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99화 (199/253)

# 199

제199장. 흔들리는 마음.

관평은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방덕이 이끄는 1만 5천의 기병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고, 엄청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자, 병사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오랫동안 전장을 구른 방덕은 노련했다. 관우에게 패하고 후퇴한 하후연을 합류시켜 그에게 관평군을 상대하게 하고, 자신은 기병 1만 5천을 이끌고 관우를 덮쳤다.

평화로운 해변을 덮치는 거대한 쓰나미처럼 1만 5천의 기병은 관우군을 몰아쳤다. 방파제가 무너진 사이로 거대한 바닷물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것처럼 방덕기병은 관우군의 틈사이로 파고 들었다.

이후 20명 남짓이 한 조가 되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잔인하게 학살을 시작했다. 관우가 하늘이 내린 용장이었지만, 거대한 무리의 진격을 홀로 저지할 수 없었다.

관우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관평이었다. 관우는 대비를 어느 정도 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관평은 급히 진군하다가 길게 우회한 하후연에게 후방을 기습당했기 때문이었다.

방덕이 이끄는 기병이 워낙 강렬하게 정면공격해오니 그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길게 우회해 오는 하후연기병을 놓친 것이다.

실수는 작았지만, 그 댓가는 컸다. 속수무책으로 뚫렸고, 기병 1천 5백이 제일 먼저 궤멸되었다.

"이노오오놈-"

관평은 눈이 뒤집혀서 하후연기병에게 달려들어, 미친듯이 장창을 휘두르며 척살했다. 관평의 힘과 무예는 실로 대단했다. 그의 주변에 하후연기병 시체가 깔리기 시작했다.

"어린 놈이 대단하구나. 네놈은 누구냐?"

이미 기병을 몰살하고, 보병을 추격하며 궤멸중이었기에 하후연은 여유가 있었다. 전장을 눈여겨 보다가 관평의 놀라운 무예를 보고는 천천히 다가 온 것이다.

"나는 관평이다. 그러는 네놈은 누구냐?"

"하후연. 그렇다면 관우의 아들이겠구나? 역시 피는 못 속이는가?"

"건방진 놈! 감히 부친의 존명을 함부로 부르다니. 내가 네놈의 목을 베고 말겠다."

관평은 그대로 말을 몰아 하후연에게 달려들었다. 하후연은 관평의 무예를 살폈기에 움직임을 읽었고, 힘이 빠진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방어에 치중했다. 계속해서 강한 공격을 퍼붓던 관평의 창은 점차 속도가 느려지고 무뎌졌다.

하후연은 서서히 반격에 나섰다. 예리하게 찌르고 빠지기를 반복하자, 관평의 균형이 무너지며 비틀거렸다.

"이야야야압!"

하후연은 힘을 한꺼번에 뽑아내며 폭풍같이 찔러댔다. 연이은 찌르기를 간신히 막아대던 관평은 결국 가슴에 한 방을 맞으며 그대로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엄심갑 덕분에 심장이 꿰뚫리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경험의 차이가 드러난 한판이었다.

"포박하라!"

호위기병들이 관평을 포박하고, 입에 함매를 물리는 동안 하후연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기병은 사실상 몰살되었고, 보병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고 있었다. 이를 기병들이 추격하며 벼를 수확하듯 목을 베었다.

"기병들을 불러들여라!"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호각소리가 길게 계속해서 이어지자 넓게 퍼져 학살을 자행하던 병사들이 돌아왔다. 그는 재빠르게 기병을 확인했다. 전투가 가능한 기병이 3천을 조금 웃돌았다. 그는 곽독의 보병에게 전령을 보내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기병 1천을 돌보게끔 조치했다.

"방장군을 도와 관우를 잡으러 간다! 가자!"

하후연이 앞장서자, 3천의 기병의 쏜살같이 뒤를 따랐다.

관우는 사신이 이 땅에 현신한듯, 온 몸을 피로 뒤집어 쓰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세는 완전히 껶여 있었다. 습진이 급히 달려왔다.

"도독! 피하셔야 합니다. 이미 보병과 기병이 궤멸상태입니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일단 밀림이 있는 서쪽으로 가시지요. 이곳에 더 있다가는 죽음뿐입니다."

"나보고 저런 잡놈들이 무서워서 도망치란 말이냐?"

"한 손이 열 손을 당할 순 없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일단 피하시고, 주군의 도움을 기다려야 합니다. 어서요. 더는 지체할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병들이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관우는 이를 악물었다.

"탈출한다!"

관우가 앞장섰고, 그 뒤를 기병들이 따랐다. 분노한 관우가 장창을 휘두르며 길을 열자, 용맹한 서량기병도 감히 막지 못했다. 몇 겹을 둘러싼 포위망이 무너지며 결국 관우는 탈출에 성공했다.

그들은 샛길을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한시진(두시간)정도 달린다면 밀림이 나올 것이고 그렇다면 방덕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이다.

방덕은 급히 경기병 2천으로 그들을 앞지르게 했다. 2천의 경기병은 순식간에 관우의 병사들을 따돌리고는 앞서 나갔다. 그들은 주요 목지점을 차례로 선점하며 관우를 좌절시켰다.

경기병이 관우기병을 순식간에 따라잡은 것은 서량기병이 우수하기도 했지만, 원매가 북방의 우수한 말을 틀어쥐고, 공급을 차단했기에 유비, 조조, 주유의 말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장은 강족을 통해 서장(티베트)에서 공급받으면서 말공급에 숨통이 트였다.

관우는 서쪽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급히 남쪽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곳도 막힌 것을 깨달았다. 사방이 방덕기병으로 막힌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저 놈들을 죽이고 죽겠다!"

관우가 노하여 돌격하려는 것을 습진이 급히 제지했다. 수백의 기병으로 포위망을 뚫으면서 백여명으로 줄어든 상태였고, 대부분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매우 지쳐 있었다.

"안됩니다. 이대로 간다면 개죽음입니다. 일단 저기 야산으로 몸을 피하시지요."

"그리로 도망치면 끝이야. 저놈들이 포위하면 끝이란 말이야."

"그래도 피하셔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떤 수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돌격은 개죽음입니다."

간절한 습진의 눈을 보자, 관우는 탄식을 토해냈다.

"자네는 대호족이니 이쯤에서 항복하게."

"저는 도독과 운명을 같이 할 것입니다."

"못난 사람 같으니라고."

"일단 저 산으로 피하시지요. 그리고 기회를 보셔야 합니다. 아무리 희망이 적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막힌 길을 뚫지 못하고, 결국 낮은 야산으로 올라갔다. 해가 떨어지며 서서히 어두워졌고, 방덕기병은 주변을 포위해 왔다. 관우는 경계를 강화하며 교대로 휴식을 취하며 밤을 지샜다.

이튿날.

햇살이 쏟아지며 아침이 밝아 왔다. 병사들은 추위에 웅크린 몸을 비틀어 기지개를 켰다. 관우와 습진도 쪽잠을 잔 상태에서 눈을 떴다.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좌절했다.

야산으로 올라올 때도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두웠고,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 차분하게 주변을 살펴보니 사실상 막다른 골목이었다.

방덕은 또 다른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 겹겹이 단단하게 에워쌓다.

방덕군영.

곽독의 보병까지 합류했다. 그들은 아침 일찍 밥을 해먹고 뜨끈한 국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아침의 추위를 떨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면 추위는 가실 것이다. 이때 군영이 소란스러워졌다. 장비가 사방에 수소문을 하며 결국 방덕군영을 찾아낸 것이다.

"아니 장장군이 어쩐 일이시오?"

방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원매에게 출병명령을 받을 당시에 장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또한, 장비와 관우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그가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깜짝 놀란 것이다.

"방장군. 내가 관우형님을 설득하겠소. 그래서 이렇게 급히 왔소이다."

"태자전하께 허락을 받았습니까?"

"물론입니다."

"명령서를 보여주시오."

깐깐하게 나오는 방덕 앞에 장비는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급히 오다가 떨어 뜨렸소. 명이 급하여 찾지 못하고 이렇게 달려 왔소이다."

방덕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명령서를 보기 전에는 안되오. 만약에 그대가 임의로 이곳에 왔다면, 분명히 전령이 3일 내로 도착할 것이오. 3일이 지나고도 전령이 오지 않는다면 그대의 뜻대로 관우를 설득하게 해주겠소."

"그럼. 형님을 설득하실 것입니까?"

"설득해보고....."

방덕은 말 끝을 흐렸다. 여기서 시간을 끌다가 유비의 지원군이 오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쯤이면 장사군 전투소식이 알려졌을 것이고, 그러면 유비가 어찌 움직일지 알 수 없었다. 빠르게 처리하고 무릉군까지 점령한 후에 유비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방덕의 입장이었다.

"내가 반드시 설득하겠소. 오늘 중으로 설득하겠으니 하루만 시간을 주시오. 방장군. 이렇게 부탁드리겠소."

장비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방덕이 화들짝 놀라 그를 급히 일으켰다.

"왜 이러시오?"

"한번만 기회를 주시오. 내가 더는 부탁하지 않겠소. 방장군도 그가 얼마나 훌륭한 장수인지를 아시지 않습니까? 귀부한다면 태자전하께도 큰힘이 될 것입니다."

방덕은 고민에 빠졌다. 명령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장비가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었다. 관우를 항복시킨다면 오히려 큰 공을 세운다고 생각하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장장군. 오늘 하루입니다. 더는 시간을 드릴 수가 없어요. 무릉군을 포함하여, 형남을 빠르게 정복하고 서쪽의 유장군(유비)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방덕은 말을 이어가며 슬쩍 장비의 눈치를 봤다. 예상했던 대로 장비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는 방덕에게 군례를 올렸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오이다. 어떡하든 그를 항복시키겠소이다."

장비는 곧바로 관우가 숨은 야산 밑으로 달려갔다. 몇겹으로 둘러싼 포위망을 지나고 나서야 관우가 있는 야산에 도착했다.

"형님! 나 익덕이오. 지금 올라가겠소!"

잠잠하자, 장비는 급히 산으로 올랐다. 반각(7분)정도 올랐을까? 관우의 노기에 찬 목소리가 장비의 귀에 꽂혔다.

"올라오지 마라! 너는 내 눈에 띄는 순간 죽는다."

"형님! 어찌 이러십니까?"

"배신이나 하는 놈은 더는 내 동생이 아니다. 어서 내려가라!"

"목숨을 보중하시오! 내가 어떡하든 형님과 큰형님께서 편안하게 사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드리겠소."

"미친 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관우는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엎드린 장비를 모질게 내려 보았다.

푹 들어간 눈. 움푹 패인 볼. 까끌한 얼굴. 볼품 없어진 수염.

항상 단정하게 하고 다니던 관우가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자 장비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돌아가거라!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네 놈처럼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

"형님. 그것은 사정이 있었소이다. 그때 내가 항복하지 않았다면 형님이나 저 둘 다 죽었을 것이오. 그러면 큰형님께서는 누굴 의지하고 살겠습니까? 그래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랬습니다. 일단 살아 남아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이상한 마음을 품지 마시고 제 뜻을 따라 주십시오. 태자전하께 부탁하여 선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장비가 희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관우는 말이 없었다. 심적으로 동요가 있었는지 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형님! 속는 셈 치고, 제 말을 믿어 주시오. 솔직히 대세는 기冀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장비가 머리를 땅에 찧으며 계속 간청하자, 관우의 마음은 요동쳤다.

'어찌 해야 하는가? 차라리 어제 전장에서 죽는 것이 나았을 뻔했구나. 왜 살아 남아서 이런 쓸데 없는 고통에 휘말려야 한단 말인가? 이제 와 어떡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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