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230화 (230/253)

# 230

제230장. 골치가 아프다.

205년 9월. 건신 5년.

비시가 교주를 완전히 정복했음을 업성에 알렸다. 이때가 제법 선선해지는 가을이었다. 원매는 모든 것이 종결되자 곧바로 원소를 찾았다.

원소는 느긋하게 푹신한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그는 원매를 보고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매가 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아버지. 앉아 계세요."

"괜찮다. 이놈아. 이리 앉아."

"예."

원소는 공손하게 자리에 앉는 원매를 사랑스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왔어?"

"교주를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이제 강동의 동한東漢만 처리하면 천하통일은 완수됩니다."

사실상 천하통일이 코앞에 이르렀지만, 원소의 얼굴에는 조금의 희열도 드러나지 않았다. 평온한 모습 그 자체였다. 원매는 머쓱했다.

"왜? 내가 놀라지 않으니까 이상하느냐?"

"예. 솔직히요. 전 놀라지는 않더라도 흐뭇한 표정은 지으실 줄 알았습니다. 하하- "

어색한 웃음으로 원매가 말을 끝내자, 원소가 그제야 푸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네 녀석이 알아서 잘하는데, 내가 뭘 더 바라겠느냐? 솔직히 말해서 이 아비는 교주에 큰 관심이 없다. 사실 거기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야. 인구도 백만 간신히 넘지. 거기에 관리들이며 병력을 주둔시킨다고 볼 때, 세수는 아마도 그곳에서 다 쓰일 것이다. 부족하면 지원해야 할 테고. 안 그러냐?"

"뭐.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교주까지 얻어야 천하통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교주까지 얻어야 진정한 천하통일이지. 동한東漢은 언제 공격할 것이냐?"

"내년 봄에 준비상태를 최종 확인하고 해볼 만하다고 결정나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만약 늦어지더라도 가을에는 시작할 것입니다."

"그럼 넉넉잡고 2년이면 충분하겠구나."

"아버지. 전쟁이 짧게 끝날 지, 길어질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원매가 억울한 표정으로 칭얼댔다.

"이제껏 잘 했잖아. 빨리 통일하고 이 자리를 물려 받아. 이제는 앉아 있기만 하는 데도 힘들어. 아무리 네놈 선에서 대부분 일을 처리한다 하더라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자리를 내놓아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구나."

"조금만 참으십시오. 주유만 잡으면 끝나는 싸움입니다."

원소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한의 부흥이니 뭐니 외치는 놈들은 명분만 그럴싸하지 힘이 없다. 실제 힘은 주유와 그의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것이니, 주유만 잡으면 끝나는 싸움이었다.

"내년에 전투를 하게 되면 그때 말하려했는데,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하마."

"경청하겠습니다."

"강수(장강)에서 벌어지는 수전에서 승리한다면 강동은 거의 네 손아귀에 들어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기까지는 네가 잘 할 거야. 문제는 그 다음이다. 주유는 끝까지 싸우다가 죽거나 항복하겠지. 그게 무장다운 방식이고. 하지만, 동한의 부흥을 외치는 놈들은 다를 것이다. 사고방식자체가 비틀려있고,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뭔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것에 대비해."

"극단적인 선택이요?"

"그건 네 놈이 연구해봐. 고민해보고 겪어봐. 그게 네가 황제에 올라 정치를 할 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책사들에게 묻지 말고, 혼자 생각해 보고 그런 상황이 돌출되면 대처해 보거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만 쉬고 싶구나."

원매는 공손히 원소를 부축하여 편안한 의자에 반쯤 뉘였다. 원매가 예를 표하고 나가자, 의원이 다시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의원이 다시 그를 간호할 것이다.

원매는 치소를 나서며 원소가 한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슬그머니 전풍이나 봉기를 찾아가 묻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지만,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그런 상념을 떨쳤다.

'이것은 숙제야. 내 스스로 연구해보고, 그런 상황을 겪어 봐야해. 신하들로부터 정답만 듣고서 정치를 한다면 실력이 늘겠는가? 휴- 하지만, 이번 숙제는 너무 어려운데.'

원매는 고개를 흔들고는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그는 처소로 돌아가면서 얼굴이 싱글벙글해졌다. 자식들을 볼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났던 것이다.

지난 7월 말에 둘째가 태어났던 것이다. 둘째는 딸이었다. 원정袁晶이라 지었다. 첫째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친 게 많았다면 둘째부터는 경험을 토대로 알고 대했기에 확실히 더 정이 갔다.

원패는 제법 커서 그런지 집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아이의 재롱을 한참 지켜보고 있을 때, 봉영이 엉뚱한 방향으로 치고들어왔다.

"상공. 딸이라서 섭섭하지 않아요?"

"무슨 소리요? 딸을 키워 봐야 진짜 아빠가 되는 것이지. 패를 보면 알겠지만, 아들은 키우는 재미가 없어."

원매는 원정에게 눈길을 떼지 못하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웬일인지 봉영의 표정은 심각했다. 원매는 그제야 그녀가 아들을 낳지 못했음을 자책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걱정하지마시오. 우리는 아직 젊소이다."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참에 새로 얻으시는 것이 어떠세요?"

"응? 새로 뭘 얻으라는 것이요."

원매는 순간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굳은 봉영의 표정을 보고는 이내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나보고 아들을 얻겠다고 또 부인을 들이란 말이오?"

"다들 그렇게 하세요. 오히려 상공이 이상한 것입니다. 벌써 30을 넘기셨는데, 본부인 한명만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더군다나 황실인데 ....... "

대호족가문에서 자란 그녀는 첩을 들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그렇다고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은 더는 하지 마시오."

"그럼 부탁이 하나 있어요. 꼭 들어주셔야 해요."

원매는 봉영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결심한 듯 단호히 말했다.

"두번째를 얻게 된다면 제가 추천하겠어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상공께서는 전쟁밖에 모르셔서 황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너무 몰라요."

봉영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원매는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솔직히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 당시에 돈 좀 있고, 세가 있는 놈들이라면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첩을 들이는 것은 상식이었다. 생각도 없던 그에게 자꾸 첩을 들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전쟁광이라 황궁의 내부사정은 잘 모른다? 맞아. 그런 부분은 내가 너무 무시해왔어. 한번 알아봐야겠군. 그래야 대화가 되겠어.'

다음날.

원매는 나이 많은 내관들을 불러다가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학을 뗐다.

'이런 제기랄. 내가 발정난 개새끼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원매는 한참동안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그래. 손이 귀한 황실이니 둘째, 세째를 둔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뭐? 황제의 여인만 1만명? 그것도 14등급으로 나누어서 잠자리 순번을 정하고, 하루에 5~6명과 차례로 동침까지? 아니. 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야? 왜 황제들이 빨리 죽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구만.'

기가막힌듯 혀를 찼다. 한무제가 궁녀를 14등급으로 나누고, 1만 8천의 궁녀를 두었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줄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내관의 말이 떠올랐다.

또한 잠자리 순번은 고대 은, 주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황후가 보름에 한번, 그다음 세부인이 각각 보름에 한번 이런식으로 계속 순번을 정한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시간이 부족하면 하룻밤을 쪼개서 5명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이거 이거 잘못하다가는 딱 복상사하기 좋겠군. 그럴 순 없지. 내가 황위에 오르기 전에 제도를 손봐야겠어.'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오래 살고 싶었다.

'어떨 때는 의무방어전도 힘들구만. 뭐하는 짓거리인지. 손이 귀하면 둘째, 세째 이런 식으로 만족할 것이지. 헛참. 1만?'

원매는 생각은 거기에서 멈춰야했다. 곽가가 진언드릴게 있다면서 들어온 것이다.

"잘 왔소. 내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지끈거리던 참이었소."

곽가는 공손히 예를 표한 후,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고민이 있으십니까?"

"고민이라기 보다는. 참, 자네는 여색을 밝혔지?"

"아하하- 그것이...... 네.....조금 밝혔습니다."

곽가는 조조와 여인에 대한 취향이 비슷하여 짙은 농담도 서슴치 않았지만, 원매를 따르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자제하게 되었다. 원매가 한우물을 파니, 대신들이나 장수들도 자연스럽게 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한무제도 그렇고 역대 제왕들이 ....... "

원매의 모든 말을 들은 곽가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렇군요.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이라고 들었습니다. 많은 성인들이 그것을 연구했지요. 목적은 단 하나. 황실의 부흥입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소. 봉효도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군."

"황실의 부흥 하나만 생각하십시오. 굳이 불편하게 생각하실 필요야 있습니까?"

"아아- 알았어. 이 이야기는 그만하세. 참. 왜 왔는가?"

"예. 내년에는 동한東漢과 전투를 벌여야하지 않습니까?"

"그래. 반드시 멸망시켜야 해. 폐하의 건강도 좋지 않으시니, 빨리 천하통일을 해야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야."

"동한보다야 기冀의 국력이 월등히 우세합니다. 힘으로 밀어붙여도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해야지요. 지금 손권이 살아있고, 아직도 강동에서 손가를 따르는 무리들이 꽤 될 것입니다."

"주유가 손가를 쥐잡듯이 잡았잖아. 반란도 확실히 토벌했고. 그자들이 힘이 되겠어?"

원매는 부정적인 시각을 표출했다.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시도해 볼만 합니다. 더군다나 주유와 손책 때문에 손가를 몰살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손권, 손익이 관직에 있고, 손가들도 비록 뿔뿔이 흩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을 회유하는 것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노력은 해봐야지요."

"그래. 계획을 세워서 보고하게. 솔직히 수군에서 동한을 격파한다면 전투는 끝이 난다는 생각에 다른 계책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어. 이봐. 곽봉효. 솔직하게 말해보게. 그게 손가를 이용하는 계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너무 성급하십니다. 이제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결과를 논하십니까?"

곽가는 입을 삐쭉이더니 진언을 시작했다.

"사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효과가 클지 작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동한이 강할 때는 손가는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요. 하지만, 수군전투에서 동한이 무너진다면 그때는 상황이 틀려지겠지요. 회계군, 오군 일대에서 벌떼처럼 봉기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되면 보다 수월하게 강동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주유는 단양군에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거나 말릉성에서 수성전을 준비할 것입니다. 오군, 회계군은 반란으로 통치불능의 상태가 될 것이고요."

곽가는 전투의 진행상황을 예상하여 보고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나간 전투를 표현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강동전투가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쉬웠다. 원소가 말한 극단적인 선택과 관련해서 도움이 될만한 말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소의 엄명이 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했다.

"좋아. 계책을 세워오게. 내가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병사 한명이라도 죽지 않으면 좋은 일이지."

"명을 따르겠습니다."

곽가는 예를 표하고는 치소를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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