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98화 (198/253)

# 198

제198장. 막판 뒤집기.

기주 업성. 고람치소.

치소로 들어서려던 고람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자신의 앞을 막아 선 장수를 노려보았다. 8척(184cm)이상이었고,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장장군. 무슨 일이신가?"

"지금 형남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다네. 사실이야."

"그렇다면 우리 형님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장장군. 자네는 기冀의 신하야. 지금 적국의 장수를 걱정하고 있는 건가?"

"태자전하를 뵙게 해주십시오."

"태자전하께서 자네가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그런 한가한 분이신가? 내가 주간 보고를 드릴 때, 말씀을 드리고 허락이 있으시면 시간을 잡도록 하지. 돌아가봐."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뵙게 해주십시오!"

"이놈이 제정신인가? 물러서라! 일에는 순서가 있고, 경중이 있는 법이다. 어찌 이리 경우 없이 설치는가? 장익덕. 자네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단 말인가? 돌아가게. 가서 기다리면 연통을 넣겠네."

고람은 장비를 밀치고는 그대로 치소로 들어갔다. 장비는 암담했다. 당장 원매를 뵙고 청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에게로 가는 길은 인의 장막이 겹겹이 둘러쳐 있었다. 중랑장인 그로서는 쉽게 뚫을 수 없는 강력한 벽이었다.

장비는 축 쳐진 어깨로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하내군 훈련장으로 향했다. 중간 지점인 낯선 야산에서 노숙을 하게 되자, 누워서 하늘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관우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티격태격했지만, 친형제 못지 않게 정이 깊었다 .

'어쩐단 말인가? 이대로라면 적어도 7일을 기다려야 태자전하를 뵐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허락을 얻어 장사로 내려간다면 어쩌면 형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이던 장비는 벌떡 일어섰다.

'이대로 형님을 보낼 수는 없다! 내가 잘못되는 한이 있더라도 형님을 뵈어야겠다. 형님이 절대로 기의 군대를 당해내지 못한다. 어떡하든 형님을 구해야 한다.'

그는 앞으로 어떡하면 관우를 구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른 아침.

장비는 2명의 호위병에게 죽간을 써서 고람에게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 그들이 출발하자, 함께 강릉으로 갈 자원자 5명을 뽑고, 나머지는 하내훈련장으로 돌려보냈다.

"가자!"

장비가 말을 몰고 출발하자, 5명의 호위병이 뒤를 따랐다.

다음날. 고람치소.

오후 늦게 장비가 보낸 연통이 도착하자, 치소는 발칵 뒤집혔다.

"이...... 이 미친 놈이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구나!"

고람은 매우 화가 났지만, 분노를 터트리기 보다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결론은 원매의 심중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곧바로 태자치소로 향했다. 왜냐하면 원매가 뛰어난 장수들을 매우 아꼈기 때문이었다.

밖에서 서성거리며 때를 기다린 고람은 드디어 기회를 얻어 태자치소로 들어섰다.

"고상서(병조상서 고람). 오래 기다리셨다고요?"

"예. 전하. 급한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급한 일이라? 설마 벌써 관우를 잡기라도 했단 말이오?"

"저....... 그것이 아니라, 장비가 독단적으로 군을 이탈했습니다."

"그게 무손 소리인가? 내가 허락하지 않았거늘 어찌 장수가 주둔지를 이탈할 수 있어? 이것 참. 지휘명령계통이 엉망이로군."

"이틀 전에 태자전하를 뵙게 해달라고 제게 왔었습니다. 관우가 위기에 처한 것을 깨닫고 온 것 같았습니다. 하여 태자전하의 허락이 있은 연후에 출발하라고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참. 기가 막히는군. 어떤 경우라도 내 명령을 어기는 것은 용서할 수 없어! 당장 전령을 강릉으로 보내 장비를 불러 들여! 내가 직접 심문할 것이니 함부로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고. 어서 조치하시게."

"예. 태자전하."

고람이 종종걸음으로 나가자, 원매는 머리를 감싸 안으며 자리에 앉았다. 장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이런 일이 생길 것같아 장비에게는 비밀로 붙였는데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알 수 없었다.

'장비가 강릉에 도착하고 이틀 후에야 전령이 도착할 테니, 그에게는 이틀의 시간이 주어지겠구나. 불상사는 없어야 할 텐데.'

원매는 고개를 흔들었다. 개인적으로 장비를 아끼는 마음과 명령을 위반한 그를 처벌해야 하는 마음 사이에서 괴로웠다.

형남 익양성.

한가롭던 이곳은 엄청난 살기로 뒤덮혔다. 그간 전쟁을 자제하며 참고 버티던 관우가 군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관우는 보병 2만 5천을 1만씩 2개 부대로 나누고 관평과 습진을 대장으로 삼아 동시에 진격시켰다. 밀리는 쪽에 투입하기위해 5천의 예비대를 바로 뒤에 따라 붙였고, 기병 4천은 관우 자신이 직접 이끌었다. 유주에 있을 때부터 말타기에 능숙했던 관우였다.

관평과 습진이 각각 1만의 병사를 이끌고 좌, 우측에서 동시에 진격하자, 곽독은 일자 형태로 길게 늘였던 병사들을 부랴부랴 좌, 우측으로 묶었다.

"활을 쏘아라!"

곽독의 명령에 궁수 2천이 쏜 화살이 관우군에게 떨어졌다. 하지만, 수가 많았고, 방패를 든 상황이었기에 피해는 생각보다 작았다.

둥둥둥둥-

관우는 계속해서 진격을 명령하는 북을 울렸다.

와아아아-

관우군은 함성을 지르며 계속 진격했다.

"백병전을 준비하라!"

둥-둥-둥-

곽독의 명령에 북소리가 울렸고, 궁수들은 안쪽으로 파고들며 자연스럽게 보병들이 장창을 길게 늘이고 적을 대비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목책을 치고, 구덩이를 팠지만 수적으로 열세였기에 얼마나 버틸지 미지수였다.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관우군의 기세는 엄청났다.

쾅-

관우군이 배가 많은 병력으로 곽독의 보병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수의 병사들이 달려오는 탄성을 이용하여 그대로 곽독군에 부딪치자, 대열이 흐트러지며 출렁였다.

전면에서 극심한 백병전이 벌어지며 밀리기 시작하자, 곽독은 호각을 불고 북을 울려서 후방쪽에 위치한 병사들을 동그랗게 방원진을 새로 편성하게 했다.

전면의 병사들을 격파한 관우군은 새롭게 편성된 방원진과 마주했다. 이제는 달려오던 탄성도 없어졌고, 지쳐 있어서 우위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렇지만, 관우군은 수적우세를 믿고 강하게 밀어부쳤다.

"출병한다!"

하후연은 기병 5천을 이끌고 우측의 습진군영으로 출병을 결심했다. 하후연 기병이 출병해야 관우기병이 출병할 테고, 그래야 방덕의 1만 5천 기병이 투입되었을 때, 관우의 대처가 늦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독! 지금 습진장군에게 기병 4~5천이 돌격을 개시했습니다. 하여, 습진장군께서는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보병 5천을 투입하라!"

"예. 장군."

전령이 돌아가고, 곧 준비가 되어 있던 보병 5천이 즉각 지원되었다. 하지만, 보병 5천을 투입하더라도 힘들 것이란 것을 관우는 잘 알고 있었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버텨라! 내가 반드시 기병을 이끌고 가서 모조리 죽여주마!'

관우는 전장을 바라보며 틈을 노렸다. 하후연의 기병이 기세 좋게 습진군을 흔들어 놓고 있었으며, 5천이 추가 투입되었지만 전세는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습진군의 대열은 흐트러졌고, 확연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관우가 말에 올랐다.

"공격한다! 목표를 습진군을 공격하고 있는 원매기병이다!"

삐이이익!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연이어 울렸고, 앞에서 붉은색 깃발을 꽂은 기병들이 앞장 섰고, 나머지 기병들은 대열을 유지하기 위해 깃발만 보고 내달렸다.

하후연기병은 뒤늦게 관우기병의 존재를 눈치 채고 보병과의 난전에서 발을 뺐다. 하지만, 쉽게 보병에게서 분리하여 대열을 만드는 것은 힘들었고, 겨우 어느 정도 대형을 유지했을 때, 관우기병이 들이닥쳤다.

하후연기병이 관우기병보다 정예였지만, 기습을 당한 상황이었고, 습진군을 해치우느라 힘이 소진되었기에 자연스럽게 관우기병이 우세를 드러냈다.

기병들은 수십 명씩 조를 이루어 곳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기병간의 전투가 벌어지며 보병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관우의 무용은 엄청났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신장神將인듯,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피보라가 일었다. 대적할 장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후연은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자, 호위기병을 이끌고 관우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수많은 기병들을 죽이며 체력을 소모했지만, 관우는 관우였다. 하후연을 맞이하여 한 치도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30여합을 넘기면서는 우위를 점해 버렸다.

하후연은 기가 막혔지만, 그의 양 어깨에 기병들의 목숨이 달렸기에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버텼다. 70여합까지 근근히 버티던 하후연은 결국 말을 돌려 달아났다. 그 뒤를 관우가 괴성을 지르며 추격해왔고, 하후연의 기병은 힘없이 무너졌다.

우아아아아아-

관우의 기병이 지르는 함성은 지축을 흔들었다. 관우는 기병을 쪼개어 관평을 지원했다. 하후연의 기병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자,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제 전투는 완벽하게 우위를 점했고, 곧 끝이 날 것이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 이렇게 쉽게 끝이나는 것을!'

하후연의 기병마저 격파하자, 관우의 오만한 자부심을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가 천천히 전장을 살펴볼 때였다.

"도독!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냐? 적들이 궤멸되어 도주하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후방에 기병이 나타났습니다."

"아까 격파된 패잔병들인가?"

관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수롭지 않게 판단할 때, 전령이 크게 소리쳤다.

"무려 1만이 넘습니다. 얼마나 많은지 수를 셀 수가 없습니다."

1만이 넘는다는 말에 관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때 뇌리를 스친 생각은 단 하나였다.

'당했다.'

그렇다. 옴짝달싹 못 할 함정에 빠진 것이다. 더군다나 1천 5백을 관평에게 지원한 상황이었다. 2천 남짓되는 기병과 1만이 조금 넘는 보병으로 1만이 넘는 최정예기병을 상대할 수 있을까?

관우는 대열을 정비하라는 명령을 내리며 암담한 표정으로 후방을 바라보았다. 뿌옇게 먼지구름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말이 얼마나 많았기에 저런 먼지구름이 솟아오른단 말인가?'

관우는 상념을 떨치고는 장창을 굳게 쥐었다. 죽기 살기로 버텨 볼 생각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도망치지 않는다면, 그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기병의 도움을 받자 관평은 여유있게 곽독군을 몰아붙였다. 결국 당해내지 못 한 곽독군이 도주하자, 관평이 급히 추격을 명령했다. 이때 선임교위가 급히 관평을 만류했다.

"장군. 후방을 보십시오."

그제야 고개를 돌린 관평의 눈에 엄청난 먼지구름이 들어왔다. 선임교위가 급히 진언을 올렸다.

"저것은 보병이 아니라 기병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먼지입니다. 저정도면 최소 7~8천, 많으면 1만이 넘습니다. 어서 관도독께로 합류하여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합니다."

어리고 아직 경험이 부족한 관평은 도주하는 곽독군이 눈에 밟혔다. 큰공을 세울 기회가 눈 앞에서 사라지고 있었기에 망설여졌던 것이다.

"어서요! 어서. 시간이 없습니다."

기병의 무서움을 절절히 알고 있는 늙은 선임교위는 관평을 재촉했다.

"에잇! 어서 기병과 보병을 재편성하라! 재편성되는 즉시 관도독을 구원하러 출병한다!"

"예. 장군."

그제야 밝아진 선임교위가 물러났고, 징소리와 호각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추격하던 기병들은 다시 모여들었고, 보병들도 대오를 정비했다. 다소 시간이 걸려 준비가 되었을 때, 방덕이 이끄는 1만 5천의 기병은 이제 눈으로 식별가능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어서 가자! 도독을 구해야 한다!"

관평이 앞장섰고, 기병, 보병의 순서로 그 뒤를 따랐다.

0