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제214장. 마무리를 짓고, 창끝은 유장에게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선임교위 이량은 잠을 못잔듯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그는 방통의 치소로 향하면서 지난밤에 하급장교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들은 막상 전투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자, 대부분 꼬리를 내렸다. 항복하면 지금처럼 대우받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목숨을 건질 것이다. 목숨은 소중하니까.
일부가 과격하게 수성전을 주장했지만, 수적으로 본다면 소수였다. 성안의 백성들이나 일반병사들은 누가 이곳의 주인이 되든 살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이것이 본심이겠지. 의리니 충성이니 결국은 죽음 앞에서는 다 무너지는 법이니까.'
이량은 안타까웠다.
'결정은 방군사가 내린다. 나는 그저 상황을 보고하고 처분을 기다리면 그뿐이다.'
결정을 내리자 이량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는 당당한 걸음으로 방통의 치소로 향했다. 방통도 지난밤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어서 오시게. 잠은 잘 주무셨는가?"
"사실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군. 그래 결론은 났는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수성전을 주장하는 무리도 있었고, 항복을 주장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회의를 했지만, 결론은 도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적으로 본다면 항복을 주장하는 자가 2배 정도 많았습니다."
"자네 생각은 어때?"
이량은 방통의 질문을 받고 우물쭈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도저히 결론을 못내리겠습니다. 방군사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사람하고는. 알겠네. 물러나 있어."
"예. 방군사."
이량이 물러나자, 방통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치소안을 거닐었다.
아침이 조금 넘은 시간에 원매가 이전을 사자로 보냈다.
"이전이라고 합니다."
"이장군도 기冀의 신하가 되었군요."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이전을 기억해냈다. 유비와 조조가 국경을 맞대고 동맹관계였기에 이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방통의 두뇌가 대단히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를 알고 계시는군요. 죄송하지만, 저는 방군사를 처음 뵙습니다. 태자전하께서는 익주남부를 원하시지만, 가능하면 죽는 자 없이 평화롭게 인수하기를 원하십니다. 태수나 현령도 가능하면 모두 유임하려고 생각하시고요. 방군사도 원하시면 높이 들어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다른 부분은 이해가 되는데, 어찌 저를 알고 높이 들어 쓴다고 하십니까?"
"글쎄요. 거기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본다면 태자전하께서 크게 쓰신다고 약조하면 반드시 행하셨습니다. 그러니 믿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방통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질문했다.
"주군은 어찌 되셨습니까?"
"유장군은 전투중 부상을 당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장비장군이 시신을 수습했고, 묘를 만들었습니다. 일년 정도 지난 후에 관장군과 함께 유주 탁군으로 이장하라고 태자전하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과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태자전하께서 배려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정말 충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기冀를 따르시겠습니까?"
방통은 말없이 이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장군은 뱀머리가 되어 본적이 있으십니까?"
이전은 무슨 말인가 생각하다가 '아-'하고 작은 탄성을 토해냈다. 무장이면서도 유학자였던 이전이었기에, 뛰어난 두뇌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매가 그를 믿고 사자로 보낸 것이다.
이전은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권력은 인간의 본성을 비틀어 버리고, 가치관을 왜곡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뱀머리가 되어 본적이 없어서 뭐라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뱀머리로 살든 용꼬리로 살든 중요한 것은 백성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능하면 백성들이 피눈물을 적게 흘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흐흐흐- 맞습니다. 하지만, 이 괴물이 정말 강하군요. 저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방통의 자조적인 웃음에 이전의 얼굴에 웃음이 싹 가셨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이장군의 말씀은 잘 들었소. 돌아가시오. 내가 오늘 저녁까지 결론을 내리겠소. 만약 그때까지 항복하지 않는다면 전투를 벌인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하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이전은 다시 한번 당부를 하고는 치소를 물러났다. 성문을 나서는 이전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잠시 뒤돌아서서 성을 바라보고는 빠르게 원매의 치소로 향했다.
"태자전하. 소장 이전입니다."
"오- 어서 오시게. 고생하셨네. 그래 어찌 되었는가?"
"예. 그것이......"
이전은 방통과 나눈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달했다. 원매는 묵묵히 들으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우려했던 부분이 터진 것이다.
"알겠소. 이장군은 어찌 생각하시는가?"
"오늘 저녁까지 통보한다고 했으니 기다려야지요. 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공성전준비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여기서 오랜 시간을 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바보같은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원매는 미간을 좁히며 밖으로 나섰다. 이전이 수행하려고 하자, 손을 내저으며 뿌리쳤다. 그가 주변을 서성일 때, 마초가 다가왔다.
"태자전하.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였는가? 이것 참. 답답해서 말이야. 전투없이 이곳을 점령했으면 좋겠는데, 뜻대로 되지를 않는군."
원매는 답답함을 드러내며 푸념식으로 마초에게 방통의 상황을 전달했다. 마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서량이 땅만 크지 인구가 50만도 안됩니다. 그곳의 반쪽을 가진 한수도 왕행세를 했고, 제 부친께서도 반쪽을 가지고 사실상 왕이었습니다. 저도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중원으로 나와 보니 참으로 좁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시면 방통은 서량보다 많은 인구와 영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곡창성 하나이지요. 이런 것이 항복을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오호- 계속해보게."
"제 부친께 해주셨던 것처럼 자사자리를 준다면 설득되지 않겠습니까? 설득되지 않는다면 토벌해야지요. 곡창성이 견고하다고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여기에 수많은 익주백성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대의명분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결코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익주주자사라? 이거 좀 부담스러운데."
"남부를 쪼개서 새로 만들어 주십시오. 남부가 북부에 비하면 훨씬 오지입니다.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땅이지 않습니까? 군권만 뺏으면 됩니다."
"아니 이 사람아. 갑자기 이렇게 똑똑해지면 어쩌는가? 적응이 되질 않는군."
원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 보자, 마초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제가 살았던 서량과 비교해서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아주 좋은 의견이야. 다시 사신을 보내야겠어."
이전은 원매의 명을 받고 다시 방통에게로 향했다. 방통은 조금 짜증 섞인 얼굴로 이전을 맞이했다.
"이장군. 내가 해지기 전까지 결정한다고 했는데, 어찌 또 오셨습니까?"
"추가제안이 있어서 급히 달려왔습니다. 태자전하께서는 방군사 그대에게 익주남부의 통치를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군권을 분리하여 새로운 장수가 임명될 것입니다. 10년 임기를 보장하고, 문제 없다면 연장이 가능합니다."
실로 파격적인 조건에 방통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익주자사를 주신단 말입니까?"
"익주를 남북으로 분리하여 남쪽을 새로운 주로 만들고 그 주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방통은 실망하지 않았다. 남부가 온통 산이고 이민족이 들끓었지만, 이곳에도 백성들이 많이 살았고 사랑했다.
"진정 그리 말씀하셨다면 약조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이통은 조심스럽게 품 안에서 원매의 인장이 찍힌 죽간을 꺼내 바쳤다. 방통은 허공에 예를 표하고는 죽간을 받았다. 원매를 받아들이는 자세였기에, 이전은 안심이 되었다. 방통은 꼼꼼하게 죽간을 확인했다.
"고맙소. 이렇게 배려를 해주시는데 제가 어찌 다른 생각을 하겠습니까? 여기 장수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병부를 들고 나가서 태자전하께 항복하겠습니다. 먼저 돌아가 계시면 오늘 중으로 방문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뵙겠습니다."
이전은 밝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원매는 이전으로부터 보고를 받고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지휘소에 모인 장수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자사를 넘기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곳은 그리 대단한 곳이 아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중요한 곳은 익주 북부였다. 그저 이곳은 자급자족만 하면서 이민족으로부터 지킬 수만 있어도 충분한 곳이었다.
"문장군!"
"예. 태자전하!"
"자네가 이곳의 군권을 책임져 볼 텐가? 이민족이 많아서 부담스럽기는 한데, 어때?"
문추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중원의 요지에 비하면 좋은 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인 만큼 승진은 분명했다. 이곳을 잘 관리한다면 좀 더 좋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좋아. 진장군!"
"예. 태자전하!"
"자네에게 기병 3천을 줄 테니, 문장군을 도와 이곳을 지키게."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익주남부를 곡창현을 본따서 곡주라 명명하고, 문장군은 오늘부터 도독일세. 보병 3만, 기병 3천으로 이곳을 지키게."
원매는 시원스럽게 마무리를 지었다. 문추를 보좌할 장수들은 익주에서 항복한 장수들로 보충해줄 계획이었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문추를 도와 곡주를 안정시킬 것이다. 곡주출신인 옹개, 고정등은 아직 지켜봐야 했기에 이곳으로 보낼 계획이 없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방통은 병부를 앞세우고 이량, 손건과 함께 항복을 청해왔다. 원매는 방통을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다.
[방통(28)] 지력:97, 정치력:83, 통솔력:78
역시 좋다.
"신 방통 태자전하를 뵙습니다."
방통이 엎드리자, 이량과 손건이 같이 엎드렸다. 원매는 병부를 받고는 방통과 그들을 일으켰다.
"잘 오셨소. 전투를 하지 않고 이렇게 익주 남부를 얻었으니 참으로 기쁘오. 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예. 태자전하. 이렇게 환대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지휘소에는 간단한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방통을 환영하는 행사였다. 술이 한차례 돌고, 원매가 문추와 진도를 불렀다.
"방자사. 군권은 여기 도독 문추와 기병대장 진도에게 맡기면 될 것이야. 그대는 내정에 힘써서 피폐해진 곡주를 다시 되살리고, 이민족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의 목숨을 지켜주게. 이민족들과 교역을 증가시키고, 대화로 풀게."
"예. 태자전하. 그리하겠습니다."
방통은 원매에게 예를 표한 후, 문추와 진도를 바라보고는 예를 표했다.
"이곳이 산이 험하고, 이민족이 침입이 잦아 힘들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립니다."
문추와 진도도 고개를 숙였다. 모든게 수월하게 이뤄졌다.
원매는 이튿날 곡창성으로 들어가서 백성들을 위무하고는 방통이 그대로 이곳을 다스릴 것을 선포했다. 백성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원매의 결정을 지지했다. 방통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
"태자전하께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이곳을 관리하겠습니다."
원매는 방통의 어깨를 다독였다.
며칠을 곡주에서 머무른 원매는 항복한 장정들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방통으로부터 상황보고도 받았다.
원매는 방통과 문추에게 곡주를 맡기고는 보병 4만, 기병 1만 2천을 이끌고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이번에야 말로 유장을 격파해서 익주를 완전히 점령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