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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250화 (250/253)

# 250

제250장. 흐지부지.

문추는 장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지략대결을 하라면 서툴지 몰라도 전투에 대한 다양한 계책을 내는 데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문추였다.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장합을 역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목소리가 큰 병사들을 뽑아서 교대로 외치자,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하게 효과를 발휘했다. 장합군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급장교들과 병사들은 역모란 말에 벌벌 떨었다.

"이 새끼가 이런 치졸한 수를 쓰다니."

장합을 이를 바드득 갈았다. 예전의 문추가 아니었다. 장합이 유주로 올라와 이민족을 상대하는 사이에, 문추는 이통, 원매를 따라 여러 전선을 누볐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 경험을 되살려 장합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전이 통하자, 그 다음으로 넘어갔다.

"업성에서 토벌군 15만이 올라오고 있다."

이것은 문추도 정확히 몰랐지만, 하내군에 예비대가 있는 걸 알고 있었기에 심리전에 이용한 것이다.

역모에 흔들리던 장합군은 15만이라는 말에 기겁을 했다. 그들은 둘, 셋이 모이면 수군대며 죽는 소리를 했다.

전투를 시작도 하기 전에 와해되는 꼴이었다. 장합은 문추를 얕본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빌어먹을! 이제는 문추와의 일전도 어려워. 더군다나 전예가 최소 10만을 끌고 올 텐데, 어쩌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문추 이 자식은 왜 이리 교활해진거야? 죽일 놈 같으니라고!"

그는 궁여지책으로 병사들에게 진형훈련을 시키며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귀한 시간을 이리 보내려니 장합은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초촉치소.

초촉은 장남과 은밀하게 회합을 가졌다. 초촉은 보병 1만을 지휘하는 장수이고, 장남은 기병 4천을 지휘하는 장수였다.

"이보게.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끝난 것 같네. 문도독이 우리를 반란군으로 몰고 있어. 문도독이 배신했는데, 전도독께서 오신다면 어쩌란 말인가? 우리가 이길 수 있겠는가?"

초촉이 한숨을 쉬며 말하자, 장남도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이야.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나 모르겠네. 나는 어제 꿈속에서 역모로 몰려서 삼족이 멸해지는 꿈을 꾸었다네. 난 역모고 뭐고 그냥 지금에 만족하네. 인정도 받고 있고, 존경도 받아. 재물도 풍족하고. 전혀 불만없어. 왜 우리가 역모를 일으키게 된거야. 빌어먹을!"

"그거야 맹대인지 뭔지 하는 놈이 들쑤시고 다니면서 장도독께서 혹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자네도 거사가 성공하면 도독을 시켜준다니까 좋아했잖아."

"내가 언제?"

장남이 펄쩍 뛰었다.

"난 그런적 없어. 난 지금도 폐하에 대한 충성심만 남아 있네. 거사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장남이 극구 부인하는 말을 이어가자, 초촉의 눈도 반짝였다.

"이렇게 끌려가다가는 우리도 필시 죽음을 면치 못 할 것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장도독의 목을 베어 바치세. 그러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겠는가?"

초촉의 은근한 제의에 장남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곧 걱정이 가득찬 눈이 되었다.

"장도독의 무예가 대단한데 어찌 넘는단 말인가? 우리 둘이 덤벼들어도 이기기 힘들어. 더군다나 호위대놈들도 만만치 않고."

"내가 보병을 통제할 테니, 자네가 기병을 이끌고 급습하게. 그러면 끝나지 않겠는가? 아무리 무예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다 하더라도, 수백의 기병으로 기습하면 끝일세."

장남은 망설이다가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에 힘을 주어 부러뜨렸다.

"좋아. 그리하지. 3천의 이끄는 기병대장 범영은 내가 설득하여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지. 그러니 자네는 보병을 확실하게 단속하게. 호위대야 기병 1백이니 충분히 제압할 수 있어."

장남과 초촉은 두 손을 맞잡았다. 유주도호부에서 보병과 기병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배반을 획책하고 있으니, 장합의 앞날이 참으로 어두웠다.

장합은 흐트러지는 병사들의 마음을 다잡는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는 타이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며 그들의 마음을 조금씩 돌렸다. 다행히 조금씩 성과를 내자, 그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전예가 오기 전에 탁군을 벗어나서 동쪽으로 이동할 작정이었다. 만약, 군기가 흐트러진 상태에서 이동한다면 낙오병이 많이 나오고, 그러면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는 꼴이 되었기에 이처럼 그들의 마음을 다 잡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휴- 이 장합이 이런 수모를 당할 줄이야. 일단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내일은 북평으로 주둔지를 옮겨서 전투준비를 해야겠어."

그는 답답한 마음에 술을 들이켰다. 시작도 못해보고 이렇게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창- 창-

두두두두두-

"막아라! 물러서지마라!"

낯선 소리와 호위대의 외침에 장합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는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는 재빨리 갑옷을 챙겨입었다.

문이 활짝 열리며 호위대장이 들어왔다.

"도독! 배신입니다. 장남이 기병 2천을 이끌고 급습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장남이 배신했더라도 기병 3천을 이끄는 범영은 뭐하고 있단 말이냐?"

"아무래도 그도 한패인 것 같습니다. 이지경에도 그가 조용히 있지 않습니까?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곧 방어선이 무너질 것입니다."

장합은 대도를 들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지휘소를 지키는 보병들이 방패등으로 막고 있었으나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는 호위대장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올랐다.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한 장합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범영은 움직이지 않았고, 장남이 2천기병을 이끌고 왔다. 호위대는 기껏해야 1백기병이었다.

호위대가 더 정예는 맞았지만, 1백으로 2천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장남의 기병도 호위대보다는 못하지만 정예였기 때문이었다.

"북평으로 간다!"

장합이 말을 돌리자, 호위대 1백이 뒤를 따랐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재빠르게 기수를 돌린 것이다.

장합이 도망치고 난 후에, 장남이 보병을 압살하고 지휘소를 급습했다.

"장합을 찾아라! 어서!"

장남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기병들이 흩어져서 곳곳을 뒤졌지만, 장합은 찾을 수 없었다. 이때 도백 위영이 보병을 데리고 나타났다.

"장군. 이 자에게 들어보니 장합이 호위대와 함께 서쪽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북평으로 간다고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쥐새끼같은 놈!"

그는 재빨리 호각을 불었다. 길게 호각소리가 이어졌고 잠시후 또다른 기병대장 범영이 나타났다.

"범장군. 장합이 도주했으니 추격해야 겠소이다. 아마도 북평으로 도주한 것 같소이다."

"알겠습니다."

범영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장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남쪽 길을 따라 추격할 테니, 범장군이 북쪽길로 그를 추격하시오."

"알겠습니다."

장남과 범영은 기병을 재편성하여 출병준비를 서둘렀다. 초촉이 급히 달려왔다.

"내가 문도독과 업성으로 전령을 보내어 상황을 알리겠소이다. 장합이 도망갔으니, 우리의 충심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부디 장합의 목을 베어 오십시오!"

장남과 범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모를 벗기 위해서는 장합을 죽여야했다. 얼마전까지 거사가 성공하면 도독의 자리에 앉을 것을 꿈꾸며 장합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이제는 장합을 죽여야 살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망설임없이 장합을 배신했다.

장합이 도망친지 반시진(한시간)후에 장남은 기병 4천을 이끌고 남쪽으로, 범영은 기병 3천을 이끌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초촉은 보병들을 단속하는 한편, 문추와 업성에 전령을 띄웠다. 현재 상황을 전달하여 자신들이 무고했음을 적극적으로 알려 역모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업성으로 내달리던 전령은 관평에게 걸려들었다.

관평은 전령으로부터 장합군영의 상황을 전해듣고는 무릎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저들이 스스로 무너졌으니 왜 아니 기쁘겠는가?

그는 전령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여 업성으로 보냈다. 그후, 병사들을 모았다.

관평이 2천 기병을 이끌고 장합군영으로 다가오자, 초촉은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다. 벌써 전예군이 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초촉은 군영밖으로 나와서 최대한 정중하게 그를 맞이했다.

"저는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초촉입니다. 누구십니까?"

"전도독 휘하에서 기병 2천을 지휘하고 있는 관평입니다. 장합이 도주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지난밤에 거사를 일으켜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도망치는 바람에 아쉽게도 실패했습니다."

"그럼 장합은 이곳에 없겠군요."

"아마도 북평으로 도주한 것같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기병 7천이 두갈래의 길로 따라 붙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독께서 벌써 보내신 것입니까?"

"나는 업성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반란의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중산국 북방에 진을 치고 있었소. 그러다가 중간에 전령을 만나 이렇게 빨리 온 것이오."

초촉은 그제야 안심이 된 표정이었다.

"문도독에게도 전령을 보냈으니 곧 오실 것입니다. 아- 저기 오시는 군요."

초촉은 뿌연 먼지가 일어나는 북서쪽을 가리켰다. 관평도 눈살을 찌푸리며 그곳을 보았다.

얼마 후, 문추는 5천 기병을 이끌고 나타났다. 보병은 뒤쳐져서 행군하고 있을 것이다. 문추는 초촉의 인사에도 대답없이 군영안에 들어섰다. 한눈에 보기에도 지난밤에 혈전이 벌어졌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은 거짓이 아니었다.

문추는 밖으로 나와 관평에게 이런 것을 확인했는지를 물어보고는 호되게 야단쳤다.

"항상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어찌 이리 경솔한가?"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전령도 그렇고 주변의 군사나 백성들로부터 파악한 것이 있어서 그리했습니다. 좀 더 신중하겠습니다."

문추는 초촉에게 시선을 돌렸다. 역모를 사면받은 문추는 더욱 당당하게 움직였다. 그게 문추다웠다.

"자네는 어찌 이런 생각을 했는가? 처음에는 장합을 맹렬히 추종했지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충성심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장합에게 억눌려 어쩔 수 없이 끌려가긴 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오직 폐하 한 분뿐입니다. 그래서 틈을 노렸고, 결국 그를 몰아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좋아. 이제부터 내가 지휘한다. 불만있나?"

"없습니다."

문추는 그제야 초촉과 관평을 격려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부터 한선생(한형)이 바빠지셔야겠소이다."

"알겠습니다."

한형은 말에서 내려 초촉에게 다가와 정중히 군례를 올렸다.

"한형이라고 합니다. 군 상황을 파악하고 싶으니 안내해 주십시오."

"이리로 오시지요."

초촉이 한형을 데리고 들어서자, 문추가 관평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는 군영안으로 들으갈 테니, 관평 자네는 바깥에 진을 치고 대기하게. 이민족이 출몰할 수도 있고, 아무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아마 전도독도 7일 이내에 도착할거야."

"예. 도독. 그리하겠습니다."

문추가 다시 한번 관평을 격려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관평은 곧바로 기병을 500씩 4개조로 나누어 군영을 경계했다.

밤낮 없이 북동쪽으로 내달리던 장합은 이름 모를 장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호위대장이 건네는 물을 마시며 그는 뜨거운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억울했고 또 억울했다.

제대로 된 전투라도 해서 패배하여 이렇게 되었다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하들에게 배신당해서 쫓기는 신세였다. 그가 물통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기병은 얼마나 되는가?"

물병을 받아들던 호위대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채 40이 안됩니다."

"도주하면서 60이 죽기라도 했단 말인가? 저놈들이 지금쯤 추격하고 있을 테지만, 교전하지 않았는데 어찌 60이 사라졌단 말인가?"

"도망친 놈들입니다."

"크흑-"

장합은 망연자실했다. 사실 호위대는 사병개념이 강했는데, 그들마저 흔들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장합은 몸을 일으켰다.

"가자! 더는 시간이 없다."

장합의 명에 30명 조금 넘는 호위대가 말에 올랐다. 그들은 북평으로 내달렸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을 반겨줄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쪽은 변방이었기에 최악의 경우 장성을 넘어 북쪽으로 도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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