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제207장. 원담 제 무덤을 파고 들어가다.
업성에서 보낸 전령이 강릉에 도착하자, 발칵 뒤집어졌다. 견초는 허저, 이전을 데리고 곧바로 원담에게로 향했다.
쾅-
요란스럽게 문이 열리자, 원담이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견가야. 미쳤느냐?"
"장군 원담은 지금 즉시 황명을 받으라!"
"뭐? 황명........ 무슨 소리야?"
"네 이놈! 폐하의 명령이 내려졌거늘 당장 오체복지하고 않고 무얼하느냐? 여봐라! 어서 저놈을 오체복지시켜라!"
"예. 장군."
원담이 무슨 일이지하며 혼란스러워할 때, 호위병이 달려들어 그의 무릎을 꿇리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무슨 짓이냐? 이놈들!"
"움직이지 못 하게 잡아."
여러 명이 그를 붙잡은 가운데 견초가 황명을 전했다.
"죄인 원담은 들으라! 짐이 그대에게 견장군을 잘 보필하여 유비를 격멸하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이를 태만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분란을 자초하여 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트렸다.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에 짐은 여러 장수들의 의견을 듣고, 그대가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타진했으나, 불행이도 그렇지 못하다. 이에 장수 원담을 파면하고, 즉시 업성으로 소환하라!"
"이럴 리가 없다! 네 이놈! 견초야- 무슨 야비한 술수를 저지른 것이냐?"
견초가 허저에게 눈짓을 하자, 허저가 다가와서 솥뚜껑만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후려쳤다. 두 번을 연속으로 타격하자, 당당하던 원담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견초가 허저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그의 멱살을 잡으며 으르렁거렸다.
"지금까지 네놈이 살아 남은 것이 폐하와 태자전하의 공덕임을 모른단 말이냐? 역적질을 저지르고도 살아 남았으면 쥐죽은 듯 살아야 할 것 아니냐?"
견초는 원담을 내치고는 차갑게 명령했다.
"당장 이놈을 포박하여 업성으로 호송하라!"
"예. 장군."
원담은 힘없이 끌려나갔다. 마지막 보루였던 원소가 등을 돌린 것이다.
"어찌 저런 작자가 태자전하와 같은 형제인지 이해가 안되는군."
견초가 탄식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전이 진언을 올렸다.
"견장군. 시간이 없습니다. 군사들 재편성하고, 훈련시켜야지요. 원담 때문에 벌써 보름이나 시간을 낭비했지 않습니까?"
"자- 내 치소로 갑시다. 오늘 부터는 힘들더라도 고되게 일해 봅시다."
"예. 장군."
견초를 따라 허저와 이전이 치소로 향했다. 원담이라는 골칫덩어리가 사라지자, 그들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원담이 사라지자, 강릉성에서의 훈련이 효율적으로 이뤄졌고, 방덕과의 연계도 원활해졌다.
그들이 강훈련을 통해서 유비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무렵. 원담은 업성에 도착했다. 그에게서 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형벌을 관장하는 형조상서 괴월이 성문 앞까지 나와 있었다. 괴월을 보자 그렇지 않아도 어두웠던 원담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괴상서. 이게 어찌된 일이오?"
"죄인 원담은 황명을 받으라!"
괴월이 엄하게 호통치자, 원담이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괴월은 힐끔 그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죄인 원담을 지금 즉시 대군으로 유폐한다."
짧은 한 마디에 원담은 멍해졌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는 악을 써댔다.
"폐하를 뵙게 해주시오! 절대 폐하께서 내게 이럴리가 없소이다!"
"까불지 말고 대군으로 가!"
원담이 고개를 돌리자 원매가 거만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괴월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급히 예를 올렸다. 원매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고는 원담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쥐었다.
"야! 이 자식아! 도대체 어떡하면 너처럼 멍청할 수 있냐? 엉? 내가 말했잖아. 마음만 먹으면 너를 언제든 죽일 수 있다고. 네놈에게 대역죄를 물어 죽이라는 상소를 내가 막고 있는 것을 몰라?"
원매는 그를 확 밀어서 넘어 뜨렸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대로 발로 차고 짓밟았다.
"전하 고정하십시오. 아랫 것들이 보고 있습니다. 체통을 지키셔야 합니다."
괴월이 급히 말리고 나서야 원매의 발길질이 멈췄다. 원담은 넋이 빠진 얼굴이었다. 원매는 급히 옷을 다듬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조용히 대군으로 가서 쥐 죽은 듯이 살아. 폐하께서는 네놈에게 실망해서 더는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
"폐하를 뵙고 가겠소!"
원담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지금 자신을 구제해 줄 이는 원소밖에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어서 저놈을 끌고 대군으로 출발해라!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네놈들의 목을 칠 것이다."
서슬 퍼런 원매의 명이 떨어지자, 원담을 대군까지 끌고 가는 임무를 부여 받은 군후는 그대로 부복하며 크게 소리쳤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어서 가!"
군후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달구지에 원담을 실었다. 포승줄에 묶인 원담은 억지로 태워졌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원소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것은 묵살되었고, 원담이 업성을 떠나는 동안에도 원소는 등장하지 않았다.
원담은 업성을 벗어나자 눈물을 쏟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소의 장남인 그가 왜 이런 푸대접을 받고, 유배까지 가는지를 도통 알 수 없었다.
원소는 황후전에서 가볍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그간 마시지 않았지만,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에 조금씩이나 술잔을 기울였다.
"한 잔 하시오."
"예. 폐하."
"어허- 왜 이러시오. 딱딱한 호칭은 그만두라니까."
"예. 상공."
황후 황옥(원매모친)은 조심스럽게 술잔을 받아 들었다. 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허허- 술이 쓴가 보구려."
"조금 씁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세요?"
"가슴 한 쪽이 뜯어져 나가는 것 같구려. 부인께서는 내 처사가 모질다고 생각하시오?"
황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상공께서 평범한 지아비였다면 참으로 모진 처사가 맞습니다. 하지만, 천하의 주인이시니 모진 처사가 아닙니다. 만백성의 어버이니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야 천하가 안정되고, 기가 오랫동안 유지될 테니까요. 이번에 대공자를 그리 조치하신 것도 그런 부분의 연장이라 생각합니다."
원소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업성의 대신들 대부분이 이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가 원담을 구제해 주는 것이 더 어려웠는지도 몰랐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십시오. 대군으로 유배를 갔으니 대공자는 매우 힘들겠지만, 목숨을 부지할 것입니다. 지금도 역적죄를 물으라는 상소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배를 가서 눈에 보이지 않으니 상소가 줄어들 테고, 그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할 명분도 생깁니다. 대공자의 목숨을 연장시키는 방법입니다."
"허허- 부인께서 어찌 이리 정치를 잘 아시오? 관직을 내려줄 테니 내일부터 관청에 와서 일하시오."
"제가 촌무지랭인줄 아십니까? 저도 나름 명문가 출생입니다."
황옥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기에 원소는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원담에 대한 아픔을 잠시 잊었다.
전풍치소.
전풍은 봉기, 저수와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실권을 지닌 원로 대신이 모인 것이다. 봉기가 입을 열었다.
"이번 기회에 대공자(원담)를 끝내야 하오. 역적질한 놈을 살려줬더니, 분수를 모르고 날뛰니 원."
"그렇습니다. 대공자는 확실히 도를 넘어섰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태자전하께서 황제에 오를 때, 문제가 될 것입니다. 폐하의 장자이니 태자전하께 불만을 품은 자들이 대공자를 부추킨다면 골치 아파집니다."
저수가 봉기의 의견에 찬동하고 나서자, 전풍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저도 두 분의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문제는 폐하이십니다. 심적으로 대공자를 죽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실 테고, 태자전하께서도 반대하실 것입니다. 사실 원한으로 치면 태자전하께서 제일 큽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혹시 충격에라도 쓰러질까 봐 반대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지 않소이까?"
봉기의 지적에 전풍이 냉혹한 표정을 지으며 날선 대답을 내놓았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신하들과 함께 상소를 올려 역적죄를 묻는다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풍이 말한 그때가 언제인지를 봉기와 저수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원소가 죽는 그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감히 황제의 죽음을 논할 수 없기에 그때라고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그럽시다. 대군으로 유배를 갔으니 당분간은 모른척 합시다."
봉기가 힘주어 결론을 내렸다. 그때가 되면 어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담을 처리할 것이다. 원매의 앞길을 막아서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튿날.
원매는 원소를 찾았다.
"아침 일찍부터 어인 일이냐?"
"강릉으로 내려가 볼까 합니다."
"또 내려간단 말이냐?"
원소는 화들짝 놀랐다. 원매는 그의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유비가 모든 것을 걸고 전투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전투가 될 것이고, 만약 여기서 밀리기라도 한다면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여 제가 내려가서 장병들을 지휘해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익주의 유장과 유비를 이번 기회에 지도상에서 제거하겠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이 아비가 늙긴 늙었나 보구나. 네가 전장터로 향한다니 덜컥 걱정부터 드는구나."
"강한 호위대가 버티고 있고, 범같은 맹장들이 제 곁을 지킬 것입니다. 제 목숨 하나는 충분히 건사할 수 있으니, 걱정 단단히 붙들어 매십시오."
원매가 가슴을 치며 자신감을 피력하자, 원소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마음이 많이 아프십니까?"
"괜찮아. 어서 다녀와."
원담을 그리 보내 놓고, 원소의 마음이 편할리가 없었다. 원매는 건강을 잘 챙기라는 당부를 전하고 치소를 물러 났다. 곧바로 어의를 만났다. 형남으로 가기 전에 원소의 상태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전에는 과중한 업무로 인해 병이 깊었으나, 최근에는 스스로 업무를 놓으시고 휴식을 취하면서 병의 진행이 느려졌습니다. 당분간은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부탁하오."
"예. 태자전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병이 낫는다는 말을 하지 않으니 원소의 생명이 많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분간이란 말을 꺼냈으니 몇 년은 버티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부디 통일은 보시고 돌아가셔야 할 텐데. 원담 이 쳐죽일 놈 때문에 병이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원매는 생각할 수록 원담에 대한 증오가 솟구쳤다.
"태자전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아- 장인어른 오셨습니까?"
원매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봉기에게 앉을 자리를 권했다. 봉기자 앉자, 내관을 시켜 차를 내주곤 입을 열었다.
"형남으로 갈까 합니다. 유비와 유장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지요. 제가 없는 동안 폐하를 잘 부탁합니다."
"걱정마시고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비전하(황태자비)께서도 이번에 복중에 아기씨를 가지셨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산달이 되기 전에 끝내고 올라왔으면 좋겠군요. 힘들어 할 텐데, 장인어른이 옆에서 많은 힘이 되어 주십시오."
봉기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본론을 꺼내들었다.
"대공자를 어찌 처결하실 것입니까?"
원매는 입을 닫았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막상 꺼내려니 걸리는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봉기가 눈치를 채고 진언을 올렸다.
"때가 되면 신하들이 일제히 상소를 올려 여론을 만들 것입니다. 그 후에 어전회의를 여시여 공개적으로 반역죄를 다시 거론하시면 됩니다. 이것은 작은 정에 얽매일 문제가 아닙니다. 기의 만년대계를 위한 일입니다."
원매도 때가 언제를 이야기 하는 지 알아 차렸다. 굳은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힘들게 이룩한 제국이던가? 방해하는 놈들에게까지 자비를 베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