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제225장. 적의 약한 고리를 노려라!
"육손이라? 혹시 여강태수였던 육강의 후손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육강은 육손에게 작은 할아버지가 됩니다. 육강이 죽은 후, 오현으로 내려와서 살고 있습니다."
"흠- 오현이라? 알겠소. 내가 말릉성으로 돌아가면 불러다가 이야기를 나눠보겠소. 도움이 되는 인재였으면 좋겠는데."
주유는 짧은 수염을 매만지며 육강을 생각했다. 뛰어난 인품과 매서운 통찰력을 지닌 그는 태수로 부임하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었다. 말년에 원술과 척을 지게 되면서 손책에게 죽음을 당한 비운의 인물이었다.
'내가 손백부(손책)의 친우였다고 오해를 크게 하면서 나를 거부하면 곤란한데. 육강을 닮았다면 아주 영특할 테니, 일단 만나봐야겠군.'
주유는 육손을 만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의 뇌리에 또 다른 인재가 떠올랐다. 노숙이었다. 노숙은 손책에게 많은 군량을 내어 줄 정도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유가 강동을 물려 받으면서 노숙은 스스로 물러났다. 주유가 노숙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했다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유는 노숙의 뛰어난 지략이 부담스러웠기에 잡지 않았다.
'그래. 내가 그간 옹졸했구나. 가는 길에 노자경(노숙)을 만나 설득해야겠어.'
그렇게 결정을 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주유는 며칠 더 파양호에 머물면서 수군훈련을 지켜 봤고, 그들을 격려한 후에 곧바로 말릉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장군 팽택현.
이곳은 파양호와 장강이 만나는 곳으로 넓은 갈대밭이 펼쳐져 있었고, 농토가 넓고 기름져서 부유한 마을이었다. 주유는 말릉성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이곳을 들렸다. 그는 곧바로 한적한 야산 기슭에 노숙의 처소로 이동했다.
노숙은 원래 서주 하비국 동성현 출신인데, 그곳이 전화에 휩싸이자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거부였던 그는 이곳에서 부족함없이 풍족하게 지내고 있었다.
노숙은 글을 읽다가 주유가 왔다는 소식에 급히 달려 나갔다.
"승상에 오르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노자경에게 축하인사를 받으니 더 기쁘구려."
"안으로 드시지요."
노숙은 자신의 방으로 주유를 안내했다. 주유는 노숙이 따라주는 귀한 차를 음미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노자경. 내가 그동안 옹졸했소. 섭섭한 마음이 있다면 풀고, 이 사람을 도와주시오."
노숙은 잠시 말없이 주유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손가에 대한 의리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낙향했기에, 조만간 주유가 그를 부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릴지는 몰랐다.
"많이 늦으셨군요."
"늦다니오? 설마 기冀를 따르기라도 하겠다는 말씀이시오?"
"그럴 리가요? 제 말은 진작에 부르실 줄 알았는데, 너무 늦게 오셨다는 뜻입니다."
"하하하- 이거 정말 면목이 없소이다. 내가 이렇게 사과하겠소. 미안하오. 이 못난 사람을 용서해주시고, 동한東漢을 도와주시오."
"예. 승상. 그리하겠습니다. 역적 원가를 처단하는데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주유는 노숙의 손을 잡고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문 주유는 노숙을 데리고 말릉성으로 향했다.
말머리를 같이 하고 이동하면서 주유가 고민을 털어 놓았다.
"원매가 대규모 수군훈련을 하고 있는데, 저들이 겨울에 공격을 해오면 대책이 마땅치 않아서 고민이 많소이다. 수전을 오래 겪은 장수들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요."
"겨울이라면 북서풍이 붑니다. 맞바람을 안고 싸워야 하니 당연히 불리하지요. 쉽게 해결된 문제가 아니니 제가 방안을 강구해보겠습니다."
"고맙소."
주유는 계책부분을 전적으로 노숙에게 맡길 계획이었다. 그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황장군이 오현에 사는 육손을 추천했소이다. 혹시 아는 인재입니까?"
"알고 있습니다. 육강의 친척이 아닙니까? 그의 아들 육적을 데리고 오현으로 피신해서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영특할 뿐만 아니라 배짱도 두둑한 인물입니다. 이제 20살이 조금 넘었을 것입니다. 불러다가 벼슬을 주고 쓰십시오.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걱정이 되는 게 있소. 육강을 손백부가 죽였소. 나는 손백부의 둘도 없는 친우이고. 육손이 이에 대해 오해를 하여 거부할까 두렵소."
"동한東漢의 황명으로 부르면 됩니다. 즉, 승상의 신하가 아니라 동한의 신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럼 됩니다. 말릉성에 도착하면 제게 황명이 담긴 교지를 주십시오. 오군에 달려가서 육손을 데려 오겠습니다."
노숙이 시원시원하게 고민을 해결해주자, 주유의 찌푸렸던 얼굴이 환해졌다.
"내가 저지른 실수중에서 제일 큰게 있다면, 그것은 그대의 가치를 너무 늦게 알아봤다는 것이오."
주유는 노숙의 손을 잡고는 고마움을 다시 표현했다. 그는 노숙과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릉성에 도착했다.
노숙은 육손에게 별기교위을 제수한다는 황제교지를 받자마자, 곧바로 오군 오현으로 향했다. 동한東漢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인 오군은 넓은 평야와 그물망같은 운하가 발달해 있어서 말보다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편했다.
오현.
사실상 육가의 가주 노릇을 하고 있는 육손은 황제의 사신이 도착하자, 급히 문을 열고 예를 갖추어 맞이했다.
"아니? 노자경아닙니까? 어쩐 일이십니까?"
황제의 사신이 노숙이라는 것을 알고는 육손은 깜짝 놀랐다.
"그대에게 줄 것이 있소이다."
노숙이 황제의 명을 전하자 육손은 급히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자신을 별기교위로 임명한다는 교지를 조심스럽게 받고 멀리 말릉성을 향해 감사의 예를 올렸다.
"자네같은 현자가 이곳에서 허송세월은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와 같이 말릉성으로 가세."
육손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아무래도 손책 때문일 것이다.
"괜찮아. 이 사람아. 승상께서는 손백부와 친우였을 뿐이야. 그분이 무슨 죄가 있는가? 또한 설령 죄가 있다손치더라도 지금은 황제를 모시고 역적 원가를 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고 계시네. 당연히 소의는 마음속에 접어 두고 대의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네."
"휴- 사실 사숙조(육강)께서 손백부에게 비명에 돌아가시고, 저는 복수만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도 천벌을 받았는지 죽었고 그의 친우인 승상이 강동을 물려 받아 저도 입장이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제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셨는데, 가야지요. 말릉성으로 가겠습니다."
"잘 생각하셨네. 이제는 다 잊고, 동한東漢의 부흥만을 생각하세."
"그래야지요."
노숙과 육손은 즉석에서 의기투합했다.
주유는 노숙과 육손을 얻자 크게 기뻐하며 반겼다. 그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오해를 푸는데 주력했다. 노숙에게는 별기장사라는 벼슬을 새로 만들어 승상직속으로 삼았다. 육손이 받은 별기교위는 기병 1천을 관할하는 중앙의 요직이었다. 하지만, 기병대장은 따로 있었기에 형식상의 벼슬이었고, 실제로는 노숙과 함께 주유를 보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주유는 이들을 얻음으로서 문관들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아직도 항복을 마음에 품고 있는 장소/장굉무리나, 후한의 영광을 주장하는 종요/순연의 무리는 주유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다만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참고 있을 뿐이었다.
노숙과 육손을 통해 그들을 견제하면서 오로지 자신만 따르는 세력을 키워 내부를 단속하고, 황개등 장수를 이끌어 원매를 견제할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의 시대가 올 것임을 확신했다.
주유가 동한을 안정시키고 힘을 키우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업성. 원매치소.
원매는 곽가를 불렀다. 곽가는 형남과 익주가 토벌되자, 원매를 따라서 업성으로 올라와 동한東漢을 물리칠 계략을 세우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초현에는 잘 다녀오셨는가?"
"배려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모두 잘있지?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아직 나이가 어린 자들이 대부분이니 간자들의 세치혀에 놀아나지 않도록 신경써주게. 내가 조맹덕(조조)의 아들마저 죽이고 싶지 않아."
"물론입니다. 자제분들의 호위는 제 사람입니다. 무엇을 하는지는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가서 태자전하께서 염려하는 부분을 전달했습니다. 그들도 시대가 바뀌었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야. 조맹덕도 제삿밥은 얻어 먹어야지."
원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조식, 조충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 딴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내가 데려다가 쓸 것이야."
"신 곽가 태자전하께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곽가는 다시 일어나 원매에게 큰절을 올렸다. 원매가 조조의 후손을 적극적으로 챙기고 도와주려는 모습이 너무나도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일어나게. 초현에 대해서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주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세. 요즘 그놈은 어떻게 살고 있어?"
"주유가 파양호에 수군을 양성하고 있고, 주변의 문관들을 계속 초빙하고 있습니다."
"문관? 중원에서 내려간 놈들에게 관직을 주기도 벅찰 텐데, 뭔 욕심으로 그리 뽑아대는 거야?"
"종요/순연등은 동한東漢의 신하지 주유의 신하가 아니니까요."
원매는 그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유 이놈도 상당히 골치가 아픈 모양이로군. 그래 새로 초빙한 놈들은 누구인가?"
"젊은 인재들인데 노숙과 육손이라고 합니다."
원매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동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인재를 얻은 것이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쳤다.
"최상의 인재를 얻었어. 그래봤자지. 젊은 그놈들이 능력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5년 이상은 지나야 해. 그전에 주유 이놈을 끝장내야겠어."
"노숙과 육손을 크게 평가하시는군요."
"아주 영특한 자들이야.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야지."
곽가는 빙그레 웃고는 진언을 올렸다.
"태자전하. 주유의 영토를 보면 아주 깁니다. 특히 교주의 중심인 교지현은 곡주(익주남부)와 경계를 맞대고 있습니다. 사섭이 항복했고, 그곳에 주유의 장수인 반장이 5천을 거느리고 주둔하고 있습니다. 사섭이야 늙었으니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겠지만, 그의 아들들은 혈기방장하니 그들을 자극한다면 좋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습니다."
"호오- 좋은 생각일세. 수군전력이 부족해서 당장 강동을 치기 어려우니, 먼 곳부터 공략해서 주유를 밑바닥부터 흔들어버리자 이거지?"
"그렇습니다. 교주를 야금야금 먹어들어간다면 주유에 대한 책임론이 비등할 것입니다. 주유도 강동에만 온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고요."
"좋아. 그런데 교지에 누구를 내려 보내면 좋겠소? 워낙 외지라서 보낼 사람이 마땅치 않은데?"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바로 원충과 원휘입니다. 이들도 족보를 따진다면 태자전하의 먼친척이 될 것입니다. 적당히 위로하고, 재물을 주고 부와 관직을 약속한다면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하하하-"
원매는 탁자를 탁-탁- 치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사람아. 기가 막힌 생각이야. 솔직히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우린 손해가 없잖아."
"실패해도 저들은 흔들릴 것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이득을 보는 계책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좀 궁금해지는군."
"무엇이요?"
"그전에 자네가 조맹덕의 책사로 전투에 참여하면 수가 읽혔어. 사실 그가 나한테 패배한데는 자네의 실책도 있음을 알 것이야."
"물론입니다. 그 때문에 수많은 나날은 눈물을 흘리고 지냈지요. 그런데 왜 그런 과거를 꺼내신 것입니까?"
"이제는 좀처럼 자네의 수가 읽히지 않아. 어찌된 일인가?"
"하하- 그것 때문이었군요."
곽가는 쑥스러운듯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 보는 곽가의 모습이었다.
"순문약(순욱)의 호된 질책과 격려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행실이 옳바르지 못했지 않습니까? 노력도 부족했고요. 순문약은 그런 저를 한명의 책사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지요."
"조맹덕과 순문약이 열심히 성장시켰는데, 과실은 내가 따먹는군. 참 세상은 묘하단 말이야."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니까요. 그래도 태자전하께서는 조맹덕의 자제를 모두 보살펴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마음을 다 바쳐서 충성할 수 밖에요. 그리고 교지에는 비시를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유장의 수하였다가 항복해서 지금 익주에서 광한태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지략이 있고 대범한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네가 어찌 그를 아는가? 익주에 가본적도 없잖아?"
"맹자도(맹달)에게 들었습니다."
"좋아. 그리하게."
원매는 곽가와 교지를 어떻게 흔들지에 대해서 계책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그리곤 익주로 사람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