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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1화 (1/229)

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

1화. 1st. 백년손님의 인생 (1)

“채윤정 사장 건, 어떻게 됐어?”

“기자들 입은 막아놨고 기획사는 신성엔터테인먼트에서 백억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실장님.”

“각서는?”

“여기 있습니다.”

결혼기념일 아침부터 처리해야 할 짓거리에 짜증스럽게 외친 나는 직원에게서 다섯 장의 종이쪼가리를 받아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십이 넘은 내 처의 사촌언니와 5인조 보이밴드가 밤새도록 떡친 일을 봉합한 각서가 아닌가?

의자를 뒤로 돌린 나는 허리를 굽혀서 지문인식 금고를 열고 ‘채윤정’이라고 쓰인 파일 케이스에 각서를 꽂았다. 빼곡히 들어찬 처갓집 사람들 파일케이스를 보고 한숨을 내쉬던 나는 금고를 닫고 다음 일정을 물었다.

“오늘 점심, 어떻게 되지?”

“사모님께서··· 일식집을 예약하셨습니다. 장소, 메뉴 모두 늘 만나던 곳이라고 하면 아실 거라고···.”

빌어먹을.

순식간에 뒷목이 뻐근해지고 가슴팍에 바위라도 얹은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보나마나 뻔하다.

자주 찾는 일식집에서 매번 찾는 방을 잡고 수백만 원짜리 스페셜코스를 차려놨겠지.

처가 놈들 때문에 말 그대로 속이 쓰렸는데 와이프의 뻔한 속내에 신물이 넘어오려고 했다.

“알았어. 가 봐.”

나는 내 눈치를 보며 아무말도 못하는 직원을 내보내고 홀로 남은 집무실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아냐, 그래도······.”

그래도 결혼기념일만큼은 늘 선물도 챙겨주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했던 여자다. 무난하게 넘어가기를···.

***

시간에 맞춰 단골 일식당에 도착한 나는 올해로 결혼 23주년을 맞은 장수연과 식탁을 사이에 둔 채 1대 1로 마주하고 있다.

작고 갸름한 얼굴과 여우같은 눈꼬리.

오십 대인데도 주름 하나 없는 피부.

동양 여성에게서는 보기 힘든 가슴과 허리, 엉덩이.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었다는 옷에 주얼리까지.

3천 년 전에 태어났다면 밀로의 비너스의 모델이 됐을 여자다. 연간 유지비로 신성그룹 비서실 임원 두세 명분의 연봉을 처바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런 장수연은 지금 날 보고 배시시 웃으면서 가운데 접시에 놓인 회를 몇 점째 내 앞의 접시에 놓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회를 좋다고 냉큼 받아먹었겠지만, 오늘은 도저히 먹을 생각이 안 났다. 선물은 고사하고 내게 내민 서류 때문이었다.

“어때? 이번에 기획한 사업인데.”

손에 들린 사업계획서를 좍좍 찢어버리고 싶었다. 사업을 핑계로 내 호주머니를 털어간 게 몇 번째고, 얼마인가? 결혼기념일보다 이 방에서 왜 밥을 먹는지 집중했어야 했는데!

나는 이를 악물고 장수연을 노려보다가 손에 쥔 서류철을 방바닥에 패대기쳤다.

“몇 년 전에 배달 어플 사업한다고 나한테 얼마나 가져갔어?”

“응?”

무슨 말이냐는 듯 장수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저 꼬라지를 보니 평소와 달리 귀신 들린 마냥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얼마나 가져갔냐고?”

“주식에 전환사채까지··· 이천억 정도?”

이천억 정도?

나이가 들면 낯가죽이 두꺼워진다더니 이제는 내 눈치를 보는 척도 안 하고 저딴 소리를 뻔뻔하게 해댄다.

이 빌어먹을 여편네의 머리채를 죄다 쥐어뜯어서 절간에 집어 처넣고 싶었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눌렀다.

“정확히 이천칠백 억이야. 전부 어떻게 했어?”

“아버지하고 용재 오빠, 민재한테 넘겼잖아. 사업 안 돼서.”

장수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내뱉고는 초밥을 입에 넣었다. 저 꼬라지를 보니 속이 뒤틀릴 것 같았다.

이 여편네가 조금 만지다가 사업 안 된다고 1천억 받고 판 그 사업은 처가에 팔리자마자 쭉쭉 성장했다. 그러더니 업계 1위가 되자 작년에 독일의 한 서비스 기업에서 인수를 제안해 장인과 처남들의 주머니에 수조 원이 꽂혔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누른 뒤, 싸늘한 목소리로 장수연에게 물었다.

“그 사업, 왜 망했는지 생각은 해봤어?”

“종놈 주제에 주인이 시키는 대로 안 하고는 지들 발로 나갔잖아? 오너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건방지게.”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 ‘시키는 대로’라는 게 가관이었다.

지 친구 자식들, 능력이라고는 쥐 좆도 없는 새끼들을 폼 나는 자리에 앉히고 월급 주라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덕분에 내가 애써 모아준 사람들은 죄다 회사를 나가버렸다.

웃기는 사실은 이 여편네가 회사를 넘기고 나니까 장인과 처남들이 두 배의 스톡옵션을 약속해서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고, 사업은 대박이 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장수연 이 여편네는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를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낯빛 하나 안 변하고!

식탁 밑에서 부들부들 주먹을 떨던 나는 간신히 손에서 힘을 빼내고 숨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지껄이는지 봐야겠다.

“지금까지 당신이 손댄 사업 다 읊어봐.”

“당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사업해서 성공해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고까워?”

장수연이 날카롭게 쏴붙였지만 코웃음도 안 나왔다.

성공?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 여편네가 지난 20여 년 동안 편의점이다, e-커머스다, 패스트 패션이다 벌였던 사업마다 밑천부터 사람, 거기에 사업 방향도 1년 차부터 10년 차까지 각 연차마다 발생할 변수에 따른 경영방향도 잡아줬다.

그때마다 죄다 배달 어플 사업처럼 자빠졌는데, 화딱지가 나는 건 그 사업들이 부활해서 잘나가는 과정이 배달 어플 사업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내 경영전략을 고대로 써서!

다른 집이었으면 부부고 나발이고 사생결단이 몇 번은 났겠지만 난 이 여편네한테 큰소리를 친 적이 손에 꼽혔다.

장수연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 위에 있던 장호건, 대한민국 코스피 시가총액의 30퍼센트를 차지하는 신성그룹의 장호건 회장이 아닌가?

집안을 저버리고 신성그룹의 사위, 그것도 저 백치인지, 돌아이인지, 고도의 남편 안티인지 모를 여자의 남편이 된 이유는 오직 하나.

신성그룹 회장이 되겠다는 야망 때문이었다.

규모와 주력사업도 해동그룹보다 압도적이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였고 날 아들처럼 아껴줬던 장호건의 신성그룹에 마음이 끌렸다.

무엇보다 그늘진 곳에 쌓아둔 돈을 내 말을 안 들어서 금융실명제 때 알거지가 된 할아버지와 해동그룹이 싫었다.

그래서 집안을 저버리고 장호건의 사위가 된 나는 신성그룹에서 분가한 방계들과 부도처리 된 해동그룹 계열사들을 합병했고 신성그룹 계열사들의 실적도 끌어올렸다.

하지만.

문제는 실적을 인정받아서 입지를 다질만하면 다른 곳으로 전출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었다. IMF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다 해서 바람 잘 날 없었고, 그렇게 해야 장수연이 번번이 사업 말아먹으면서 깎아 먹은 점수를 메우는 길이었으니까.

허나 내가 소방수로 나서서 불을 끄고 나면 처남이라는 놈들이 스리슬쩍 기어들어 와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다 처먹는 걸 두 눈을 멀거니 뜨고 지켜봐야 했다.

그에 반해 난 지금 ‘신성의 사냥개’, ‘신성의 거위’라는 별명과 함께 신성그룹 미래전략사업본부 산하의 부속실 실장을 맡고 있었다.

직급이야 사장이지만 여기서 하는 일은 전부 처가 사람들 뒤치다꺼리하는 일이었다. 그 인간들이 회사 안팎에서 치고 다니는 온갖 기상천외한 사고 전부!

어쩌다 내가 나보다도 못한 것들 똥이나 치우는 처지가 됐나 싶었다. 서울대 문과 수석 입학생이었던 나 이성민이 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돼서 터지기 직전일 무렵, 앙칼진 목소리가 귓전을 긁었다.

“야, 이성민! 왜 대답이 없어!”

그 순간 이성의 끈이 잘리면서 손이 나갔다.

짝!

‘젠장!’

잠깐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을 텐데, 내 손은 벌써 장수연의 뺨을 때렸다.

나도, 그녀도 어찌할 바를 모르던 중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미안해져서 꼬리를 내렸지만, 지금은 미안한 마음보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만하자. 더 이상 니 밑 닦는 것도 지겹다.”

“···뭐?”

“귓구녕 막혔어? 니가 싼 똥 치우는 것도 지겹다고!”

지금껏 신성그룹의 둘째 딸이라는 후광 때문에 참아왔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쌍욕을 날렸다. 결혼생활 처음으로.

어쩌면 그 욕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선택도, 결정도 내가 했기에 이 악물고 버텨왔지만 출구가 안 보여 지쳤는데 오늘이 방아쇠가 되고 말았다.

이젠 다 놔버릴 거다. 버틸 수가 없다.

내가 싼 똥 치우는 짓도 오늘로 쫑이다.

***

와장창!

문을 닫고 방을 나섰는데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남편 돈 우려내는 데 환장한 년이 뭐가 좋다고 달래주겠는가!

그뿐인가. 신성그룹 회장의 둘째 딸에게 싸대기를 날렸으니 사위인 나도 뒷감당이 안 된다.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온 나는 기다리고 있던 롤스로이스 팬텀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준비해뒀습니다, 도련님.”

“고마워요.”

뒷좌석 옆을 보니 내가 입은 옷과 똑같은 옷과 구두가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 입은 옷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죄수복이기 때문이다.

뒷좌석에 놓인 옷으로 갈아입고 벗어놓은 옷을 트렁크에 넣고 나서야 구속에서 해방되었다.

“개 같은 여편네!”

처음과 달리 거칠게 뒷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며 악을 썼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그런 나를 백미러로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도련님?”

“또 그러네요, 형님.”

이 남자의 이름은 박태진이다.

해동그룹 2대 회장이었던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직접 키운 세 명의 인재들 중 한 명이었고 내게는 큰형 내지 막내삼촌 같은 존재였다.

“···돈입니까?”

“네. 그렇게 날려먹고도 또 내놓으라네요. 빌어먹을 년!”

화를 참지 못해 팔걸이를 힘껏 내려치던 나는 숨을 가라앉히고 박태진에게 토해내듯 말했다.

“우리··· 이 나라 뜨죠.”

“도련님?”

“지쳤습니다. 이젠 형님하고 속 편하게 살고 싶네요. 그 여편네하고 살 부비며 살았지만 아이 하나 없으니 잘 됐습니다.”

속에 쌓인 걸 털어놓으니 후련하다 못해 허전했다. 지금껏 뭘 위해 23년을 살았고, 나 때문에 덩달아 23년을 허비한 박태진의 인생은 또 뭐란 말인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게 박태진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잘 생각했다, 성민아.”

“형···.”

모처럼만에 그에게서 듣는 내 이름, 이성민.

신성그룹의 사위가 되고부터 자동차 안에서만 그가 불러줘 왔던 내 이름 석 자가 오늘따라 한없이 초라하게 들렸다.

“지금까지 아등바등하는 거 보면서 안타까웠다. 잡지도 못할 걸 왜 그리 잡으려고 애썼는지···.”

“미안해요, 형. 저 때문에···.”

해동그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고승주의 뒤를 이을 인재로 꼽히던 박태진이 롤스로이스 운전수 노릇이나 하는 건 전부 내 탓이었다.

나와 함께 신성그룹으로 넘어온 그는 신성그룹 비서실장 제안까지 단칼에 거절하고는 쭉 내 개인 비서로 있었다.

그렇게 오롯이 내 옆을 지켜준, 내 몸의 반과 같은 그에게 미안해서라도 신성그룹 회장실의 주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젠 모든 게 끝났다.

그럼에도 박태진이 나를 바라보는 얼굴은 안쓰러워하면서도 애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바보 같은 사람.

“지금이라도 정신 차렸으니 됐다, 성민아. 어디로 갈까?”

“김포로 가죠. 인천은 너무 멀어요.”

국제선 숫자는 인천이 훨씬 많지만 영종대교까지 건너서 가려면 한세월이다. 1분 1초라도 이 나라를 빨리 뜨려면 김포로 가는 게 훨씬 나았다.

“바꿔치기, 해야겠지?”

역시 특수부대 출신다운 질문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나라를 뜨려면 이 차까지 바꿔서 타고 가야 한다.

“개 목줄 끊으려면 어쩔 수 없죠.”

그 개목줄은 방금 벗은 옷에 달린 넥타이핀, 만년필, 그리고 구두였다. 전부 도청장치와 위치추적기가 달려있어서 자유를 되찾으려면 늘 옷을 갈아입고 방음처리가 된 트렁크에 모셔둬야 했다.

백미러로 나를 바라보는 박태진과 시선을 마주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형 덕분에 숨 쉬면서 살았어요.”

“그래, 나도 처음에 도청기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학군장교임에도 특전사, 그리고 정보사 극비작전까지 차출되었던 박태진이 군에서 익힌 세심함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감시당하는 것도 모르고 평생 신성그룹의 개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박태진은 신호가 걸려서 잠시 멈춘 틈을 타 전화를 걸었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형님. 형님 롤스로이스하고···.”

박태진은 차마 내가 전화를 걸 수 없는 사람에게 부탁을 한 뒤, 백미러로 날 보며 빙긋 웃었다.

“공항 근처에서 바꿔치기하고 갈 거다.”

담담한 그 눈을 마주하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나 같은 놈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헌신해주는지···.

***

일은 빛의 속도로 진행되었다. 박태진은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몇 번의 통화를 하더니 이내 준비를 모두 마쳤다.

나 또한 지금껏 들고 있었던 신성그룹 계열사 주식을 전부 신성증권에서 모건스탠리 계좌로 옮겼다. 이 나라를 뜨는 대로 모건스탠리에서 내 주식을 팔아주면 적어도 1조 원의 돈이 해외를 몇 바퀴 돌아서 내 주머니로 들어올 것이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내 차와 똑같은 색상의 롤스로이스 팬텀과 중년 남성 세 명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목이 메었던 나는 인사를 건넨 남자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사이에 나머지 두 명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량번호판을 바꿔 달았다. 내 뒤를 붙은 차는 없지만 위치추적기와 도청장치들을 실은 채 공항에 갈 수도 없고, 그것들만 넘겨주자니 도청이 걱정됐다.

그 바람에 내가 직접 조이고, 닦고, 기름칠하던 롤스로이스와도 오늘로 작별해야 했다. 빌어먹을.

못내 아쉬운 눈길로 번호판이 바뀐 내 새끼를 보던 중 남자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고승주 이사장님 전언입니다. 미련은 이곳에 남겨두고 밖에서 편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전해들은 말이었지만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채권단에 넘어간 해동그룹 계열사들이 신성그룹에 차례차례 먹히는 와중에도 날 원망하지 않고 해동장학재단을 지켜준 것도 고맙고 미안했는데 끝까지 날 걱정해주다니···.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박태진과 함께 다른 롤스로이스에 몸을 싣고 그들이 탄 내 차와 함께 큰길로 나갔다.

이제 그들은 내 몸에 달렸던 추적 장치들을 트렁크에 실은 채 대부도로 갈 것이다. 장수연은 이제 내가 머리라도 식힐 겸 바닷바람이나 쐴 거라 생각하겠지.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 밖을 보며 앞으로 뭘 할까 고민하던 중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장수연이었다. 젠장.

***

“네까짓 게 감히···.”

장수연은 난장판이 된 방에 남아서 이를 악문 채 씩씩거렸다. 데릴사위, 그것도 망한 재벌집 장손 따위가 대 신성그룹의 3세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밑을 닦아? 똥을 치워? 싸가지 없는 새끼.”

겨우겨우 화를 가라앉힌 그녀는 무미건조하게 뇌까리더니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야, 이성민! 좋은 말할 때 기어들어 와서 사과해. 안 하면···.”

수십 분 동안 쉬지 않고 쏴붙인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 한 번만 더 그딴 짓 하면 죽을 줄 알아!”

전화기에 대고 일갈한 그녀는 곧장 새 전화를 걸었다.

“나야, 용재 오빠. 오늘 그 새끼가···.”

장수연은 오늘 점심때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그렇다니까? 지금껏 개처럼 꾹꾹 숙이고 살던 놈이 때린 거 보면 오늘 무슨 일 터질 거야.”

이성민을 20년 넘게 봐오며 살았기에 장수연은 이성민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아쉬울 거 없어. 지금까지 2조 넘게 빼먹었잖아?”

학창시절부터 남자들을 홀려서 쉽게 성적을 관리해왔던 장수연에게 이성민은 최고의 봉이었고,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였다. 하지만 품을 벗어나려는 거위에게 베풀 자비 따윈 장수연에게 없었다.

“거위 배, 가르자.”

장수연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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