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217화 (217/253)

# 217

제217장. 원매의 분노.

성도 유장치소.

비관으로부터 협상결과를 전해 들은 유장은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하북으로 가지 않고, 형주 장사로 가는 것이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쉬운듯 비관에게 물었다.

"형주자사를 달라고 하면 어떨까? 이거 장사군 태수로는 영 체면이 서질 않아. 그렇게 다시 협상해봐. 그러면 내가 다 받아들이지."

비관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북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장송까지 동원해서 겨우 형주 장사군태수를 얻어 놓았더니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차라리 하북으로 가십시오."

비관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입을 다물자, 유장이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아. 그리 말했다고 뭘 그렇게 서운하게 받아들이시는가? 형주자사로 다시 협상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말 한번 더 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는가?"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하북에서 형주로 바꾸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진짜 왜 이러십니까? 그리고 협상의 주제를 왜 주군의 안위로만 생각합니까? 관리들, 장수들, 백성들은 어찌 해달라 그 말은 왜 안하십니까?"

"뭐 그런걸 가지고 발끈하시는가? 장사군으로 가겠네. 가면 되지."

유장은 툴툴거리며 협상내용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비관이 강경하게 더는 협상이 없다고 쐐기를 박고 나서자, 유장은 형주자사를 포기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더는 어쩔 수 없기에 마음속으로 삭혔다.

다음날.

유장은 성안의 신하들을 불러 모아 원매와의 협상내용을 공개했다. 항복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음에도 대부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더는 버티기가 어렵다는 것을 모두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장이 비관에게 눈짓을 하자, 그가 한발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는 대변혁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그간 주군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지만, 그것이 오늘로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주군께서는 성을 포위하고 있는 원매군에 대항하여 몇 년이고 버틸 수 있지만, 백성들이 당하게 될 아픔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시고, 통곡하는 심정으로 기冀에 귀부하게 되었습니다. 주군께서는 태자전하의 명에 따라 형주 장사군 태수로 부임하시게 될 것이며, 이곳의 관리, 장수들은 그대로 현직책에서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시면 됩니다."

자신의 자리가 온전히 보존되자, 관리, 장수들은 크게 안심이 된 표정이었다. 맹달이 앞으로 한발짝 나서며 질문했다.

"그렇다면 익주자사는 누가 오는 것입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아마도 주군께서 귀부를 하고 난 연후에 발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신하들이 결과를 받아들였지만, 꼬장꼬장하고 꽉 막힌 왕루는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주군! 끝까지 싸우셔야지요. 어찌 저런 근본도 없는 원가에게 항복하신단 말입니까? 주군께서는 마지막 남은 한의 후예이십니다."

왕루가 수성전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유장은 입을 꾹 다문채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왕루는 애가 타서 몇 번이나 같은 주장을 반복했으나,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대신이 없었기 때문에 왕루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 표정이었다.

"왕종사. 그만하시오. 익주의 대부분을 빼앗겼고, 성도는 포위되었소. 버틸 수는 있지만, 이길 수는 없소. 백성들이 얼마 고생할지 생각해 보셨소? 또 전투가 끝난 후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그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죽을지는 생각해 봤느냔 말이오?"

동화가 은은한 노기를 띠며 왕루를 질타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漢의 존립이라는 대의명분이오. 그것을 위해서는 백성들도 당연히 고통을 감내할 것입니다."

"그만하시오! 주군께서 귀부를 결정하신 마당에 반대가 무슨 소용이오? 그렇지않아도 아픈 주군의 마음을 헤아려주시오."

비관이 더는 안되겠던지 왕루를 제지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어찌 밀실협상으로 처리한 것입니까? 공론화시켰어야 합니다. 이는 절차상의 하자가 있으므로 무효입니다."

유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비관을 보자, 비관이 냉혹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분열된다면 유장이나 신하들에게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장 저놈을 끌어내라! 어서!"

호위병이 왕루를 질질 끌고 가자,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유장에게 수성전을 주장했다. 왕루가 끌려나가자, 치소는 다시 평화를 찾았다. 비관의 뜻대로 순조롭게 항복이 결의되었다.

맹달이 성문을 열자, 유장이 병부를 들고 앞장 섰으며 많은 신하들이 그 뒤를 따랐다.

원매는 유장이 신하들을 이끌고 나오자, 그도 장수들을 일렬로 도열시켰고 자신이 맨 앞에 서서 유장을 맞이했다.

유장은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항복했다. 원매는 병부를 받아서 이통에게 주고는 유장을 일으켜 세웠다.

"고맙소이다. 자-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원매는 유장을 일으켜 그를 다독이고는 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장은 원매의 무지막지한 기세에 한풀 꺾여 있었다. 그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무장을 봤지만, 원매처럼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자는 처음이었다. 또한, 주변에 포진해 있는 조운, 마초를 보자 소름이 확 끼쳤다.

'중원은 참으로 넓구나. 저런 괴물이 익주에는 한명도 없거늘, 세 명이나 데려오다니. 하북으로 간다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유장이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표정을 짓자, 원매가 빙긋 웃었다.

"이제부터는 장사군을 잘 다스릴 생각만 하시오. 그곳에 도착하면 집, 땅이 모두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오. 그대가 남은 생애를 사는데 큰 부족함은 없으리라 생각하오."

"예. 태자전하."

원매의 입을 통해 장사군 태수가 언급되자, 유장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익주를 떠나려니 아쉬웠고, 억울했다.

치소안은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상좌에 원매와 유장이 앉았고, 좌측에는 원매의 신하들이, 우측에는 유장의 옛신하들이 앉았다. 모두에게 술이 채워지자, 원매가 잔을 높이 들었다.

"자- 잔을 드시오. 이제 익주도 기冀의 일부가 되었소이다. 나 원매는 여기 있는 관리, 장수들을 그대로 유임할 것을 약속하오. 부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단 덮고 지나가겠소. 하지만, 앞으로는 그리해서는 안 될 것이오. 익주가 백성들이 살기 편안하도록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주시오!"

"예. 태자전하!"

유장의 옛신하들이 일제히 외쳤다. 그들은 원매를 따라서 술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후 원매의 신하들과 유장의 옛신하들이 술을 주고 받으며 분위기는 조금씩 달아 올랐다. 유장도 원매의 술을 몇잔 받아 먹고는 얼굴이 벌개졌다.

"그런데 참으로 놀랐습니다. 태자전하처럼 강인한 무장은 처음 봤습니다."

"하하하- 고맙소. 노력의 산물이오."

"타고나신게 있겠지만, 참으로 대단한 의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떠나면 익주자사는 누가 맡게 되는 것입니까?"

"그게 그렇게 궁금하오?"

"궁금하다마다요."

원매는 유장이 아직도 익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못 알려줄 것도 없지요. 다음 익주자사는 비관이오."

순간 지휘소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유장은 입을 벌린채 아무말도 못했고, 그의 옛신하들은 모두 비관을 쳐다 보았다.

쿨럭-쿨럭-

비관은 깜짝 놀라 사래가 걸리는 바람에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는 급히 기침을 진정시키고는 원매를 바라 보았다. 그전에 원매에게 익주자사 임명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별가가 인품이 넉넉하고, 그간 유태수를 잘 보좌하여 익주를 잘 지켰기에 자사로 임명하는 것이오. 그리 알고 준비하시오."

"저......전하. 소신은 낙향하여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에게 맡겨주십시오."

비관은 진심으로 익주자사를 맡고 싶지 않았다.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유장의 옛신하들의 눈에서는 질투가 일렁였다. 특히 유장의 눈에서는 분노가 일었다.

"네 이놈! 비관! 나를 속이고...... 거래를 한 것이더냐?"

쾅-

"그만!"

원매가 소리치자, 다시 조용해졌다. 원매가 분노하자, 흉폭한 기운이 스물스물 퍼져나왔고, 곁에 있던 유장은 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잘 들어! 내가 여기 유태수를 비롯하여 모든 장수, 관리들을 유임시켰고, 재산도 보전해 주었어. 그런데, 뭐가 불만이야. 내가 비관을 익주자사로 임명하겠다는데 누가 불만을 터트리는거야! 고분고분하게 자네들 뜻대로 해주니까 내가 쉽게 보이는가?"

원매는 눈을 들어 주위를 훑어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비관은 앞으로 나와 명을 받으라!"

비관은 얼결에 나와 엎드렸다.

"비관을 익주자사에 임명하니,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을 잘 돌보도록하라! 이는 변하지 않는 내 뜻이니 더는 말을 말라!"

원매는 임명장을 내밀었고, 비관은 우물쭈물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는 큰절을 올리며 감사를 표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아직도 꿈인지 생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원매가 입을 열어 유장의 옛신하들을 질타했다.

"그대들이 무슨 자격으로 비관을 질타하는가? 진정으로 내가 분노하여 일부를 죽이고, 내쳐서 재산을 몰수해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말해. 이 원매가 한번 독기를 품으면 얼마나 무지막지한 인간이 되는지를 알려줄 테니까."

"태자전하. 오해를 푸십시오....... 의외의 상황이라 그랬습니다. 고정하십시오."

유장이 급히 일어나 고개를 숙이자, 그의 옛신하들도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원매는 그제야 무서운 표정을 풀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 좋은 자리에서 이게 뭡니까? 앞으로는 비자사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서 익주를 잘 다스려 주시오. 자- 한잔씩 들고 마음속의 불편함을 모두 털어버립시다."

원매가 잔을 비우자, 다른 이들도 일제히 잔을 비웠다. 갑자기 장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자전하 천세!"

"태자전하 천세!"

연신 천세를 외치자, 다른 이들도 재빠르게 일어나서 '태자전하 천세!'를 외쳤고, 원매의 장수들도 동참했다. 유장도 얼결에 일어나 따라서 천세를 했다. 원매는 쑥쓰러우면서도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만하시고 자리에 앉으시오. 오늘은 참으로 뜻 깊은 자리이니 즐겁게 마시길 바라겠소."

"감사합니다. 태자전하!"

흉흉했던 분위기는 다행히 좋게 좋게 마무리 되었다. 신하들은 대부분 성도로 돌아갔다. 이곳에는 맹달, 장송, 비관이 남았다. 유장은 치소로 돌아가 장사로 떠날 차비를 시작했고, 다른 관리들은 차분하게 앞으로 비관을 모시며 어찌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맹달은 성도의 병력을 이끄는 최고 책임자였기에 남겼다.

원매는 제일 먼저 장송을 따로 불렀다.

"고생하셨네. 자네의 도움이 정말 컸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내가 비관을 자사로 임명해서 조금 섭섭하지 않은가?"

장송은 뜨끔했다. 그는 표정을 풀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태자전하께서 비관을 임명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옳은 판단이라 생각하고 욕심을 접었습니다. 비자사는 대인기질이 있고, 마음이 너그러울 뿐만 아니라 머리가 비상합니다. 충분히 익주를 안정시킬 것입니다."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네. 자네 원하는게 있으면 말해 보게."

"저도 태자전하를 따라서 업성으로 가겠습니다. 제가 이곳에 남는다면 비자사가 제 눈치를 보지 않겠습니까?"

"그래. 잘 생각했네. 법효직과 함께 가세. 내가 넉넉히 보상을 하고 관직도 내려줌세."

"감사합니다. 태자전하."

원매는 장송을 다독이며 좋은 말로 위로하고는 돌려보냈다. 장송과 법정은 오래전부터 원매를 위해 일해온만큼 많은 것을 베풀어 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장송이 오해하지 않도록 제일 먼저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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