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제252장. 이제 개혁改革에서 안정安定으로.
중원 곳곳에서 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원매는 노비안검법을 강하게 밀고 나갔다. 유산분배법안과 더불어 노비안검법은 호족의 힘을 약화시킬 방법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신하들이 용기를 내서 다시 상소를 올리며 반발했지만, 이것에도 원매는 요지부동이었다.
원매는 원소의 치소가 있는 태황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실 치소인 것은 맞았지만, 원소는 고령과 지병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정치에 완전히 손을 뗀 원소였지만, 들려오는 소문은 모두 듣고 있었고 원매가 걱정이 되어 그를 불렀다.
"이리 앉거라."
"예. 아버지. 건강은 어떠십니까?"
"뭐. 죽을 정도는 아니야. 골치 아픈 정치에서 손을 떼고, 이렇게 소일하면서 지내니 확실히 몸이 좋아지는구나.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럭저럭 버티겠어."
힘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표정은 환했기에 원매는 안심할 수 있었다.
"상이는 어찌 되었느냐? 아직도 위치를 모르느냐?"
"예. 홀연히 사라져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걱정해서 일부러 안 찾는 것은 아니고?"
"그....그럴리가요. 제가 야망이 큰 거 아시잖아요. 담이형도 내쳤는데요."
"아무튼 고맙다. 참으로 못난 놈들이지만, 자식이 먼저 죽는 꼴을 못보겠구나."
"건강하게 오래 사십시오.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개혁이니 뭐니 해서 아주 요란하더구나. 너무 급하게 일을 저지르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항상 신중하던 네가 요즘은 웬지 낯설어."
"이것은 그전부터 계획했던 일입니다. 사실 우리 원가가 기를 세웠지만, 중원의 진짜 주인은 호족입니다. 지방 곳곳에서 그들이 땅을 차지하고, 왕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가지고 있는 군대가 워낙 강하니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지만, 다음, 그다음으로 넘어가면서 유약한 황제가 출현하면 그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기를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이번 조치가 성공하면 호족의 힘을 삼분지일로 꺾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저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믿어야지. 암. 발상이 독특해. 어찌 그런 생각을 다했느냐? 호족들이 허를 찔렸겠어."
"많이 반발했습니다. 그래서 반란까지 일어났고요. 지금까지 그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조금의 틈도 주지 않으니까 조금씩 수그러드는 중입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쓸데 없는 걱정을 했어. 더는 참견하지 않으마. 너도 젊을 때 몸조심하거라. 나이가 들면 아무리 좋은 약재를 써도 효과가 미미해."
"예. 그리하겠습니다."
원소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원매가 따라 일어나자, 그는 앙상한 손을 들어 원매의 어깨를 다독였다.
"고맙다."
원소는 몸을 돌려 태황후(황옥)전으로 향했다. 몸이 약한 그를 옆에서 황옥이 수발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매는 원소를 보내며 아쉬웠다. 항상 이야기를 많이 하고 같이 있고 싶었다. 그는 원소가 말한 고맙다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원상을 잡더라도 죽이지는 말아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생각같아서는 기주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원상 이 놈을 잡아다가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데, 아버지 때문에 참는다. 이 쳐죽일 놈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원매는 원상을 생각하자 이를 바드득 갈았다. 원소만 아니었다면 벌써 잡혀와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자, 소소하게 이어지던 호족들의 저항도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어전회의.
"억울하게 소작농이나 노비가 되었던 많은 자들이 양민으로 돌아왔고, 또 돌아오는 중이오. 짐은 잘못이 있는 호족들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포했지만, 만약 이들이 다시 땅을 뺏으려고 든다면 그때는 반드시 처벌할 것이오. 그러니 그대들도 짐의 마음을 헤아려서 정책을 추진하시길 바라겠소."
"예. 폐하."
원매의 말에 신하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복명했다. 원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한림원학사 진림이 용기를 내어 진언을 올렸다.
"폐하. 유산분배법안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비안검법은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호족들 중에는 억울하게 땅을 빼앗긴 자들도 있는데, 그들을 구제하는 법안을 발의하심이 어떻습니까?"
진림이 슬쩍 물타기를 시도했다. 두 법안이 충돌한다면, 노비안검법은 힘을 잃을 것이다.
"물론 그런 호족들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대부분은 전란을 이용해서 땅을 넓혔소. 진학사도 생각해보시오. 전투를 치를 때, 상대군영에 1만의 군사가 있소이다. 그곳에는 군사뿐만 아니라 죄없이 끌려와 일을 돕고 있는 장정들도 많소. 적들을 공격해야 하는데, 그대라면 어찌하겠소? 죄없는 장정들을 먼저 돌려보내라고 적들을 설득한 후에 공격하겠소? 그럴 수는 없소. 이번 노비안검법도 이와 같소이다. 일을 추진하다보면 억울한 자들도 생기는 법이지요. 그것은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봅시다. 이제 법안을 시행한 지 겨우 4개월 되었소. 적어도 1년은 시행하고 난 후에 그런 의견을 내는 게 옳소이다."
원매가 진림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대처하자, 그는 머쓱해졌다.
"예. 폐하.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나라를 위한 충정으로 상소도 올리고 여러 진언을 올리는 것을 내가 잘 압니다. 나도 황제가 되기 전에는 호족이었소. 나라고 어찌 호족들이 힘들어 하는데 마음이 편하겠소? 다만, 양민들이 괴로워하니 조금 도와주는 것 뿐이오. 그들에게 땅 조금 돌려줘도 우리 호족들은 건재합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읍시다. 난 누가 뭐래도 호족편이오."
뻔뻔한 거짓말에 신하들의 표정은 떫은 감은 씹은 표정이 되었다.
어전회의가 별소득없이 마무리되자, 대부분의 신하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반면에 중소호족으로 출발하여 원매를 따랐던, 강경, 제갈량, 서서등의 표정을 밝았다.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매의 의지대로 호족들은 차차 힘을 잃어가는 가운데 정평 3년(208년)도 저물어갔다.
210년 정평 5년.
유산분배법안과 노비안검법이 시행된 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 두 법안은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연착륙했다. 호족들의 힘은 확연히 줄어들었고, 자영농이 늘어나면서 세수가 증가하여 원매의 힘은 강화되었다.
중앙집권제를 강화시키려는 원매의 의도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원매는 군제 개혁에 나섰다. 중원에 병사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전쟁시에는 필요했지만, 이제 반란이 끝난 지도 2년이나 흘렀고, 더는 원매에게 대항할 놈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주/병주도호부를 제외한 각 도호부의 병력을 모두 1만 5천으로 떨어 뜨렸다. 유주/병주도호부는 워낙 넓은 지역을 경계하고, 강인한 선비/오환족을 상대해야 했기에 그대로 유지했다.
또한 기주도호부는 16만에 달했는데, 과감하게 보병 7만, 기병 3만으로 대폭축소했다.
주로 늙은 병사들이 퇴역했지만, 젊은 병사들도 희망자를 받아 퇴역시켰다. 그들에게는 국유지를 무상으로 나눠주어 양민으로 정착하게 도와주었다.
국유지를 나눠 줄 때 조건을 걸었다. 매매를 금지했으며, 전란이 발발시 징발할 수 있음을 약속받았다. 즉, 이들은 예비군 개념으로 운용한 것이다.
효과는 컸다. 약 10만에 달하는 병력이 줄어든 것이다. 그들의 월급과 의식주를 생각하면 기의 재정부담지표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렇게 줄였음에도 기에는 정예병이 30만을 넘었다.
또한, 가후에게 공언했던대로 병역법을 반포했다. 기존의 모병제에다가 호족의 부담이 늘어나는 방식이었다. 이미 힘을 빼앗길때로 빼앗긴 그들은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원매의 가족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째 아들 원패가 이제 9살이 되어 의젓한 모습을 보였고, 둘째 딸 원정이 4살이 되었다. 또한, 첩으로 얻은 전민, 조염은 각각 아들 한명씩을 순산했는데 원형(2살), 원방(1살)이었다.
원패가 9살이 되자,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황태자문제였다. 원매의 나이 이제 35으로 한창 나이였기에 그 문제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풍은 고집스러운 눈으로 원매를 마주했다.
"이보시오. 전태위. 내 나이가 한창 일할 나이오. 그리고 나는 다른 황자들이 크는 것을 보고 능력이 뛰어난 자에게 제위를 물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원매는 전민(전풍의 딸)의 아들이 황제가 될 수 있음은 은근히 알렸다. 하지만, 전풍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물론 폐하께서 아직 정정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빨리 황태자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지금 첫째 황자(원패)께서는 적통이시고, 영특하십시다. 모든 것이 완벽한데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이제 개혁을 통하여 기에 적대적인 세력이 상당부분 사라진만큼, 이제는 기의 안정을 추구해야합니다."
원매가 그래도 결정을 못하자, 전풍이 쐐기를 박았다.
"태황을 생각하십시오."
원소를 생각하란 말에 원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이제 원소는 곧 죽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조금 더 생각해 보겠소."
원매는 전풍의 진언을 우회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밤 봉기는 전풍을 찾았다.
"고맙네. 고마우이. 자네가 이렇게 앞장서주다니 내가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으이."
"당연한 일입니다. 적통장자가 있는데, 어서 서둘러야지요. 그리고, 둘째, 세째가 황위를 노린다면 이 얼마나 참담한 일입니까? 그런 혼란이 일어난다면 이제 반석위에 올라선 기가 흔들릴 것입니다."
"이사람아. 누가 모르는가? 고마우이."
봉기는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전풍의 손을 잡고 눈물까지 흘렸다. 자신의 손주가 황제에 오르는 길이 막 열리고 있었다.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 후로 대신들은 앞다투어 원패를 황태자로 봉할 것을 진언했다.
약삭빠른 그들의 행태에 원매는 혀를 찼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황태자를 뽑는 중요한 일이었다. 저런 행동이 당연한 것이다.
황후(봉영)전.
봉영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원매는 그녀와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 패가 황태자가 될 수 있겠소? 너무 어린 것 같은데."
"어리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15세면 혼례를 치르지 않습니까? 패는 벌써 의젓하게 공부도 하고, 무술에도 열심입니다. 제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상공의 옛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나는 어릴 때 비리비리했는데."
"아이-참. 왜 말을 이상한 쪽으로 돌리세요. 상공. 이번 일은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패는 적장자이고,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영특한 것은 상공께서 더 잘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 영특했다. 원가와 봉가의 핏줄을 타고 났는데 영특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생각해보겠소. 그러니 더는 보채지 마시오."
원매는 술을 들이 킨 후, 봉영에게 술을 따라주며 화제를 돌렸다.
"후궁이 두 명이나 있는데, 그들과는 잘 지내시오? 혹시 불편하지 않소이까?"
"불편함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거짓이겠지요. 누가 지아비를 다른 여자와 나누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만족합니다. 그들도 저를 잘 따르고 분수를 지킬 줄 아니까요. 또한, 상공께서 수많은 궁녀들을 돌려보내시고, 지나치게 여색에 빠지지 않으시니 좋습니다."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봉영이 사랑스러웠다. 그는 봉영을 꼬옥 안았다.
"나는 그간의 황제들과는 다를 것이오. 그리고 오래 살고 싶거든. 이 좋은 황제에 올랐는데, 빨리 죽을 수야 없지 않소이까? 하하하하-"
원매의 진심이었다. 눈을 돌리면 여자는 넘쳐났다. 좋은 강정제가 많았기에 여인을 품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원매는 현대인의 감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탓에 그런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스. 그렇게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리며 영화를 누리고 싶은 것이 원매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중에 후궁이 또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고 패를 어쩐다? 벌써 황태자란 말인가? 고민해서 빨리 결정해야겠어.'
원매는 마음속으로 황태자문제를 결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