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4th. 첫 수확 (2)
오늘도 이대수는 PT를 봐주는 남자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며 삼대중량을 다 치고서야 샤워와 식사를 마치고 서재로 올라와 신문을 봤다.
“오늘은 어떤 놈이 개소리를 짖어대려나···.”
차를 마시며 신문을 살펴보던 이대수가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누구신가?”
[정현이요, 형님.]
평소와 달리 무뚝뚝한 세경그룹 채정현 회장의 목소리가 이상했지만 이대수는 평소처럼 반갑게 대꾸했다.
“아, 채 회장?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대한이동통신 주가 좀 그만 올리면 안 되겠소? 내가 얼마나 공들이는지 알고 계시잖소?]
채정현의 하소연 섞인 질문에 이대수는 황당한 듯 눈만 껌뻑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이마에 길고 굵은 골이 패였다.
“대한이동통신 자네가 먹는 거, 전경련 회의 때 밀어준 게 나였어! 내일모레 환갑이라고 그새 잊은 겐가?”
이대수가 수화기에 대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호통 쳤다.
지분 23퍼센트로 회사를 지배하는 걸 내켜하지도 않지만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채정현과의 친분에 금융실명제로 타격을 입은 척 하느라 세경그룹 편을 들어줬을 뿐이다.
얼마나 해동을 만만하게 보면 이런 전화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약발이 먹혔다고 해도 이대수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대수의 거친 숨소리가 가라앉힐 때 채정현의 누그러진 목소리가 들렸다.
[알고 있습니다, 형님. 그런데··· 형님 장손이 주식을 계속 사들이고 있어서 여쭤본 겁니다.]
“뭐라고?”
이대수의 눈이 커졌다. 장손이 대한이동통신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니?
이대수는 이성민이 선해철과 손을 잡고 트라이엄프 캐피털과 돈을 움직인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세경그룹 회장이 전화로 하소연할 정도면 보통 사이즈는 아닐 것 같았다.
[용돈이나 벌자고 한 거면 눈 감고 넘어가겠는데 물량이 41만 주요. 1만 주만 더 채우면 지분율이 5퍼센트인데··· 형님이 시킨 거 아니오?]
“사, 사실인가?”
이대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41만 주면 현재 주가로 천억 원에 가깝다. 고승주에게 들은 대로면 선해철을 통해 해외로 빼낸 돈을 빼면 남은 게 2백억뿐인데 언제부터, 어떻게 그 물량을 모았단 말인가?
[뭐요? 형님도 모르고 계셨던 거요?]
“자네한테 처음 들었네. 헛소리가 아닐세, 정현이.”
자신도 모르는 일이기에 사실대로 인정했지만 이대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그런 이대수의 속도 모르고 수화기에서 채정현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거 참··· 부탁드립니다, 형님. 성민이한테 지금 던지라고 하면 안 되겠소? 이대로 주가가 오르면 인수가가 자그마치···.]
채정현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대수는 단호하게 그 목소리를 끊었다.
“미안하이.”
[형님!]
“금융실명제 폭탄 맞아서 내 새끼들 물려줄 것도 변변치가 않네. 할애비가 돼서 조실부모한 장손 밥그릇을 깨라는 겐가? 난 자네 아들 밥그릇 키우는 거 도와줬는데?”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대수에겐 지금이 기회였다. 자신이 이빨 빠진 호랑이 연기하는 것을 사실로 굳힐 기회가 아닌가? 다른 놈들이 자신이 연기하는 걸 눈치 챌까 노심초사했기에 장손이 만들어준 호기를 놓칠 수 없었다.
“8.3 사채동결 때 자네한테 물린 돈이 지금 가치로 2천억일세. 병호 형님이나 진호 형님, 다른 놈한테도 물렸지만 치졸해보이기 싫어서 묻어뒀는데 내 입으로 다시 꺼내야겠나?”
이 나라 재벌들 중 이대수 돈 안 쓴 사람이 없었고, 8.3 사채동결로 그의 뒤통수를 친 도둑놈들이 수두룩했다. 나중에 사과했다지만 자신이 일하던 방직회사를 인수할 때부터 이대수의 돈을 빌려왔기에 채정현은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채정현이 낮은 목소리로 사과하자 이대수의 입꼬리가 귀에 닿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옛 일을 들췄으니 자신이 개털 됐다는 거짓말이 사실로 굳어질 것이다.
“그만함세. 성에 안 차긴 해도 해동종금 설립 허가에 해동물산 비상장으로 보상 받았으니까.”
[예···. 신성 장 회장한테도 전화해야 하니 다음에 뵙고 차라도 한 잔 드시죠.]
“그놈도 자네 밥상에 고춧가루 뿌렸나? 병호 형님 아들 아니랄까봐, 쯧쯧.”
8.3 사채동결 때 태현그룹 명진호와 함께 가장 많은 돈을 떼어먹고 다른 그룹 회장들과 축배까지 들었던 장병호의 큰아들답다 생각했지만 이대수는 예상 밖의 대답을 들었다.
[그 친구 큰딸이 10만 주 정도 쥐고 있더군요. 국세청 오 청장한테 듣기로는 장 회장이 그 아이한테 차용증을 받고 빌려줬다고 합니다.]
“확실한가?”
이대수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얼굴까지 굳어진 게 심각해보였다.
[예. 걸리는 거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닐세. 다음에 오면 골든팁스나 한 잔 함세.”
[예, 그럼···.]
전화를 끊으려던 이대수는 내려놓으려던 수화기를 다시 뺨에 붙였다.
“아! 이 일은 다른 놈들한테 비밀로 해주게. 이상한 소리는 나돌지 말아야지. 부탁함세.”
[알겠습니다, 형님.]
대답을 들은 이대수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책상서랍을 끄집어냈다.
“흐음···.”
침음성을 흘리며 서랍 안에서 누렇게 바랜, 죽은 장남과 장호건의 지장이 하나씩 찍힌 봉투를 바라보는 이대수. 그의 굳은 얼굴은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성민이한테도 미안하고 하연이 그 아이가 맘에 안 드는 건 아니다만···.”
이대수는 자신의 장손을 늑대굴 같은 장 씨 집안에 훌러덩 들여보낼 수 없었다. 때문에 자신이 바라보는 봉투를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짐이라 여기고 있었다.
서랍을 다시 닫은 그는 수화기를 들었다.
“나다, 승주야.”
차마 자신이 직접 나설 수 없는 일이기에 내세울 사람은 자신의 장남 같은 고승주뿐이었다.
***
고승주의 호출을 받은 나는 박태진과 함께 차를 타고 해동그룹 사옥으로 갔다. 곧 있으면 졸업이니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뒤통수가 쌔한 맛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어서 와라.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세월 한 번 빠르구나, 하하.”
“파란만장하기도 했고요.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다시 올라오고··· 세상일이라는 게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다시 올라오게 된 이유, 말할 수 없는 이유를 떠올리며 웃던 나는 박태진과 함께 자리에 앉아 고승주가 내준 케냐 AA 드립커피의 묵직한 산미를 즐겼다.
“조 대표님께 듣기로는 남은 현금을 증권사로 옮겼다는데··· 어느 종목에 투자했는지 궁금하구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찻잔을 내려놓은 고승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속이 뜨끔했다. 해외 투자 건은 수업료로 포장했지만 전생의 이 시절에는 주식투자와 담을 쌓았기에 내가 받을 질문은 뻔했다.
“세경그룹 채 회장님께서 네 얘기했다고 회장님께 들었다.”
“저 때문에 주가 올랐다고 말했나요? 채 회장님께서요?”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기에 차분히 되묻자 고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크게 걱정하는 건 아닌 듯했다.
“금융실명제 연막 치느라 전경련 모임 때 회장님께서 채 회장님을 밀어주셨거든. 그런데 네가 주식을 사들여서 주가가 올랐으니 채 회장님으로서는 황당했겠지.”
“그러겠네요. 용돈벌이 정도만 했다면 모르겠는데 작정하고 달려드는 걸로 보였을 테니··· 죄송합니다, 실장님.”
분위기 상 고개를 숙이자 고승주는 나를 다독여줬다.
“알고 그런 것도 아니잖냐. 죄송할 거 없어. 오히려 네 덕분에 비자금, 사채자금 흔적 지우는 게 쉬워졌으니 잘 됐지.”
“무슨 말씀이세요?”
“오늘 아침에 회장님께서 채 회장님께···.”
고승주에게서 할아버지와 채정현이 나눈 이야기를 듣고 입을 벌렸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화 한 통을 주고받는 짧은 시간에 우리 집안이 개털 됐다는 거짓말을 사실로 승화시켰다니··· 할아버지의 순발력은 최고였다.
“회장님 성격이나 경영철학에 안 맞는 일이라 안 될 일이었어.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성민아.”
“그래도 오늘 이야기는 흥미롭네요. 그런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니···.”
“군인들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때 묶인 사채자금으로 해동종금 세우는 걸 허락받았고, 물산과 종금은 상장을 피해서 외부주주가 없으니 무사히 넘긴 셈이지.”
8.3 사채동결과 기업공개촉진법 단행은 전라도 만석꾼 집안에서 시작된 우리 집안에게 전화위복이었다.
그 결과,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해동그룹의 모태이자 모기업인 해동물산, 그룹의 은행인 해동종금은 우리 집안사람들이 90퍼센트, 전현직 핵심임원들이 10퍼센트를 쥐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증시에 올라간 4개 계열사들도 우리 집안사람들과 해동물산 지분만 51퍼센트, 임직원 지분까지 모으면 70퍼센트에 육박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순환출자를 만든 다른 그룹들이 안 부러웠다.
여기에 밖에서 빌린 돈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새해를 맞아 분위기를 쇄신하고 사업에 나서면 사채시장과의 커넥션 의혹도 물 흐르듯 넘길 수 있었다.
“내년이 빨리 오면 좋겠네요. 시무식 때 할아버지께서 무슨 말씀 하실지 궁금해요.”
“아마도 제 2창업을 선언하실 것 같은데··· 얘기할 게 하나 더 있단다.”
고승주의 얼굴을 보니 겉도는 얘기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제 일인가요?”
“네 일은 아닌데 채 회장님이 대한이동통신에 눈에 띄는 주주가 한 명 더 있다고 했어.”
등골에 싸늘한 기운이 퍼졌다. 눈에 띄는 주주라면··· 설마?
“고려호텔 장하연 부장이 10만 주를 갖고 있다고 채 회장님이 알려줬다. 동문회 모임에서 봤던 게 맞으면 주식에 관심이 없던 걸로 아는데···.”
날 바라보는 고승주의 눈에서 느껴지는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장하연을 끌어들여 벌인 일이 아닌가?
하지만 아직은 드러낼 수 없었다.
장호건과 신성그룹이라면 질색팔색하는 할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할아버지에게 장남 같은 사람이자 최측근인 고승주에게 들키는 것 또한 안 되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요? 누나가 그 주식을 샀다니 신기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일에만 몰두하는 줄 알았는데··· 피는 못 속이는 것 같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진한 풍미를 선사하던 케냐 AA, 지금은 내 혀끝에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
한편, 강남터미널 개발권을 가진 센트럴스퀘어 합병을 추진하던 장호건도 채정현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채 회장님, 제 아이가 대한이동통신에 투자한 줄 몰랐습니다. 그저 좋은 곳에 투자하겠다고 해서 빌려준 겁니다.”
[그런데 왜 신성증권 계좌는 없는 겁니까, 장 회장?]
“그야 물의를 일으키기 싫어서 그랬습니다. 기자 놈들한테 드러나 봐야 좋을 것도 없잖습니까?”
채정현의 추궁에 장호건은 애먼 기자들을 제물로 던졌다. 수화기 너머의 중늙은이에게 장하연이 혼외자식이라고 밝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마냥 당하고 있기만은 억울했기에 장호건도 날을 세웠다.
“그리고 겨우 10만 주입니다, 회장님. 그런 일로 오전부터 목소리를 높이시다뇨?”
[장 회장, 그래도···.]
“그래도라니요? 제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보다야 제 딸내미가 쌈짓돈 좀 챙기는 게 싸게 먹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신성그룹이 나서면 대한이동통신 인수가격이 오르는 건 말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수화기에서는 채정현의 목소리가 틈도 안 주고 흘러나왔다.
[미안합니다, 장 회장. 장 회장 말고도 삼청동 이 회장님 일까지 겹쳐서 실수했소.]
“이대수 회장님이야 돈 버는 수완은 귀신이잖습니까. 새삼스럽게 뭘 그러십니까?”
징그러운 노인네.
차마 말할 수는 없었지만 장호건은 이대수가 고작 푼돈 때문에 자기 사업을 방해했나 싶어 그를 비꼬았다. 하지만···.
[그 양반이 직접 나선 게 아니라 장손이 혼자 나섰다는 게 문제 아니겠소. 이거야 원.]
장호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아는 이성민은 주식에 관심이 없는 아이였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채 회장님?”
[그게···.]
장호건은 채정현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을 깜빡거리거나 입을 벌렸다. 혼자서 있길 망정이지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미친놈이라 듣기 딱 좋았다.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 일은 비밀로 부쳐주시죠. 우리 딸 혼사에 지장은 없어야죠. 예, 날 풀리면 라운딩이라도 한 번 하시죠.”
장호건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서랍에서 봉투를 꺼냈다.
입술을 말아 넣고 가늘게 눈을 뜬 그는 죽은 이명우와 자신의 지장이 하나씩 찍힌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잘 되면 좋으련만···.”
봉투를 바라보는 장호건. 그의 얼굴은 기대와 아쉬움이 뒤섞여있었다.
방금 전 전화로 들은 일이 이성민과 장하연이 작정하고 벌인 일이라면 두 아이를 맺어주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이 담긴 이 봉투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약속이 이뤄지는 걸 이대수가 두고 볼 리 없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혼서약서이기도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자신의 부친 장병호에게 뒤통수를 맞은 이대수가 아닌가?
그렇기에 홀로 남은 장호건은 오늘따라 유난히 어깨가 무거웠다.
봉투를 넣은 그는 수화기를 들고 새 번호를 눌렀다.
“나다, 하연아. 밖에서 커피 한 잔 마실까?”
***
약속장소에 도착한 장하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특별한 약속 외에는 업무시간에 늘 성의원 집무실에 있는 분이 바깥에서 보자고 했기에 입술까지 뜯고 있었다.
장하연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호건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이 기다렸니?”
“아뇨, 아버지. 어서 오세요.”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주문한 커피를 마셨다. 조용히 커피만 마시는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연말이라 바쁠 텐데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아버지. 오늘은 연회가 없어서 괜찮아요.”
장호건은 딸을 보며 빙긋 웃고는 찻잔을 내려놨다.
“우리 딸이 요즘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애비 기분이 좋구나. 세경그룹 채 회장님이 네 주식 던져달라고 했는데 애비가 거절했다. 우리 딸내미 살림밑천 마련해야지.”
“세경그룹 채 회장님이요?”
장하연은 껄껄 웃는 아버지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주식 때문에 세경그룹 회장이 전화를 넣었다니?
“그래. 성민이가 41만 주를 갖고 있어서 잔뜩 예민했던 것 같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기묘하구나.”
“···그랬군요.”
장하연은 잠시 놀란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을 더 바라봤다가는 이성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
집에 돌아온 나는 소파에 털썩 앉고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했어요. 백부님이 아시면 할아버지께서도 아셨을 텐데···.”
“실장님께서도 더 이상 묻지 않으셨으니 다행이라고 봅니다.”
고승주의 추궁 아닌 추궁을 애써 피하며 뭉갠 나는 아직도 속이 울렁거렸다. 비밀연애가 짜릿하다고 쓴 작가 놈들한테 니들이 해보라고 소리치며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었다.
속을 가라앉히려고 주방에 가서 물 한 컵을 마시던 나는 전화벨 소리를 듣고 거실로 걸어왔다.
“누구 전화예요?”
“하연 아가씨입니다, 도련님.”
우리 집이나 그 집이나 자식사랑이 너무 지극한 것 같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