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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239화 (239/253)

# 239

제239장. 주유의 고민.

종요는 황제를 모시고 가까운 강승포구로 향했다. 원래 주로 사용하는 포구는 석성포구였는데, 원매군이 주로 주둔하고 있는 유수구포구에 가까웠기 때문에 피하고, 가장 동쪽에 위치한 강승포구로 방향을 잡았다.

말릉이 두포구의 중간지점에 위치했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들이 이틀에 걸친 강행군 끝에 강승포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겨우 주가 15척이 전부였다. 병사들이라면 한척에 100명도 가능했지만, 짐을 실어야했고 이들이 고생을 모르고 자란 황족과 호족들이었기에 겨우 2백명이 주가 12척을 사용했다.

병사들은 남은 세척에 3백이 탑승했고, 노를 저을 병사 20명씩 각각의 주가에 탑승했다. 그들은 탑승이 완료되자 곧바로 장강을 따라서 황해로 나아갔다.

황제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두려움에 떨었다. 모친 만년공주는 그런 황제를 꼬옥 안았다.

"근심하지 마시어요. 회계군 산음성에 가면 한숨돌릴 것입니다. 병사들도 불러 모으고, 장정들도 모집한다면 역적 원매 따위는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곱게 자란 그녀에게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종요는 어두운 안색으로 순연에게 말을 건넸다.

"순휴약(순연). 산음성에 가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글쎄요. 오군과 회계군에서 병사들과 장정을 얼마나 끌어 모을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제 생각에는 적어도 1년은 버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네. 낙천적이구만."

종요는 조금은 힐난조로 말했다.

"고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손가가 어찌나오리라 생각하는가? 지금까지야 승상의 위세에 눌려 눈치만 보고 있었지만, 승상이 대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야. 만약에 원매가 거기까지 손을 뻗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겠지."

순연도 그제야 얼굴이 굳어졌다. 손가에 대한 생각을 했었지만, 막연하게 잘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산음성이 힘들다면, 동야로 가야해. 그곳이 마지막 희망이지."

"동야라면 전만(전위아들)이 현령으로 있는 곳 아닙니까?"

"그렇지. 그곳은 오직 배로만 접근할 수 있고, 가장 남쪽이니 원매군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지. 참 묘하지? 마치 이런 일을 대비하여 전장군을 동야에 배치한 것같은 느낌이 들만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잖은가? 물론 주승상이 이런걸 염두에 두고 했을 리는 없을 테지만 말이야."

"그렇지요. 그래도 마지막 갈 곳은 있으니 다행이군요."

종요와 순연의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 더 말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갈 곳이었다. 만약 거기까지 원매군이 공격해 온다면 그 다음은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황제일행이 배를 타고 떠났을 때, 주유군은 전예에게 대패하며 군영이 점령되었다. 마초, 안량은 기병을 이끌고 도망치는 병사들을 죽이거나 항복시켜 끌고 왔다. 방덕은 1만 5천의 기병을 여러 개로 쪼개어 도망치는 주유를 겹겹이 포위했다.

태사자와 주태는 앞장 서서 활로를 뚫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강인한 전예기병을 당해내지 못하고 얕은 야산으로 도주했다.

이틀에 걸친 도주 끝에 겨우 낮은 야산에 숨어 휴식을 취했다. 이곳에서 병사들은 헤아리자, 겨우 2백에 불과했다. 일부를 경계 세우고, 장수들과 병사들은 곧 깊은 잠에 빠졌다.

그 사이에 방덕은 기병을 이끌고 도착하여 야산을 겹겹히 포위했다. 또한, 연락을 받은 마초와 안량까지 도착하자, 물샐틈 없는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주유군을 대파하고, 군영을 점령했다는 보고를 받은 원매는 조운과 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달려왔다.

"태자전하! 어서 오십시오."

"전도독! 고생했어.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군. 병사들은 많이 상하지 않았는가?"

"지금 파악중에 있습니다. 워낙 대규모 전투였고, 치열했는지라 사상자가 많습니다. 부상자들을 모아 치료중이고, 전사자들은 모두 기록을 해놓았습니다."

"잘했네. 그들의 가족에게는 꼭 보상을 해줘야 하니 늦더라도 정확하게 확인해주게."

"예. 태자전하. 그리고 주유가 야산으로 도주를 했는데, 기병들이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오호! 이제 주유만 잡으면 끝나겠군. 주유가 없다면 말릉성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더군다나 손가가 오군에서 들고 일어났으니 동한은 끝이 났어."

원매의 얼굴에 호선이 절로 그려졌다. 전예가 망설이다가 진언을 올렸다.

"태자전하.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엇인가? 주유가 숨겨둔 병력이라도 있다던가?"

"그게 아니고, 황제가 말릉성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석성포구가 아니라 동쪽의 포구를 이용해서 도주한 바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것참. 쥐새끼같은 놈들이네. 뭐. 괜찮아. 문도독(문빙)에게 추격하도록 명령을 내리게. 서두르지 말라고 전하게. 그놈들이 병력이 많지 않으니 큰 문제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생포하라고 할까요?"

"가능하면 그리하고, 저항이 거세면 모조리 죽여! 어차피 동한은 역사속으로 사라져야 해. 내게 칼끝을 돌리는 놈들에게까지 관용을 베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명을 따르겠습니다."

전예는 급히 종사관을 시켜 명령서를 작성하여 원매에게 바쳤다. 원매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인장을 찍어 주었다. 명령서를 품에 넣은 전령은 곧바로 석성포구로 향했다. 주유군이 대파되자, 문빙이 수군을 이끌고 와서 석성포구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그곳을 점령해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황제가 먼저 선수를 쳐서 도망갔으니 원매는 기가 막혔다.

"하여간 쥐새끼 같은 놈들이야. 유방(한고조)을 닮아서 불리하다 싶으면 냅다 도망부터 치는군. 그래봐짜지. 이미 교주까지 내가 손에 넣었는데 어디로 도망간단 말인가?"

"태자전하. 누추하지만, 이곳에서 며칠을 기다리시면 방장군이 주유를 사로잡아 올 것입니다."

"아냐. 내일 아침에 내가 그곳으로 가도록 하지. 주유를 직접 봐야겠어."

"명을 따르겠습니다."

원매는 전예의 안내를 받아 침소에 들었다. 침상에 눕자 피곤한 가운데서도 주유에 대한 궁금증에 잠이 오지 않았다.

'주유는 어떤 인물일까? 잘 생기고, 똑똑하고, 가문 좋고. 정말 빠지는 게 하나도 없는 뛰어난 인물인데. 항복할까?'

원매는 조금 생각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동한을 실제적으로 지배한 인물이야. 그가 유장처럼 허리가 가볍지는 않겠지. 결국 조조나 유비처럼 죽음을 택할 텐데, 과연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주유가 병사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지만, 능력있는 인재에 대한 갈증은 어쩔 수 없었다. 가능하면 그를 데려다가 쓰고 싶을 마음이 있었다. 조조가 그랬던 것처럼 원매도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것이다. 물론 위연, 허저등 장수들의 분노를 무마시키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어서 과연 항복한다고 해도 걱정이긴 했다.

반면에 불리하자 재빠르게 도망친 동한의 황제에 대해서는 경멸감이 들었다.

'황제란 놈이 그리 줏대가 없다니. 쯧쯧. 가만? 이게 바로 아버님께서 말한 극단적인 상황인가? 그래. 앞으로 그놈들이 어찌 나올지를 자세히 지켜봐야겠어.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겁이 많고 욕심 많은 놈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겠어. 앞으로도 이런 놈들을 수없이 상대해야 할 테니, 좋은 공부가 되겠어.'

아침이 밝자, 원매는 전예에게 계속해서 부상자와 항병관리를 맡기고는 주유를 몰아 넣은 낮은 야산으로 향했다.

이곳의 지형이 대부분 평평한 평야지대였기에 주유가 주둔중인 야산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야산이라기 보다는 낮은 언덕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가 도착하자, 방덕이 급히 마중을 나왔고, 마초, 안량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쉬지 못하고 계속 전투를 수행해서 그런지 얼굴이 까칠했다.

"방장군, 마장군, 안장군. 고생들 많았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방덕이 대표로 대답하자, 원매는 얼굴에 호선을 긋고는 세명의 장수들과 눈을 마주치며 신뢰를 전달했다.

"주유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게. 밤사이에 별다른 일은 없었겠지?"

"예. 태자전하. 조용했습니다. 절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래 버티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래. 주유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서 왔어."

원매는 천천히 말을 몰아 앞으로 나왔다. 야산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에 있었다. 듬성 듬성 나무들이 있는 가운데 주유기병이 타고 온 말들이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보였다.

병사의 모습도 보였지만, 주유나 장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원매는 주유가 있을 만한 곳을 훑어보다가 말에서 내렸다. 그는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지금이 아침식사중이었기에 여기저기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저 식사는 하셨습니까?"

"물론일세. 걱정말고 병사들을 관리하게. 나를 보좌하는 것은 여기 조자룡이면 충분해."

"예. 태자전하."

방덕은 군례를 올리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원매의 눈은 야산에 머물렀다. 아침이 지나고 해가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조금씩 따뜻해졌다. 방덕은 병사들을 시켜 주유에게 항복을 종용하기 시작했지만, 주유는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야산 주유군영.

주유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그를 깨운 것은 배고픔과 아래에서 올라오는 음식냄새였다.

"일어나셨습니까?"

태사자였다. 주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끝까지 남았군.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내곁에 남는단 말인가?"

"저는 마지막까지 승상과 함께 할 것입니다."

"바보같으니라고."

주유는 낮게 중얼거리고는 물병을 빼내서 조금 목을 축였다. 태사자가 조용이 옆으로 와서 앉았다.

"빈말이 아닙니다. 저는 승상께서 어떤 선택을 하시더라도 따를 것입니다."

주유는 말이 없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 저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어떡했으면 좋겠는가?"

"글쎄요. 저는 승상께서 너무 무모한 생각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복하란 말인가?"

"승상은 젊고, 문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버리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동한이면 어떻고 기冀면 어떻습니까? 백성이 고단한 것은 똑같습니다."

"백성이 고단한 것은 똑같다? 이거 내가 강동에서 제대로 정치를 못했다. 이렇게 들리는데?"

"송구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이사람아. 농일세. 계속 말해보게."

"지금은 중원을 쥐고 있는 것은 호족입니다. 저 강력한 원매도 호족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고, 승상께서도 호족들의 과한 욕심을 모른척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백성들이 고단하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땅을 조금 가지고 있는 백성들이 모든 의무를 짊어질 테고, 커다란 땅을 가진 호족들은 세수를 조금 내면서 큰 소리 칠 테니까요."

"나나 자네는 호족출신이야.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자들도 있지만,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자들도 많아.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네. 다만, 자네 말대로 통치자로서 나라를 운영하려면 강한 호족들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 그건 그렇고, 자네 입에서 항복하자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어."

"승상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만약 승상께서 손가의 장자인 손책으로 태어나셨다면 천하의 판도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천하통일은 승상의 몫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품고 있던 거대한 웅지를 펼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여 스스로를 높을 수 있겠지만, 잠시 굴욕을 참고 기를 따르는 것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내 자네의 진언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겠네. 그리고 ....... 폐하께서는 지금쯤 말릉성에서 초조해하고 계시겠지?"

"헹! 승상 아직도 그자를 폐하라고 생각하십니까? 종요가 어거지로 끌고 온 자입니다. 상황이 불리하면 언제든지 제 몸 먼저 챙기는 놈들이 유가놈들이지요. 조조가 멸망하니, 그곳을 버리고 이곳으로 도망쳐와서 유씨중에 한명 골라서 황제를 옹립하지 않았습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놈들입니다."

격분한 태사자를 보며 주유는 쓴 웃음을 지었다. 힘도 없는 주제에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앉은 황제가 주유도 아니꼬왔다. 그저 그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제는 모든게 다 끝난 것이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말없이 바닥에 누웠다.

"모든 걸 내려놓으니 참으로 편하군. 태사장군. 병사들을 부탁하네. 내 조금만 쉬며 생각을 정리해야겠어."

"예. 승상."

태사자는 군례를 올리며 물러났고, 주유는 파란색의 하늘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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