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228화 (228/253)

# 228

제228장. 파국破局.

"우아아악-"

반장은 주둔지까지 쫓겨와서 더 이상의 추격이 없자, 분통을 터트렸다. 정신없이 도망쳤을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상황을 파악하고 보니 몇 백의 기병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해서 이렇게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다 끝났는데. 이런 빌어먹을! 그깟 몇 백의 기병때문에 판세가 뒤집힌단 말인가?"

강동에서 수군을 주로 조련하고 기병전투경험이 없었던 반장은 기병의 두려움을 제대로 몰랐다가 이번에 제대로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는 대응방안을 생각했지만, 경험이 부족하여 좀처럼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쩐다? 분명히 기冀의 기병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곧 나머지 기병과 보병들이 투입된다는 이야기인데, 원충의 검문소가 뚫린다면 더는 막을 방법이 없어. 더는. 젠장할. 엄준의 말이 맞았구나. 이제 어쩌란 말인가?'

반장은 고민을 해도 방안이 떠오르지 않자, 얼굴이 검은색으로 질려서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때 선임사마가 병력상황을 보고하러 들어왔다.

"왜 왔어?"

"병력상황을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다 필요없고 내일 전투를 치른다면 가용한 병력은 얼마인가?"

"2천 5백입니다."

"빌어먹을! 많이도 꺾였구나. 자네 기병전술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는가?"

"글쎄요. 저도 밝지는 못하지만, 한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정예기병을 상대로 야전을 펼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요."

"안들으니만 못한 결과로군. 그럼 내일 공격해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이거야?"

"만약 저들이 우리 전술을 알아차리고 기병을 숨겨놓았다가 야전으로 밀어붙인다면 절대로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봐."

"우리가 다시 원충검문소를 공격한다면 저들의 수가 얼마 안되니 또다시 무너뜨리고 안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그때 기병을 중앙공터에 모아 놓았다가 수십명씩 쪼개서 우리를 공격한다면 다시 어려워질 것입니다."

반장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생각할 수록 분했고 억울했다. 기병에 대해 전혀 몰라던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해서 눈물이 흘렀다. 선임교위는 반장의 상태가 불안해보이자,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지만, 반장은 공격명령을 쉽사리 내리지 못했다. 병사들이 대기한 가운데, 갈팡질팡하던 반장은 결국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하루라는 귀중한 시간을 날려버렸다. 하루라는 시간은 돌이킬 수 없게 사태를 반전시켰다. 진도가 2천 7백의 기병을 이끌고 원충검문소로 입성한 것이다.

원충과 원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3백기병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가졌는지를 봤는데, 2천 7백기병이 지원온 것이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상황이 이래서 제대로 대접을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원충은 자신도 모르게 진도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진도는 원충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별말씀을요. 전장터인데 제가 좋은 것을 찾는다면 한심한 놈이지요. 원장군께서 인근 고을의 장정들을 다시 모아서 검문소를 재건하십시오. 이틀내로 3천의 보병 선발대가 도착할 것이고, 나머지 1만 7천은 열흘이내로 도착할 것입니다. 대군이고 계곡이 험해서 모두 도착하는데 시간이 걸리는군요. 그때, 군량도 올 것이니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진장군의 뜻대로 행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반장의 동태를 살피러 가겠습니다."

원충과 원휘는 진도와의 협의가 끝나자 곧바로 병사들을 인근 고을로 보내어 장정을 다시 소집했다. 이미 많은 장정들이 전투에서 희생당한지라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야산으로 도주한 상태였다.

원충은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강조하고, 기의 대군이 왔음을 알리며 더는 전투가 없을 것이라 설득했다. 그리고 가져간 쌀을 촌로에게 풀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자, 촌로들이 젊은 장정을 설득하여 보냈다.

그렇게 겨우 5백을 채워서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진도는 경계를 강화시켰고, 반장은 더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교지군 치소가 있는 이루성으로 이동했다. 반장이 떠나고 얼마 후, 문추가 이끄는 이만이 순차적으로 도착했다.

문추는 원휘에게 검문소 보수를 맡기고, 원충에게 일군을 내주어 장수로 삼았다.

"원장군. 이루성의 상태는 어떤가?"

"예. 예전에 사섭이 치소로 삼던 성으로 송꼬이강 평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은 제법 견고하지만, 특이할 것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비라도 많이 오면 성내에 물이 차오르기도 하는등 치소로 삼기에 좋은 곳은 아닙니다."

"물이 차올라?"

문추는 뭔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좀처럼 계책이 떠오르지 않자, 비시를 돌아 보았다.

"비공. 생각나는게 있으신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쩌면 쉽게 저들을 끝장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 며칠 동안 이곳에서 머무를 테니, 대책을 강구해보게."

"예. 문도독!"

비시는 회의를 하는 도중에 빠져나왔다. 그는 기병지원을 받아 곧바로 이루성 근처로 내달렸다. 낮은 언덕위에서 바라보는 이루성은 아름다웠다. 송꼬이강은 여러 지류로 갈라지며 평야를 기름지게 만들었다. 이루성은 지류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어떻게 저런 자리에 성을 지을 생각을 했단 말인가? 이거야 원. 평화로운 시대라면 교통의 요지지만, 난세에는 도저히 치소로 쓰기 어려운 곳이 아닌가?"

비시는 혀를 차고는 주변지형을 둘러보다가 무릎을 쳤다. 계책이 떠오른 것이다.

"흐흐흐- 이놈들 모조리 수장시켜주마!"

비시는 비릿한 웃음을 짓고는 곧바로 문추에게로 향했다. 검문소를 나와서 이루성 근처에 주둔지를 편성하고 있던 문추는 비시가 말을 몰아오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가? 좋은 계책이 생각났는가?"

"숨 좀 넘기고요. 문도독.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물이라도 주시면서 말씀하셔야지요."

"아- 이런. 미안하군."

종사관이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는 차가운 물을 바가지에 떠서 바쳤다.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킨 비시는 한숨을 돌리고는 바로 진언을 올렸다.

"희한한 놈들입니다. 치소가 있는 이루성은 송꼬이강 지류 사이에 있습니다. 그 지역이 모두 평탄합니다. 조금 높게 솟은 지형도 드물고요. 물이 들어차지 않을 정도의 약간 높은 지대에 건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비가 많이 오면 배수가 안되어 바닥에 물이 차는 것입니다."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로군. 아무리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졌다지만, 사섭도 제정신이 아닌 것은 틀림없어."

"그래서 말인데, 수공작전을 시행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수공작전이라?"

문추는 대략 감이 왔지만, 구체적으로 어찌해야 할지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비시가 눈치를 채고 재빠르게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성 주위로 낮게 제방을 쌓고 상류에서 길게 수로를 파면 끝입니다. 물론 대공사입니다. 인근의 장정들을 동원해서 밤낮으로 작업을 하면 빠른 시간내에 성과를 볼 수 있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사람도 많이 동원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로군. 지나치게 백성들을 괴롭히면 나중에 통치를 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을 수도 있네."

"이 수공작전의 핵심은 엄준이나 반장에게 겁을 주는 것입니다. 저들이 끝까지 저항할 수도 있지만, 중간에 겁을 먹고 항복할 수도 있습니다. 강동출신이니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알테니까요."

"좋아. 당장 내일부터 시행하게."

문추의 명령이 떨어지자, 원충이 인근 고을을 돌며 유지들과 현령들을 설득하여 장정을 모았고, 비시는 수로의 위치를 최종 확인했다. 진도는 기병을 움직여 이루성을 경계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5일 동안 대략적인 준비가 완료되자, 모은 장정들과 보병들이 일제히 수로/제방작업에 매달렸다. 곡괭이, 삽등이 없는 경우 나무를 이용했다. 다행이 이곳의 땅은 부드러운 진흙과 모래가 섞인 땅이라서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이루성. 반장치소.

반장은 단번에 수공작전임을 간파하고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가 알기로 수공작전은 무지막지한 작전이었다.

"이 개자식들! 우리를 몰살시키겠다는 것이야? 뭐야?"

그는 분통을 터트리며 발을 굴렀다. 이제까지 수성전에 대비하여 총력을 기울여 준비했는데, 그게 다 허사가 된 것이다.

"이거 큰일났소이다. 나도 처음에 이루성을 보며 이런 걱정을 했었는데,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었소."

어느새 다가왔는지 엄준이 침중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며 툭 뱉었다. 둘은 할말이 없는지 말없이 수로/제방공사를 바라 보았다. 긴 침묵은 엄준이 깼다.

"어찌 하시겠소?"

"어찌하다니? 끝까지 싸워야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요?"

"끝을 알잖아요. 물이 차면 그 다음은 전염병입니다. 그리되면 저놈들은 이곳을 불살라버리고, 매립해버릴 것입니다. 전염병을 옮길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으로서는 저들을 막을 방법이 전무합니다."

반장은 몸을 휙- 돌려서 엄준의 멱살을 잡고 끌어 올렸다. 왜소한 문관인 엄준은 허공으로 끌어올려져 버둥거렸다.

"그전에 그렇게 잘난척하더니 지금 뭐하는 수작이야? 항복이라도 하자 이말이야?"

"이..... 이것 좀....콜록..."

털썩-

반장이 거칠게 내려놓자 엄준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꼬리뼈가 다쳤는지 아니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는지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점차 그의 눈에서 서늘한 분노가 흘러나왔다.

"내가 그대보다 상관인데, 이게 뭐하는 짓이오?"

"너같이 항복을 주장하는 놈은 더는 내 상관이 아니다. 한번 더 그딴 헛소리를 입에 올리면 목을 베어 버리겠다."

반장이 일갈을 하고는 홱- 몸을 돌렸다. 극한의 상황이 닥치자 서로 극과 극의 성격인 엄준과 반장의 갈등이 표면으로 노출된 것이다. 성안의 병력은 반장이 통제하는 상황이었기에, 반장에게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문추는 항복을 권유하지 않고 계속 수로작업을 이어갔다. 거의 완공되어 저들의 공포가 극에 달하면 그때 항복을 권유할 생각이었다.

"이놈들 지금쯤 똥줄이 탈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반장이란 놈도 제법 당찬 기개를 가진 모양이로구나. 지금쯤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전혀 없어. 뭐, 그래봐야 버티면 몰살되는 거지."

문추는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 이루성을 바라보았다. 볼수록 아름다웠기에 전쟁과 겹쳐지며 묘한 이질감을 안겨주었다.

교주의 태수들은 이루성전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교지군을 제외한 다른군은 인구가 대부분 10만 안팎이었는데다가 주유가 병력을 감축했기에 치안병 몇백이 전부일 정도로 빈약했다. 교지군이 무너지는 순간 다른 군에게는 항복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강동에서 지원군을 보내려면 배를 이용하여 멀리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단시간내에 지원은 사실살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로작업은 진척을 더해갔고, 한달 만에 제방과 수로가 거의 완성되었다.

"항복하라! 앞으로 3일내에 항복하지 않는다면 모조리 수장시켜버리겠다!"

문추는 드디어 항복종용을 개시했다. 권유가 아닌 종용이었다. 어차피 눈치를 보고 있는 이웃 군현들에게는 이루성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계속되는 항복종용소리를 들으며 문추는 생각에 잠겼다.

'이루성 매립까지는 안갔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인심이 흉흉해질 거야. 그전에 항복했으면 좋겠어.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면 어쩔 수 없겠지. 끝장을 보는 수밖에.'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자 엄준은 다시 반장을 찾았다.

"이보시오. 반장군. 이렇게 죽는 것은 개죽음이오. 우리같은 관리나 장수들만 죽으면 됐지 병사나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이오?"

반장은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그도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주유에 대한 충성심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 둘의 목으로 백성을 구합시다. 우리가 항복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자결한다면 말릉성에 남아 있는 우리 가족도 무사할 것이오. 항복하여 저들에게 수모를 당하느니 깨끗하게 끝냅시다."

"흐흐흐흐- 나약한 서생인줄 알았더니 엄태수에게도 이런 강단이 있었구려."

이후 둘은 말이 없었다. 엄준은 직감적으로 반장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가족이 모두 죽어 후손이 끊기는 것을 그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준은 치소로 돌아왔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엄준의 죽음은 얼마 후, 반장에게도 알려졌다. 반장이 툴툴거렸다.

"매가리하나 없는 놈인 줄 알았더니, 나보다 낫구만. 그래. 반장아. 무슨 영화를 누리고 살겠다고 그리 모질게 살았단 말이냐?"

그의 두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는 죽간을 작성하고는 칼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두 수장이 죽으면서 견고하게 닫혀있던 이루성문은 힘없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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