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4th. 첫 수확 (1)
내 기억에 선해철의 조언을 더해서 대한이동통신 주식을 최대한 싸게 매집하면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다보니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11월이 되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며 미소를 띠었다.
[제 2이동통신 사업자 재입찰 개시. 떠오르는 이동통신시장의 주도권은 누가 가져갈 것인가?]
[대한이동통신 공개 입찰 공식화. 경영권 지분 23퍼센트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3월 말부터 질질 끌어왔던 대한이동통신 민영화가 드디어 발표됐다. 이제부터는 주가가 하루가 멀다고 뛸 것이다.
“형님께서 말씀하시긴 했지만 도련님 예측이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나와 함께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던 박태진이 신문을 내려놓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별 거 아니에요. 지금 대통령이 살아온 인생, 앞으로 그 양반이 원하는 것 등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아요, 후후.”
박태진을 보며 옅은 웃음을 흘렸다. 이걸로 내 앞에 있는 박태진은 나를 더 굳게 믿고 지지해줄 것이다.
여전히 감탄을 숨기지 못하는 그에게 말할 게 있었다.
“지금 확보한 주식 담보로 맡겨서 대출 받고 신용매수, 미수거래도 최대한 땡겨요. 누나한테도 말해둘게요.”
“알겠습니다, 도련님.”
나와 장하연이 200억, 50억씩 부어서 모은 대한이동통신 주식이 약 20만 주, 5만 주다. 지금 모은 주식만 팔아도 압구정 태현아파트 50채를 살 돈이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박태진과 사인을 주고받은 뒤, 나는 장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잘 잤어?”
[응. 덕분에. 그런데··· 대한이동통신 민영화한다더라?]
“계좌, 들여다봤구나? 내가 무슨 종목 사는지.”
[아버지 돈 빌려서 하는 일인데 어떡해. 그래도 비밀은 지켰다?]
장하연이 주식거래 내역을 보고 대한이동통신 투자를 실토했다면 하루가 멀게 장호건의 전화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가 가장 아끼는 장하연의 돈이 걸린 일이 아닌가?
그 딸바보 장호건이 날 채근하지 않게 해줬으니 장하연으로서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신뢰를 보여준 셈이었다.
“알아. 그건 그렇고··· 오늘부터는 주식담보대출 받아서 신용매수 들어갈 건데, 어떡할래?”
[진짜 하려고?]
주식담보대출, 신용거래··· 보통은 인생 막차 탄 인생들이나 하는 짓이지만 대세가 확실하면 화끈하게 올인해야 한다. 내년 1월이면 못 먹어도 배 이상의 이익을 남길 대한이동통신인데 멀거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원금만 굴려서 돈 벌 거면 하지도 않았어. 3배일 때 팔아도 세금 떼고 아저씨한테 빌린 돈에 이자까지 갚으면 50억도 안 되잖아? 아저씨한테 뭔가 보여줘야지?”
연하라는 핸디캡을 극복할 절호의 기회이기에 자신 있게 밀어붙이자 장하연의 질문이 되돌아왔다.
[넌 어떡할 건데?]
“올인. 사뒀던 주식 전부 담보로 맡기고 지를 거야.”
[야?]
노름에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 못할 말에 장하연이 외친 소리에서 당혹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고’를 외칠 때다. 빚을 내서라도 최대한 물량을 모은 뒤에 고점에서 팔면 원금의 최소 세 배로 돈을 불릴 수 있다. 신용물량의 반절만 팔아도 주식담보대출과 신용매수 원리금을 갚으니 풀 배팅이 정답이다.
“오늘부터 사자주문 내고 쓸어 담을 거야. 같이 갈래? 그만 갈래?”
[안 가면··· 다시는 나 안 볼 거야?]
장하연이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모든 걸 던지는 나 때문일까?
죽음의 강을 거슬러 올라온 나는 두려울 게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부담이 클 것 같았다. 나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수화기에 말했다.
“아니. 나 믿고 같이 가자는 거야. 잘못된다고 해도 내 부동산 팔면 되잖아? 명동에 있는 건물 말이야.”
[나도 아버지한테 내 신용 팔아서 투자했어. 쉽게 말하는 거 아냐?]
장하연의 토라진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건물에 담긴 비밀이 있었다.
“그거, 우리 할아버지가 해동종금 초창기에 썼던 건물이야.”
[그런 거였어?]
나는 장하연의 깜짝 놀란 목소리를 듣고 미소를 띠었다.
재벌총수들도 나름의 낭만이 있고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8.3사채동결로 본 손해를 정부에서 보전 받는 차원에서 종금사 설립을 허가받은 할아버지가 해동종금의 첫 사옥으로 쓴 건물이니 그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었다.
“자신 없었으면 그 건물, 맡기지도 않았어. 어떡할래?”
잠시 흐른 침묵 끝에 장하연의 굳은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대신에 신용거래는 아버지한테 말한다?]
“나만 안 드러내면 돼. 알지?”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잖아? 후훗.]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묘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비밀을 공유한다는 유대감이 이런 느낌인가?
전화를 마친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박태진을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
“어, 언제부터 있었어요?”
“꽤 됐습니다, 도련님. 이걸로 하연 아가씨한테 점수는 꽤 많이 따신 것 같군요. 하하.”
“형도 참··· 학교 다녀올게요.”
***
전화를 마친 장하연은 하늘하늘한 잠옷 차림으로 욕실로 들어가서는 20여 분쯤 지나서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닦으며 나왔다.
옷을 입고 화장까지 하니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밖에서 사람들에게 비치는 신성그룹 3세 장하연으로 바뀌어있었다.
자신에 대한 이성민의 마음 때문인지 장하연은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방을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도, 콧노래도 자신을 고깝다는 표정으로 보는 장수연의 눈초리를 마주하자마자 싹 사라졌다.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좋아?”
장하연은 날카롭게 쏴붙이는 장수연을 무시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배가 다르다지만 한 살이나 어린 동생과 시비가 붙어봐야 좋을 게 없으니 무시가 답이었다.
“이, 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장수연이 손을 휘둘렀지만 장하연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사뿐히 옆으로 피했다.
덕분에 장수연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녀가 휘청거리는 바로 앞은 1층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이었다.
“어, 어···!”
팔을 허우적거리는 장수연의 목덜미를 장하연이 얼른 잡아서 뒤로 끌어당겼다.
장하연은 입사 1년차 때 직원들과 함께 부대끼며 리셉션 때마다 손수레를 밀고 테이블을 굴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노동에 매일 회사 피트니스 센터에서 근력운동을 하는 장하연에게 장수연 하나쯤은 별 거 아니었다.
쿵!
뒤로 나동그라진 장수연을 보고 장하연이 무심하게 말했다.
“조심 좀 해.”
너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무심한 목소리에 장수연은 더 화가 돋았다.
“···야-!”
화를 참지 못하고 장수연이 소리쳤다. 이성민을 손에 못 넣어 신성기획에서 못 버티고 신성모직으로 이동한 게 저년 때문이 아닌가?
악에 받친 장수연의 눈초리에서 살기가 느껴졌지만 장하연도 지지 않고 날카롭게 쏘아보던 중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가 두 여자의 싸움을 멈추게 했다.
“어디서 되먹지 못한 버릇이야? 아침부터 누가 큰소리 내랬어!”
“아, 아빠···.”
2층으로 올라온 장호건의 서릿발 같은 표정에 장수연은 말을 더듬었고, 장하연도 눈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수연이 손 피하다가 그만···.”
“아침부터 서로 조심하지 않고 뭐하는 거냐? 쯧.”
배다른 두 자매를 번갈아보며 혀를 차던 장호건은 장수연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네··· 아빠.”
장호건의 손을 잡고 일어난 장수연은 식당으로 향하는 장하연의 뒷모습을 죽일 것처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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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자 장호건이 입가심으로 마시던 숭늉 그릇을 내려놨다.
“오늘 신문 봤으면 알겠지만 우린 이동통신 사업에 안 나설 거다. 왜 그러는지 아느냐?”
사업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이 자리는 신성그룹의 후계자를 평가하는 자리이자 그룹 회장을 모시는 자리이다. 존댓말 정도는 몰라도 허황된 소리는 용납될 수 없다.
장호건의 질문에 모두들 눈치만 보던 가운데 장하연이 낮게 손을 들었다.
“말해봐.”
“청와대 성향도 고려해야 하지만 신성그룹의 미래는 반도체입니다. 국내시장만 바라보는 대한이동통신을 인수하느니 세계시장으로 나갈 반도체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장호건은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본 것 같은 딸의 의견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하연이 말이 맞다. 우리 신성은 크게 보고 크게 움직여야 한다. 크게 움직이려면 시장이 큰 사업에 힘을 써야지.”
장호건이라고 캐시카우인 대한이동통신의 가치를 모르는 게 아니다. 허나 재계의 마당발인 이대수가 전경련 회의 때 세경그룹을 밀어줘서 포기했다고 말하기엔 체면이 안 섰다.
장호건이 애써 내색하지 않고 말할 때 장용재, 장수연, 장민재가 장하연을 티 안 나게 흘겨봤다. 밖에서 들어온 계집이 감히!
장하연도 지지 않고 배다른 세 남매의 질투 어린 눈을 쳐다보는 가운데 장호건은 모르는 체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른 계열사 또한 키워야 하는데 너희들 생각을 듣고 싶구나. 편하게 얘기해봐.”
절대 편하게 얘기할 수 없는 질문에 서로 눈치만 보던 중 이번에도 장하연이 먼저 시작했다.
“장기적인 계획이지만 고려호텔 면세점 사업을 해외업체들처럼 공항 쪽으로도 확대했으면 해요.”
“공항면세점 말이냐?”
“네. 김포공항에서 시범운영을 하면서 노하우를 쌓고 나중에 열 인천국제공항이나 외국 공항에 입점하면 좋겠어요.”
공항면세점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외국 기업들을 모방하는 게 대한민국 재계의 현실이다. 그래도 국내기업들이나마 앞서보자는 장하연의 안타에 장호건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용재가 해볼까?”
장용재 또한 기다렸다는 듯 가슴을 쭉 펴고 말했다.
“신성물산 제 2자동차 공장은 부산에 지었으면 합니다.”
“부산이라···.”
“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은 부산입니다, 아버지.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이니 규모를 늘리려면 반대급부는 필수입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우리 신성의 의지를 보여줘야죠.”
“호오···.”
신성물산에 입사한지 1년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지만 나름대로 묵직한 한 방을 보여주자 장호건은 절로 탄성이 나왔다. ‘의지’라는 단어에서 장남의 투지가 느껴졌고, 자동차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헤아려주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두 사람의 뒤를 잇는 건 장수연이었다.
“저는 의류사업을 확대했으면 해요. 앞으로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먹고 마시고 꾸미는 데 쓸 돈이 커질 테니까요. 모델은 남자든 여자든 젊은 모델들을 기용하면 좋을 것 같네요.”
당당하게 말하는 장수연과 달리 장호건은 굳은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관계가 난잡한 둘째 딸 때문에 비서실과 홍보실 직원들이 한두 번 고생한 게 아니다. 의류사업을 맡긴다면 둘째 딸이 무슨 사고를 칠지 걱정이었다.
“우리 막내는 뭐가 좋냐?”
“금융을 키웠으면 합니다. 세계화시대에 맞춰서 경쟁하려면 보다 공격적인 영업으로 자산규모를 늘리고 해외금융시장에 진출해야 합니다, 아버지.”
막내인 장민재가 늘 그러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내놓은 원론적인 의견을 마지막으로 장호건이 숭늉을 비웠다. 네 남매는 아버지의 입만 바라봤다.
“다들 고생했다. 가서들 일 봐.”
식당을 나간 자식들의 한숨소리가 사라지자 장호건도 출근 준비를 하러 안방으로 향했다. 그 뒤를 그의 부인 황나연이 눈살을 찌푸린 채 쪼르르 따라갔다.
“여보, 아침부터 그렇게 해야겠어요?”
“뭐가?”
“사업 이야기요. 금융실명제 때도 그렇고 애들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안방에 들어온 장호건은 코트를 건네주는 황나연의 불만어린 표정을 빤히 쳐다봤다.
“저 애들, 신성을 다시 합치고 키워야 할 애들이야. 그게 싫으면 책상 치우고 배당이나 받으라고 해.”
“여보?”
장호건이 말이 황나연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친정인 조국일보가 상속전쟁 때 도와준 걸 감안해도 지금껏 한 번도 비수를 던진 적이 없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뜬 황나연에게 장호건이 또 다른 칼을 던졌다.
“지금껏 용재, 수연이, 민재는 수백억씩 받았잖아. 하연이는 한 주도 없고. 능력 없으면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리겠어.”
황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이들에게 매정하게 말하다니··· 아이들을 자식으로 생각하기는 하냐고 묻고 싶게 만드는 남편이 미웠다.
장호건은 황나연의 원망스러운 시선을 뒤로 한 채 지하차고로 내려가서 차에 올라탔다. 자식들을 아끼지만 사적인 정 때문에 회사가 망하는 걸 볼 수도 없으니 본인도 착잡했다.
“가세.”
“네, 회장님.”
벤츠 대형세단을 타고 성의원으로 향하던 장호건은 벨소리를 듣고 핸드폰을 꺼냈다.
“신성그룹 장호··· 무슨 일이냐?”
나지막이 탄성을 흘리던 장호건이 조수석과 뒷좌석 사이에 있는 유리창을 닫고 말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보는 눈이 좋구나. 돈 벌 기회는 놓치면 안 되지. 그렇게 해.”
통화를 마친 장호건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내심 걱정했는데 장하연이 대한이동통신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허허, 첫딸은 살림밑천이라더니.”
전경련 회의가 걸렸지만 장하연의 물량이면 주가에 큰 영향이 없으니 크게 문제되지 않으리라 여겼다. 오히려 스스로 뭔가를 일궈내는 딸이 가상할 뿐이었다.
너털웃음을 흘리던 장호건은 핸드폰 전화번호를 눌렀다. 열심히 뛰는 딸에게 지기 싫은 마음이 그의 얼굴에 드러났다.
“아, 이 실장. 강남터미널 공사 허가, 언제 날 것 같나? 12월 21일? 공사 허가 떨어지면 누님하고 호민이한테 말해. 안 될 것 같으면 고려호텔 임대는 없었던 일로 하고.”
통화를 끊은 장호건은 방금 전과 같은 사람인가 싶을 만큼 음침한 미소를 띠며 하늘을 바라봤다.
***
“총알 들어왔네요.”
장하연의 통장에 추가자금이 들어온 걸 확인한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신성그룹이잖습니까, 도련님. 50억 정도는 쉽게 조달할 수 있죠.”
“그러겠네요. 우리도 200억 준비됐으니 시작하죠.”
***
우리가 신용매수로 대한이동통신 주식을 물 먹는 하마처럼 빨아들이자 10만 원대에서 움직이던 주가는 활주로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마냥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우리는 오르는 주가만큼 추가대출을 끌어들여서 주식을 매입하기 바빴다.
덕분에 12월 하순 경에는 20만 원대를 훌쩍 넘겼다. 모든 자금을 투입해 물량을 충분히 확보한 지금은 주식 매수를 멈추고 장하연과 여유 있게 전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때?”
[어쩌긴? 기분 최고지. 꽁으로 2백억이나 벌게 됐는데.]
재벌집 딸내미가 2백억에 들떠있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1990년대다. 지금 돈으로 2백억이면 태현아파트 40채 값이 아닌가? 그 집안에서 기댈 곳 없이 외로운 장하연에게 힘이 되어줬기에 내 마음도 뿌듯했다.
기뻐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평단가는 약 11만 원. 물량은 원금으로 투자한 만큼 모았어. 누나 계좌로 매수했던 건 33만 원 넘어가면 처분할게.”
[정리하면 연락해. 수고.]
전화를 마친 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홍차 한 모금을 들이키자 옆에 있던 박태진이 빙긋 웃었다.
“병원에서 눈 뜨신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개인사도, 일도 전부 잘 풀리고 계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내색은 안 했어도 박태진 또한 걱정이 큰 것 같았다. 내 보호자가 마음이 놓인 걸 보니 내 마음도 편안해지고, 그 편안함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러게요. 우리가 빌린 돈 정리하려면 28만 원일 때부터 10만 주 정도만 팔면 되겠네요. 그렇죠?”
“그 정도면 대출을 전부 갚고도 32만 주는 도련님 순자산으로 남을 겁니다. 남은 주식은 어떡하시겠습니까?”
“나중에 정부에서 나머지 물량 정리하면 주가가 더 오를 거예요. 그때 처분하죠.”
당장 팔아도 5백억이 넘는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지만 눈앞의 것을 참지 못하면 더 큰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참고 기다리겠다.
얼마가 걸려도 하고 싶고, 해야 하는 내 복수에 비하면 더 큰 이익을 취할 때가 오길 기다리는 것 따윈 찰나에 불과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