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제201장. 확전擴戰
곽가는 곽도를 데리고 장사로 돌아갔다. 그토록 당당하게 왔던 곽도는 웬일인지 힘이 빠진 채로 돌아갔다.
장비처소.
베옷을 입은 장비는 관우의 제사상을 차려 놓고,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게 현실이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에서 관우와 나눈 대화와 행동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장장군. 들어가도 되겠소?"
"들어오십시오."
방덕은 처소에 들어 와 상황을 둘러 보고는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내가 조문하지 못 하는 것을 용서하시오."
"별말씀을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업성에서 전령이 내려왔습니다. 태자전하의 명령 없이 임의로 내려오셨더군요. 다시 업성으로 소환이 결정됬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만 형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내일 아침에 전령을 따라 업성으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럽시다. 그 정도의 편의는 내가 봐줘야지요. 그리고, 관평은 어쩌시겠소? 저리 뻗대고 있는데, 이래서야 죽일 수 밖에 없지 않소? 나야 솔직히 관평이 죽든 말든 관심 없소. 하지만, 그가 죽으면 관우장군의 후사는 끊어집니다. 어쩌겠습니까?"
장비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관우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이다. 장비는 급히 일어나 군례를 올렸다.
"방장군.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관평을 어떡하든 설득하겠습니다."
방덕은 장비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하고는 처소를 물러났다. 장비는 곧바로 관평이 감금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관평은 음식을 거부하며 버티고 있었다.
"평아. 숙부를 보고 인사도 하지 않느냐?"
"나는 배신자를 숙부로 둔 적이 없소."
관우를 쏙 빼닮은 성정이었다. 장비가 바로 앞에 앉았다.
"이 숙부를 욕해도 상관없다. 죽더라도 이것 하나만 알아 두고 죽거라. 네가 죽으면 형님의 대는 여기서 끊긴다. 또한, 자손에게 제사상을 얻어 먹지도 못할 것이다."
관평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평소 충의 못지 않게 효심을 강조한 관우였기에, 관평이 받은 충격은 컸다. 이대로 죽는 것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일 수 있지만, 엄청난 불효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네가 기冀의 장수가 되기 싫다면 그저 이름 모를 시골에서 살 수 있도록 내가 조치해주마. 누누이 말하지만, 형님께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고 기冀에서는 무덤을 만들어 주는 등 할 도리를 다했다. 어차피 난세인 이 시대에 무장은 전장에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그게 운명인 게야. 그저 내가 바래는 게 있다면, 형님의 대가 여기서 끊기지 않는 것 뿐이다."
"휴-"
관평은 탄식을 토해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 생각이 났으리라. 혼자 계신 어머니 생각도 났을 것이다. 관평은 장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숙부 막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숙부 뜻에 따르겠습니다. 작은 무관직이라도 내려준다면 받겠습니다. 저- 모친과 함께 갈 수 있겠습니까? 이 기회에 못다한 효도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리고 네가 자리를 잡거든 형님의 묘를 이장하자구나. 고맙다."
장비가 두툼한 손으로 관평의 손을 움켜 쥐었다. 전기가 흐르듯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었다. 장비도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근래들어 눈물이 많아진 장비였다.
다음날.
장비는 관평과 모친을 데리고 업성으로 향했다. 방덕의 배려로 오랏줄에 묶인 것은 면했지만, 죄인의 신분이었기에 장비는 스스로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즉, 함부로 이동하지 않았고, 그를 인솔하여 업성으로 향하는 사마의 명령에 군말 없이 따랐다.
장비가 업성으로 올라간 후, 곽도는 부도독의 명으로 계양, 영릉, 장상, 무릉군의 현령과 태수에게 원매를 따를 것을 지시했다. 또한, 관우가 대군을 이끌고 방덕과 싸웠지만, 대패했음을 강조했다.
장사군은 곽도의 지휘 아래 제일 먼저 항복했고, 영릉과 계양은 우물쭈물했지만, 항복하자는 기류가 강했다. 문제는 무릉군이었다. 무릉군 북쪽은 기의 영토였고, 중/남부는 유비의 영토였는데, 이곳은 익주 남부와 접경지대이기 때문에 유비가 지원해줄 것이라 믿고 강하게 버티었다.
방덕은 익양성의 병력을 재편성하며 출병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익주 익주군 곡창현. 유비치소.
관우가 전투를 시작하면서 보낸 전령은 그가 죽었을 때 유비의 치소에 도착했다. 방통은 죽간을 받아들고는 급히 유비를 찾았다.
"주군. 큰일났습니다. 장사에 원매군이 침입하여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뭐라? 그래서 어찌 되었어?"
"익양성과 치소인 임상성에 각각 3천을 두어 단단하게 지키게 하고, 관도독께서 기병 4천, 보병 2만 5천을 이끌고 출병했습니다."
"아직 결과는 모르겠군. 적의 규모는 어찌 되는가?"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보병은 1만 정도, 기병은 4~5천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문제 없을 거야."
유비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방통은 달랐다. 어두웠고, 착찹한 표정이었다.
"왜 그래?"
"아무래도 불길합니다. 이제껏 원매의 방식을 보면 확실하게 전력의 우세를 확보해 놓은 상태에서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원매와의 전투는 항상 힘들었고, 이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관도독의 보고를 종합하면 원매군이 열세입니다. 즉, 이제까지와는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죠."
"그럼 이제 어쩌면 좋겠는가?"
"지금은 첩보가 지나치게 제한적입니다. 전투가 벌어졌으니 매일 전령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며칠간 첩보를 종합하면 구체적인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때 가서 조치를 취하시면 됩니다."
"그리하게. 자네가 없었으면 큰일 날뻔 했어."
"그럼 물러가서 준비를 하겠습니다."
유비는 방통을 격려하여 돌려 보냈다. 홀로 남게 되자, 유비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원매 이놈이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그것을 모르니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로구나.'
며칠 동안 첩보를 추적한 방통은 대경실색하여 유비를 다시 찾았다.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 방통을 보며 유비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주군. 곽도가 배신했습니다."
쿵-
유비의 심장이 쿵-하며 내려 앉았다. 이제야 모든 정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다면 관우는 앞뒤로 협공을 받는 셈이고, 곧 군량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럼 패배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안되겠어. 지원군을 보내야겠어."
"관도독은 무릉군으로 철수시켜야 합니다. 치소인 임원성으로 철수하여, 강하게 버텨야 합니다. 곽도가 배신했다면 장사, 계양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무릉에서 버티면서 영릉의 일부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 하지. 즉시 전령을 보내. 철수하라고. 그리고 지원군은 진도와 기병 3천, 부융, 주포와 보병 2만을 보내게. 어서 서둘러!"
"예. 주군."
방통은 급히 명령서를 만들어 진도와 부융, 주포에게 전달했다. 곡창은 익주 남부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고, 형주로 가는 길은 산악지대였기에 지원군이 도착하는데는 적어도 보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유비의 지원군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동안 방덕도 빠르게 움직였다. 곽도의 의견에 듣고, 곧바로 무릉군 임원성으로 출병했다. 무릉군만 점령한다면 계양, 영릉은 자동적으로 넘어올 것으로 판단했다.
익양성에서 방덕군이 출병했을 때, 유비군도 곡창성에서 출병했다.
무릉군 치소. 임원성. 김선치소.
김일제의 후손으로 대대로 한에 대한 충절이 높았던 김씨 가문의 피를 물려 받은 김선은 원매에게 항복하지 않고, 유비에게 충성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한정되어 있는 군량으로 병사를 확충하고 훈련시켰다.
"아버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김의는 까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관도독께서 원매군에게 대패를 하였고, 그들은 군대를 정비하여 이곳으로 몰려 오고 있다고 합니다."
김선은 아들 김의의 말을 듣고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관우가 방덕과 전투를 치루면서 김선에게도 상황을 전파했는데, 유비의 명령이 없어서 지원하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지원하기도 무리인 게, 임원성 안의 병력이 겨우 4천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수성전을 벌인다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어도, 야전에 나간다면 필패할 것이 분명했다.
"수성전을 대비하라! 아직도 주군에게서 연락이 없느냐?"
김의는 고개를 가로로 흔들고는 수성전을 준비하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 김선은 이를 악물었다. 이곳 임원성은 익주 남부와 형남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이곳이 원매에게 넘어가면 유비는 형남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할 것이다.
'익주가 멀긴 멀구나. 아니지. 관도독이 너무 힘 없이 패배했어. 열흘도 안돼서 패배를 하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조만간 주군께서도 이 상황을 아실 것이고, 그렇다면 곧 지원병이 올 것이다. 그래. 이곳에서 최대 한달 정도만 버틴다면 승산이 있다.'
김선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양어깨에 놓인 짐의 무게가 매우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유비의 지원군이 무릉군 경계지대를 겨우 통과했을 때, 방덕군은 이미 임원성에 도착했다. 길이 평탄했기에 빠르게 도착했고, 거대한 원수를 이용하여 군량을 운반했다.
뎅뎅뎅뎅-
방덕군을 발견한 정찰병은 종을 계속 울렸고, 이어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병사들이 성벽으로 배치되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에 이들의 행동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방덕은 임원성 서쪽에 주둔지를 편성하고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방덕 치소.
방덕의 명에 의해 장수들이 모두 소집되었다. 하후연, 곽독, 호거아, 곽가가 참가했다. 곽가는 곽도에게 남은 행정업무를 맡기고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방덕군영에 합류했다.
"분명히 유비는 지원군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형을 봤을 때, 이곳 임원성으로 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곳에서 지원군을 격파한다면 임원성은 고립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항복할 것입니다."
곽가의 계책에 방덕이 수긍했다. 곽가의 계책은 계속 이어졌다.
"임원성의 병력은 대략 3~4천이고, 지원군은 많아야 3만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기병은 3천을 넘지 않겠지요. 반면 우리는 기병 1만 9천, 보병 1만 5천입니다. 또한, 저들은 군량을 등짐지고 산을 넘어야 하기에 많은 양을 가져 오지 못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원수를 따라 배로 이동하니 이 또한 유리한 부분입니다. 하여 임원성과 저들이 연결되는 것을 확실하게 끊는다면 이번 전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는 말을 끊고는 지시봉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다시 이어갔다.
"임원성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원수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주수가 합류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적들이 주수를 따라 형성된 계곡을 통해 이동할 것이 확실하므로 이곳 유양현일대에서 매복했다가 급습할 것을 진언드리는 바입니다."
곽가가 자리에 앉자 방덕이 하후연, 호거아, 곽독의 의견을 듣고 나서 계책을 확정지었다.
"하후장군. 경부상을 당한 기병이 꽤 될 텐데, 어찌 하고 있소?"
"2천 정도가 경부상입니다. 그간 며칠 휴식을 취하면서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들은 예비대로 이곳에 남겨두고, 튼튼한 기병들을 매복에 투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하겠소. 곽장군. 보병도 하후장군처럼 운용하는 것이 어떻소?"
"그리하겠습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호장군. 그대가 깊숙이 매복하여 적의 퇴로를 끊는 임무를 맡으시오. 매우 위험하고 중요한 임무요. 가능하겠소?"
"물론입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습니다."
호거아가 주먹을 불끈 쥐며 굳은 결심을 드러내자, 방덕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만큼 호거아가 든든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