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제223장. 장완蔣琬 공염公琰
205년 3월. 건신 5년.
원매가 업성으로 돌아온지도 벌써 5개월이 흘렀다. 원매가 업성에서 국정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합비과 강릉에서는 겨울에도 수군훈련과 배 건조작업이 계속 이뤄졌다. 남쪽이라 날씨는 견딜만했기에 훈련과 작업이 강행된 것이다.
여강군 합비현 인근에는 장강과 연결된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 소호였다. 합비현보다 큰 호수였기에 수많은 배를 모아 놓고 수군훈련을 하기에는 적격이었다.
양강도호부.
합비성에는 양강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수군의 병력만 4만이었다. 원매가 조조를 멸하고 주유를 상대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는데 모두 수군으로 편성했다.
처음에 만들 때는 문빙(도독), 감녕(부도독), 왕충, 주령을 장수로 편성했는데, 작년 11월에 장료를 합류시켰다. 어차피 내년까지 내다 보고 훈련을 하는 상황이었기에 장료를 보내서 장수진을 강화시킨 것이다.
문빙치소.
문빙이 상좌에 앉은 가운데 감녕, 장료, 왕충, 주령이 자리를 차지했다.
"감부도독. 현재 훈련진행상황은 어떻소?"
"수군 2만은 문도독께서 아시는 대로 언제든 전투를 치를 수 있습니다. 다만, 신병 2만을 충원해서 수군으로 만드는데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래도 1년이나 진행했는데, 성과가 없소이까?"
"보병들중에서 선발한 것이라 겨우 배에 익숙해졌습니다. 지금은 전진, 후진등 기본적인 명령만 수행가능합니다. 전술훈련은 이제부터 시작해야지요."
"알겠소이다."
문빙은 답답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런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도독의 자리에 앉고 보니 자신도 모르게 조바심이 생겼다.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는 문빙에게 장료가 진언을 올렸다.
"문도독! 태자전하께서 내년까지라고 말씀하셨지만, 훈련이 부족하다면 시간을 더 주실 것입니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매어 바느질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문빙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부끄럽구려. 내가 조바심을 냈소이다. 하지만, 주유를 공격하려면 우리가 선봉에 서서 반드시 저들의 수군을 격파해야 합니다. 그동안 수고한 것을 내가 다 압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나도 조바심을 접고, 최대한 훈련이 착실하게 진행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소."
"옳은 결단이십니다."
"왕장군, 주장군도 힘들 텐데 조금만 더 힘을 내봅시다. 태자전하께서는 우리의 공을 절 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예. 문도독!"
왕충과 주령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감녕이 상황판 앞에서 서서 훈련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빡빡한 훈련계획은 내년까지 빈틈없이 작성되어 있었다. 훈련을 시키고, 확인 수정하는 작업이 매일 이뤄졌다.
치밀한 성격인 문빙이 매일같이 확인하는지라 병사들 뿐만 아니라 장수들도 죽을 맛이었지만, 누구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워낙 중대한 임무란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소호 수군훈련장.
둥둥- 둥둥-
북이 울리자, 장수들은 신호병을 통해 깃발을 흔들었다. 소형전투함 주가를 지휘하는 하급장교들은 호각을 불며 배를 움직였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훈련을 진행했지만, 높은 망루에서 이것을 지켜보는 문빙의 얼굴은 어두웠다.
'역시 감부도독의 말대로 한참 멀었어.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주유의 수군과 붙으면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놈들 또한 파양호에서 대대적으로 수군훈련을 한다고 들었어. 이기려면 독하게 훈련하고 또 훈련해야 해. 내가 악역을 맡는 수밖에.'
그는 단단히 마음을 고쳐 먹으며 꼼꼼하게 훈련을 확인했고,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하나하나 죽간에 기록했다. 그후, 다시 훈련을 지켜보는 그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역시 장문원(장료)이야. 분명 수군임무를 시작한지가 겨우 넉달 전인데, 매우 수월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저것은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야.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지. 저런 자가 수하로 있다는 것이 태자전하의 홍복이지. 암.'
장료는 처음에 왔을 때 배멀미를 하진 않았지만, 배를 타고 지휘하는 능력은 초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고 노력했고, 거기에 선천적인 능력까지 더해져서 이제는 다른 장수들과 견줄 수 있는 능력까지 올라왔다. 물론 문빙, 감녕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었지만, 소규모전투는 충분히 수행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강릉성 인근 장호.
동정호보다는 작았지만, 강릉에서 지근거리이고 장강에 가까워 배를 제작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합비성에서 전투훈련준비가 한창이라면, 이곳에서는 누각선을 제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각선은 보통 수군전투에서 지휘선으로 쓰였는데, 여기서 만드는 누각선은 병력수송용이었기에 형태가 조금 변형되었다.
넓고 납작하게 만들어 병사들과 말, 군량을 최대한 많이 적재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엄은 높은 망루에 올라 꼼꼼하게 배 건조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의 공정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익주에서 돌아와 휴식을 가진 후, 11월부터 제작에 들어갔는데 풍족한 지원을 통해 지금까지 병력 3천을 수용할 수 있는 누각선 3척을 제조한 것이다. 단순하게 물량을 많이 수송하도록 납작하게 만들었기에 4달만에 3척 건조가 가능했다.
내년까지 총 10척을 제작하는 것이 목표였다.
'쉽지 않은 일이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문도독이 수전에서 길을 열어주면 그때 한꺼번에 많은 병력을 도하시켜야 해. 이번 전투는 시간싸움이 될 확률이 높다. 10척이 동시에 도하하여 3만을 강동에 내려 놓기만 한다면 전세를 유리하게 가져올 수 있어. 수전이라면 몰라도 육전은 우리가 한수위니까.'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장을 지켜보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배건조를 지켜보고, 자재나 기술자가 부족하지 않은지를 매일 꼼꼼히 확인했다. 어찌보면 따분한 일일수도 있었지만, 이엄은 이런 독립적인 임무를 맡는 것이 편했다.
"여기 계셨군요."
이엄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를 알아 차리고는 빙글 돌아섰다.
"어쩐 일입니까? 이제 날도 풀렸으니 업성으로 올라가야지요?"
"예. 그래야지요. 곽부도독이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이것은 기회이니 잘 잡으라고요. 하지만, 잘 믿어지지 않는군요. 이것 참."
"태자전하께서는 장공염을 크게 쓰실 것입니다."
장공염. 장완이다. 원매가 찾고자 했지만, 행방을 몰라 곽도에게 부탁했던 그였다. 그는 형남이 전화에 휩싸이자, 덜컥 두려움이 들어 현청을 떠나 강릉으로 피신해 있었다. 그후, 전쟁이 끝나자 그는 산에서 내려와 강릉으로 들어왔는데, 곧바로 위병에 의해 이엄에게 인계되었다.
장완은 무슨 일을 겪을지 몰라 두려웠지만, 이엄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충신이나 성실한 관리와는 거리가 먼 그였고,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챙기는 그저그런 흔한 관리였다.
그런 그를 원매가 주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가지 않겠다는 것을 이엄이 며칠동안 설득해서 마음을 돌려 놓았다. 곽도는 한걸음에 달려와 그를 설득했다.
장완은 그간의 일이 생각나는지 머리를 흔들었다.
"태자전하께서 저를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사실 제가 뛰어난 인재와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생각하시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장공의 장점을 보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껏 태자전하께서 사람을 평가하면 틀린적이 없었습니다."
그전에도 그런 말을 이엄에게 들었지만, 생각할 수록 원매의 능력이 신비하다고 느껴졌다. 곽도와 이엄이 공통적으로 저런 말을 했으니 빈말은 아닐 것이다.
"내일 아침에 일찍 떠나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기병 10기를 붙여드리지요. 중간 중간에 역참이 잘되어 있어서 크게 걱정은 없지만, 혹시라도 도적을 만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장완은 감사를 표하고는 이엄의 옆으로 가서 배 건조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엄의 업무를 더는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입을 닫았다.
다음날. 장완은 말에 올라 기병 10기의 호위를 받으며 업성으로 향했다. 강릉-양양-완성-허창-업성으로 이어지는 길이었고, 평탄한 평야지대였기에 늦어도 10일이면 도착할 것이다.
장완은 최대한 빠르게 달려 9일만에 업성에 도착했다. 평생을 형주남부지역에 거주하였기에 거대한 업성의 규모에 압도되었다.
'참으로 장대하구나. 과연 천자가 거주할만 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몰아 성의 정문으로 달려갔다. 성문교위에게 곽도가 미리 건네준 죽간을 전달하자, 무사통과할 수 있었다.
성문을 지나 잠시 기다리자, 안쪽에서 젊은 종사관이 부리나케 달려 왔다. 그는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장완선생이 맞습니까?"
"그렇소이다."
"저를 따라 오시지요."
"바로 태자전하께 가는 길이오?"
"그렇습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태자전하께서 연락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치소에서 잠시 기다리면 될 것입니다."
"알겠소."
장완은 종사관의 말에 수긍하고는 그를 따라 원매 치소로 향했다. 원매의 집무실 밖에는 10여명의 종사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구석의 자리로 그를 안내했다. 장완은 날카로운 눈으로 세밀하게 살폈다.
'과연 다르긴 다르구나. 한눈에 보더라도 능력으로 뽑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종사관들이 알아서 제 일을 처리하고 있잖은가? 내가 과연 여기서 적응할 수 있을까?'
장완은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현령을 하면서 많은 좌절을 맛보았다. 능력보다는 오로지 신분과 연줄에 좌지우지되는 사회를 보며 한탄하며 술로 보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 품었던 높은 의기는 사라지고, 지금은 겁 많고 소심한 타락한 관리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원매를 만나는 것이 덜컥 두려워졌다.
'괜히 왔다. 중간에서 그냥 도망칠걸.'
이때, 종사관이 밝은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태자전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저를 따라 오시지요."
장완은 말없이 그를 따랐다. 그는 원매 집무실에 들어서자, 급히 엎드려 절을 올렸다.
"태자전하. 소인 장완 문안인사드립니다."
"일어나시게."
원매는 장완을 일으켜 세웠다. 원매는 순간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역사상으로는 제갈량의 뒤를 이어 촉의 실권을 한 손에 틀어질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보니 한심함 그자체였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장완의 능력치를 떠올렸다.
[장완(28)] 지력:84, 정치력:93, 통솔력:78
능력치를 확인한 원매는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왜 이럴까? 지금까지 인재를 평가하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원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상념을 털어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쪽 자리에 앉게. 내가 자네에게 궁금한 것이 참 많아."
장완은 쭈삣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영락없는 촌닭이었기에 원매는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내가 자네를 왜 찾았는지 아는가?"
"글쎄요. 강릉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계속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혹시 동명이인을 착각하신게 아닌지요?"
"그렇지 않아. 내가 찾는 사람은 자네가 확실히 맞아."
원매는 대답을 하고는 차를 마시며 장완을 관찰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의 자네 모습이 영 탐탁히 않군. 원래 이런 모습이었는가? 아니면 어떤 계기에 의해서 뛰어난 능력을 숨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가? 내가 볼 때는 후자같은데 말이야."
순간 장완의 동공 깊은 곳에서 반짝임이 일었다. 자신마저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고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천재성을 원매가 알아본 것이다. 혼탁했고 힘이 없던 그의 눈은 서서히 다른 눈으로 변모해갔다. 그의 가슴 속에서 잠자고 있던 또 다른 천재 장완이 눈을 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