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222화 (222/253)

# 222

제222장. 요동을 마무리하다.

원매가 공손도의 귀부를 거부하면서 둘의 관계는 데면데면해졌다. 힘이 약한 공손도입장에서는 더욱 눈치를 보는 상황으로 이어져 불안에 떨어야했다. 공손도는 한충으로부터 보고를 받고는 탄식을 터트렸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구나."

"대왕. 편하게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 시간을 두고 하나 하나 상황을 되짚어 보니, 당분간은 기冀가 이곳을 공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원매는 남쪽의 제후들을 무너뜨리는데 집중했지 않습니까? 이제 남쪽에 주유 한 명 남았으니, 그쪽에 집중할 것입니다."

"자네 말도 일리가 있어. 그러니까 적어도 2~3년은 조용할 테고, 나중에 시간을 봐서 다시 논의해보자. 이거 아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원매가 지나치게 전쟁을 많이 치뤘고, 또 주유를 공략할 생각에 굉장한 심적부담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흠- 하긴 어린 놈이 10년도 안되는 동안 대단한 일을 벌였지. 심적부담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공손도는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마친 그의 얼굴은 조금 밝아졌다. 원매의 심적부담은 알 바가 아니었고, 몇 년 간은 평화가 보장된 것이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기冀를 자극하지 않도록 경계지역 장수들을 다시 한번 교육시켜."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한충이 물러가자, 공손도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신경을 썼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잠이나 좀 잘까?"

업성. 원소치소.

원소는 고민하다가 결국 원매를 호출했다. 원매는 공손도 관련된 일이란 것을 직감하고는 굳은 표정으로 치소로 향했다. 원소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미안하구나."

무슨 뜻인지를 몰라 물끄러미 바라보는 원매를 향해 원소는 다시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미안해."

"아버지."

"내가 네게 너무 많은 짐을 지어준 것 같아. 그간 너무 많은 것을 이뤘어.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네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 나도 그렇고. 네가 이렇게 힘들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도 기대만 했구나.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파. 매야. 이 아비가 미안하구나."

"힘들지 않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힘들게 한 것같아 죄송합니다."

"이번 일로 너를 질책하는게 아냐.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지지하마. 그러니 의기소침하지 말고 당당하게 앞만 보고 걸어가."

원소는 차를 마시며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사실 요동이 대단한 곳은 아냐. 중원을 다 차지했는데, 그까짓 변방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

"제가 요동의 공손도를 정벌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상관없겠습니까? 동맹을 맺든 뭘 하든요."

원소는 갑자기 일어나서 원매 곁에 앉았다. 그는 어깨동무를 하듯 그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말했잖아. 네가 뭘 하든 이 아비는 지지한다고. 네가 황제라 생각하고 소신있게 밀어부치면 되는 거야.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한다면 결국은 실패하는 거야. 전설의 요순황제께서 치세하실 때, 모두가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야. 너는 요순황제도 아니잖아. 네가 하는 일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때로는 네가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그것 하나 하나에 연연하지 말고,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큰 성과를 이룰거야."

원매는 원소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묵묵히 들었다.

"다만, 추후라도 잘못된 것다고 생각하면 항상 반성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거라. 그러면 된거야. 절대 완벽하려고 하지 말거라. 그순간 이미 무너지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너는 잘하고 있어. 힘이 들어서 조금 실족한 것 같구나."

원소는 원매를 격려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매도 따라서 일어났다. 그는 원소에게 큰절을 올렸다.

"아버지의 충고 가슴 깊숙이 새기겠습니다."

원소는 빙그레 웃었다. 훈훈한 웃음이었다. 원매도 웃고는 치소를 물러났다. 원소의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그의 마음은 한껏 가벼워졌다. 혼자 고민하다 지나친 무리수를 둔 느낌이었다. 그저 잘 달래서 동맹정도로 만들어도 무방했는데.

그는 곧바로 봉기치소를 찾았다.

"장인어른.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원매가 머리를 숙이자, 봉기가 급히 예를 올리며 맞이했다.

"태자전하. 이러시면 안됩니다."

"섭섭하지 않으셨습니까?"

"태자전하께서 깊은 생각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오셨습니까?"

"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난 일이 조금 무리수가 있던 것 같아서 조정을 했으면 하는데, 태사(봉기)의 의견을 청취하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그렇군요. 이렇게 서서 있을 게 아니라, 자리에 앉으시지요."

봉기는 상석을 원매에게 양보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원매는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입을 열었다.

"태사께서 양평에 다녀오셨으면 합니다. 지난번에 공손도가 제안한 내용을 받아들이시되, 귀부가 아니라 동맹국으로 조건을 변경하십시오."

"흠- 태자전하의 의도를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공손도는 외부에서 볼 때는 독립세력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하나의 지방정부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그렇지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나중에 가서 필요하면 기冀로 흡수하면 되니까요."

"걱정 마십시오. 내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원매는 다시 한번 봉기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치소를 물러났다.

이튿날.

봉기는 배에 올라 요동으로 출발했다. 대국인 기冀의 태자 원매가 결정한 것을 뒤집는 상황이었기에 봉기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선뜻 나선 것이다.

장수를 따라 내려온 봉기는 발해군에서 대형 누각선으로 갈아 타고 발해만으로 들어섰다. 11월이라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이틀을 꼬박 가서 요동에 도착했고, 다시 말을 타고 이틀을 이동해서 양평성에 도착했다.

공손도를 비롯한 신하들은 봉기가 왔다는 소식에 성문밖까지 마중을 나왔다.

"봉태사. 어서 오십시오."

"오- 한별가. 오랜만이오. 그간 잘 지내셨소."

"예. 덕분에요. 봉태사 인사하십시오. 공손태수이십니다."

한충이 백발의 늙은이를 가리키자, 봉기는 허리를 굽혔다.

"공손태수 강녕하셨습니까?"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공손하게 인사를 받은 공손도를 재빨리 공손강, 공손공을 보며 짧게 명령했다.

"뭐 하느냐? 어서 인사 올리거라."

공손도의 재촉에 뒤에 있던 공손강, 공손공이 차례로 인사를 올렸다.

"봉태사를 뵙습니다. 저는 장자 공손강이라 합니다."

"저는 차남 공손공입니다."

둘은 허리를 깊숙히 숙이며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했다. 봉기는 차기 후계자인 공손강과 공손공을 집중적으로 훑어 보았다. 중원의 격변기를 지켜보며 수 많은 사람을 접한 봉기는 한 눈에 그들의 성정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장자인 공손강은 강인하고, 잔인해 보이는구나. 차남은 공손공은 부드러운 면이 보이고. 그래 후계자가 된다면 차남이 낫겠어.'

그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손도를 따라 치소로 향했다. 덕담을 나누며 이동했지만, 그들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치소에 공손도, 한충, 봉기가 남았다. 한충은 공손도가 말문이 막힐 때를 대비하여 그의 뒤에 시립하고 있었다.

"태자전하께서 그때 말씀하신 것이 심하셨다며, 개선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늙은이가 이렇게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봉기는 죽간을 공손도에게 바쳤다. 그는 예를 표하고는 매듭을 잘라 죽간을 펼쳤다. 차분히 훑은 그는 의문이 생기는지 슬쩍 한충을 바라보았다. 한충은 재빨리 내용을 훑었다. 그는 공손도가 무엇때문에 자신을 봤는지를 깨달았다.

"봉태사. 내용이 약간 이상하군요. 저희는 귀부를 요청했는데, 이것은 반대의 상황아닙니까? 더군다나 군대도 감축하고, 기의 군대가 상주한다는데 조금 더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공손태수께서 귀부했다고 요동을 떠나거나 태수직을 내려놓으실 생각은 없지 않습니까? 바로 그 부분을 충족시켜드리기 위해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요동은 공손씨가 대를 이어가며 태수직을 연임하도록 보장하겠습니다. 지금과 변동사항이 있다면 기의 병력이 이곳에 주둔하고, 기존 병력을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일을 복잡하게 만드시는군요. 그렇다면 사실상 속국의 형태아닙니까?"

"그렇지요. 속국이지요. 하지만, 주변의 고구려, 부여, 선비, 오환등과는 독립국으로서 외교를 맺을 수 있습니다. 기에 세수를 납부할 필요도 없고요.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됩니다."

한충은 봉기의 말을 알아 듣고, 공손도에게 차분하게 하나 하나 짚어가며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공손도의 표정은 확실히 밝아졌다. 오히려 그들이 원매에게 제안했던 상황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태자전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공손도와 한충이 다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자, 봉기도 고개를 숙였다.

"공손태수. 장남인 공손강공자가 체격도 좋고 무장으로서의 능력이 굉장히 출중해 보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공손강은 이미 50살이나 된 중늙은이였다. 공자라는 표현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공손강의 칭찬에 공손도는 봉기의 속마음을 알아챘다.

"그렇지요. 아직도 무력이 꽤 쓸만합니다. 괜찮으시다면 태자전하께 맡겨서 무장으로서 공을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봉기가 인질을 원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공손강이 너무 잔인하여 골치가 아팠었다. 장남이니 후계자로 선정해야 하는데, 성정이 마음에 안들어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이 골치 아픈 상황을 봉기가 해결해주겠다고 나섰으니, 공손도로서는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다.

"공손태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후계자로 점찍어 놓으신 것은 아니었습니까?"

"후계자야 장남이 없으면 차남이 하면 되지요. 괜찮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기와 공손도의 협상은 조속히 마무리되었다. 봉기는 이곳에서 며칠을 머물면서 요동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공손강치소.

"그게 무슨 소리요? 나보고 업성으로 가라니?"

공손강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한충에게 소리쳤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기에서 원했습니다."

"나도 협상이 맺어지면 인질이 한명 정도 간다는 것은 알고 있소. 그렇다면 아우 공(공손공)을 보내면 되지 않소? 아버지가 연로하신데, 내가 어딜 간단 말이오?"

"대왕께서 결정하셨으니 따라야 합니다. 저는 명을 전달할 뿐입니다."

공손강이 발작하려고 하자, 한충이 매섭게 일침을 놓았다.

"설마 대왕께서 내리신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 아니 ..... 그게 아니라....."

공손도의 잔인한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공손강이었다. 하여 공손도의 명령이라는 말에 찔끔한 것이다. 그 더러운 성질 때문에 50이 되어서도 찍소리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결과가 이것이라니 참으로 참담했다.

"대공자(공손강). 편하게 생각하시고 다녀오십시오. 이는 요동의 존폐가 달린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 때문에 기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면 저도 대왕께서 어찌 나올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충은 능수능란하게 회유와 협박을 통해 공손강을 설득했다. 공손강은 공손도가 두려워 결국에는 눈물을 흘리며 받아들였다. 억울함과 회한의 눈물이었으리라.

봉기, 공손강은 배에 올랐다. 배에는 공손도가 챙겨준 특산물이 가득했다. 봉기가 바람이 차갑다며 실내로 들어간 가운데, 공손강은 점차 멀어져 가는 요동 땅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평생을 요동태수 한번 해보겠다고 그리 발버둥을 쳤는데, 결론은 인질이라니. 내 신세가 처량하구나.'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더없이 청량하고 맑은 하늘이었다. 그의 불편한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너무 맑았다.

'제기랄.'

결국 그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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