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제200장. 매듭 한 개는 풀었지만,
"이럇! 이럇! 서둘러라!"
일백여기로 추정되는 기병무리가 방덕군영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기병들이 가운데 두 명의 문인들을 보호하여 움직이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들은 새벽이 어스름하게 밝아 올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추위를 대비하여 단단히 방한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형님. 조금 천천히 가시지요."
곽가가 급히 곽도에게 구원요청했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는 무리였는지도 몰랐다.
"워-"
곽도가 손짓을 하자, 기병대장이 호각을 불어 점차 속도를 줄였고, 모두 멈췄다. 말들이 가뿐 숨을 몰아 쉬고 있을 때, 곽도가 매서운 눈으로 곽가를 노려보았다.
"겨우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한단 말이냐?"
"제가 무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각(15분)만 쉬었다 가시지요."
"에이- 못난 놈! 일각만 쉬었다 간다."
곽도의 명령에 기병들이 반색하며 말에서 내려 자리를 잡았다. 말을 타고 달린다는 것은 매우 고되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다.
마른 고기를 질겅질겅 씹어 대는 곽도에게 곽가가 말을 걸었다.
"한시진(두 시간)은 달린 것 같습니다."
"그래. 벌써 날이 밝아오는구나. 서둘러야 해."
"왜 이리 서두르십니까? 이미 전투는 승리했고, 관우를 야산으로 몰아 넣었다고 보고를 받지 않았습니까? 형님은 행정적으로 형남을 마무리 지어야지요."
"관우를 죽여야지. 만약 그 놈이 덜컥 항복이라도 한다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 할 것이다. 그래서 서두르는 것이다. 세상 일은 알 수가 없으니까. 방장군도 그 전에 약속한 게 있으니 내 말을 허투루 듣지는 않을 것이다."
곽도의 얼굴은 타협의 여지없이 단호했다. 곽가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출발하자!"
곽도가 일어서자, 기병들이 일제히 준비를 했고, 그들은 다시 방덕군영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장비와 관우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관우가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했고, 장비가 길게 설득하는 방식이 이어졌다.
"생각할 시간을 주게."
모처럼 관우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형님. 시간이 없으니, 오후까지는 반드시 답을 주시오. 식사를 하고 다시 올라 오겠소. 여기 마른 고기와 물이 있으니 좀 드시오."
장비는 힘겹게 들고 온 물통과 마른 고기를 그 자리에 놓고 산을 내려왔다. 그의 얼굴은 확실히 밝아졌다. 관우를 살릴 수 있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장비는 산을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방덕을 찾았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방덕은 반색했다.
"오- 장장군. 수고했소이다. 그럼 잠시 쉬셨다가 식사를 하시고, 다시 올라가서 설득하시오. 아시겠지만, 시간을 많이 드릴 수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장비는 한 쪽으로 물러나 뜨끈한 국물을 들이키며 갈증을 달랬다.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가 되자, 장비는 다시 산으로 올랐다.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관우를 설득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형님! 저 익덕입니다."
"올라오거라!"
장비는 산을 올라 관우와 마주할 수 있었다.
"얼굴이 많이 상했습니다."
"네 놈의 얼굴은 뭐 나은 줄 아느냐?"
관우가 피식- 웃으면서 농담까지 건네자, 장비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설득을 시작했다.
"저와 함께 산을 내려갑시다. 조조도 멸망했는데, 이제는 기冀를 이길 수가 없소. 우리가 살아 남아야 큰형님을 보살펴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휴-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네가 내려가고 난 다음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론이 나질 않아. 나도 너처럼 냉철했으면 좋았을 텐데. 불끈하는 성정 때문에 그게 안되는구나."
"그냥 눈 딱 감고 나와 내려갑시다. 나머지는 내가 다 해결하겠소."
장비의 집요한 설득에도 관우는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성적으로는 항복을 한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감정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비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야- 이 관우 개자식아-"
밑에서 악을 쓰는 소리에 관우와 장비가 동시에 일어났다. 그들이 아래를 쳐다보자, 욕설이 계속 이어졌다.
"아직도 살아 있구나. 이 쳐죽일 놈아! 네 놈의 목은 이 곽도가 반드시 베어 주마!"
곽도가 고래고래 악을 쓰자, 산 위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관우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굳어졌다. 장비가 급히 관우의 손을 잡았다.
"형님. 내 말만 믿으시오. 저놈 말은 듣지 마시오."
"놓아라!"
어느새 관우의 얼굴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생각해보고 해가 지기 전에 답을 주마. 내려가거라. 어서!"
단호해진 관우를 보며 장비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제까지 수고한 공이 모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조금의 희망을 품고 내려왔다. 산을 내려 온 장비의 얼굴은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 얄미운 곽도를 보자, 죽이고 싶을 만큼 살심이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장장군. 지금 뭐하는 거요? 저 새끼는 죽여야 되는데, 왜 설득을 하고 그러시오? 그리고 명령서는 어디 있소?"
곽도가 빠르게 할 말을 쏟아내자, 장비가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방덕에게 제지당했다. 방덕이 양측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장장군. 곽부도독이 관장군을 죽여달라고 요청하셨네. 나로서는 곽부도독의 청을 무시하기 어려우이. 형남을 얻는데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곽부도독이니까."
"이보시오. 곽공칙."
"뭐? 곽공칙? 곽부도독으로 부르게. 내가 자네보다 항상 높은 위치였어."
"뭐 좋소. 곽부도독. 왜 형님을 도발하는 것이오. 이제 설득을 다했단 말이오. 도대체 왜 그렇게 형님을 미워하냔 말이오?"
"내가 그 동안 저자식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유장군(유비)을 버리고 기에 항복한 것도 다 관우 저자식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유장군이 망하는 것도 결국은 관우의 오만때문이란 말이다."
장비는 말문이 막혔다. 관우의 오만은 유주에서부터 유명했다. 겨우 유비만이 통제할 수 있었는데, 형남으로 혼자 떨어져 나오니 어찌 행동했을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더군다나 눈에 가시였던 곽도였으니,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괴롭혔을 것이다.
"내가 대신 사과하겠소. 부디 형님을 용서해주시오."
장비가 고개를 숙이자, 곽도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사실 장비와는 별다른 원한관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장군. 미안하지만, 그리는 못 하겠소."
곽도는 몸을 홱-돌려 자신의 처소로 사라졌다. 장비가 급히 따르려고 하자, 방덕이 고개를 가로로 흔들며 제지했다.
"곽부도독의 원한의 뿌리가 매우 깊소. 쉽게 정리가 되지 않소이다. 사실 이 작전도 그것에 기반하여 만들어졌고, 그래서 장장군께는 비밀로 했던 것이오."
"아까 방장군께서 오늘 중으로 형님이 항복한다면 인정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지키셔야 합니다."
방덕은 난감함에 눈을 돌렸다. 설마 곽도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을 몰랐기 때문에 선뜻 약속을 한 것이 화근이 된 셈이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물론이오! 오늘까지만 항복한다면 곽부도독은 내가 책임지고 설득하겠소."
장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야산으로 달려가 소리를 지르며 관우를 설득했다. 불안감을 느낀 곽도도 야산으로 달려가 온갖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다.
해질녁이 되자, 관우가 얼굴을 드러냈다.
장비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제발 바보같은 생각은 하지 마시오. 제발.'
오만함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관우가 엉뚱한 마음을 품을까 장비는 가슴을 졸였다.
관우는 크게 숨을 들이 쉬고는 우렁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나는 끝까지 한漢을 따를 것이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모든 내용을 품고 있었다. 장비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급히 산을 올랐다.
"형님! 다시 생각해보시오."
"오지마라. 내가 한번 내린 결정은 번복하지 않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
"그래도 이번에는 동생의 뜻을 따라 주시오. 내가 태자전하께 말씀 드려서 어떡하든 길을 열겠소. 태자전하라면 곽도도 어쩌지 못 할 것입니다."
"다 끝났다. 이 형은 그런식으로 추하게 살고 싶지 않구나. 먼저 가서 기다리마. 나중에 보자."
"형님. 안되오."
장비가 땅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다. 관우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쪽 어딘가에 형님이 계실 것이다. 먼저 가는 이 동생을 용서해주시오.'
관우는 준비를 마친 듯 표정이 단호해졌다. 그의 입에서 쇠를 자르듯 겪한 음성이 튀어 나왔다.
"습장군. 준비하라! 이제 모든 것을 끝낸다."
"안돼!"
장비는 관우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차렸다. 그가 급히 일어나 관우에게로 달려갈 때, 습진이 휘두른 칼에 관우는 한 많은 인생을 마쳤다. 장비는 관우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했다.
습진 또한 스스로 목을 그어 생을 마감했다.
장렬한 최후였다. 적막한 가운데 장비가 오열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곽도는 빠르게 산을 올라왔다. 그는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관우의 죽음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보통 때의 냉정한 곽도였다면, 장비의 마음이 매우 불안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조심하겠지만, 지금은 관우, 장비 못지않게 곽도도 매우 흥분하여 제정신이 아니었다.
관우의 죽음을 확인한 곽도는 미친 놈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우흐흐흐흐- 잘 죽었구나. 잘 죽었어. 우흐흐흐-"
곽도는 괴소를 멈추고는 달려들어 관우의 시신을 발로 차는 만행을 저지르자, 장비가 곽도를 잡아 내동댕이 쳤다. 그는 곽도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는 죽일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이 죽일 놈아! 이미 돌아가신 분께 뭐하는 짓이냐? 아무리 원한이 깊더라도 이런 짓을 한단 말이냐?"
"놓아라. 어서!"
어느새 따라 올라온 방덕이 급히 둘을 떼어 놓았다. 그는 양쪽을 노려보며 물러서게 하고는 관우의 죽음을 확인했다.
"곽부도독은 이제 내려가시오. 그대의 뜻대로 되었지 않았소?"
"아직 내 분함은 풀리지 않았소!"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더이상 나를 곤란하게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소. 알겠소?"
방덕이 이를 악물고 소리치자, 곽도의 기세가 꺽였다.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던 것이다. 장비와 달리 방덕은 원매의 최측근이었다. 장비처럼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는 방덕과 장비를 노려보고는 그대로 산을 내려갔다. 방덕은 장비를 보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장장군. 미안하지만, 수급을 잘라 업성으로 보내야 합니다. 이해해 주시오."
장비는 그저 서럽게 통곡을 할뿐이었다.
"이곳에 무덤을 만들어 드리겠소. 장장군께서 나중에 원한다면 묘를 이장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소. 힘들겠지만, 이제는 잊으시오. 우리같은 무장들에게는 눈물도 사치요. 그저 주인의 명에 따라서 미친듯이 싸우다가 이름 모를 땅에 묻히는게 운명인 것이오."
방덕이 눈짓을 하자 병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관우의 목을 베어 함에 담았다. 그후, 항병을 이용해 햇볕이 잘 드는 완만한 땅을 찾아 땅을 파고, 관우의 시신을 묻어 무덤을 만들었다.
또한, 습진의 시신은 따로 들쳐메고 내려왔다. 형주의 대호족인 만큼 시신을 돌려주고, 그들의 충성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빌어먹을!"
곽도는 연신 술을 들이켰다. 그토록 원하던 관우의 죽음을 이뤄냈지만, 속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괜히 불쾌하고 더러웠다.
"잘 죽었어. 감히 이 곽도를 무시한 벌이야."
벌컥-벌컥-
곽도는 연신 술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마셨지만, 취기는 오르지 않았다. 몸은 비틀거리고 가늠하기 힘든데, 정신이 말짱했다. 참으로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