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제204장. 형남을 모두 손에 넣다.
항복한 세 명의 장수는 각기 다른 본색을 드러냈다.
부융은 절대 항복하지 않으니 죽이라고 목소리 높여 고함을 질러댔으며, 진도는 항복을 거부하면서도 말을 아끼는 모양새를 갖췄다. 주포는 장가군을 요구했다. 항복을 하더라도 자신이 지배하고 있던 장가군은 다시 찾고 싶은 욕심이었다.
방덕은 주포와 먼저 면담을 시작했다.
"장가군을 네 놈에게 돌려달라? 이 말이냐?"
"나도 1만을 이끄는 장수인데, 네 놈이란 말은 심하십니다."
"그래. 그럼 죽여주지. 여봐라!"
"아...... 아니 괜찮습니다."
주포는 기가 팍 꺾였지만, 눈알을 굴리며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냐?"
"장가군은 제가 지배하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유비에게 넘긴 땅입니다. 결코, 폭정을 저지르지 않았고, 외부의 강족이나 수족, 만족들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방덕은 피식 웃었다. 기묘한 자였다. 재물욕심이 많은데, 나름대로 뛰어난 관리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중앙에서 관직을 내려 받은 것은 아닌데.
"자네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 병사들을 통해서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천하의 영토 주인은 오로지 태자전하의 것이지. 그런데 감히 어떤 놈이 땅의 권리를 주장한단 말인가?"
주포는 그제서야 원매가 유장, 유비와는 다른 부류임을 직감했다. 그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간청했다.
"제가 장가군을 잘압니다. 이곳은 산이 깊고, 인구가 적은데, 이민족이 많아 살기 힘듭니다. 제가 그 곳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여, 태수를 시켜 주시면 잘 관리할 자신이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아직 장가군은 유비의 손에 있으니 되찾으려면 시간이 걸리잖은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테니 자네도 충성을 보여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방덕은 주포를 돌려 보내고는 실소를 흘렸다. 실속을 이토록 차리는 자를 요 근래들어 보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주포의 이유가 합리적이기도 했기에 여지를 준 것이다.
주포를 돌려 보내자, 부융이 끌려 들어왔다. 하급장교들을 통해 알아 본 결과 그는 청렴했고, 장수로서의 덕목을 모두 갖춘 아까운 인재였다.
"나는 기의 개돼지가 될 생각이 없으니 죽이시게."
부융은 앉지도 않고 당당하게 말을 내뱉었다. 일말의 여지도 주지않는 그를 보며 방덕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평판이 좋더군. 그런데 이렇게까지 죽음을 자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죽여라. 대꾸할 값어치도 없다."
"며칠간 이곳에 있으면서 생각해보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가 아까워서 그래."
부융은 방덕을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더니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원매 개자식이 그렇게 욕심을 부리라고 가르쳤더냐?"
방덕이 튀어오르듯 그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쓰러진 부융을 밟고 또 밟았다.
"오냐. 죽고 싶다는데 죽여주마. 여봐라! 당장 이놈을 끌어 내어 참하라!"
호위병이 부융을 끌어냈고, 그 자리에서 즉각 참해졌다.
"야산에 버려 들짐승의 먹이로 삼아라!"
방덕은 들판에 시체를 버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 죽일 놈이 감히 태자전하를 모욕해?"
방덕은 차가운 물을 마시며 속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조금 차분해지자, 진도를 불렀다.
"자네는 어쩌시겠는가?"
"항복하지 않는다고 바로 참하십니까?"
진도가 당당하게 질문했다.
"항복하지 않는다고 저렇게 험하게 처리하지 않아. 부융 저 놈은 감히 태자전하를 모욕했지. 그래서 그런 것이야. 어찌하겠는가?"
"항복하지 않겠습니다."
진도는 머리를 숙였다. 방덕은 예상했다는듯 즉석에서 답을 주었다.
"이곳에서 머물면서 지켜보게. 그리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게야. 자네의 능력이 아까워서 그래."
진도의 포박을 풀어주고, 이곳에서 그대로 지내도록 허락했다. 방덕의 호의에 진도의 눈이 동그래졌다. 방덕은 그의 어깨를 툭쳤다.
"제가 도주하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어쩌긴. 자네 부하들이 많이 항복했는데, 천명쯤은 죽여서 분풀이해야지."
진도는 방덕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천 명을 죽인다는 것이 참일지 거짓일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짚었다고 생각했다.
"며칠의 말미를 주십시오. 주군에 대한 저의 충성심이 결코 얕지 않습니다."
"부하들을 아끼는 것도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네."
진도가 돌아가자, 방덕은 편안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부융이 아쉽게 되긴 했지만, 성과가 거두웠다.
며칠을 이곳에서 버티면서 진도를 한명의 장수로 대했다. 특히 하후연은 진도에게 공을 들였다.
"내가 모셨던 주군(조조)께서도 모든 영토를 빼앗기고 자살하셨소. 하지만, 나는 기를 따르고 있소이다. 왜 그런지 아시오?"
"궁금하군요. 왜 그렇습니까?"
"난세이니까요. 서로 전투를 벌였고, 승자는 기가 되었으니 주군께서는 역사뒷편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문제는 주군의 자식들이죠. 그들을 누가 돌보겠습니까? 주군의 옛신하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충절을 지키며 죽는다면 언젠가는 주군의 자손은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런 부분은 깊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진도는 하후연에게 포권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부디 옳은 선택을 하길 바라오. 기에는 뛰어난 인재가 넘쳐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장군의 배려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심사숙고하겠습니다."
하후연과 헤어진 진도는 기가 왜 강한지를 깨달았다. 그는 더욱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일신의 입신양명이 아닌 진정한 충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방덕은 모든 것을 정리했다.
항병을 받아들여 보병 2만 7천, 기병 1만 8천 5백이었다. 출병준비를 내리고는 진도를 호출했다. 진도는 굳은 표정으로 방덕을 찾아와 군례를 올렸다.
"결심하셨는가? 이제 더는 시간을 줄 수가 없다네."
"한 가지 물어 볼게 있습니다."
"말해 보게."
"주군의 자손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단, 주제를 모르고 부융처럼 설쳐댄다면 그때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자들은 목숨을 지킬 자격이 없으니까요. 기를 따르겠습니다."
"잘하셨네. 전하께서도 기뻐하실게야. 자네를 높이 평가하셨거든."
"저는 전하를 뵌적이 없습니다. 어찌?"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겠네. 그런 일을 수없이 겪었지. 이제는 그런가보다 한다네. 능력 있는 자들은 어찌 그리 쏙쏙 뽑아다 쓰시는지. 하하하하- 내게 더 물어봐야 대답해 줄게 없어. 나중에 전하를 뵙거든 물어보던가."
방덕은 진도를 격려하고는 장수들과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날.
방덕은 보무당당하게 병력을 이끌고 곽가가 머물고 있는 임원성 주둔지로 돌아왔다.
"승리를 감축드립니다."
"고맙소. 그대의 훌륭한 계책 덕분에 쉽게 승리할 수 있었소. 임원성은 어찌 되었소?"
"이것 참. 완강하게 항복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투를 벌일 수 밖에 없겠군."
"형남의 다른 태수나 현령이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본 때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한번 항복을 권해 보고 듣지 않는다면 토벌하여 강력한 힘을 보여주십시오."
"좋소."
방덕은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나는 기 태자전하의 명을 받아 온 장군 방덕이다. 관도독도 패했고, 유장군이 보낸 지원군도 모두 패했다. 그러니 더는 버티고 말고 항복하거라!"
방덕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관우에 이어 지원군마저 격파되었다는 말에 김의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는 급히 부친 김선을 찾았다. 김선은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이었다. 그는 힐끔 김의를 보더니 노성을 내질렀다.
"행동이 그리 가벼워서 어찌 내 아들이라 하겠느냐?"
"아..... 아버님. 저들이 지원군마저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황이 불리하니 신념을 버리고 항복이라도 하자는 말이냐?"
"그것이...... 버티기 어렵지 않습니까? 저도 죽음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백성들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저들이 성을 점령한 후에 분풀이를 백성들에게 할 것입니다."
"난세에 백성들은 괴로운 법이다."
"평소 아버님께서는 충성 못지 않게 백성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김선은 말이 없었다. 유비에 대한 충성을 철회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김의의 말대로 백성들이 눈에 밟혔다. 그들은 죄가 없었다.
"죄가 없지. 죄가 없어."
김선은 탄식을 쏟아냈지만, 결코 항복하지는 않았다. 김의도 그런 부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했기에 강요하지 않고 물러났다.
그는 성루에 올랐다. 밖에는 사다리를 만들고 공성탑을 만드는 등 공성전 준비에 한창이었다.
'전투가 문제가 아니라 전투 후가 문제다. 형남에서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강하게 나올 것이 분명하다. 제발 아버님께서 옳은 판단을 내리셔야 할 텐데. 이미 승패는 결정되었어.'
며칠이 더 지나고, 공성전 준비가 완료되자 방덕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김의는 어두운 안색으로 김선을 찾았다. 최근 들어 말 수가 적어지고, 힘 없는 모습을 보인 부친이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설마 안 좋은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부친의 뜻을 따를 것이다. 어떤 결정을 내리시더라도.'
김의는 치소 앞에 이르자 옷 매무새를 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아버님. 소자 의입니다."
대답이 없었다. 김의가 소리를 높여 여러 번 불렀지만, 고요했다. 김의는 문득 불안한 감정에 휩싸였다.
"아버님. 들어가겠습니다."
김의가 소리치며 문을 열었을 때, 충격적인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급히 달려 들어 서까래에 목을 맨 부친의 시신을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숨을 확인했다. 숨이 끊어졌다.
그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이를 악문 틈 사이로 괴로운 신음성이 쏟아졌다. 그렇게 슬픔을 달랜 김의는 종사관을 불러 부친의 장례를 준비토록 지시했다.
그후 상복으로 갈아 입은 김의는 흰 깃발을 준비했다. 충성도 중요했지만, 애꿎은 백성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성문을 열어라!"
삐이이이걱-
김의는 병사들에게 흰 깃발을 들게 하고, 무릉군 병부를 앞세워 방덕에게로 향했다.
"방장군! 방장군!"
방덕은 선잠에서 깼다. 피곤했었는지 의자에 앉았다가 깜빡 잠이 든 것이다. 곽가를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인데, 이리 급하신가?"
"항복을 청해왔습니다. 어서 사신을 맞을 준비를 하시지요."
"그래?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참으로 다행이로군."
방덕은 급히 종사관이 내미는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잠을 깨고는 밖으로 향했다. 곽가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가자 상복을 입은 젊은이가 병부를 앞세워 걸어오고 있었다.
"상복을 입었군."
"아마도 김선이 죽은듯 합니다."
"혹시 짐작이라도 가시는게 있으신가?"
"글쎄요. 병은 아닐 것입니다. 김선은 충절로 명망이 높은 가문출신입니다. 아마도 충성과 애민愛民사이에서 고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는군요."
방덕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김의는 방덕앞에 무릎을 꿇고는 병부를 바쳤다.
"무릉군을 들어 바칩니다. 부디 죄 없는 백성들을 해치지 마시고, 그들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김의는 엎드려 오열했다.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되어 그랬을 것이다. 방덕은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하겠소. 백성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군대도 물리겠소. 또한 그대가 계속 무릉군을 다스릴 수 있도록 전하께 보고드리겠소. 그리고 부친은 어찌 되셨소?"
"자결하셨습니다. 그 분은 도저히 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 또한 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지만,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없어 항복했습니다."
방덕과 곽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