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제247장. 불나방.
곽가는 어두운 안색으로 원매의 부름에 응했다. 황궁으로 향하는 그는 짧은 한숨마저 내쉬었다.
'폐하께서 일을 너무 크게 벌이셨어. 지방의 호족들 뿐만 아니라, 업성의 대신들마저 흔들리는 모양새다. 이걸 어쩐다?'
곽가는 생각을 정리하며 원매의 치소로 들어섰다. 원매는 주위를 물리쳤다.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게 한 후, 곽가가 얼굴을 마주하며 작은 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업성분위기는 어때?"
"예. 폐하. 매우 심각합니다. 발해군의 맹용이 죽었는데, 문제는 그가 창업공신 맹대의 조카입니다. 하여 맹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최근에는 저수까지 합류한 상황입니다."
곽가는 그들의 행동이 못마땅한지, 관직이 아닌 이름으로 보고를 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가?"
"대부분 문관들이고 업성은 금군이 워낙 강하게 경호하고 있어서 별다른 문제는 일으키지 못 할 것입니다. 아마도 세를 규합하여 적극적으로 법안의 부당함을 알리고, 간하여 폐기하려고 할 것입니다."
"흠- 그거야 상관없고. 혹시 도호부중에서 흔들리는 놈들은 없는가?"
"병주(문추), 유주(장합), 강릉(이엄)도호부에서 묘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그들이 딱히 황명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도호부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대호족출신이면서 창업공신입니다."
"예상했던 바야. 형남(견초)은 어때? 그도 대호족출신이잖아."
"형남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형남과 강동의 대호족이 매우 크고 거센데, 견도독이 워낙 치밀하고 적극적으로 단속하니 그들이 숨을 못쉬겠다고 불만을 터트릴 정도입니다."
원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병주, 유주, 강릉은 예상했어. 그런데 형남이 의외로군. 내가 견도독을 오해했던가? 아무튼 좀 더 지켜보면 알겠지.'
곽가가 다시 보고를 이어갔다.
"폐하. 강릉도호부는 크게 걱정할 것이 못되고, 문제는 가까운 병주, 유주도호부입니다. 그곳은 병사들도 정예일 뿐더러 실전경험이 많습니다. 기병 또한 양쪽을 합해서 1만이 넘습니다. 미리 선조치를 취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선조치? 그들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무슨 조치를 취한단 말인가? 잘못하면 충직하게 나를 따르고 있는 다른 도호부까지 흔들릴 수 있어. 그리고 나는 전도독(전예)를 믿어. 장도독(장합)이 제법 문무를 갖추긴 했지만, 견도독에 비하면 한 수 아래야. 더군다나 주공근(주유), 육백언(육손)까지 있으니, 잘 대처할 거야."
원매는 설령 문추, 장합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업성은 사마구/조운이 있는 한, 단시간에 점령이 불가능했고, 그렇다면 하내군에 있는 전예의 예비대가 움직일 것이다.
야전이 벌어지면 절대적으로 전예가 유리했다. 정예병인데다가 수적으로 두배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치밀하게 살펴서 보고하게. 참. 자네 상관인 도어사(강경)는 어때? 감찰을 담당하는 그가 흔들리면 곤란한데."
"걱정마십시오. 폐하께서도 도어사의 성정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폐하를 위해 언제든지 목을 내놓을 준비가 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원매의 표정이 밝아졌다. 서량에서 얻은 인재 강경(강유의 부친). 중소호족 출신인 그는 오로지 충성심과 능력으로 이곳까지 올랐기 때문에, 대호족출신의 관리들과는 틀릴 수 밖에 없었다.
곽가가 원매에게 격려를 받고는 치소를 물러났다.
승상부.
승상 가후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한 몸으로 똘똘 뭉쳐서 일을 하던 때가 엊그게 같은데, 이제는 승상부가 둘로 갈라진 느낌이었다. 딱히 꼬집어서 표현하기는 어려웠지만, 가후가 그런 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보아하니 피바람이 불 것같은데, 그것도 모르고 불나방들이 달려드는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안타까워.'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처세술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그였지만, 현상황이 아쉬웠다. 이런 정쟁이 진절머리가 나도록 싫었기 때문이었다.
'폐하께 보고를 할까? 아냐. 아냐. 곽봉효(곽가)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보니 잘 처리하고 있겠지. 승상부나 잘 단속해야겠어. 내 식구들이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플 테니까.'
가후는 혀를 차고는 승상부 인사기록부를 꺼내어 한명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호조.
사마의는 피곤한지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지고 있었다.
'이제 좀 할 만하구나. 지독한 영감이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사마의는 호조상서 두기를 생각하고는 절래절래 흔들었다. 잠시 경치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사마부가 다가왔다. 사마부는 사마의의 추천으로 호조에 들어와 일하고 있었다.
"형님. 이야기 들으셨소?"
"무슨 일인데 이리 조심스러워?"
"태위(저수), 공조 부상서(맹대)가 중심이 되서 세를 규합한다고 합니다."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사마의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 보고는 그를 질책했다. 사마부는 입을 뾰족이 내밀었다.
"그들이 내게도 손을 내밀었소. 형님 분위기가 심상치 않소이다. 이거 폐하께서 실수하신 것아닙니까? 병주, 유주도호부까지...."
"닥치지 못하겠느냐? 목이 잘리고 싶지 않으면 절대 그들과는 말도 섞지 말거라. 오로지 폐하께 충성하거라."
사마의가 호되게 꾸짖고는 돌아섰다. 사마부는 그의 뒷모습을 노려 보았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미소를 머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께서는 저놈들이 승산이 없다고 보셨구나. 먼저 계산을 했으면 좀 알려주지. 두꺼비처럼 꾹 입을 다물고 있단 말이야.'
사마부가 고개를 흔들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사마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부야 흔들리지 말거라. 불만이 있다고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폐하께서 흔들리면 모를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사마의는 천천히 자신의 처소로 향하다가 한 명과 마주쳤다. 부승상 제갈량이었다. 제갈량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중달(사마의). 자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눈이 퀭해."
"부승상께서도 얼굴이 까칠합니다."
"하하- 이런 이런. 하긴 승상부의 사람 중에 노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제갈량은 미소를 짓더니 그를 스쳐 지나가며 작은 목소리로 일침을 가했다.
"자중하고 또 자중하시게."
"저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궁안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 하는 말일세. 자네는 대호족이니까 조심하는게 좋아. 움직이려면 내 눈을 피해서 움직이고."
제갈량은 한번 노려보고는 사마의를 지나쳐 멀어져갔다. 사마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뭘 하려고 해도 저새끼 때문에 못한다. 어사대의 촘촘한 감시망도 문제지만, 저새끼가 더 문제야. 나이는 비슷한데 속에 구렁이가 몇 마리가 들었는지 몰라. 에휴- 조심해야지.'
사마의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 호조로 들어갔다. 그가 곰곰히 따져봐도 제갈량 말대로 그들이 세를 모아봐야 허사였다. 원매가 오로지 능력만 보고 사람을 뽑았기에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또한, 일처리 능력까지 뛰어나니 확실하게 부서를 장악하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을거야.'
순유처소.
맹대는 은밀하게 순유를 방문했다. 영천의 대호족인 순유는 그가 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다. 놀라는 눈치가 없었기에 맹대가 오히려 놀랐다.
"제가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언제 오시나하고 기다렸지요."
"그럼 왜 왔는지도 아시겠군요."
"물론. 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대들과 함께 할 수 없소이다."
맹대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충격을 받았다. 순유는 원래 대호족출신이었는데, 공이 많아 많은 토지를 하사 받았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들과 뜻을 함께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어째서입니까?"
"당연한 것을 물으니 답답하군요. 죽고싶지 않으니까요. 그게 다입니다. 맹부상서. 그대가 억울해하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자중하세요. 벌써 많은 눈이 그대를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천하를 통일하신 분입니다. 누구도 그분을 이길 수는 없어요."
"저를 고변하실 겁니까?"
"고변요? 무엇으로 고변할까요? 그대들은 어떤 죄도 짓지 않았으니, 이쯤에서 조용히 덮고 업무에 매진하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세를 모으고 거기에 군병력이 연계된다면 그때는 폐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서 돌아가세요."
맹대는 냉정한 축객령에 힘없이 돌아섰다. 세를 모으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는 수월했는데, 이제는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특히 원매가 데려온 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멀어져가는 맹대를 보며 순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련한 사람 같으니라고. 쯧쯧-. 폐하께서 작심하고 칼을 뽑아드셨는데, 미련한 것들이 얼마나 걸려들지 모르겠구먼.'
순유에게 거절당하고 돌아온 맹대는 앞이 깜깜했다.
'순상서가 고변이라도 하는 날이면 ....... 아냐. 그도 말했던 것처럼 지금은 처벌할 수 없어. 하지만 ......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억울하게 죽은 내조카 용이를 생각하면 이대로 물러날 순 없어. 이대로는.'
그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병주도호부와 유주도호부로 연통을 보냈다. 이미 그들과는 교감이 있었기에 회합을 가져 향후 일을 도모하기로 결심했다.
중산군 상곡양현.
맹대는 몸이 아프다며 휴가를 내고 이곳으로 왔다. 감시를 받을 지도 모른다면 생각이 들었지만, 몸서리치는 원한이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눌렀다.
그가 객잔으로 들어서자 이미 듬직한 중년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합이었다. 평소 계산에 밝은 그였기에 그가 합류한 것은 어쩌면 의외였다.
"장도독! 고맙소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이 나라가 누구 덕분에 지금에 이르렀습니까? 호족들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그것을 모르시고 일부 간신들에게 휘둘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합니다."
장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호족인 그도 원매가 행한 유산분배조치가 매우 불만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호족들은 지리멸렬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기에 위기감을 갖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또한, 전예에게 밀리는 것이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지금 군부의 중심은 전예였고, 군부에 대한 일은 모두 그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계획을 말씀해보시오."
맹대는 조심스럽게 업성에서의 진행사항을 설명했고, 연결된 지방의 호족들까지 설명했다.
"좀 부족하지 않소? 기주도호부가 만만치 않소. 나와 병주까지 힘을 합하더라도 호각지세를 유지할 것이오. 그리고 명분은?"
"명분이야 차고 넘칩니다. 백성을 탄압하는 폭군. 더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그리고, 이곳 중산군태수(원상)를 새로운 황제로 옹립해야합니다."
장합은 말없이 맹대를 바라보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계산에 들어갔다. 맹대가 말한 것은 다 허울좋은 말뿐이었다. 진짜는 전투를 해서 전예를 꺾어야 하는 것이다. 전예에게 패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문도독이 내편을 들어도 사실 부족하다. 하내군의 방대한 예비대를 생각하면 어려워. 틈이 없을까? 틈이.'
생각을 거듭하던 장합은 머릿속이 번쩍했다.
"알겠소. 준비하시오. 중산군태수는 그대가 설득하시오. 나는 문도독을 설득하고, 다른 장수들을 설득하겠소. 날짜는 추후 통보하겠소."
"너무 오래 걸리면 안됩니다."
"물론."
장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곳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