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제212장.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원매의 치소에는 보병 3만이 추가로 지원되어 총 5만이 적극적인 산악 수색활동을 벌였다. 기병은 주수 계곡과 연결되는 작은 계곡까지 말타고 이동하며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유비의 흔적은 좀처럼 찾지 못했다.
'그것 참. 분명히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어디에 숨은 거야?'
상류쪽 마을 사람들은 기병을 보지도 못했고, 그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태자전하. 신 장비 명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원매가 천천히 되돌아서자, 핼쑥해진 장비가 군례를 올리고 있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자네는 내가 원망스럽겠어."
"그렇지 않습니다. 난세니까요."
"아무래도 자네를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불렀네. 아직 유장군의 행방은 묘연해. 하지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서 찾고 있으니까 조만간 소재가 파악 될거야."
"그럼 어찌 처결하시려고 생각하십니까?"
원매는 입을 닫았다. 그는 말없이 앞을 보다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유비는 조조 못지 않은 영웅이야. 아니 바닥부터 일어난 것을 보면 더 위험하지. 조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네."
원매는 입을 닫고는 힐끔 장비를 바라 보았다.
장비는 관우에 이어 유비마저 잃는다는 생각에 눈물이 떨어졌다. 매우 슬펐지만, 원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다.
"태자전하. 만약 기회가 된다면 한번만 얼굴이라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원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 곽가가 급히 들어왔다.
"태자전하. 꼬리를 잡았습니다. 유양현의 의원 한 명이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야밤에 다수의 젊은 장정들이 그를 불러냈고, 그 이후로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하여, 그가 움직였을 만한 곳을 집중적으로 수색하고 있습니다."
"잘했어. 필요하면 병력을 더 투입해. 이런 것은 선조치후보고야."
"물론입니다."
곽가는 밖으로 나서려다가 그제야 장비를 발견했다.
"장장군도 오셨군요."
"곽부어사 반갑습니다."
"곽봉효."
"예. 태자전하."
원매가 다시 부르자 곽가가 급히 몸을 돌렸다.
"가능하다면 장익덕과 유장군의 만남을 주선하게. 물론 가능하다면 말이야."
"명을 따르겠습니다."
곽가가 물러났다. 장비는 공손하게 감사를 표하고는 치소를 물러났다. 원매도 치소안이 답답한지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날씨였다.
"낮은 이렇게 따뜻한데, 밤은 왜이리 추운지 원."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원매는 찌푸린 눈살로 산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산줄기를 보면서 살짝 회의감이 들었다.
'일신에 문제가 없었다면 어떡하든 도주했을 것이다. 벌써 이곳에 온 지도 일주일이 넘었어. 과연 잡을 수 있을까?'
며칠이 또 흘렀다.
원매는 애가 탔지만, 참고 버텼다. 수색을 하는 장병들은 더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을 때, 견초가 급히 들어왔다. 얼마나 급했던지 예를 올리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찾았습니다!"
"찾았어? 어디야?"
"유양현 서쪽에 신화촌이란 화전민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야산에 숨어 있습니다."
"설마 죽이진 않았겠지?"
"예. 일단 단단히 포위했습니다. 호위병들의 모습도 확인했고, 말도 확인했습니다. 또한, 주변을 샅샅이 훑었는데, 사람이 이동한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유비는 그곳에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좋아. 가보세. 앞장서게."
"예. 태자전하."
견초가 앞장 섰고, 원매가 나서자, 주요 장수들이 소문을 듣고 뒤를 따랐다. 장비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조운은 매우 긴장하여 호위를 강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공융에게 당했을 때처럼, 또 당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조자룡. 걱정말아. 또 당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원매는 그를 다독이고는 계속 이동했다. 그의 주변은 호위기병들이 철통같이 에워쌌다.
한시진(두시간)을 달려가자 고즈넉한 화전민 마을이 드러났다. 신화촌이었다. 촌노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2천이 넘는 기병을 보고는 바닥에 엎드려 덜덜 떨었다.
원매는 그들을 무심히 지나쳤다.
"저 곳이란 말이지?"
"예. 태자전하."
견초가 대답하자, 장비가 급히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태자전하.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올라가서 설득하겠습니다."
원매는 유비를 살려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조조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
"먼저 얼굴을 보게. 마지막 인사는 허락하지."
장비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터트렸다. 견초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장장군. 이건 전하의 호의요. 그리고 유장군은 지금 매우 위중한 상태가 틀림없소이다."
그제야 장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태자전하. 감사합니다."
그는 예를 올리고는 급히 산으로 달려갔다. 곽가는 이해한다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장비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방덕은 불만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있지. 마음속에 상처를 숨기면 한이 되는거야. 어떡하든 풀어내야지. 그래야 하나가 되지 않겠는가? 지금도 그런 과정이지."
원매는 말없이 야산을 지켜보았다. 유비의 목만 확인하면 된다. 굳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의 최후가 어떤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장비가 야산을 급히 올랐다.
"멈추시오!"
"나는 장익덕이다! 형님을 뵈러 왔다."
장익덕이라는 말에 호위대장이 급히 달려내려왔다.
"장군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형님은 어찌 되셨는가?"
"저를 따라 오시지요."
바쁘게 움직이는 호위대장을 보고 심각함을 장비는 눈치챘다. 급히 호위대장을 따라서 올라갔을 때, 유비는 곤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장비는 그 앞에 엎드려 눈물을 쏟으며 손을 잡았다.
유비가 힘없이 눈을 떴다.
"누구냐?"
"형님. 못난 익덕이 왔소."
유비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유비의 눈이 장비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장비가 홱- 고개를 돌리자, 호위대장이 비통하게 입을 열었다.
"이틀전부터 앞을 보지 못하십니다. 화살독이 온 몸에 퍼져 이제는 몸을 가누기도 힘듭니다."
장비는 그런 유비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우우우욱-
"막내야 울지마라."
유비는 장비의 등을 두르렸다. 그는 나른하게 입을 열어 천천히 말을 쏟아냈다. 장비는 울음을 참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백규(공손찬)형이랑 벌판을 달렸다. 정말 원 없이 달렸어. 그때는 무적이었는데."
유비는 과거의 추억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어릴 때, 너무 배가 고팠어. 먹을 게 부족했지. 그때는 쌀밥 한 번 먹는 게 소원이었지. 제대로 먹은 적이 없었어. 그러다가 의용병을 일으키고, 백규형이 도와주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쌀밥을 먹었어. 지금도 그때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유비는 군침을 계속 삼켰다. 장비는 그런 유비의 한손을 잡고,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혼자 드셨수?"
"네 놈 몰래 숨어서도 먹었다. 흐흐흐-. 부끄럽지만 정말 맛있었어. 하지만, 계속 먹다보니 그것도 질리더구나. 뛰어난 요리도 맛이 없었지. 내가 배가 불렀던 거야. 배가 불렀어. 그러니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하지."
"형님은 최선을 다하셨소. 누구도 욕하지 못할 것이오."
허억-
갑자기 유비의 등이 둥그렇게 활모양을 그렸다. 급히 장비와 호위대장이 온 몸을 주무르고 물을 먹이고 나서야 편안해졌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대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장비는 애가 탔다. 채 일각도 안되어 유비가 눈을 떴다. 고통 때문에 깼을 것이다.
"꿈을...... 꿨어. 유주 탁군에 황궁을 짓고 내가 황제가 되었지. 많은 대신들이 앞에 엎드렸고, 백성들이 만세를 불렀어. 휘하 수만의 대군이 충성을 연호했어. 참으로 감격스러웠어."
"좋은 꿈을 꾸셨는데 어찌 눈물을 보이십니까?"
"슬프니까."
"슬프다니요. 좋은 꿈입니다."
유비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들어 장비를 보았다. 아니 그쪽을 바라 볼 뿐이었다.
"달콤해. 아주 달콤한 꿈이지.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슬퍼. 이제는 가야겠어. 아- 운장이 부르는구나. 익덕아. 이 형은 먼저 가서 ...... 기다리마."
거짓말처럼 유비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믿기지 않는 죽음이었다.
"주군!"
"주군! 크흐흑."
호위대장과 병사들이 일제히 엎드려 눈물을 쏟았다. 장비는 오히려 덤덤해졌다. 아까 눈물을 많이 쏟았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호위대장. 형님의 시신이라도 온전히 보존하고, 무덤을 만들려면 이제 항복하세. 그게 마지막 도리야."
호위대장은 눈물을 쏟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장비는 홀로 내려왔다. 그는 급히 원매에게 달려가 군례를 올렸다.
"태자전하. 마지막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편안히 가셨는가?"
"그렇습니다. 태자전하. 감히 부탁드립니다. 그의 시신을 훼손하지 말고, 무덤을 만들어 주십시오. 이렇게 간청드립니다."
장비가 털썩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눈물을 쏟았다. 원매는 장비를 일으켜 세웠다.
"비록 칼을 맞댄 사이었지만, 죽은 시신을 훼손할 정도로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야. 일단 이곳 천릉현 양지 마른 곳에 묻었다가, 내년에 유주 탁군으로 옮기게. 그때 관우의 시신도 이장하고."
"태자전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견초가 급히 끼어들었다.
"장장군. 내가 확인해야 하오."
"물론입니다. 따라 오십시오."
견초는 유비의 얼굴을 아는 병사들을 대동하여 장비를 따랐다. 호위병들은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견초는 유비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는 들 것을 만들어 이불로 덮고는 산 아래로 내려왔다.
견초는 원매 앞에 이르자 가만히 이불을 열어 유비를 확인시켰다. 원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을 돌렸다.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원매는 신속하게 천릉현을 벗어나 임원성으로 향했다. 견초가 2만의 보병으로 마무리를 짓고 올 것이고, 장비에게는 그곳에 남아 며칠간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주었다. 기병과 3만 보병을 이끌고 도착하자, 이전, 곽독, 주포가 마중나와 군례를 올렸다.
"수고했소이다."
"태자전하. 이곳은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유비는 잡으셨습니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닐세."
"그렇군요.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상황보고 드리겠습니다."
이전의 안내를 받으며 원매를 치소로 향했고, 곽가와 방덕등 장수들이 그 뒤를 따랐다. 치소안은 금새 훈훈해졌다. 대승을 거뒀고, 적장까지 죽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한동안 덕담이 이어졌고, 이전의 상황보고가 시작되었다.
"유비는 보병 14만 5천, 기병 5천, 일꾼 10만을 동원했습니다. 빠르게 지휘부가 격멸되면서 엄청난 인원이 항복했습니다. 주변이 높은 산이라 도망친 인원도 적었고, 죽이지 않고 고향으로 돌려 보낸다고 약조하자 도망친 자들도 다시 내려와 항복했습니다. 하여 보병 9만, 일꾼 8만이 항복했습니다."
"빨리 돌려보내야지. 군량 소모가 극심하겠어. 기병은?"
"정앙이 이끄는 기병은 남쪽으로 도주했습니다. 아마도 그곳을 거쳐 험한 산을 넘어 익주로 도망갔으리라 판단됩니다."
"그럼, 이도독(이통)이 익주를 점령하는데, 골치아파지는게 아닌가?"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는 강족의 혼혈이고, 도주한 대부분이 강족입니다. 아마도 강족의 고향인 서장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원매는 수긍하고는 곽가를 돌아보았다.
"너무 많은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군대를 추스려서 저들을 이끌고 익주로 들어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면서 유비의 죽음을 알리면 더 빠르게 익주를 정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다시 농민으로 돌려보내야지요. 당분간 식량도 지원해주고요. 그러면 익주남부는 태자전하를 진심으로 따를 것입니다."
"좋아. 내일 출병하도록 하지. 병력은 보병 3만, 기병 1만으로 하지. 준비하게."
"예. 태자전하!"
원매의 명에 장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이제 마무리만 지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