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제235장. 격렬해진 만큼, 원한은 깊어지고.
무호포구까지 점령한 전예는 정찰을 실시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말릉까지는 두 갈래 길이었는데, 적성현을 거치는 길과 단양현을 지나는 길이었다.
무호 - 적성 - 말릉으로 이어지는 길은 장강을 따라 형성된 길이었고, 도로도 잘 발달되어 있었다. 다만, 무호 - 적성구간은 구릉지대가 많은 골짜기를 지나야 해서 적의 기습에 취약했다.
무호 - 단양 - 말릉으로 이어지는 길은 내륙으로 이어졌고, 평야지대였기에 이동로는 수월했지만, 우회로였고 군량등 군수지원물품을 지원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병사들에게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군수지원은 배를 이용하고 있었다.
고민하던 그는 절충안을 꺼내들었다.
보병을 적성일대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2만씩 끊어서 골짜기를 모두 통과하면 그 다음 부대가 통과하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설령 피해를 입더라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함이었다.
기병은 우회로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말릉성을 공략하게 했다. 그들은 기동성이 우수하고 말을 타고 다니기에 군량보급에 수월한 잇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장군(방덕). 내 말 정확히 이해했소?"
"물론입니다."
"신속도 중요하지만, 피해가 적어야 하오. 정찰을 넓게 하여 적의 동태를 파악하시오. 만약 저들이 적성 골짜기에 매복한다면 그쪽이 빌 것이니 신속한 기동이 가능할 것이오. 그럼, 속도를 더해서 적의 후방을 급습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시오."
"예. 도독!"
방덕은 군례를 올리고는 물러났다. 잠시 후, 마초가 앞장 선 가운데 방덕이 중군, 안량이 후미를 맡아 기병이 출병했다. 3만에 이르는 기병이 출병하고나자 허전했다. 전예는 고개를 흔들고는 위연, 허저, 장비를 호출했다.
"이제 적성현을 지나서 말릉성으로 진군하겠소. 강수(장강)를 따라서 진군하는 길이지만, 적성현 근처는 구릉지대가 많고 골짜기가 커서 저들의 매복이 우려되는 곳이오. 아무리 정찰을 강화한다 치더라도 숨어있는 모두를 파악할 수는 없소이다. 하여 순차적으로 2만씩 이곳을 이동하는 방식을 택하겠소이다."
전예의 말에 모두 얼굴이 굳어졌다. 노련하고 경험많은 그들은 무슨 뜻인지를 바로 알아차렸다. 기습을 당해 죽더라도 일부만 죽이고 나머지는 살리겠다는 의도를 모를 리가 없었다. 냉정한 전예의 명령이었지만, 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누가 선봉에 서겠는가?"
"이번에는 제가 서겠습니다."
허저가 벌떡 일어났다.
"춘곡포구를 장악하는 것은 장장군(장비)이었고, 무호포구는 위장군(위연)이 점령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뒤를 따르기만 했으니 참으로 무안하고 답답했던 참이었는데, 잘됐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선봉을 제게 맡겨 주십시오."
"좋아."
전예가 벌떡 일어서서 허저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적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하지만, 분명히 뭔가는 있을 거야. 말릉성이 코앞인데 이런 좋은 목지점을 그냥 내버려둘 리는 없잖아. 문제가 생기면 지체없이 보고하게. 그럼 지원하도록 하지."
"저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믿네. 적성현을 통과하면 신호를 보내게. 아마 하루는 꼬박 걸려야 할 게야. 그러니 지금부터 준비를 해서 내일 아침 일찍 출병하게."
"명을 따르겠습니다."
허저는 군례를 올리고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전예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두번째는 위문장(위연), 세번째는 장익덕(장비)이 맡으시게. 네번째는 내가 2만을 이끌고 가도록 하지. 만약에 말이야. 내가 적에게 당해 죽는다면 장익덕 자네가 책임지게."
"말.....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도독께서 잘못되다니요?"
"만일에 대비하자는 말이야. 그렇게 알고 준비하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라. 알겠는가?"
"예. 도독!"
위연과 장비는 군례를 올리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전예도 밖으로 나왔다. 제법 쌀쌀하긴 했지만, 추위가 몰아치는 하북에 비하면 봄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다.
"맑았으면 좋겠는데."
허저는 2만을 이끌고 적성계곡으로 들어섰다. 계곡은 예상보다 넓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얕은 구릉이 많고 수풀이 우거져서 적이 숨어 있다 하더라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다. 어차피 누군가가 당해야 할 일이라면 일부를 희생시키는 것이 당연했다. 그 대상이 자신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멀리 산정상에 자리를 잡은 주유는 한눈에 허저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이미 병사들은 불화살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작전이 간파되었나? 아냐 그럴리가 없어. 간파되었다면 분명히 여길 피했겠지. 2만이 들어섰는데, 그 다음 놈들은 아예 움직일 생각이 없어. 그렇다면?'
주유 곁에서 차근차근 상황을 훑어보던 육손의 얼굴에도 근심이 드리웠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승상. 죄송합니다. 이번 작전은 저들에게 간파된 것 같습니다."
"아냐. 간파되지 않았어. 저놈들의 총대장이 얼음처럼 차가운 냉혈한이야."
"그 말은?"
"죽어도 한 놈만 죽으라는 거지. 이 정도면 매복이나 기습등 좋은 장소잖아. 그리고 어떤 작전이 나올지를 모르고. 아마 한 부대가 통과하면 또 한 부대가 통과하겠지. 지독한 놈들같으니라고."
"2만이나 계곡에 들어섰습니다."
"원매는 마음만 먹으면 여기 10만이든 20만이든 추가로 동원할 수 있어.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로구나. 참, 기병은 어찌 하고 있더냐? 그대로 후방에 있느냐?"
"현재 그들이 보이지 않아 자세히 파악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보여?"
"곧 그들의 위치를 알아낼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승상. 어찌할 것입니까? 저들을 그냥 보낼 것입니까?"
주유는 말이 없었다. 화공을 쓰면 2만을 불구덩이 밀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놈들은 유유히 우회하여 말릉성으로 향할 것이다. 2만을 잡자고 이런 수를 화공을 쓰는게 아니었다.
'어쩐다? 모두 살려 보낼 수는 없고. 그렇다면 2만이라도 잡아야 해. 그럼 누구를 잡는단 말인가? 일단 오늘은 그냥 보내자. 혹시라도 저들이 방심하여 내일 대부대가 투입된다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어.'
그는 결심을 굳히자, 허저군을 그대로 지나갈 수 있게 놓아두도록 명령을 내렸다.
아침에 계곡에 진입한 허저는 오후 늦게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신속하게 통과를 하면서 걱정했던 적의 기습은 다행이 없었다.
"주가를 이용해서 전령을 보내거라!"
"예. 장군."
허저는 단양현 근처에 강력한 방원진 형태의 주둔지를 편성했다. 적어도 며칠은 이곳에서 버텨야 할 것이다. 나머지 보병들이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전예치소.
늦은 밤. 전예는 장비가 보낸 연통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갸웃했다.
'내 예상이 틀렸단 말인가? 분명히 매복 기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주유는 지용을 겸비한 무장이야. 우리가 말릉성에 이를 때까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뭘까? 무슨 생각일까?'
전예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계획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그는 냉정하게 결심을 굳혔다.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되긴 했지만, 최초의 결정을 바꿀 만한 이유는 없었다.
다음날.
위연이 이끄는 2만이 계곡으로 들어섰다.
주유는 산정상에서 꼼꼼하게 그들을 지켜보고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런 뱀처럼 냉혹한 놈같으니라고!"
그가 분통을 터트릴 때, 육손이 그에게 달려와 진언을 올렸다.
"승상. 기병의 움직임이 파악되었습니다."
흰색으로 탈색된 육손의 얼굴을 보고는 주유는 내심 혀를 찼다. 아무리 똑똑해도 아직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다.
"긴장하지 말고 말해봐. 어떻게 됐어?"
"그들은 단양/율령방향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당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피해를 입겠다는 전예의 의지는 주유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육손이 주유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결정을 촉구했다.
"승상! 어쩌시겠습니까?"
"계획대로 이곳을 불지옥으로 만든다! 그리고 말릉성으로 돌아간다!"
"예. 승상!"
육손이 물러난 후, 신호병들은 곧바로 하늘고 계속해서 긴 붉은 천이 달린 화살을 쏘아 올렸다. 이것은 주유군 뿐만 아니라 계곡을 진군하고 있는 위연군에게도 보였다.
"장군. 저것을 보십시오."
선임교위가 재빠르게 달려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위연도 그 손가락을 따라서 하늘로 향하다가 붉은 천이 길게 휘날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굳어졌다.
"적의 기습이다! 방패를 들어라! 기습에 대비하라!"
위연이 소리치자, 호각이 길게 울려퍼졌고 입에서 입으로 신속하게 명령이 전달되었다. 위연은 붉은 천이 달린 화살이 매복/기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잠시후 그게 큰 실책이었음이 드러났다.
산 정상에서 불화살이 비오듯 쏟아졌고, 헝겊에 기름을 재어 불은 붙인 불덩이들이 쏟아졌다. 위연은 화공을 당하자 아득해졌다. 그는 망설임없이 후퇴를 결정했다.
"후퇴하라!"
징- 징-
연달아 징이 울렸고, 병사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계곡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번 넘어진 자는 짓밟혀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전예는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멀리서 보기에도 불화살이 비오듯 쏟아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화공이다! 장익덕!"
전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비가 대령했다. 그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알아차리고 전예에게로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대에게 4만의 지휘권을 넘겨줄 테니 당장 전진하여 일군은 나무를 베고, 풀을 베어 불이 번지지 못하도록 막아라. 일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을 꺼라. 그리고 궁수부대는 적이 출몰하면 그에 대응사격을 하도록 하라! 어서 시행하라!"
"예. 도독!"
장비는 군례를 올리고는 신속하게 물러났다. 전예가 내린 명령은 그가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그는 곧바로 선임교위를 불러 1만 5천을 주어 풀과 나무를 베게 했고, 자신이 직접 2만을 이끌고 불을 껐다. 3천의 궁수들은 뒤를 따르며 주유군을 경계했다. 2천은 지휘소를 지키게 했다.
다행이 요근래 바람이 강하지 않았다. 주유에겐 불행이었고, 원매에게는 다행이었다. 장비가 신속하게 대처하면서 불길은 어느 정도 잡혔고, 위연군은 대부분 화상을 입은 채로 쏟아져나왔다.
선두에 있었던 위연의 화상은 꽤나 컸다. 다행이 갑옷이 직접적인 불의 위협을 막아줬지만, 다리와 팔에는 화상을 입었다.
전예는 2천의 병사들과 의원을 긴급투입하여 그들을 돌봤다. 찬물로 화상부위를 식히고, 휴식을 취하게 했다. 그도 더는 방법이 없었다. 약재는 위연을 비롯한 장교들까지 보급되었고, 병사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이고-"
순식간에 앓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공터는 순식간에 야전병원으로 변신했고 환자가 너무 많았기에 중상을 입은 환자들은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장비는 대략적으로 수습하자, 5천의 정예병을 이끌고 산을 올랐다. 이미 주유군은 도망쳤을 테지만 전예는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해서라도 분노를 다스려야 했다.
전예는 위연을 비롯한 장수들이 누워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위연의 야전침대곁에 앉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위연이 예를 표하려고 일어나자, 급히 만류하며 그를 눕혔다.
"미안하네. 내가 원망스럽지 않은가?"
"나중에 주유군을 잡으면 뼈를 갈아 마시겠습니다. 누군가는 당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병사들은 얼마나 살았습니까?"
"1만 1천. 하지만, 중상자들은 얼마 살지 못할 거야. 결론적으로는 8천 정도가 살았다고 봐야지."
"주유. 이 개자식을 죽여버리겠어!"
위연이 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분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전예는 그의 곁에 계속 남아 위로하고 달랬다. 지나치게 매복/기습에 집착하여 화공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가슴 한쪽이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