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251화 (251/253)

# 251

제251장. 호족의 힘을 빼앗다.

장합은 말을 계속 달려 북평에 도착했다. 북평을 지키는 장수는 왕문이었다. 왕문과는 친분이 있었기에 마지막 희망을 품고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다. 만약 그마저 장합을 거부한다면 북쪽으로 내달려 이민족의 품에 안기던가 자살해야 할 것이다.

북평.

"무슨 소리야? 장도독께서 이곳에 오시다니?"

왕문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성문을 열라고 명하려다가 멈칫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장합이 직접 이곳에 온 적도 없을 뿐더러, 지위가 높은 그가 왕문에게 하명할 게 있으면 직접 부르거나 전령을 보내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처한 상황을 자세히 듣고는 망루에 올랐다.

멀리 기병 수십이 그늘에 있는 것이 보였고, 기병 2명이 성문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도독이 보이지 않았지만, 수십명의 기병 무리 속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뭐지? 도대체 뭐야?'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그를 억눌렀다. 이곳은 업성에서 볼 때, 북쪽 영토 끝자락이었다. 원매는 장합, 문추의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예비대를 움직이고 그 주변을 철저히 단속하느라 아직 이 촌구석까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는 성루로 내려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결정했다. 왕문으로서는 굉장한 모험이었다. 감히 유주도호부 도독 장합이 왔는데, 성문을 열지 않고 늑장대처를 했기에 곤욕을 치를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기에 이리한 것이다.

"장도독께서는 어디 계시오?"

"저곳에서 기병들과 쉬고 계십니다. 어서 성문을 열어 주십시오."

이상했다. 당연히 호통이 뒤따를 줄 알았는데, 너무 고분고분했다. 불같은 성정의 호위대장인데.

"무슨 일로 오셨소?"

그제야 호위대장이 짜증을 냈다. 호위대장이 왕문보다 높다고는 볼 수 없지만, 장합의 최측근이었기에 왕문으로서는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어서 성문을 여시오! 장도독께서 오셨거늘 어찌 이리 늑장을 부리는 게요. 진정으로 경을 쳐야 알겠소?"

"장도독을 뵈야 겠소."

"이 미친 놈을 보았나? 저기 쉬시고 계시거늘 네깐 놈이 어찌 장도독을 오라가라 하느냐? 단칼에 죽고 싶은 것이냐?"

왕문은 목을 가다듬어 소리쳤다.

"장도독! 이 자의 말이 사실이외까? 어쩐 일로 이 곳에 오신 것입니까? 그대는 전투가 발발하지 않는 한 탁군을 벗어나면 안되지 않소이까?"

장합이 대답하지 않자, 왕문의 얼굴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졌다.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시오. 그러면 내가 성문을 열겠소!"

왕문의 강경한 발언에 호위대장의 안색이 급변했다. 호위대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장합에게로 달려갔다. 왕문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합은 호위대장과 잠시 의논을 하더니 말을 몰고 북쪽으로 종적을 감췄다. 그는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이곳까지 알려졌다고 판단한듯 했다.

208년 4월. 정평 3년.

맹대와 장합이 주도했던 반란은 원매의 선제초치와 문추의 배신으로 싱겁게 끝이 났다. 장합은 선비족에게 도주했지만, 원매와의 불편한 관계를 원치않았던 그들은 장합의 목을 베어 바쳤다.

원매는 반란이 진압되자 후속조치에 착수했다. 도호부를 개편한 것이다. 충성스러운 기주도호부 소속 장수들을 유주, 병주로 올려서 친정체제를 강화시켰다.

병주도호부.

- 도독 : 위연.

- 병력 : 보병 2만, 기병 3천.

- 장수 : 한형. 초촉(보병). 장남(기병).

유주도호부.

- 도독 : 장비.

- 병력 : 보병 3만. 기병 8천.

- 장수 : 곽준(부도독). 관평(기병대장). 범영(기병)

문추는 중랑장으로 강등시켜 하내군 예비대로 편입시켰다. 북평에서 장합을 돕지 않은 왕문에게도 포상이 내려졌다.

또한, 강릉도호부 도독 이엄에게는 준엄한 질책과 더불어 엄중경고가 내려졌다. 그는 반란을 모의하지 않았지만, 원매의 유산분배법안에 대하여 불만을 강하게 표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각 군,현에 전령을 내려보내 반란이 진압되었음을 알리고, 앞으로 반란이 일어날 경우 엄벌에 처할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중원의 호족들은 납작 엎드렸다. 이제는 감히 불만을 드러낼 상황이 아닌 것이다.

208년 6월.

원매는 두번째 개혁조치법안을 발표했다. 대소신료들은 그전처럼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이번에 들으니 불쌍한 백성들이 땅을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노비로 전락했다는 첩보를 들었소이다. 그들은 짐의 백성이거늘 어찌 호족들이 그런 만행을 저지른단 말이오. 이에 짐은 호족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소작농과 노비로 전락한 그들을 구제하기로 마음먹었소이다. 이에 짐은 노비안검법을 발의하겠소."

대소신료들은 수근거렸다. 이번에는 얼마나 혁신적인 조치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설명만 들어도 호족들인 그에게 얼마나 가혹한 조치가 될지는 명약관화였다. 전풍이 앞으로 나섰다.

"폐하의 조치는 참으로 지당하십니다. 억울하게 소작농이나 노비가 된 자들을 양민으로 돌리는 것은 대대로 칭송을 받을 업적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시행하면 큰 혼란이 우려됩니다. 기주에서 우선 시행하고, 차차 군,현을 확대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원매가 빙그레 웃었다.

"이것은 일시에, 강력하게 시행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당연히 혼란이 있겠지요. 그것은 불쌍한 양민들이 겪는 고통도 있겠지만, 호족들이 제것을 내놓으려니 배가 아픈 혼란일 것이오. 나는 그 정도의 혼란은 견딜 각오가 되어 있소."

원매가 전풍의 의견을 일축했다. 이번에는 봉기가 나섰다.

"폐하. 이 나라가 있는 것은 호족들이 폐하를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일부 악덕한 호족들이 있겠지만, 모든 호족들을 잠재적인 악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은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짐도 같은 생각이오. 모든 호족들을 미워하지 않소. 다만, 악덕한 이들에게서 불쌍한 양민들을 구하고자 할 뿐이오. 나는 그들이 억지로 빼앗은 땅을 돌려받아, 소작농과 노비를 양민에게 돌려줄 뿐이오. 그것을 이유로 호족들에게 죄를 묻지 않을 것이오. 어떻소? 이래도 가혹한 것이오?"

봉기도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신하들 중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력한 전풍, 봉기가 입을 닫자 어전은 침묵속으로 빠져들었다.

원매는 주위를 둘러 보고는 입을 열었다.

"기주도호부 도독 전예는 명을 받으라!"

"폐하. 신 전예 명을 기다립니다."

전예는 앞으로 나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전예는 지금부터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전 중원에서 노비안검법이 정확하게 시행되도록 조치하라! 병력이 부족하면 다른 도호부의 병력을 차출하라! 만약 이것을 막는 자가 있다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을 베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전예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어전안은 찬물을 끼언진듯이 정적이 흘렀다. 전예의 성정을 보았을 때, 이제 곳곳에서 멋 모르고 법 시행을 막으려는 호족들이 변을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이 나자, 관료들은 힘없이 물러났다. 이곳에 있는 관리들중 호족이 아닌 자는 없었다. 그러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원매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겠다고 공언했을 뿐, 과거의 일에 대해서 죄를 묻지 않겠다고 했기에 그들도 반발하기 힘들었다. 정확히 말해서 맹대, 장합이 당하는 과정을 지켜본 그들로서는 반발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비안검법이 시행되자, 중원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지역에서 왕노릇하는 대호족들이 반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발할 수록 참혹한 대가를 치뤄야했다. 한개 현에서 시범타로 몇 명이 전격 처형되어야 법집행이 이뤄질 정도로, 호족들의 재산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다.

이에 따라 신하들이 상소를 올리며 조금 속도를 늦출 것을 진언했지만, 원매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이 터진 지역에는 병력을 추가 지원함으로써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처음 시행한 1개월 동안 3천이 넘는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혼란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강하게 군대를 계속 투입하자 결국 호족들의 저항은 점차 약해졌다.

이에 힘을 얻은 병사들은 호족들의 소작농을 직접 면담하여 사실여부를 판단하여 토지를 돌려주었다. 호족과 소작농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는 소작농의 손을 들어 주었다.

"폐하의 훌륭하신 뜻은 알겠지만, 전도독의 조치가 조금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승상 가후가 원매를 찾아와 조심스럽게 진언을 올렸다. 그의 성격을 알기에 원매도 귀를 기울였다.

"편안히 말씀하세요."

"사실 일부 호족들이 욕심이 많아서 양민의 땅을 빼앗고, 소작농이나 노비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사실관계를 밝혀줄 증거가 부족한 경우에도 분쟁이 생기면 대부분 소작농의 의견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는 공평한 처사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당연히 공평하지 않습니다. 저도 알고 있고요."

"아신다면 어떤 추가 조치를 취해야 되지 않습니까?"

"내년쯤 취하려고 합니다. 잘못하면 저들에게 반격의 명분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들이 땅을 빼앗을 때 합법적으로 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을 테지요. 힘이 강한 호족들 앞에서 그 정도로 큰 소리를 치며 분쟁할 정도면 소작농의 의견이 맞다고 봐야 합니다."

"폐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호족들도 세금을 내는 이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도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압니다. 알아요. 이제는 호족들에게도 공평하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할 생각입니다. 뭐, 노비안검법이 제대로 시행된 후의 일이겠지요."

갑자기 병역으로 이야기가 옮겨지자 가후는 당황스러웠다. 지금 노비안검법으로 온나라가 뒤숭숭한데, 원매는 새로운 논쟁거리를 꺼내든 것이다.

"지금은 모병제인데 이를 폐기하고 징병제로 바꿀 생각이십니까?"

"그렇지 않아요. 모병제 틀을 유지하되, 대호족들의 자제들에게는 병역의무를 부과할 작정이오. 그들은 직접 복무하기보다는 세금을 좀 더 내는 방향으로 가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권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큰 책임이기도 합니다. 대호족으로서 최고의 특혜를 받고 산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지요. 무조건 양민과 호족을 평등하게 대우할 수는 없습니다."

가후는 말없이 원매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입니까?"

"당연하지요. 생각나는 대로 했겠습니까? 아주 치밀하게 계획했지요. 장담하지만, 앞으로 10년 이내에 호족들의 힘은 절반 아니 삼분지일 이하로 꺾일 것입니다. 그들의 힘이 강하다면 언젠가는 또 다시 혼란이 올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폐하의 뜻을 알았으니 더는 의문을 품지 않고 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가승상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됩니다."

"허허- 다음번엔 제게 귀뜸이라도 해주십시오."

"그러지요. 그래서 이렇게 내년에 시행할 병역법에 관해서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일을 잘 처리해 주세요."

"그럼 소신 물러가겠습니다."

가후는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그는 황궁을 나와 승상부로 향하면서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가마솥으로 들어간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야. 지금 당하는 호족들 중에서 많은 공신들이 있을 것이다. 폐하께서 시행하시는 일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로구나. 나도 큰땅이 생기고, 재물이 쌓이니 욕심이 생기는 것인가? 가소롭구나. 가후야. 재물에 집착하는 것이더냐?'

가후는 집으로 돌아가서 많은 재산을 소작농에게 스스로 돌려주었다. 그의 땅은 공을 세워 원매에게 받은 영토였지만, 돌려주었고, 적당한 양의 토지를 자식들에게 미리 분배해 주었다.

'그래.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어. 욕심이란 끝이 없어. 그저 조용히 기冀를 위해 일하다가 때가 되면 물러나야지. 욕심은 사람을 추하게 만들 뿐이야.'

가후는 조만간 승상직에서 물러날 것을 다짐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어. 허허-'

그는 새삼 62에 이른 자신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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