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제245장. 올가미.
206년 11월. 건신 6년.
천하가 통일되어 안정되자, 원소는 곧바로 원매에게 황위를 양도했다. 이미 병이 깊어졌고, 그에 따라 언급이 있었던 만큼, 선위절차는 조용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원소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실외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자제하고 실내에서 조촐하게 이뤄졌다.
문무신료들이 도열한 가운데, 원매가 새로운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연호는 정평正平이었다. 신하들이 새로운 황제, 황후, 황태자를 모시고 만세를 부르며 대미를 장식했다.
며칠간의 흥겨운 축제가 이어지고 난 후에 다시 신하들은 고된 업무를 이어갔다. 원매는 관직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대신 주유, 육손을 전예휘하로 배치시켜 기주도호부를 강화시켰다. 기주도호부를 강화시키는 목적은 분명했다. 변방의 도호부는 이민족의 침입을 막는 수준으로 차례로 격하시킬 작정이었고, 기주도호부에 예비대를 운용하여 필요할 경우 이곳에서 군대를 파견할 생각이었다.
207년 1월. 정평 2년.
원매는 궁궐안의 궁녀를 대폭으로 줄였다. 일부신하들이나 내관들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진언을 올렸지만, 냉정하게 일축했다.
그후, 후궁 2명을 동시에 받아들였다. 한 명은 전민(19세)으로 전풍의 딸이었는데, 봉영의 추천을 받았다. 또 다른 한 명은 조염(18세)으로 조조의 딸이다. 비록 조조가 죽었지만, 그의 세력이 워낙에 컸고 원매 휘하에 조조의 신하들이 많았기에 그들을 달래기 위해 받아들였다.
후궁을 동시에 2명을 받아들인 것은 궁녀를 대폭 축소시킬 수 있는 명분으로 이어졌다. 이후, 신하들 사이에서 궁녀에 대한 진언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진언에 대해서는 원매가 노골적으로 싫어했기에 더 진언을 올리기 어려웠는지도 몰랐다.
'오래 살아야지. 이 좋은 황제에 올랐는데.'
솔직한 원매의 마음이었다. 207년(정평 2년)도 큰 변동없이 지나갔다. 이제 중원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호족들은 제세상을 만난듯 활개를 쳤다. 하지만, 겉은 평온할지 몰라도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208년. 1월. 정평 3년.
곽가와 주유는 원매와 굳은 얼굴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책을 펼친다면 전중원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곽가가 조심스럽게 진언을 올리자, 주유도 동의하는 의견을 냈다.
"그렇습니다. 호족들의 반발이 거셀 텐데, 무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작년처럼 치세를 하신다면 모두가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고, 평안할 것입니다."
"지금의 정책은 100명중에 1~2명이 만족하는 정책이야. 내가 원하는 것은 100명중 100명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100명중 30~40명이 만족하는 정책이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최소 30~40은 만족시켜야해. 그래야 기冀의 태평성대가 오래갈거야."
"하지만, 그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입니다."
"그러니 자네들은 부른게 아닌가? 그렇게 걱정만 할거면 직책을 내놓게. 최소한 황제를 측근에서 모시는 자들이라면 엄살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어떡하면 황제의 의도를 관철시킬까를 생각해야지."
원매가 강하게 질책하자, 곽가와 주유가 머리를 조아렸다.
"저희 생각이 짧았습니다. 방안을 강구하겠습니다."
"공근(주유)!"
"예. 폐하."
"자네는 돌아가거든 기주도호부를 언제든지 출동가능하도록 준비하게. 백언(육손)과 자네를 그곳에 배치하여 전도독(전예)과 호흡을 맞추도록한 것은 지금을 대비한 조치였어. 앞으로 바빠질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봉효(곽가)!"
"예. 폐하."
"열흘 후에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시행할 것이니 자네는 지금부터 은밀하게 대소관료들의 성향을 파악하여 보고하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명을 따르겠습니다."
원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곽가와 주유는 굳은 얼굴로 어전을 물러났다.
정확히 열흘 후.
어전에는 주요 문무대소신료가 모였다. 원매는 그들을 둘러보고는 차례대로 보고를 받았다. 이미 중요한 내용은 미리 보고해서 조정을 한 상태였기에 큰 무리없이 회의가 진행되었다. 보고가 끝이 났고, 덕담을 할 차례에서 원매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명을 내렸다.
"나는 제도의 폐해 하나를 지적하고 싶소. 여러 대신들도 아시겠지만, 나는 삼남으로 태어났소이다. 하여 능력과는 상관없이 자립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소. 하지만,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에 올랐소이다. 하지만, 장남(원담)은 호색하고 무능하여 안정은 커녕 오히려 혼란을 부추겼소이다."
원매가 잠시 말을 끊고, 주위를 둘러보자 신하들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야?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또한, 웬지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런 폐단은 비단 하북의 원가뿐만 아니라 중원의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소이다. 장남보다 차남, 삼남이 똑똑하더라도 장남이 모든 것을 갖는 불합리를 지적하는 것이오. 이에 짐이 곰곰히 생각한 끝에 한가지 결단을 내리게 되었소. 그것은 차남, 삼남에게도 일정한 재산을 분배하여 그들을 대우하자는 것이오."
"폐하. 장남이 재산을 물려 받는 것은 ...... "
원매의 예상대로 반발이 터져나왔다. 원소때부터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순우경이 제일 먼저 반발한 것이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시오! 최소한 황제가 어떤 의견을 제시하면 왜 그럴까를 한번쯤은 생각하고나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야 옳지 않겠소? 어찌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거늘 함부로 나선단 말인가!"
준엄한 질책에 순우경이 사죄를 하며 뒤로 물러났다. 강경한 원매의 발언으로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원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상을 모신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재산을 장남이 가져가는 것은 불합리하오. 그래서 유산분배시 또는 재산으로 땅을 나눠줄 때는 반드시 장남이 5할(50%), 차남이 3할(30%), 삼남이 2할(20%)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오. 오늘은 그대들의 반론을 듣지 않겠소. 차분히 생각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내일 밝혀주시오. 오늘은 이걸로 회의를 끝내겠소."
원매는 자리에서 일어나 치소로 물러났다. 신하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격정을 토로했다. 대부분 이곳에 모인 이들은 장남이었다. 모든 재산과 권력을 받은 그들로서는 다른 형제들과 그것을 나눈다는 것이 매우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원매는 치소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이것만큼은 반드시 시행해야해. 유산은 5 : 3 : 2로 분배한다면 호족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놓을 수 있어.'
지금 유산을 분배할 때, 장남이 대부분을 가져갔기에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장남은 최고의 권력과 재력을 가졌고, 위기의 상황이 닥칠 때마다 장남을 중심으로 대동단결하여 세를 과시했다. 그렇기에 한웅큼도 안되는 그들이 뭉친다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원매가 고심끝에 내놓은 정책이 이것이었다. 이대로 시행된다면 장남의 재산은 시간이 지날 수록 100% - 50% - 25% ..... 이런 식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몇 명이 모여서 중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은 사라질 것이다.
장남이 대를 이어가며 누렸던 권력을 최소 3명으로 나누겠다는 것이다. 세대를 지날 수록 3배씩 늘어날 것이니 권력자는 많아지지지만, 힘의 크기는 계속 작아질 것이다.
재산이 줄어든 만큼 그들의 권력과 힘도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원매의 예측대로 빗발치듯 상소가 올라왔다. 상소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그법을 시행하면 중원의 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원매는 흔들리지 않고, 법을 관장하고 있는 괴월을 불렀다.
형조(법) 상서 괴월은 불안한 표정으로 원매에게 향했다. 수많은 대신들이 그에게 압력을 넣었고, 그 자신도 이런 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보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란 말인가? 폐하께서는 동지다 생각하면 한없이 너그럽지만, 만약 적이라고 단정하면 가차없어지신다. 이거 내가 계속 반대를 하다가 목이 날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는 원매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황제가 되기 전에 원매가 명성을 떨친 곳은 전장이었다. 지략이 아닌 무력으로 명성을 떨칠만큼 잔혹한 성정을 품고 있을 것이다.
"폐하. 신 형조상서 괴월입니다. 찾으셨습니까?"
"어서 오시오. 내가 왜 불렀는지 아시오?"
"예. 지난번에 말씀하신 유산 및 재산분배에 대한 법적조치 때문인 걸로 생각합니다."
"그렇소. 내 당장 그것을 법률로 공포하고 싶소. 그대가 생각하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겠소?"
괴월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원매를 바라보다가 움찔했다. 그의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살기 때문이었다.
"폐....폐하. 많은 신료들이 .... 문제가 있.."
"그대의 의견을 말하시오. 그대의 의견을!"
"백성들이 반발을 할...."
"백성이 아니라 호족이겠지. 안 그렇소? 자꾸 말을 돌리지 말고, 그대의 정확한 의견을 말하시오! 형조상서로서 법을 시행할 수 있다. 없다를 말하란 말이오!"
괴월은 말이 없었다.
'빌어먹을! 왜 하필 맡아도 형조를 맡아서 이 수난을 겪는단 말인가? 이게 공포되면 모든 놈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 터인데.'
원매를 탁자를 '탕-'치며 호통을 쳤다.
"괴상서! 짐의 말의 우습게 들리는가?"
황제의 말이 우습다니? 잘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삼족이 해를 입을 일이다.
"시...시행해도 됩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법적으로."
괴월은 유난히 '법적으로'를 강조했다. 원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그려졌다.
"그런가? 역시 괴상서야. 오늘부로 당장 시행하게. 전 중원에 파발을 띄우고, 이를 어기는 경우는 반드시 보고를 하라고 해. 한번 잘못하면 경고. 두번째는 재산 몰수야. 그렇게 해."
"폐하. 재산몰수는 너무 과합니다."
"그래서 첫번째는 경고로 봐주잖아. 빨리! 시행해. 이것은 황명이야. 설마 자네 황명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겠지?"
"명을 따르겠습니다."
괴월은 울상이 되어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저수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청렴하고 충직한 저수였지만, 그도 기주 대호족의 장자였다.
"괴상서 어찌 되었소이까?"
"저태위.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폐하의 의지를 막겠소이까?"
"어허- 이것이 시행되면 중원이 혼란에 빠질 것이오. 지방의 호족들이 노골적으로 반발할 텐데, 그럼 나라가 어찌 되겠소?"
"저도 열심히 간했지만 폐하께서는 꿈쩍도 안하십니다."
괴월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자신의 치소로 돌아왔다. 치소에서 그를 반기는 인물은 뜻밖에도 전예였다.
"아니 전도독께서 웬일이오?"
"폐하의 명을 받들어 왔습니다. 법안을 작성하고, 이를 알리는 공적인 문서를 작성해주시오. 그러면 내가 각 주/군/현으로 전달하고 세세한 설명을 할 것이오. 그대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한 것이니, 어서 작성해주시오."
"시간이 걸리니, 돌아가시오. 다 되면 부르겠소이다."
"여기서 기다리겠소. 내가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니 속일 생각마시오. 이미 대략적인 절차는 모두 알고 왔소이다."
전예는 자리에 털썩 앉았고, 그를 따라왔던 육손이 날카로운 눈빛을 발하며 옆에 앉았다. 괴월이 육손의 예기가 날카로운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저자는 누구요?"
"저는 육손, 자는 백언이라 합니다. 강동 오군 출신으로 폐하의 명을 받아 전도독을 보필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육손의 예기는 매우 날카로웠는데, 강동전투에서 잇달아 패배한 것이 그를 부쩍 성장시켰던 것이다. 괴월은 빼도박도 못하는 외통수에 걸렸음을 직감했다. 보아하니 육손을 상대로 어떤 말장난도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법적절차등을 이유로 하루, 이틀이라도 지연시키며 추후상황을 지켜보려던 그의 의도는 산산조각났다. 그제야 이것은 원매가 치밀하게 의도한 것임을 깨달았다.
'앞으로 중원에 피의 폭풍이 불겠구나. 폐하께서 전쟁이 끝난지 2년이 넘었는데도 기주도호부에 강력한 예비대를 그대로 유지하신 이유가 이것이었어.'
괴월은 탄식하며 법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