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제220장. 공손도 활로活路를 찾다.
원매는 주유에 비해서 수군에서 약점을 보였기에 첩보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양강도호부(합비)에서 강한 수군을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었고, 강릉에서는 이엄이 병력 수송용 배를 만들었다.
주유와 대등하게 수전을 겨루려면 적어도 일년은 준비해야 가능할 것이다.
"아쉽군. 주유가 동한을 세웠는데도 지켜봐야만 하다니."
원매는 가후를 보내고 나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원소에게로 향했다. 원소가 이것 때문에 혈압이 오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언제 알아도 알 일이었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그에게 향했다.
원소는 버티고는 있지만, 확실이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폐하. 신 원매입니다."
"둘이 있을 때는 아버지라고 하라니까."
원소는 힘없는 목소리로 가볍게 힐난하고는 원매를 끌어다가 자리에 앉혔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느낌이었다. 원매의 눈이 조금 우울해지자, 원소가 그의 어깨를 툭툭-쳤다.
"이놈아. 아비가 그리 걱정되면 어서 통일하고 이 자리를 물려받거라."
"아버지. 계속 하셔야지요. 그리 황제가 되고 싶어하지지 않았습니까?"
"욕심으로는 계속 하고 싶어. 하지만, 이젠 힘이 없어. 그래도 황제를 해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왔느냐?"
원매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강동의 주유가 유씨를 한명 내세워서 한을 부흥시켰습니다. 국호를 동한이라 했습니다."
"허허- 동한이라? 아직도 이 중원에 한을 추종하는 무리가 많이 남아있구나. 암. 그럴 수 있지."
다행히 원소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그는 오히려 원매를 다독였다.
"아비가 정치로 평생을 살았다. 내가 충격받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이 무너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잔당이 모조리 사라지겠느냐? 오히려 잘된 일이다."
"잘되다니요?"
"이제 한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모조리 강동으로 몰려갈 것 아니냐? 굳이 그런 놈들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이번에 동한을 무너뜨리고, 철저하게 한을 따르는 무리를 색출하거라. 그리고 다시는 한을 입에 담지 못하도록 조치해. 알겠지?"
"물론입니다. 제가 힘으로 때려잡는 것은 잘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놈아- 곧 황제가 될 놈이 힘자랑해서 뭐하느냐? 정치를 잘 해야지. 한심한 놈같으니라고."
말은 원매를 비난하고 있었지만, 원소의 표정은 가벼웠다. 원매가 그가 농담도 하면서 편안해 보이자 더 없이 기뻤다.
"아버지. 오래 사십시오."
"걱정마라. 패(원매아들 원패)가 장가가는 것까지 반드시 볼 것이다. 너는 지금부터 동한을 격파하는데 집중하거라. 내가 가승상과 의논하며 국사를 처리할 것이다."
"가승상이 잘 하니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처리한다는 거야. 흐흐흐흐-"
원소와 원매는 오랜만에 활짝 웃음을 터트렸다. 원소가 뭔가 생각난듯 물었다.
"동한을 멸하려면 1~2년 기다려야 하니 그 사이에 요동에 자리 잡고 있는 공손도를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놈인데, 웬지 뒤통수가 가렵기도 하고 영 찜찜해."
"주유를 잡으면 알아서 정리될 것입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유주를 장합이 막고 있는데, 제깐 놈이 날뛰어 봐야 소용있겠습니까?"
"그래. 장합이라면 믿을 수 있지. 하지만, 찜찜하기는 해. 네가 알아서 한다니 더는 상관하지 않으마."
원소는 원매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그간의 공을 다시 격려했다. 원매는 흐뭇한 얼굴로 나오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손도는 내가 죽을 때까지 독립된 세력을 유지해야 해. 이곳에 게임 속인지 실제 역사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통일이 되면 종료가 된다고 했지. 완벽하게 믿음이 가진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야지. 곧 황제가 될 마당에 미쳤다고 돌아가서 개고생을 한단 말인가?'
나름대로 정리를 해 놓자, 원매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기분 좋게 치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뜻대로 풀리지 않는 법이었다.
요동 양평성. 공손도치소.
공손도는 요즘 몸이 좋지 않았다. 역사대로라면 204년인 올해 병사하는 게 맞았지만, 원매의 등장으로 역사가 비틀리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그의 수명이 길어졌다.
며칠을 침상에 누워 끙끙 앓던 공손도는 탕재를 다려 마시고 간신히 기운을 회복했다. 이제 10월이었지만, 요동의 밤은 길고 추웠다. 그는 방을 따뜻하게 하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영(동탁휘하 장수)의 추천으로 요동태수가 되었고, 덕분에 이곳에서 왕노릇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지난 10여 년이 행복한 시간이었어. 하지만, 이렇게 내가 아프고 보니 모든 것이 사라질까 두려워지는구나. 서쪽의 원소는 기를 세워 중원을 대부분 장악했고, 동쪽의 부여나 고구려도 껄끄러워.'
그가 불쏘시개로 화롯불을 쑤석거리자, 붉은 빛이 그의 얼굴을 물들였다. 홍안이 된 그의 얼굴은 주름이 깊게 패인 노인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반짝였다.
'원소가 조용히 있는 것이 이상하지만, 언제라도 그놈이 이곳으로 쳐들어 올 수 있어. 미리 준비를 해야 해. 어찌한다? 이제는 원소를 상대로 전투를 해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내 가문이라도 보존해야 할 텐데.'
공손도는 고민하다가 한충을 불렀다. 한충이 그가 믿고 국사를 의논할 수 있는 책사였다.
"대왕. 찾으셨습니까?"
"그래. 이리로 앉게."
공손도는 한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며칠 아프고 나니 참으로 생각이 많아졌어.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젊지가 않구나. 그렇게 느껴져. 또 앞으로 우리 가문과 요동을 보존하려면 어찌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네. 자네는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한충은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매우 놀라고 있었다. 요동의 개망나니 공손도가 이렇게 침착하고 선하게 말을 하다니. 간밤에 이 인간이 무언가를 잘못 먹은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내뱉지는 못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사실 중원이 어지러울 때는 누구도 대왕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곳 요동이 중원에서 멀기도 하고, 기후가 달라 풍토병에 걸리기 쉬워 모두 공격하길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습니다. 원소가 중원을 거의 통일했습니다. 그는 유주를 잘 압니다. 다시 말해서 요동을 공격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말이야. 왜 가만히 있을까? 남쪽이 급할까?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 다만, 추측하기로는 중원의 제후들을 처리하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해 먼저 처리한 것 같습니다. 대왕께서는 요동을 벗어나 영토를 넓히기도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나중에 ....... "
한충은 '처리하려고 한다.' 이렇게 말하려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간 저 개같은 성질에 뭐가 날아와도 날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손도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나는 잡아 놓은 먹잇감이다. 이런 애기 아냐? 놔둬도 어차피 도망도 못치니까?"
"진정 대왕 맞습니까?"
"왜? 한대 때려줄까? 개떡같은 성질 보여주면 믿겠어?"
"아뇨. 지금이 좋습니다. 흐흐흐-"
"웃지 말고 말해봐. 어찌했으면 좋겠어?"
"협상을 해서 기에 귀부하시지요. 대왕께서 먼저 성의를 보이시면 벼슬도 내려줄 테고, 요동도 그대로 존속시켜 줄 것입니다. 대왕은 이곳에서 그전처럼 사시면서 세수만 정확히 바치고, 충성을 표시하면 됩니다. 만약에 때를 놓쳐서 저들이 공격해 왔을 때, 그때 항복한다면 지금보다 대우가 훨씬 떨어질 것입니다. 재수없으면 다 빼앗기고 모르는 지역으로 이동하겠지요."
공손도는 머리를 끄덕이며, 한충의 의견에 수긍했다.
"누굴 보냈으면 좋겠는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좋아. 그래도 도적을 만날지도 모르니 공손모와 기병 3백을 데려가. 배로 이동할거지?"
"예. 황해를 건너서 장수를 쭉 따라 올라가면 업성이 나오니까요. 그게 훨씬 빠르고 시간이 절약됩니다."
공손도는 일어나 한충을 격려했다.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낀 그는 가능하면 자신이 살아있을 때 아들인 공손강, 공손공의 노후를 보장해주고 싶었다. 그 첫단계는 원소와의 협상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공손도가 보낸 사신인 한충과 공손모가 협상을 하기 위해 발해만 - 장수를 거쳐 업성으로 배를 타고 올라갔다.
업성.
원매는 고람, 사마구를 데리고 업성근교로 사냥을 나왔다. 업성 경호는 조운에게 임시로 맡겼다. 실로 오랜만에 말타고 달리며 활을 쏘고 사냥에 나서자, 과거로 돌아간 듯 그들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사마대장. 활솜씨가 많이 늘었군. 이거 일은 안하고 매일 활쏘기 연습만 한 거 아냐?"
"그럴리가요. 제가 일을 안하면, 그 꼬장꼬장한 도어사(강경)가 가만 있겠습니까? 아마 곧바로 고해서 제 목을 날렸을 겁니다."
"하긴 강도어사라면 그럴만 하지. 참. 고병조. 강도어사가 아들을 낳지 않았는가?"
"예. 지금 만 2살입니다. 이름이 뭐라더라...... 아! 유維입니다. 강유姜維."
원매는 속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라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 강유가 무럭무럭 자라준다면 미래의 근심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야.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이야."
원매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짓자, 고람과 사마구는 무슨 뜻인지를 몰랐지만, 미소를 머금었다. 그들은 단지 원매가 기뻐하는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자- 좀 더 달려보세. 그동안 전쟁만 하느라 이렇게 편하게 사냥을 해본적이 없어."
"예. 태자전하."
원매가 앞장서서 달리자 고람과 사마구가 뒤를 바짝 쫓았고, 경기병 5백이 그 뒤를 따랐다. 한참을 달리던 원매가 속도를 늦추고는 손을 들어 경기병을 정지시켰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경기병 한병이 대궁을 꺼내 바쳤다.
원매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풀숲에서는 커다란 멧돼지 한마리가 원매를 힐끔 보고는 앞발로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워낙 덩치가 큰 놈이라 그런지 사람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원매는 대궁을 들어 힘껏 활시위를 당겼다. 얼마나 탄성이 좋은지 팔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이거 웬만한 놈들은 당기지도 못하겠군.'
그는 멧돼지를 조준하고는 가볍게 줄을 놓았다. 대궁의 탄성에 의해 화살은 꼬리를 흔들면서 빠르게 날아갔다. 멧돼지가 그제야 눈치채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늦었다. 커다란 화살은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멧돼지가 죽지않고 날뛰자, 원매는 다시 활을 당겨 힘껏 쏘았다. 세발이 연속으로 발사되어 명중하자, 멧돼지도 결국에는 힘없이 모로 쓰러져 남은 숨을 할딱 거렸다.
건장한 병사들이 급히 달려들어 조심스럽게 화살을 뽑았고, 돼지의 멱을 따서 죽였다. 사마구가 식사준비를 명하자, 그들은 멧돼지를 비롯한 잡은 짐승들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발라냈으며, 한쪽에서는 솥을 걸고 끓일 준비를 했다.
5백명이 먹을 거라 납작한 솥이 50개는 필요했다. 고기를 썰어서 죽에 넣자, 향이 좋아졌고 맛은 깊어졌다.
"그래. 이맛으로 사냥을 하지."
원매가 연신 입에 죽을 떠 넣으며 감탄을 터트리자, 사마구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소탈한 원매가 너무 좋았다.
경기병들이 야전숙영을 준비하고 있을 때, 업성에서 전령이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사마구가 연통을 받아서 원매에게 바쳤다. 원매는 약간 굳은 얼굴로 비단 매듭을 자르고, 죽간을 꺼냈다. 차분히 읽은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죽간을 꺼내어 차분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그후, 비단주머니에 넣어 매듭을 하고는 전령에게 넘겼다.
"이것을 가승상에게 넘겨주고, 반드시 이대로 처리하라고 하거라. 나는 내일 돌아갈 것이다. 왔으니 죽이나 한사발 먹고 가거라. 제법 맛이 괜찮다."
"태자전하. 감사합니다."
전령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죽을 받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