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제244장. 동한의 종말. 그리고 천하통일.
북, 서, 남쪽에서 대대적인 공성전이 벌어지자, 전만은 그곳에 집중했다. 병사들의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일이 그들을 독려해야했다.
동야성 동쪽 성벽.
이곳은 바닷가에 연한 절벽위에 위치한 성벽이었다. 감녕의 지시를 받은 10명은 함매를 입에 물고 구슬땀을 흘리며 성벽을 기어 올랐다.
생생하게 들리는 전투소리와 바닷바람. 그리고 습기를 머금은 이끼가 성벽에 군데군데 달라붙어 있어서 기어오르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감녕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밑바닥에는 이불을 가져다가 깔아 놓았는데, 그것은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바닥에 추락하면 소리가 컸고, 함매가 떨어져 비명이 크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퍽-
병사가 이불위로 떨어졌다. 벌써 3명째였다. 아직 7명이 오르고 있었지만, 5명은 중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고, 2명만이 잘 오르고 있었다.
'제발. 한놈만이라도 성공해라! 한놈만이라도!'
감녕은 간절하게 그들의 성공을 기원했다. 이윽고 한명이 성벽위로 올랐다. 감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성벽위로 오르자 그늘 속으로 숨어서 주변을 살폈다. 예상대로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은 없었다. 그는 기둥에 밧줄을 단단히 고정한 후에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 올라오는 병사들에게 짧은 줄을 내려 끌어 올렸다.
감녕은 즉각 손짓을 하며, 병사들을 올렸다. 일단 밧줄이 내려오자 병사들은 수월하게 성벽을 기어 올랐다. 그리고, 또 밧줄이 내려왔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면서 한번에 20명씩 기어 올랐다.
감녕이 5백을 이끌고 성벽에 올랐을 때는 아침이었다.
"가자!"
"예. 장군!"
감녕은 오백을 이끌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작은 북을 치고, 호각까지 부르며 요란하게 달려가자 전만군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난데없이 성안에 적군이 나타난 것이다. 공성전에 집중하느라, 전만의 대처가 늦어졌다. 아니 알았다 하더라도 대처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녕군은 가장 격렬하게 공성전을 벌이고 있는 북쪽 성벽으로 진격했다. 감녕이 앞장서서 적군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머지 병사들도 몸을 날렸다.
감녕은 닥치는 대로 베고 또 베었다. 무시무시한 신위에 전만군은 얼어붙어 힘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단 말인가?"
중앙부분에서 지휘하던 전만은 호위병을 이끌고 내달렸다. 성안쪽으로는 완만하게 기울어져 있었는데 이것이 감녕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전만이 눈에 불똥을 튀기며 감녕을 막아섰다.
창-
전위의 아들인 전만인지라 힘은 대단했다. 오히려 나이가 많은 감녕이 뒤로 밀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경험으로는 감히 감녕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힘에 밀려 연신 뒤로 물러났지만, 감녕의 눈은 살아 있었다. 그는 치밀하게 전만을 살피며 단 한번의 기회를 노렸다.
전만이 공격에 집중한 나머지 바닥의 시체를 밟으며 살짝 중심이 흐트러지자, 감녕의 매서운 반격이 이어졌다. 그는 냉정하게 하체쪽을 집중공략했다. 상체에 비해 하체쪽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전만은 급히 막아섰지만, 노련한 감녕은 다시 대각선으로 어깨를 찌르고 다시 하체를 공격했다. 전만의 손발은 급격히 어지러워졌다.
"가거라! 이얏!"
감녕이 숨겨뒀던 힘을 폭발시키며 대도로 그의 어깨를 찍었다. 갑옷을 입어 몸이 갈라지는 것은 면했지만, 치명적인 상처였다. 감녕은 발로 밀어 칼을 뽑고는 몸이 움직이지 않아 덜덜떠는 전만을 성벽에서 집어 던졌다.
"내가 전만을 죽였다! 내가 전만을 죽였다!"
"전만을 죽였다!"
감녕이 소리치자, 병사들이 일제히 따라서 소리를 질렀다. 전만의 죽음은 전만군을 공황상태로 몰아 넣었다. 순식간에 북쪽 성벽이 장악되었고, 원매군이 사다리를 타고 꾸역꾸역 올라왔다.
이제는 전투가 아니라 사냥이었고, 학살이었다. 전만군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도주했고, 성벽을 넘어온 원매군은 닥치는 대로 죽이고, 또 죽였다.
종요와 순연은 황제에게로 달려갔다. 황제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순연이 엎드려 간했다.
"폐하. 곧 저들에게 성이 점령될 것입니다."
"그.....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이곳에 계속 남아 계신다면, 역적 원가놈들에게 잡혀 치욕을 맛보시고 결국은 ...... "
순연은 차마 죽는다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겨우 10살인 황제도 그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몸을 떠는 황제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던 순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 소신을 따르십시오. 일단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아....알겠소."
순연은 황제를 업고 달렸다. 만년공주와 종요가 뒤를 따랐고, 내관을 비롯한 병사들은 겨우 5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원매군이 없는 동쪽 성벽으로 내달렸다. 그들은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왜 원매군이 갑자기 나타났는지를 알아차렸다.
"쥐새끼같은 놈들!"
종요가 분을 터트리는 사이에, 순연은 황제를 잠시 바닥에 앉히고는 내관과 병사를 시켜 주변을 둘러 보게 시켰다.
이미 상황은 절망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성문까지 열리면서 전만군은 거의 몰살되었고, '황제를 찾아라!'라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상황을 살피러 나갔던 병사와 내관들이 보고하는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순연과 종요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는 마지막이다. 더는 퇴로가 없다. 종요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순연에게 위로를 건넸다.
"순휴약(순연). 고생하셨네. 자네는 항복하시게."
"무슨 소리요? 나는 내동생 문약(순욱)의 길을 따를 것이오. 나는 끝까지 동한의 신하로 남겠소이다."
순연이 굳은 의지를 드러내자, 종요가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순연도 다른 손으로 덮었다. 종요와 순연은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회한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함성이 가까이까지 들려왔다. 곧 원매군이 몰려올 것이다. 만년공주는 소리내어 울었다.
순연과 종요는 황제에게 큰절을 올렸다. 순연이 조심스럽게 황제에게 다가갔다.
"폐하. 소신과 함께 가시지요. 저들에게 붙잡혀 욕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황제는 낭떠러지를 보며 몸을 떨었다.
"괜찮습니다. 소신이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고통스럽겠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순연은 황제를 품에 안았다. 그의 볼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는 종요에게 고개를 끄덕여 마지막 인사를 했다. 황제는 그저 떨면서 울기만 할뿐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순연이 황제를 안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황제의 화려한 옷이 반짝 반짝 빛을 내며 떨어지자, 한송이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름답기까지 했다.
풍덩-
순연은 황제를 꼭 안았다. 점점 숨이 가빠왔다. 허부적거리던 황제는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순연은 그를 안고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검은 바닷물은 둘을 삼켰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더 많은 피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돼-"
만년공주는 피를 토하며, 통곡을 하다 뛰어내렸고, 종요는 스스로 목을 그은 후 투신했다.
황제는 죽었고, 동야성은 점령되었다. 이제 중원 어디에도 한의 그림자는 남아있지 않았다.
206년 7월 건신 6년. 말릉성.
2월에 시작된 동한과의 전투는 모두 끝이났다. 강동에 남아있던 황족들은 죽거나 유주로 유배를 갔으며, 손가 1만 3천명은 배를 타고 요서군으로 이동했다.
또한, 산속 깊숙이 숨어서 저항하던 산월족은 원매의 회유에 순순히 귀부했다. 원매는 그들에게 손가가 떠난 부춘현 일대의 농토를 내주어 정착을 유도했고, 부족한 식량은 지원하겠다고 선포했다.
산월족은 감격하며 원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손견/손책은 산월족을 야만인 취급하며 무조건 토벌에 열을 올렸고, 주유는 회유는 하긴 했지만, 영토를 내주며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산월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이었다. 계속 산속에 살다보니 식량이 항상 부족했다. 원매가 그것을 간파하고, 손가의 땅이었던 부춘현을 내어주고, 식량공급을 약속하자 적대적이었던 산월족이 순순히 칼을 내려 놓은 것이다.
이로서 원매는 또하나의 큰 짐을 덜었다.
주유의 신하중 노숙은 은거를 택했고, 육손은 원매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오의 사성이라 불리는 대호족 출신인 육손은 처음에는 원매를 거부했지만, 원수처럼 여겼던 손가가 모조리 유주로 끌려가자 원매에게 귀부했다.
주유에 이어 육손까지 얻음으로써 원매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원매는 예장/단양/오/회계를 묶어 이를 관리할 강동도호부를 신설했다.
강동도호부.
도독 : 감녕.
장수 : 주태, 태사자.
수군 : 1만 5천, 보병 1만 5천, 기병 3천.
감녕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불과 10년전에 황조에게 설움을 당하며 술로 밤을 지새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강동을 총괄하는 위치까지 오른 것이다. 유장에게서 도망쳐 유표를 거쳐 원매를 따라 천하를 누비던 긴 시간이 빠르게 눈앞으로 지나갔다.
"태자전하! 신 감녕 목숨을 바쳐 강동을 지키겠나이다."
감녕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려왔다. 원매는 그를 일으켜 등을 두드리고는 싱긋 웃었다.
"열심히 일해서 충성해야지, 목숨을 바치지 말게. 나는 자네와 오랫동안 부를 누리고 싶어. 나중에 늙으면 이 사람과 술을 나누면서 옛이야기도 하고 그래야지. 자네에게 이곳을 맡긴다면 안심이야."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녕이 다시 엎드려 절했다. 원매는 그를 일으켜 격려하고는 태사자와 주태를 불러 격려했다.
문빙과 왕충, 주령은 다시 합비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곳의 양강도호부가 오래 비었기 때문에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엄은 다시 강릉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강동에 있는 병사들을 중원으로 실어 나르겠지만.
206년 9월.
원매는 조운의 호위를 받으며 곽가, 주유, 육손, 전예, 안량, 위연, 장비, 허저를 데리고 업성으로 들어섰다. 백성들은 멀리까지 나와서 대대적으로 환영행사를 벌였다.
"태자전하 천세!"
"태자전하 천세!"
우렁찬 천세소리를 들으며 원매는 손을 흔들었다. 그의 마음은 크게 벅차 올랐다. 천하를 통일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가슴이 터지도록 기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그리되고 보니 벅차긴했지만, 오히려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제는 개혁을 통해서 천하를 안정시켜야 해. 치밀하게 계획해서 적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겠어.'
원매는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면서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대한 생각에 젖어들었다. 업성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멀리 황제 원소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고, 많은 신하들이 길게 도열하여 있었다. 신하들이 있는 곳에 당도하자, 원매는 말에서 내렸다. 뒤를 따르던 책사와 장수들도 일제히 하마했다.
"태자전하! 승전을 감축드립니다."
신하들이 일제히 소리치자, 원매는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원소앞에 이르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폐하! 신 원매 강동을 점령하여 중원을 통일했나이다."
원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이 센 호위병이 그를 부축했다. 그 사이에 건강이 악화된 것 같았다.
"장하다. 내아들. 이제 이 아비는 죽어도 원이 없겠구나. 원가가 천하를 호령하는 것을 보았으니, 죽어도 원이 없어."
"폐하. 어인 말씀이십니까? 오래 오래 사셔서 좋은 것을 많이 보셔야지요."
원매는 원소의 말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원소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아비는 네가 자랑스럽다. 이제 내 역할은 끝이 났어. 곧 선위를 할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거라. 사양하지 말고. 이놈아- 아비가 힘들어서 그래."
원소의 다정한 어투에 원매는 속으로 피눈물이 났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쉽게 선위란 말이 나온단 말인가? 원매가 거절하려고 하자 원소가 그의 입을 막았다.
"내말을 들어. 자- 들어가자."
"예. 폐하."
원소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원매는 그를 따라 황궁으로 향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