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제241장.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주유를 얻고 단양군과 예장군을 점령했을 때, 손분은 오군과 회계군에서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켰다. 그들은 관청을 습격해서 대부분 현을 탈취했다.
오군 오현 손분치소.
"이대로 주기는 아깝지 않습니까?"
손분이 뭔 소리냐며 고개를 돌렸다. 일찍이 손견을 따라서 군사를 일으켰던 오경이었다. 손가는 손분을 중심으로 오군, 회계군에서 난을 일으켰는데 오경이 군사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태자전하께 오군과 회계군을 들어 바치는다면 크게 후대할 것입니다. 아까워보인다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어요."
"강동은 원래 손가의 땅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찾았습니다. 원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오! 물러가세요!"
손분이 강하게 질책하자, 오경이 굳은 얼굴로 물러났다. 손분은 뒷모습을 보다가 혀를 찼다.
'오경 저 늙은이가 제정신이 아니야. 주유가 10만이나 되는 정예군을 가지고도 못 이겼는데, 여기 있는 어중이 떠중이로 뭘 어쩌라는 거야. 그나마 남아 있는 손가를 몰살시키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손분은 울분을 삭히고는 원매를 맞이할 준비를 서둘렀다. 그가 연통을 작성하여 원매에게 전령을 보냈을 때, 오경은 손가의 또다른 중심축인 손권을 만나고 있었다. 나이 어린 손권은 오경의 말에 혹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강동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울분으로 몇년을 보냈기 때문에 더욱 혹했는지도 몰랐다.
"이대로 강동을 원매에게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그가 단양군을 점령하고 이곳 오군으로 온다면 승산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곳은 수로가 거미줄처럼 발달해 있어서 저들의 강점인 보병이나 기병은 힘을 쓰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맹주(손분)가 반대하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그거야......부맹주(손권)께서 결단을 하시면 움직일 수 있는 칼이 많습니다."
"가문의 어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른들이 바라는 것은 손가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아마 지금 오군, 회계군을 들어 바친다면 모두 반대하실 것입니다."
손권은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이성적으로는 원매를 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자꾸 욕심이 그것을 막았다.
'나도 강동의 패자가 되고 싶다! 그래 오군은 거미줄같은 수로가 있으니, 원매군이 힘을 쓰지 못할 거야. 버티기만 한다면 수가 날지도 몰라.'
손권은 떨리는 마음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 후 발빠르게 움직였다. 가문의 어른들을 만나 설득했다. 고지식한 그들은 아직 원매의 무서움을 잘 몰랐기에 손분의 행태에 분노를 드러내며 손권을 지지했다.
손분은 원매를 만났을 때를 대비하며 여러가지 방책을 고민하고 있었다. 오군, 회계군을 바치는 것이니 만큼 최대한 얻어낼 생각이었다. 그리하면 강동에서 손가의 영광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맹주. 손권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오시게."
미소를 머금은 손분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손권의 뒤로 가문의 장로라는 늙은이들이 병풍을 쳤고, 장수들이 둘러쌌다. 이 병신같은 놈이 뭔 짓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다.
"뭐하는 짓이냐?"
"맹주야 말로 뭐하는 거요? 힘겹게 얻은 오군과 회계군을 원매에게 바치려하다니 제정신이오?"
손분이 고개를 돌려보니 말이 안 통하는 손유(손정의 차남 손유와 동명이인)였다. 그는 손견, 손강과 같은 항렬이었기에 그의 말에는 힘이 실렸다. 하지만, 그가 손견, 손책시절 관직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고지식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태자전하께서는 중원을 대부분 차지했고, 단양군과 예장군을 점령했습니다. 잘못하면 우리 손가가 절단날 수 있어요. 제발 자중하세요."
"흥! 자중이라. 맹주야 말로 벌써부터 원가의 개가 된 것 같소이다. 이제 그만 그 자리에서 내려오셔야 겠소이다. 여기 부맹주께서 맹주에 앉을 것이오."
"태자전하의 군사력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들은 주유의 십만대군마저 격파했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손유가 눈짓을 하자, 장수들이 달려들어 그를 바닥에 꿇어 앉혔다. 손유는 앞으로 나와 근엄하게 그를 꾸짖었다.
"감히 오, 회계를 원가에 넘기려고 했으니 오마분시를 해도 시원치 않을 것이나, 그간의 공을 생각하여 해염현으로 유배를 보낸다. 앞으로 속죄하며 살아라!"
해염현은 황해에 위치한 오지였다. 손분은 끌려나가면 손권에게 소리쳤다.
"나는 어찌되도 좋으니, 제발 태자전하께 저항하지 말거라. 잘못하면 손가가 모조리 도륙될 수 있어. 절대! 절대!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오, 회계를 차지한다는 생각에 손권의 눈은 권력욕으로 활활 타올랐다. 그에게 손분의 충언이 들릴 리가 없었다. 손분은 손이 묶인 채로 주가에 탑승해 해염현으로 끌려가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손가를 부흥시키려는 그의 거대한 꿈은 이렇게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죽어서 어찌 조상들을 뵙는단 말인가? 이 일을 어찌 할꼬? 어찌 할꼬? 제발 태자전하께서 손에 인정을 두셔야 할 텐데.'
손유/손권의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보냈던 전령은 주가를 타고 거대한 태호를 지났다. 이후 말을 타고 말릉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전령이 도착했을 때, 원매는 말릉성을 접수하고 병사들을 정비하고 있었다. 주유는 예장/단양군의 태수와 현령들을 설득하여 큰 무리없이 항복시켜 원매를 기쁘게 했다.
주유는 전령을 보고는 손분이 보냈음을 확신했다. 이미 오군일대에서 손분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령은 주유를 보자 얼굴이 하얘졌다.
"괜찮다. 나도 이제 태자전하의 사람이 되었느니라. 손분이 보냈느냐?"
"예. 승상."
"이젠 승상이 아니니, 그냥 장군이라 부르거라."
주유는 연통을 받아들고는 곧바로 원매에게 향했다. 원매는 단도를 꺼내 매듭을 풀고 죽간을 펼쳤다.
"역시. 손분이 제대로 일을 해냈어. 이걸 보시게."
주유는 공손히 죽간을 받아들어 읽었다.
"태자전하. 천하통일을 이루셨습니다. 감축드립니다."
"아아- 손분이 땅을 바치고, 동한의 황제를 잡은 연후에 그 축하를 받겠소이다. 손분의 공이 큰데, 그가 무엇을 요구할 것같소?"
"아마도 부춘현을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손가에 많은 관직을 내려달라고 하겠지요."
"부춘현을 내줄 수는 없고, 관직은 적당히 줄 수 있지. 주공근(주유). 협상을 해야 할 텐데, 좋은 생각이 있으신가?"
"태사장군을 보내서 그의 말을 듣고, 오/회계의 상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그는 무력도 뛰어나지만, 상당히 영특합니다. 이번 임무에 제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소. 그리하시오. 필요한 것은 모두 지원해주시오. 이번 일은 그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진행하시오."
"예. 태자전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주유가 공손히 예를 표하고 물러섰다.
"매우 영특하고, 기상이 특출한 자입니다. 저런 자를 얻다니 태자전하의 홍복이십니다."
"곽봉효. 질투가 나시는가?"
"솔직히 영특하기는 하지만, 이 곽가만큼 똑똑하겠습니까?"
"그래. 그래. 자네는 그렇게 우쭐하는 모습이 어울려. 참! 동한의 황제를 추격하고 있는 문도독에게서는 연통이 온 것이 없는가?"
"당분간은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배를 타고 추격하고 있는데, 따로 연락을 보내기는 어렵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문도독은 침착하고 계책에 밝습니다. 조금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반드시 동한의 황제를 처리할 것입니다."
"그래. 문도독이라면 믿을 수 있어."
원매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문빙에 대한 믿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태사자는 5백의 날랜 병사들을 이끌고 태호로 이동했다. 이 호수를 건너면 오현에 곧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주변의 배를 징발하려고 병사들을 풀었는데, 모두 허탕이었다.
"무슨 소리야? 배를 구할 수 없다니? 여기에 어촌이 얼마나 많은데 배가 없단 말인가? 내가 그냥 빼앗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가를 지불한다는데 왜 배를 안 빌려줘?"
"장군. 안 빌려주는 게 아니라, 이곳에 배가 없습니다."
"자세히 말해봐."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자, 태사자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인근의 어촌을 모두 돌았는데, 한명 두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배는 있었지만, 적어도 10명이 탈 수 있는 배는 없었습니다. 하여 수소문해보니, 오현의 손가들이 모조리 징발해 갔다고 합니다."
태사자는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항복한다고 전령을 보낸 손분이 하는 행동치고는 매우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배를 징발하는 것은 원매를 적대시하는 행동이었다.
"눈치빠른 병사들을 50명만 선발해서 오현일대를 정찰시켜라. 절대 무리하지말고, 객잔, 주루에서 첩보만 확인해 오라고 하거라."
"예. 장군."
태사자는 이를 악물었다. 태호가 넓긴 하지만, 병사들이 배에 익숙하니 오현에 다녀오는데 며칠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는 손분에게 어떤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이번에 정찰을 시킨 것은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다.
5일이 지나자, 오현으로 나갔던 병사들이 속속 들어왔다. 태사자는 그들을 불러 일일이 내용을 청취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태사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수고했다. 잠시 물러가서 쉬어라."
태사자는 생각을 거듭하고는 확신이 서자, 이곳에 병력을 남겨두고는 10명의 호위기병에 둘러싸여 말릉성으로 향했다.
주유는 태사자로부터 상황을 전해듣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뭐라? 손유 그 늙은이가 오현에 있어? 손분은 어찌하고 있다던가?"
"유배를 갔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그가 끌려가면서도 손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쾅-
주유는 분함에 탁자를 내리쳤다.
"이 멍청한 중모(손권)와 손유가 일을 망치는구나. 고생하셨네. 잠시 쉬면서 기다리게. 나는 속히 태자전하를 뵈어야겠어."
주유는 원매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매는 주유를 보고는 의아함이 들었다.
"벌써 손분과 협상이 끝났는가?"
"태자전하. 일이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손권과 손유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손분은 실각하여 유배를 떠났다고 합니다."
"손유? 그게 누군가?"
"손유는 손견, 손강과 같은 항렬로서 손가에서 발언권이 매우 큰 인물입니다. 하지만, 매우 고지식하고 편협적이어서 손견, 손책시절에도 관직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은 손유가 손권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추측됩니다."
"허허- 나참. 주장군. 설마 저들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저들에게 승산은 없습니다. 손권이라면 그 정도는 알 것입니다. 다만, 욕심에 눈이 멀어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쯧쯧. 하긴 주장군 자네만 아니었으면 손권이 강동의 주인이 되었을 테니, 그런 마음을 먹을 만도 하군. 어찌했으면 좋겠는지 자네 생각을 말해보게."
"제게 2만을 내어주시면 모조리 쓸어버리겠습니다. 오와 회계는 수로가 발달되어 있어서 타지사람은 방향도 잡기 힘듭니다. 기병공격도 어렵고요. 저는 기병이 움직일 이동로를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리하지. 주태. 태사자와 보병 1만. 안량과 기병 1만을 지원하지. 충분하겠는가?"
"예. 태자전하. 반드시 오와 회계를 되찾아오겠습니다."
"즉시 출병하게."
"예. 태자전하."
주유가 군례를 올리고 물러나자, 곽가가 옅은 웃음 띄며 입을 열었다.
"다 잡은 대어를 다시 대해로 풀어주는 것은 아닙니까?"
"바보짓을 한다면 오와 회계를 초토화시켜야지. 내가 그정도의 힘을 가진 것을 그도 알 테니 딴 짓을 하지 못할거야. 빨리 강동을 마무리하고 돌아가고 싶은데, 소소한 것들이 자꾸 발목을 잡는군."
"청소를 확실히 하고 간다고 생각하십시오. 손가는 손견-손책을 거치면서 강동에서 큰 힘을 이뤘습니다.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이 기회에 그들의 세력을 확실하게 꺾어 놓으십시오. 그리고 손분은 성정도 유순하니 그를 앞세워 나머지 세력들을 회유하면 좋을 듯합니다."
원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는 마음속으로 칼을 품었다.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개들에게 관용을 베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감히 주인을 몰라보고 대드는 미친개는 오로지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
주유는 곧바로 안량을 찾아 상황을 설명했고, 주태와 태사자를 불러 급히 원매의 명령을 알렸다. 그들은 이틀을 준비하여 곧바로 오현으로 진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