼른 나섰다.
“무리입니다, 회장님. 작년도 해동건설 매출 대비 수익률이 3퍼센트인데 5퍼센트는···.”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지만 건설업에서의 수익률 2퍼센트는 엄청난 숫자다. 그 수치를 달성하려면 비자금 만들기를 포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원들과 하청업체들까지 줄줄이 갈아 넣어도 될까 말까한 일인데 그걸 주문하다니···.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회장님. 5퍼센트는 무리입니다.”
선해철까지 나서서 말리자 할아버지가 정색하며 말했다.
“이번 공사에서 비자금 만들 생각은 없다. 해동제강, 해동시멘트, 해동중공업이 건설에서 받을 어음은 종금에서 인수할 거고. 종금에서 필요한 자금은 내 사재로 메울 거다.”
“회장님?”
고승주와 선해철, 박태진은 뒤통수를 맞은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렇게 돈을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비자금도 안 만들고, 사재까지 털어가며 사업에 나서겠다니 그들뿐만 아니라 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저놈은 공사만 따오면 된다는 게지, 흐흐.”
날 가리키며 웃는 할아버지와 달리 우리는 순식간에 머쓱해졌다. 순식간에 숙제가 확 줄어들지 않았는가?
“어떠냐? 이만하면 해볼 만하지 않겠느냐?”
할아버지가 비자금 만드는 것까지 포기하고 사재까지 털어가며 2퍼센트를 채워줬으니 더 이상의 투정은 부릴 수 없다. 따오기만 하면 되는 공사도 못 가져오면 후계자 자격이 있겠는가?
오히려 더 좋은 선물을 안겨줘야 했다. 에스컬레이터처럼 주고받는 게 커져야 돈독해지는 게 신뢰이니 말이다.
“신세기 끌어내고 우리 백화점까지 넣으면 더 좋겠죠?”
한 가지 과제를 더 해내겠다고 하자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호오··· 이 할애비한테 레이스를 치겠다는 게냐?”
“3억 불짜리 과제인데 저번에 말씀드린 건 지켜야죠, 하하.”
힘들 때일수록 웃어야한다. 더 이상은 아니지만 초일류를 지향하는 신성그룹 임직원들에게도 인정받던 내가 아닌가.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할아버지 앞에서 배짱과 자신감을 드러내고 싶었다. ‘다움’을 중시하는 할아버지에게 점수를 따려면 남자‘답고’ 후계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웃음이 통했는지 할아버지가 책상을 내려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으하하하! 역시 이 할애비 장손답구나. 이 방에서 한 말이니 반드시 지켜야 할 게야, 흐흐.”
할아버지를 상대로 레이스를 친 나를 고승주가 질린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었다. 모처럼만에 한강 나들이나 가 볼까나?
***
“어때 보이던가?”
“조금, 아니 많이 놀랐습니다, 회장님.”
“자네도 그랬군. 내 속을 들여다 본 것도 아닐 텐데 어찌 이런 공부를 했는지···.”
세 사람을 보낸 이대수는 고승주가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자 자신도 속내를 드러냈다. 헛짓하지 말라고 숙제를 내줬는데 졸지에 자신들이 숙제를 받아버렸으니 당혹할 뿐이었다.
“성민이가 가져온 거, 배재훈, 태재호한테 넘겨주고 똘똘하고 입 무거운 놈들로 추려서 검토하라고 해. 자원개발에 유통 사업이니 두 친구도 발 벗고 나설 게야.”
“예, 회장님. 그 중에서 자원개발은 호주 사업이 눈에 띕니다. 퀸즐랜드 주에 있는 아연광산도 괜찮지만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의 광산업체도 괜찮을 듯합니다.”
“퍼스에 있다는 그 회사 말인가?”
“예. 보고서 21쪽을 보시면 리오틴토에서 매출의 1.5에서 2.5퍼센트를 로열티를 주고 그 회사가 개발권을 가진 철광산을 임대해 철광석을 채굴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헐값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회장님.”
이대수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고승주가 말한 페이지를 펼쳤다. 안경 너머로 보고서를 보는 그의 눈은 맛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번쩍거렸다.
“역시 양놈들이야. 이문 없는 장사를 할 놈들이 아니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호주법인 주재원들을 통해 확인해봐야겠지만 채굴 규모나 중국 경제 성장세 등을 종합해보면 장기적인 투자가치는 충분할 겁니다.”
“그 회사에 퀸즐랜드 주 아연광산까지 배재훈이하고 잘 만져봐. 손에 넣기만 하면 우리 그룹 수십 년 먹거리는 될 게야.”
손주가 내준 숙제를 푼 이대수는 홀가분한 표정을 띠었다.
“이젠 우리 장손이 내가 낸 숙제를 해올지 지켜봐야겠구먼.”
“그래도 아직은 무리이지 않겠습니까, 회장님? 강남터미널 사업, 쉽지 않을 겁니다.”
고승주가 신중론을 제시해도 이대수는 고개를 저었다.
“저 나이면 진즉에 시작했어야 해. 나도 그랬고, 성민이 애비도 그랬어. 명진이야 장사보단 기술에 밝은 놈이라 공장하고 노가다판부터 돌렸고.”
해동그룹에는 후계자라면 장사든, 기술이든 밑바닥을 겪어야 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전통을 거부한다면 경영 참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명우도 성민이 나이에 가락동에서 청과경매를 뛰었지요.”
“자네도 그랬잖나. 해철이도, 태진이도 그랬고. 자네들하고 새벽 경매 끝나고 먹었던 해장국 맛이 일품이었지.”
“처음엔 왜 가자고 하셨는지 몰랐는데 나중엔 해장국 때문에 가게 됐지요, 하하.”
대학 시절의 고승주는 이명우, 선해철과 함께 새벽부터 이대수를 따라 가락동 농수산시장에 가곤 했었다. 그곳에서 궤짝에 담긴 생선이나 야채, 과일을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찍어둔 물건이 올라올 때마다 경매인에게 수신호를 보냈었다.
그렇게 낙찰 받은 걸 상인들에게 넘기면서 받은 돈으로 사먹던 뜨끈하고 얼큰한 해장국도 일품이었지만 경매 경험은 기업인으로서의 자양분이 되었다. 액수만 다를 뿐,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배팅을 하는 것이 사업의 기본 아닌가?
자연스럽게 나온 옛 추억에 두 사람이 푸근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헌데··· 성민이 저 놈은 건너뛰어야겠네.”
“대한이동통신 때문이십니까?”
이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 판에 그 많은 칩을 땄네. 푼돈 따는 걸로 성에 찰 놈이 아니야.”
“그럴 겁니다, 회장님. 시대가 시대이니 더 큰 물로 보내야겠지요.”
생각이 같기는 고승주도 마찬가지. 가락동 농수산시장은 순식간에 커버린 이성민에게 너무나도 좁은 도박장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스탠더드에서 굴릴 돈 중에 절반은 그 녀석한테 맡기라고 해 봐.”
“예?”
흠칫한 고승주와 달리 이대수는 눈썹 한 가닥조차 꿈틀거리지 않고 있었다.
“내 직감인데··· 그 회사하고 그놈, 보통 관계가 아닐 걸세.”
“허면···?”
“성민이가 해철이한테 돈 맡긴 게 대충 8월이었지?”
“···아!”
고승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개졌다.
이대수의 말을 듣고 보니 타임라인이 거즌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이성민이 돈을 맡긴 것과 스탠더드 캐피털의 창립 시기가 말이다. 조카 같은 놈이 그저 열심히 살려는 줄로만 생각했는데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놈이 두 놈하고 작당해서 거짓부렁을 늘어놓은 것 같은데··· 집안 등골 안 빼먹으려는 게 가상하구먼, 으허허.”
고승주 또한 이성민이 얼마나 클지, 얼마나 높고 큰 부의 탑을 쌓아올릴지 궁금했다.
꼬리표가 말끔히 떼어진 돈, 어떻게 써도 탈 안 날 돈이 썩어나는 이 집안에서 후계자 검증에 1억 5천만 달러면 수업료치고 비싸지 않았다. 이대수의 후계자는 그 돈도 우습게 보일 재산과 수많은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니까.
그 수업료를 맡길 회사가 이성민의 것이라면 어떻게 클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았다. 이 집안의 장손이자 제정신을 차린 이성민, 그것도 대한이동통신 투자로 이백억을 육백억 이상으로 불린 이성민이 키울 회사가 아닌가?
동물적인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승주가 이대수에게 허락을 구했다.
“그 회사에 대해 조사해도 되겠습니까, 회장님?”
“스탠더드 캐피털?”
“예, 회장님.”
이대수는 고승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게. 알아보기만 하고 티는 내지 마. 명진이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지난 연말부터 소식을 듣고 준비해왔다고 합니다. 건설, 시멘트, 제강, 중공업 할 거 없이 전부 에이스들만 추렸으니 기대해도 좋으실 듯합니다.”
고승주의 보고에 이대수가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흐흐, 그놈도 꼬리에 불이 제대로 붙었구먼. 은평구에 짓던 백화점 때문에 기합이 잔뜩 들어갔는데 말일세.”
“이번 일만 잘 되면 꼬리표 없는 돈 2천 5백억이 생기잖습니까, 하하.”
이대수는 이명진에게도 이번 공사를 따오면 비자금 2천 5백억을 넘겨주겠다고 했었다.
그룹 비자금은 회사를 위해서만 써야한다는 불문율 때문에 사적으로 쓸 수 없지만 돈이야 많을수록 좋은 법. 이명진도 이번 사업에 모든 정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래야지. 내 새끼들이라도 공짜로 부려먹을 수는 없지 않겠나? 공짜 밥은 없는 법이야, 으허허.”
껄껄 웃던 이대수가 이성민이 건네준 보고서를 다시 한 번 펼쳐봤다.
“이놈이 은평점을 할인점으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생각이라 생각합니다. 은평구는 구매력이 큰 동네가 아니라서 백화점보다는 할인점이 유리합니다. 이번 기회에 할인점 사업에 진출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고승주의 의견에 잠시 고민하던 이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사, 어디까지 됐다고 했지?”
“지하주차장 공사까지 마무리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네, 태 대표하고 이 보고서 검토하고 결정해. 미국 쪽 상황을 보니 유통 쪽은 할인점이 대세가 될 것 같으이.”
턱을 매만지던 이대수가 가볍게 숨을 내쉬며 결정하자 고승주가 재깍 대답했다. 10여년 넘게 회사 일을 반쯤 놓고 있었다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았던 이대수가 아닌가?
“예, 회장님.”
“인자 강남터미널 따오는 것만 지켜보면 되겠어. 아들놈하고 손주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지는구먼, 흐흐.”
이대수의 얼굴에는 두 사람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
삼청동에서 나온 나는 선해철, 박태진과 함께 이태원 집으로 돌아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막상 거짓말은 했는데 죄 짓는 것 같다, 흐흐.”
“고마워요, 삼촌.”
되도 않는 거짓말이지만 할아버지라면 좋게 봐줄 것이다. 집안과 그룹의 등골을 빼먹으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던 선해철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 회장님께서 시키신 거 진짜 할 거냐?”
“이마로 밤송이를 까라고 해도 해야죠. 할아버지가 부탁한 일인데.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잠시 고민하던 박태진이 고개를 들었다.
“강남터미널 공사 입찰, 쉽지 않을 겁니다.”
“왜죠?”
“회장님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태현이나 대정처럼 대형 건설사를 낀 재벌들은 전부 달려들 겁니다. 부지면적만 1만 8천 평인 대형공사가 아닙니까? 자금조달이 관건인데 우리보다는 그들이 더 앞설 겁니다.”
“대마불사라는 거죠?”
“예. 뿐만 아니라 해동건설은 테헤란로에 있는 그룹 본관 두 동을 제외하면 그 이상의 초대형 빌딩 공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경험 면에서도 많이 밀릴 겁니다.”
사실상 할아버지가 내린 조치는 타 그룹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만 저울추를 올려준 것에 불과했다. 그조차도 안 해주면 절대 공사를 딸 수 없으니까.
박태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 비가격 요소에서 승부를 봐야겠네요.”
돈 문제는 할아버지가 메워줬다. 회사가 일을 잘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내 말에 박태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법이 있으십니까, 도련님?”
“쥐고 있는 카드라도 있냐?”
“해동건설 역량을 높이면 되겠죠?”
너무 쉽게 말했나, 박태진과 선해철은 도로 딱딱한 표정을 한 채 날 빤히 쳐다봤다.
“그걸 말이라고! 인마, 건설회사 역량을 한순간에 높이는 게 쉬운 줄 알아?”
“도련님, 사업은 장난이 아닙니다. 좀 더 신중히 말씀하십시오.”
두 사람의 눈에서 실망을 봤지만 그 실망을 기대와 기특함으로 바꿔줄 방법이 있었다.
“충분히 신중하게 말했어요, 형. 일단, 한강에 바람이나 쐬러가죠.”
“이 날씨에? 입 돌아갈 일 있어?”
선해철은 황당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지만 수업료 3억 불을 받아내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건설사 역량을 건물 짓는 것만으로 보여주는 건 아니잖아요? 형, 저하고 제 방에 있는 천체망원경 가져와요.”
***
집을 나선 우리는 한강 근처의 둔치에 도착해 집에서 가져온 천체망원경을 설치했다.
“아이고, 추워라. 대낮에 천체망원경이라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차 밖으로 나온 선해철은 입김을 내뿜으면서 투덜거렸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삼촌. 형, 저기 저쪽으로 맞춰요.”
“예, 도련님.”
손가락으로 다리 가운데를 가리킨 나는 박태진과 함께 망원경 끝을 다리 한가운데로 맞췄다.
“저 먼저 확인해볼게요.”
주 망원경 접안렌즈에 눈을 대고 확인하자 원하는 게 내 눈에 보이고 있었다.
쇼타임,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